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40)
마리엔은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비 그쳤네…….”
목이 잠긴 탓에 쇳소리가 섞여 나왔다. 듣기에 좀 끔찍했다. 병든 개구리가 낼 것 같은 소리였다. 최소 사흘은 앓아누울 거라는 경고기도 하고.
대체 지금이 몇 시일까. 연못에 들어오고부터 체감상 서너 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마리엔은 회중시계를 꺼내려다가 멈칫했다. 시계는 재킷 안주머니에 들어 있다. 그리고 재킷은 구름다리 난간에 걸쳐두고 왔다.
‘어차피 너무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았을 거야.’
마리엔은 덜덜 떨었다. 여름인데도 해가 진 후에 계속 물속에 있으니까 몸에 한기가 스몄다.
‘펌프가 있으면 좋을 텐데……. 연못 관리인이 그걸로 물 빼는 걸 본 적이 있어.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처음부터 펌프를 빌려와 물을 뺄걸.’
다 뺄 필요도 없다. 절반만 빼내도 수면은 무릎 높이가 되고, 그러면 반짝이는 은제 로켓 목걸이쯤은 금세 건질 수 있을 거다.
‘물론 그 절반의 물을 빼내느라 내 어깨가 빠지겠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렇게나 샅샅이 뒤졌는데 목걸이가 안 나오다니.
“에취!”
재채기가 나왔다. 불길한 조짐의 단계를 차근히 밟아나가는 느낌이다. 여기서 더 심해지면 열이 날 것이다.
“에취!”
아니면 이미 열이 나고 있나? 마리엔은 손등을 뒤집어 이마의 열을 재보려다가 관뒀다. 몇 시간이나 연못 바닥을 헤집은 손은 진흙투성이였다.
‘추워.’
일단 보좌관 숙소의 샤워실에서 몸을 좀 데워야겠다. 동틀 때까지만 잠깐 눈을 붙인 다음, 연못 관리인에게 펌프를 빌리자.
멀쩡한 연못 물을 빼내려는 핑계는 그때 가서 생각하는 게 좋겠다. 당장은 머리가 새하얗게 비어서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마리엔은 천천히 연못 가장자리로 이동했다. 물에 젖은 옷이 내딛는 걸음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꼭 물귀신이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것 같아.’
물 밖으로 나오자 맨땅에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다시 일어날 자신이 없다. 네발로 기어서라도 샤워실까지 가야 한다. 마리엔은 재킷과 양말을 주섬주섬 챙겼다.
너무 춥고, 너무 배가 고프고, 너무 졸리고, 너무 힘들다.
연못으로 뛰어든 건 자신의 선택인데 왜 이렇게 서러움이 왈칵 치밀까. 복도를 더럽히지 않으려면 건물을 빙 둘러서 가야 하는 것조차 서러웠다.
좋은 걸 생각하자.
‘그래도 비어스 경이 최악의 생일을 맞는 것만은 피했어.’
잘했다. 마리엔 디디. 실은 그게 가장 중요한 거잖아. 내팽개쳐진 목걸이를 비어스 경 손으로 줍게 하지 않는 것.
절반의 성공이라고 우울해할 필요가 없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동트고 나서 목걸이를 찾기만 하면 완전한 성공을 이룰 수 있다.
마리엔은 스스로를 거듭 추켜세웠다.
“에취!”
바일레온은 오랜만에 혼자 퇴근을 했겠다. 그가 걱정하지 않도록 미리 쪽지를 써서 책상에 올려두고 나왔다.
볼일이 생겨서 이모네에 들르겠다고, 거기서 자고 올지도 모르니까 기다리지 마시라는 내용이었다.
원래는 창밖으로 비어스 백작가의 하인이 나타나길 기다리며 쓴 쪽지였다.
바일레온의 성격상 마리엔을 놔두고 일찍 퇴근할 리 없다. 어머니의 전갈을 받은 그는 자연히 제3보좌관의 집무실을 찾을 터였다.
‘그럼 난 이미 자취를 감춘 후고 바일레온은 귀가할 수밖에 없지.’
그를 먼저 돌려보낸 후엔 연못가로 가서 잠복하려 했었다.
어쩌다 보니 원래 계획과는 좀 틀어졌지만, 쪽지의 핑계는 여전히 유효하다.
바일레온은 지금쯤 가족들과 백작저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뽀송뽀송하고 부드러운 리넨 셔츠에 새틴 슬리퍼. 햇볕에 말려 깨끗한 냄새가 나는 침대 시트. 혀를 데지 않게 후후 불어 마셔야 하는 향긋한 레몬차.
너무 좋겠다.
이모네에서 자고 온다는 제3보좌관 생각을 조금이라도 해주려나.
생각을 할 겨를이, 있긴 하려나.
“에취!”
재채기할 때마다 골이 띵하게 울렸다.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는 듯하다. 그러니까 자꾸 이상한 망상에 빠지지.
바일레온이 보고 싶다든가. 다정한 그에게 북부 놈의 행각을 일러바치고 싶다든가. 또는 발목 좀 삐었다고 공주님처럼 안아 드는 그의 과보호가 그립다거나.
뭐 그런 종류의 망상.
‘오데트도 그렇게 안아준 적 있을까?’
갑자기 가슴이 따끔따끔한 증상이 추가됐다.
마리엔은 얼굴을 구겼다. 감기몸살 증상 중에 가슴 통증이 있던가?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
‘왜 이렇게 쓰라린 거지? 마치 벌건 상처에 대고 굵은 소금을 문지르는 것처럼.’
깊이 생각하지 말자. 지금 자신은 멀쩡한 상태가 아니다. 그리고 이건 다 카인 놈 때문이다.
‘자기가 뭔데 내 감정을 판단해. 난 정말 비어스 경이…… 잘됐으면 좋겠어.’
다행히 마리엔은 그때쯤 보좌관 숙소가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공용 샤워실로 직진해서는 허물 같은 옷을 벗고 샤워기 아래에 섰다.
“아…….”
머리 위로 쏟아지는 더운물이 성수 같았다. 자리마다 놓여 있는 투박한 공용 비누도 오늘만큼은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다.
마리엔은 몸을 다 씻고도 한참을 샤워기 아래 서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없다. 무슨 정신으로 제 방까지 올라갔나 모르겠다.
오랜만에 찾은 방은 여전히 비좁았지만, 마리엔의 작은 몸을 누이기엔 충분했다.
더듬거리는 손끝에 이불이 잡혔다. 그걸 끌어다 몸을 덮자마자 마리엔은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 ◆ ◇
“……몇 시지?”
마리엔은 눈을 뜨자마자 회중시계부터 찾았다.
새벽 5시 30분.
걱정했던 것보다 제시간에 눈을 떴다. 창밖도 어슴푸레 밝았으니 이제 움직여야 했다.
“그래도 어제 알몸으로 올라오진 않았네.”
커다란 수건 몇 장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마리엔은 옷장 서랍에서 조금 낡은 블라우스와 치마를 찾아냈다. 버릴까 말까 하다가 보류한 건데, 경호원 휴고 눈엔 버릴 물건으로 보였나 보다.
“안 챙기고 놔뒀네. 덕분에 오늘의 디디가 사회적 체면을 지킬 수 있습니다…….”
실없는 소리 하는 걸 보니 자기 전보다는 상태가 나아졌나 보다. 그렇게 믿고 싶다.
마리엔은 무거운 몸을 끌고 연못 관리인을 찾아 나섰다.
재상님의 중요한 물건이 연못에 빠졌다는 핑계를 댔다. 펌프를 빌려만 주시면 혼자 처리하겠다는 말에 관리인이 황당해했다.
“우리 지금 서쪽의 구름다리 연못에 대해 말하는 중인 거 맞지요? 아니, 거기가 얼마나 큰데. 그 물을 빼내려면 인부 열 명이 교대로 펌프질해야 한다고요.”
“네에.”
“근데 보좌관님 혼자 하겠다고요?”
“어쩔 수 없어요. 재상님 출근하시기 전까지 해치워야 해요. 새벽부터 사람들한테 도와달라고 하기도 그렇고요.”
“하이고.”
관리인은 연신 혀를 찼다. 그러면서도 마리엔의 청을 안 들어줄 순 없었는지 펌프와 수레를 내주었다. 거기다 연못가까지 수레를 끌어주기까지 했다.
이 세상엔 아직 온정이란 게 남아 있구나.
마리엔은 감격했다. 모든 인간이 카인 블랙우드처럼 포악하지만은 않다. 당사자 카인 놈이 들으면 비웃겠지만.
“정말 혼자 할 겁니까?”
“네, 일단은요.”
“하이고.”
“여기까지 도와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들어가보세요!”
마리엔은 일부러 밝게 말하며 관리인의 등을 떠밀었다. 관리인은 당최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연못가를 떠났다.
“조금만, 진짜 조금만 더 고생하자.”
그로부터 한 시간 뒤.
마리엔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제 점심 이후로 식사는 고사하고 물 한 모금 못 먹은 게 떠올랐다. 탈진할 만도 하다.
“어지럽네…….”
뱃멀미하듯이 눈앞이 일렁였다. 게다가 환청까지 들렸다. 바일레온의 목소리였다.
“……디디 보좌관!”
“신기하다. 원래 환청이 이런 건가? 실제 목소리랑 구분이 안 가.”
마리엔은 연못을 쳐다보며 힘없이 웃었다.
망할 놈의 연못.
한 시간 내내 어깨가 빠지도록 펌프질을 해댔건만 연못 수위는 손가락 한 마디만큼도 줄어들지 않았다.
‘관리인 아저씨가 괜히 딱한 눈으로 쳐다본 게 아니었어. 장정 열 명이 교대로 할 일을 나 혼자 한다고 까불었으니.’
마리엔은 쓰디쓴 패배를 인정해야만 했다.
더는 안 될 것 같다.
기력이 없다.
“마리엔, 대체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요?”
“바일레온…….”
환청에 이어 환영까지 보이네. 마리엔은 제 앞에 나타난 바일레온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흐트러진 앞머리에 걱정 가득한 얼굴, 오래달리기라도 했는지 들썩이는 가슴이 ‘진짜’ 같아 보였다.
“죄송해요.”
마리엔은 현실감 넘치는 환영에 대고 중얼거렸다.
“저 못 찾겠어요. 제 능력은 여기까진가 봐요.”
“무슨 소리예요? 아니, 지금 대체…….”
바일레온은 어디서부터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눈가를 문질렀다. 그의 손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밤새 당신을 찾아다녔어요.”
연분홍색 입술 사이로 살짝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도 마리엔처럼 목이 쉰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바일레온의 쉰 목소리는 오싹할 만큼 듣기가 좋다는 점이랄까.
피로감이 묻어나는 어른 남자의 목소리. 마리엔의 병든 개구리 같은 목소리와는 전혀 달랐다.
“어젯밤이 돼도 귀가할 기미가 없기에 당신 이모님 댁으로 하인을 보냈거든요. 쪽지에 자고 올 수도 있다고 적혀 있었지만, 왠지 석연치가 않아서…….”
바일레온이 말끝을 흐렸다.
“집에 당신이 없으니까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어요. 가족들도 동의하더군요. 또 과보호 병이 도졌냐며 한소리씩 하긴 했지만.”
“후후.”
마리엔은 클로이즈처럼 웃어봤다.
“비어스 경의 과보호는 좋아요.”
“…….”
“난 공주님 아닌데. 스쳐 지나가는 엑스트란데. 되게 유리온실 속 공주님 기분이 들게 해주시니까…… 저절로 떼쓰고 싶어져요.”
“어디 있었어요?”
바일레온이 물었다.
“애초에 이모님 댁엔 가지도 않았던데요. 연락 자체를 안 한 지가 몇 달 됐던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얼마나 내려앉던지.”
그가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표정 변화 하나하나가 섬세한 게 볼수록 실제 같았다. 바일레온이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환영이 아닌가 봐…….”
마리엔이 중얼거렸다. 제 뺨을 감싸는 그의 손바닥 감촉이 생생했다. 기분 좋은 서늘함이었다.
“진짜, 비어스 경이세요?”
“왜 이렇게 열이 나요?”
“진짜로…….”
“마리엔, 설마 밤새 여기서 이러고 있었던 거예요?”
바일레온이 펌프 장비를 둘러봤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눈으로.
“연못 물을 빼내려고 했어요?”
“네.”
“왜요?”
간단한 질문에 마리엔의 얼굴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울음 터지기 전의 증상이다.
‘네가 울긴 왜 울어. 뭐 잘했다고 울어. 근데…… 바일레온이 이렇게 물어주니까…… 밤새 참은 눈물이 터질 것 같아.’
마리엔은 울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힘주어 오므렸다. 그렇게 한 차례 위기를 넘기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4황녀 전하의 로켓 목걸이를 찾으려고요.”
“마리엔이 어떻게 그 목걸이를…… 아니, 그것보다 어쩌다 그게 연못에 빠졌죠?”
“그, 그건.”
안 돼. 금세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마리엔은 결국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블랙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