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39)
순간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나왔다. 하나 마리엔에게 자신의 성량에 놀랄 여유 따윈 없었다.
마리엔의 시선은 목걸이를 움켜쥔 카인의 손에 박혀 있었다.
‘설마 벌써 부쉈을까?’
망가뜨리고 없앨 줄만 알지, 다른 방법 같은 건 모르는 놈. 인생이 죄다 그런 식이지. 어떻게 너 같은 게 남주일 수 있어.
마리엔은 놈이 로켓 목걸이를 부쉈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씩씩거렸다.
“과연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군.”
카인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마리엔 디디.”
구름다리 위에 선 카인은 원래 키에 다리 높이까지 더해져, 아득히 높은 곳에서 하계를 내려다보는 신 같았다.
지나가던 다른 사람이 봤다면 분명히 그런 비유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리엔에게만은 예외였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놈의 저 오만한 얼굴을 거름통에 처박고 싶었다.
“너, 황녀 전하께 허락받고 하는 짓이야?”
진짜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다. 로켓 목걸이는 잠깐 빌려달라는 부탁이 통하지 않는 물건이었다. 카인 놈은 당연히 목걸이를 몰래 빼돌렸을 것이다.
“그건 어머니의 유품이라고! 은이 아니라 헝겊으로 만든 조악한 물건이라도 남의 걸 함부로 망가뜨려선 안 돼. 유품이라면 더더욱! 그 나이 먹도록 뭘 배웠어, 이 역병 같은 자식아!”
마리엔은 길길이 날뛰었다. 이대로 계속 화를 퍼부어서 카인의 주의를 자신에게로 돌릴까 싶었다.
왜냐면 카인이 미동 없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발언이 선을 넘으면?
다른 방법을 강구할 새도 없이 목걸이는 으스러질 터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마리엔은 카인을 노려보는 것으로 불안함을 감추려 들었다.
“넌 입만 열면 4황녀 핑계를 대지. 한데 네 속마음도 그럴까?”
“무슨 엉뚱한 소리야.”
“네가 이 목걸이를 지키려는 건 순전히 4황녀를 위해서만이 아닐 텐데.”
망할, 들켰네.
그러나 마리엔 디디의 특기가 바로 남에게 들키는 거다.
그러니까 카인 놈의 빈정거림은 마리엔에게 손톱만큼의 타격조차 줄 수 없었다.
뭐 어쩌라고.
“이 상황에서 중요한 건 내 속마음 따위가 아니야. 나야말로 묻고 싶네. 네놈은 유품을 망가뜨리고 나서 약혼녀에게 뭐라고 할 작정인데?”
“어차피 내가 범인인 줄도 모를걸.”
카인이 태연하게 지껄였다.
“지금 기분으로는 재상부 제3보좌관의 짓이라고 말하고 싶군.”
“개소리.”
“네가 나한테 뒤집어씌우려고 벌인 짓이라고 하면 꽤 설득력 있게 들릴 거다. 넌 그간 내 주변을 맴돌며 황궁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어. 4황녀에겐 그게 구애가 아니라고 어떻게 잘 둘러댄 모양인데.”
네가 아니라 비어스 재상이, 하고 카인이 덧붙였다.
“보통 아무 이유 없이 그런 짓을 저지르진 않거든. 그럼 이제 4황녀는 이렇게 생각할 거야. 네가 품고 있는 게 연심이 아니라면 적의밖에 없다고.”
이야기 전개가 슬슬 불길해진다. 마리엔은 화제를 돌리려 애썼다.
“지금 우린 목걸이 얘길 하고 있잖아. 왜 자꾸 내 감정으로…….”
“적의. 원한. 누명.”
카인이 짧게 끊어 말했다.
“거기다 비어스 재상을 향한 맹목적인 충성까지.”
“…….”
“어때. 이쯤 되면 더는 내 말이 개소리처럼 안 들릴 테지.”
그래. 심지어 아주 그럴싸하게 들린다. 마리엔은 적의 가득한 눈으로 카인을 노려봤다. 이러다가 눈알이 툭, 빠져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을 무렵이었다.
“넌 이상해.”
카인이 불쑥 말을 내뱉었다.
“가끔 미친 토끼 네가 앞일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내 머리카락에 이어 4황녀의 귀걸이를 숨긴 진범까지……. 오늘도 그래. 비어스 재상의 생일이라 재상부 전체가 들뜬 분위기인데도 넌 이상하게 창밖을 주시할 거다. 왜냐면 오늘 일어날 일을 알고 있으니까.”
“무, 무슨.”
“그런 전제하에 가짜 심부름꾼을 보냈더니 냉큼 낚였지 않나.”
놈은 당근과 채찍이 아니라 채찍 연타 수법을 썼다.
“네가 보기에 미친 토끼 넌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야. 대상을 분석해서 행동을 예측하긴 틀렸단 뜻이지. 그렇다고 감이 좋지도 않아. 눈치가 더럽게 없다는 소리 많이 들었을 텐데.”
“그런 말 하는 사람 없었거든?”
“네 주변엔 예의 차리는 인간만 있나 보군.”
카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꼭 비어스 재상처럼.”
마리엔은 이쯤에서 놈의 추궁을 중지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누구랑 다르게 머리도 좋고 감도 좋은 새끼가 마리엔 디디의 비밀을 까발리려 하고 있었다.
“내가 궁금한 건 앞날을 아는 녀석치고 네가 너무 허술하단 거야.”
입으로 독을 뿜어내는 북부 놈. 마리엔은 허술해서 미안하게 됐다며 일부러 놈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그러고는 바로 본론으로 건너뛰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목걸이를 무사히 돌려줄 건데?”
“네가 보는 미래엔 방법이 안 나와 있나?”
“미래 못 봐. 그러니까 방법 같은 것 몰라. 빨리 조건이나 말해. 어차피 네놈이 날 겨냥해서 함정 판 게 밝혀진 판에……!”
사실 마리엔은 카인이 뭐라고 말할지 대충 짐작이 갔다.
그는 아마 제 머리카락에 대한 집착을 그만두라고 요구할 것이다. 카인 블랙우드에게 가장 중요한 비밀이 그거니까.
카인은 오늘 로켓 목걸이를 인질 삼아 확답을 받아낸 뒤, 추가로 황궁을 떠나라는 식의 요구를 할지 모른다.
어쩌면 북부의 블랙우드 공작성으로 가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내가 어디 가서 비밀 발설 못 하게 말이지. 도착하면 첨탑에 가둬놓고,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할 거야. 역시 그게 제일 가능성 높겠어.’
아주 고전적인 수법이다.
마리엔은 일단 목걸이의 안전을 우선시하기로 했다. 목걸이가 다시 주인에게 돌아가는 걸 본 후에야 뭐든 할 거라고. 이런 조건을 걸어야겠다.
“말해.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는지.”
근데 카인은 영 엉뚱한 소리를 했다.
“넌 비어스 재상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냥 머리가 굳어버리나?”
그의 말투에서 짜증이 묻어났다.
“내가 뭘 시킬 줄 알고 그런 말을 해.”
“어이없네. 지금 목걸이가 네 손에 있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잖아. 웬 트집이야, 트집은.”
“실제로도 뭐든 따르려고?”
이제는 약간 이를 악물고 잇새로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내일부로 일을 그만두고 블랙우드 공작성으로 가라고 해도 따를 건가?”
하, 망할 새끼.
넌 내가 인물 분석도 못 하고, 감도 나쁘다고 했지만 이번만은 이 마리엔 디디가 정답을 맞혔다.
마리엔은 코웃음을 쳤다.
“시간 끌지 말고 말하기나 해.”
잠깐의 침묵 후에 그가 내건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내 앞에 와 무릎 꿇어. 그리고 내가 묻는 말에 사실대로 답해. 네 대답과 상관없이 4황녀와의 동맹이 끝나는 날, 넌 내 하녀로 공작성에 간다.”
이게 웬일이람.
그는 마리엔더러 당장 지금 떠나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심지어 동맹이 끝날 때까지 유예 기간을 주다니.
마리엔은 행여나 카인이 마음을 바꿀세라 얼른 구름다리로 달려갔다.
‘무릎 꿇기? 야, 그거 내 전문이야!’
카인의 앞에 도착하자마자 마리엔은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너무 성의 없다는 평을 듣지 않으려고, 일부러 시선을 마주친 채 천천히 꿇었다.
돌바닥에 무릎뼈 박살 날까 걱정돼서 그런 게 아니다.
“뭐 물을 건데?”
순순히 무릎 꿇은 마리엔을 마주한 카인.
그의 표정은 뭐랄까.
복잡해 보였다.
언뜻 보면 그는 자기 예측이 맞아떨어져서 픽 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한편으로 자기 예측이 빗나가길 바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넌 비어스 재상을 위해서 어디까지 할 수 있지?”
카인이 손가락 사이로 둥근 로켓을 굴렸다.
“살인은 가능한가?”
“……목표물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겠지.”
허풍이다. 여태 활어 한 마리 직접 손질해본 적 없는 자신이 갑자기 사람을 죽이는 게 가능하겠나. 칼을 떨어뜨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하지만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더욱이 목표물이 카인 블랙우드라면, 이미 머릿속으로 골백번은 더 죽였다.
“그럼 살인죄를 뒤집어쓰는 건?”
“비어스 경보다는 내가 감옥에 갇혀 있는 편이 나아. 지략이 뛰어난 사람이 밖에 있어야지. 좀 참고 견디면 비어스 경이 누명을 풀어주실 거야.”
“증오하는 자와 한 침대에 드는 건 어떻지?”
진짜 질문 수준하고는.
“비어스 경의 목숨이 걸려 있으면.”
“그 말은, 목숨이 아니라 다리 한 짝이 걸린 사안이면 응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질문이 왜 다 이따위야.”
“대답.”
마리엔은 카인을 쏘아봤다. 어쩐지 네놈이 너무 좋은 조건을 들이밀더라 하는 눈이었다.
“다리 한 짝은 고사하고 손가락 한 마디라도 날렸다간 봐.”
“…….”
“끝이야?”
“넌 바일레온 비어스의 사랑을 응원하는 척하지만 실은 네가 그 옆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해. 이제 그만 인정하지 그래?”
카인이 성큼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만일 4황녀가 정말 비어스의 손을 잡는다면 넌, 속이 쓰려 죽을걸.”
“아니거든.”
“처음엔 아니었을지 모르지. 하지만 언젠가부터 네 태도가 이상해졌잖아. 설마 자각 못 한 건가.”
마리엔은 인상을 찡그렸다. 카인의 말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거부감이 앞섰다.
“비어스를 바라볼 때 아무 사심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겠어?”
“그…….”
그야 당연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한데 순간 아이스크림 가게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바일레온의 입술을 보며 하던 망상. 그리고 아까 오전에 파티션 구멍 너머로 훔쳐본 몸. 좀처럼 식지 않던 자신의 두 뺨.
‘한 번만 만져보고 싶었어.’
그러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앗……!”
카인의 표정이 돌연 험악하게 굳었다. 그가 목걸이를 힘껏 내던졌다. 은빛 로켓 목걸이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마리엔은 목걸이가 수면 아래로 모습을 감출 때까지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다.
구름다리를 기준으로 왼쪽 연못 중앙.
마리엔은 즉시 재킷을 벗어 난간에 걸쳐뒀다. 블라우스 단추를 풀고 소매를 둥둥 걷은 다음, 구두와 양말을 벗었다.
그대로 연못에 들어가려다가 순간 정지.
‘신발은 신는 게 좋겠지. 연못 바닥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유리 조각이라도 밟으면 낭패야. 목걸이를 찾기도 전에 감염으로 죽을지도.’
마리엔은 맨발에 구두를 신었다. 그러고는 거침없이 연못으로 걸어 들어갔다.
‘으으.’
옷 입은 채로 물에서 움직이는 기분은 정말 더러웠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다리 사이로 치마가 휘감겼다.
그나마 다행은 여기가 황궁 연못이라는 점 정도다.
매일 주변을 청소하고 부유물을 건져내는 관리인이 딸린 인공 연못이다. 덕분에 마리엔의 허리까지 오는 연못 물은 궁 밖의 연못처럼 탁하지 않았다. 악취도 없었다.
단지 빌어먹게 클 뿐이다.
“그렇게까지 한다 이거지…….”
구름다리 위의 카인이 마리엔을 노려보았다.
“곧 날이 저물 시간이야, 마리엔 디디.”
“약속도 안 지키는 놈 목소리가 너무 커!”
마리엔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꾸했다.
무릎 꿇고 꼬박꼬박 대답하면 목걸이 돌려놓기로 약속했으면서 홧김에 집어 던진 주제에.
자신이 언제 싫다고 했나? 오히려 유예 기간 주어진 것에 기뻐하며 질문에 열심히 응답했다.
“나쁜 놈.”
마리엔은 재차 카인을 욕했다. 놈이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는 동안 먹구름 잔뜩 낀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이쯤이었는데…….”
결국 마리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