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34)
마리엔은 동그란 은색 스푼을 든 채로 굳었다. 바일레온의 시선, 표정, 각도 모든 것이 한 가지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먹여달라는 건가?’
마리엔은 제 몫의 디저트와 바일레온의 얼굴을 멍하니 번갈아 봤다.
“비어스 경도 스푼이 있지 않나요……?”
“바닥에 떨어뜨렸어요.”
“네?”
그럴 리가. 테이블 위에 멀쩡히 있던 스푼이 언제 바닥으로 떨어졌대.
게다가 바일레온은 군더더기 없는 테이블 매너의 표상과도 같았다. 그가 입가에 뭔가를 묻히고 먹거나 콩을 떨어뜨리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동글동글 조그만 완두콩도 안 떨어뜨리는 사람이 스푼을 떨어뜨릴 리가 있어?
하지만 진짜였다.
마리엔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일레온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스푼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그럼 직원에게 새 걸 가져다 달라고 할게요.”
“다 녹겠어요.”
바일레온이 아이스크림을 눈짓했다. 아이스크림은 당연히 멀쩡했다. 냉동고에서 퍼낸 둥근 모양을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얼른요.”
그렇게 달짝지근한 목소리로 채근하시면 어떡해요. 여긴 공공장소고 그건 범죄예요!
마리엔은 반쯤 홀린 기분으로 분홍색 아이스크림을 폭, 떴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곁눈질을 했다. 옆 사람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는 상황이다.
클로이즈가 바늘에 엉덩이를 찔린 사람처럼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스푼을 가져올게요. 어, 그리고 물도 한 잔 떠 오는 게 좋겠어요.”
클로이즈는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말을 중얼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영애를 부려먹을 의도가 아니었다. 그냥 대낮에 이런 장면을 연출해도 괜찮은가 하고 눈치 본 것뿐이었는데!
어쩔 수 없다.
바일레온은 여전히 아이스크림 맛보기를 기다리고 있다. 마리엔은 그에게 천천히 아이스크림 뜬 스푼을 내밀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눈부신 햇살 아래 바일레온만 느리게 움직였다. 수려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미형의 얼굴이 마리엔에게 다가왔다. 입을 벌려 스푼을 머금은 순간, 바일레온이 시선을 맞췄다.
‘헉.’
마리엔은 스푼을 든 자신의 손이 꼴사납게 떨리지 않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머릿속에서 이따위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이건 범죄예요! 풍기문란죄로 잡혀가고 싶으세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확정이라고요!’
하지만 당사자는 보좌관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따위 알 리 없겠지.
바일레온은 스푼에서 입을 떼는 순간까지 마리엔을 응시했다. 빨아당기는 힘이 예상보다 셌기 때문에, 마리엔의 손이 몇 센티미터 앞으로 딸려갔다.
마리엔은 얼른 손을 내렸다. 스푼은 아이스크림의 흔적이라곤 없이 매끈했다.
‘정말 야무지게 빨아 먹었네.’
음, 말하고 보니 빨아 먹었다는 표현은 그만 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럼 핥아 먹었…….’
경고. 경고.
‘여기에 입술 말고 혀도 닿았겠지?’
마리엔 디디 유죄.
음란한 망상이 선을 넘었습니다. 사형을 집행합니다. 땅, 땅, 땅.
‘아, 그만해야겠다.’
마리엔은 깊이 참회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하필 바일레온이 혀끝으로 입술을 핥고 있었다. 순간 마리엔의 귓가에 뭔가가 ‘펑’ 하고 터지는 환청이 들렸다.
“딸기 맛인 줄 알았는데.”
바일레온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따, 딸기 맛이 아니에요?”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자신의 몹쓸 망상을 멈출 만한 것이라면 뭐든 좋았다.
마리엔은 분홍색 아이스크림을 한 입 떠먹었다. 방금 짜낸 과즙처럼 신선하고 달콤한 딸기 아이스크림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딸기 맛……인데요?”
“네, 예상대로네요.”
“그렇지만…….”
마리엔은 말끝을 흐렸다. 바일레온이 입을 댔던 스푼으로 먹었다. 뒤늦은 깨달음에 마리엔의 뺨이 달아올랐다.
그만둬, 마리엔. 간접키스 같은 유치한 단어는 떠올릴 생각도 하지 마. 그냥 같은 도구를 사용한 것뿐이라고.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여하튼 맛있네요! 장사가 잘될 만해요. 영애를 따라 나오길 잘했어요.”
마리엔은 자신이 아무렇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아이스크림과 우유 얼음을 떠먹었다.
바일레온과 눈을 마주치는 건 좀 더 이따가 가능할 듯싶었다. 그런 점에서 당장 집중할 음식이 눈앞에 있는 게 다행이었다.
그때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자줏빛 연기를 머금은 듯 허스키한 목소리가 마리엔의 귀에 들렸다.
“오랜만입니다, 비어스 경. 황궁 밖에서 뵙는 건 처음인 듯하군요.”
바일레온이 등을 곧게 펴고 앉았다.
“아나이스 사제, 반갑습니다.”
“멀리서도 비어스 경을 알아볼 수 있었답니다. 한데 다음 순간, 비어스 경께서 몸을 기울이시지 않겠습니까. 여기 자매님으로부터 아이스크림을 받아 드시기에.”
레슬리가 웃었다.
“전 순간 사람을 잘못 본 줄 알았답니다.”
“네, 그러셨군요.”
“근래 교제하는 분이 생겼다는 소식은 못 들었는데요.”
마리엔은 이 작자가 언제까지 제 등에 붙어서 나불거릴지 궁금했다. 우유 얼음을 떠먹는 마리엔의 손길이 점점 전투적으로 변했다.
“혹시 제 정보수집이 느린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기, 교제 상대가 아니신 자매님은……?”
레슬리가 드디어 마리엔과 바일레온의 중간으로 나와 섰다. 마리엔은 디저트 그릇에서 고개를 들고 바일레온을 쳐다봤다.
제가 직접 대답할까요?
무언의 질문을 하자 바일레온 또한 말없이 응답했다.
그래요.
“전 재상부 제3보좌관 디디입니다.”
마리엔은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왠지 이 작자에겐 최소한의 개인정보만 전달하고 싶었다.
“성이 디디라는 건가요, 아니면 이름이 디디인가요?”
“성이요.”
“귀여운 성이군요. 그럼 그 성에 어울리는 자매님의 이름은 아마도…… 마리엔이겠네요.”
마리엔이 고개를 홱 들었다. 시선이 마주친 레슬리는 눈을 가늘게 휘었다. 그 교태로운 웃음에, 마리엔 일행의 테이블을 훔쳐보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한숨을 쉬었다.
“전 레슬리 아나이스 사제랍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제가 자매님을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아십니까. 동화 속 재투성이 아가씨는 유리구두를 흘리기라도 했지. 자매님에 대해 아는 거라곤 이…….”
레슬리가 마리엔의 머리를 느릿하게 쓰다듬는 시늉을 했다.
“사탕 같은 머리 색뿐이니.”
마리엔은 그의 손길을 피하려다가 의자 등받이에 부딪혔다. 얼른 자세를 바로 했을 땐, 이미 레슬리의 입가에 번진 미소를 본 후였다.
상대는 시종일관 여유로운데 혼자 지레 긴장한 사실을 들켜버렸다. 민망한 한편으로 분했다.
하여튼 남이 오해할 짓을 태연히 저지르는 게 몸에 배었다니까.
“제 보좌관은 어쩐 일로 찾으셨습니까?”
바일레온이 유독 ‘제’ 발음에 힘을 주어 물었다.
“아, 사적인 이유입니다.”
“사적인 이유요?”
바일레온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제게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비어스 경, 이거 재밌군요. 제가 방금 사적인 이유라고 말씀드렸지 않나요?”
“듣고 난 후에 제가 그게 사적인지 아니면 공적인지 판단하겠습니다.”
바일레온의 목소리는 차분하고도 부드러웠다.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마리엔은 놀란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스푼을 만지작거렸다.
우리 비어스 경, 상대방을 압박할 땐 이런 식으로 하나 봐. 재상부에서는 좋게 말해도 착착 굴러가니까 친절했던 거였어.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거든요.”
언젠가 바일레온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죠. 전 자매님과 제가 처음 마주친 장소에 대해 여쭤보려 했답니다. 어떤 용무로 그곳까지 오셨는지 궁금해서요.”
“그거라면 상관인 제가 대신 답해드릴 수 있겠군요.”
바일레온이 천천히 손깍지를 꼈다. 그의 태도만 보면 여기가 아이스크림 가게의 테라스석이 아니라 재상의 집무실인 것처럼 느껴졌다.
“디디 보좌관은 상관의 지시를 이행하러 거기 갔습니다.”
“……비어스 경이 저희가 만난 장소를 아신다고요?”
“모르는 게 이상하죠. 애초에 제가 가라고 한 건데.”
마리엔은 제게 내려꽂히는 레슬리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으려 애썼다.
바일레온은 잘하고 있다. 너무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잘해서 놀라울 정도다.
문제는 마리엔 자신이다. 여기서 티가 나면 안 된다. 교활한 레슬리 놈은 아주 미미한 부분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자매님, 대체 어떤 지시를 받았나요?”
과연 비열한 놈이다. 거기서 바로 나한테 화살을 돌리냐고!
“그렇게 물으셔도 보좌관은 말할 수 없을 겁니다.”
바일레온이 대화를 산뜻하게 종결시켰다.
“대외비거든요.”
“……하.”
한 방 먹었군. 레슬리가 실소 비슷한 웃음을 흘렸다.
한편 마리엔은 벅찬 감정을 누를 길이 없었다.
‘여러분 다들 보고 계시죠? 눈앞의 이 남자! 이 수완 좋은 매력남이 바로 제 남자…….’
마리엔은 상상 속에서 자기 입을 세게 때렸다. 입술이 부어서 오리 주둥이가 돼도 할 말이 없을 실수였다.
아무리 흥분해도 그렇지. 해도 되는 말실수가 있고 아닌 게 있거늘.
마리엔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런 후엔 눈앞의 이 남자가 자신의 최애이자 이 시대의 새로운 남자주인공이라고 힘차게 외쳤다.
어쨌든 레슬리는 이 자리에서 더 얻을 게 없다고 판단했나 보다. 그는 바일레온을 향해 진부한 인사말을 늘어놓았다.
이다음엔 마리엔의 차례였다.
“앞으로 종종 뵙길 기대합니다, 귀여우신 자매님.”
레슬리가 자연스럽게 마리엔의 손을 잡으려 했다. 작별인사랍시고 손등에 키스하려는 거다! 누굴 바보로 아나. 같은 수법에 또 당할 줄 알고?
마리엔은 재빨리 주머니에서 물건 찾는 척을 했다. 매끄러운 장갑을 낀 레슬리의 손이 허공에 붕 떴다.
레슬리는 눈앞에서 사냥감을 놓친 뱀처럼 아쉬움의 입맛을 다셨다. 그는 이내 방향을 틀어 아이스크림 위의 체리 장식을 집어 들었다.
당연히 마리엔의 몫이었던 설탕에 절인 빨갛고 동그란 체리가 레슬리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사제는 마리엔을 내려다보며 체리를 씹었다.
‘나도 곧 저렇게 으깰 거란 경고인가?’
만일 그렇다면 왜 다짜고짜 경고하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북부 놈을 치우려다 자신은 본의 아니게 오데트의 심기를 건드렸다. 하지만 황태자나 2황자 눈에 거슬릴 짓은 안 했단 말이다.
“신의 가호가 늘 함께하시길.”
허락도 없이 남의 체리 집어 먹고는 뭐가 어쩌고 어째?
마리엔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레슬리를 노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슬리는 유유히 길 건너의 서점으로 향했다.
몸에 꼭 맞는 순백의 사제복 때문에,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올라붙은 엉덩이가 부각되어 보였다. 이 거리의 모든 여자가 레슬리의 특정 부위를 힐끔대고 있었다.
저런 걸 두고 온몸으로 나 사이비입네 외친다고 하는 걸까. 겉만 봐서는 도무지 신을 섬기는 자로 보이지 않는다.
음란마귀 물럿거라. 퉤퉤.
“새로 사줄까요?”
바일레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뭐를요?”
“디저트요. 사제가 허락도 없이 손을 댔잖아요.”
마리엔은 그가 체리를 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 아아, 괜찮아요. 에이, 아직 이만큼이나 남아 있는데 그깟 체리 때문에 새로 시키는 게 말이 돼요?”
“하지만 당신이 기분 나쁠 수도 있으니까.”
사려 깊은 바일레온.
마리엔은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