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45)
흔히들 말한다. 과연 최애랑 연애를 하면 좋을까 하고.
이제 마리엔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
‘완전 좋아!’
동경하고 환호하던 대상이 연인이 되면 오히려 눈에서 콩깍지가 벗겨진다고 하던데.
마리엔 자신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인가 보다. 그도 당연한 것이 상대는 바일레온이다.
“마리엔.”
아침에 출근하는 마차 안에서조차 싱그럽게 빛나는 미남자. 근데 목소리까지 나긋하게 감기네?
마리엔은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네, 비어스 경.”
“당신이 날 바라보는 건 좋지만요.”
바일레온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무 한 곳만 보고 있어요.”
“아, 그래요?”
마리엔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바일레온이 다시 한번 헛기침을 했다.
“재상부에서도 내 가슴만 볼 거예요?”
“아, 네, 물론…… 헛.”
마리엔은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바일레온의 얼굴을 쳐다보자 귀 끝이 조금 붉어져 있다. 그가 언급할 정도면 자신이 진짜 너무 뚫어지게 그곳만 쳐다봤나 보다.
“어, 그게.”
마리엔은 서둘러 변명거리를 짜냈다.
“보풀이 묻어 있어서요.”
그러면서 바일레온의 가슴팍을 검지 끝으로 콕 건드리는 시늉을 했다.
공교롭게도 그때 마차가 덜컹거렸다. 손을 앞으로 뻗은 마리엔은 균형을 잃었다.
“앗.”
맞은편의 바일레온이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마리엔을 받쳐 안았다. 의도치 않게 그의 허벅지에 걸터앉게 된 마리엔은 속으로 ‘꺄’ 소리를 질렀다.
클리셰 최고.
클리셰 만만세.
여름이라 재킷이 얇았다. 바일레온의 품은 제 작은 몸쯤은 쏙 들어가게 넓은 데다 좋은 향기가 났다.
‘이제 사귀는 사이니까 무릎에 앉는 정도는 허용되나?’
바일레온이 괜찮냐고 물어왔다.
“네, 잡아주신 덕분에 안 다쳤어요.”
“보풀은 뗐고요?”
“네, 그럼요.”
“황궁까지 계속 이렇게 안고 갈까요?”
“네.”
마리엔은 대답을 해놓고 뒤늦게 바일레온을 올려다봤다.
혹시 부적절한 자세라고 생각하나? 어젯밤 그가 키스하려 한다고 설레발친 게 떠올랐다. 지금도 마리엔 디디 혼자 앞서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마리엔은 바일레온의 어깨에서 팔을 풀고는 호다닥 맞은편 자리로 돌아갔다.
“마리엔,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를 매일 말해달라고 했죠? 지금 하나 말할게요.”
아침부터 이렇게 갑자기? 마리엔은 얼른 달달한 말로 귀 씻을 준비를 했다.
“대책 없이 귀여워요.”
“허…….”
“그래서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아.”
바일레온이 짐짓 눈을 흘기는 척했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겠죠. 벌써 몇몇은 당신을 좋아하고 있을지도요. 그 생각만 하면 속이 쓰려요.”
대책 없이 귀엽다니. 제 외모가 말랑한 토끼처럼 귀여운 걸 알고는 있다. 하지만 그걸 바일레온의 육성으로 듣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귀엽대. 내가, 귀엽다고!’
마리엔은 옆에 놓인 쿠션을 팡팡 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
‘내일은 결혼하자고 하겠네!’
입가에서 시작한 웃음이 스멀스멀 눈까지 올라갔다. 마리엔은 눈을 꼭 감은 채 소리 죽여 웃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바일레온이 한마디 더 덧붙였다.
“머리 위에 ‘연인 있음’ 표시라도 뜨면 좋겠네요.”
마리엔은 여전히 웃음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오늘부터 모두에게 저희 관계를 공표하나요?”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지만.”
바일레온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주의를 주었다.
“황궁의 이목이 순식간에 당신에게 주목되겠죠. 그렇게 되면 곤란해질 일이 많이 생길 거예요. 내게 하기 어려운 청탁을, 마리엔을 통해서 하려는 사람이 줄을 설 테니까.”
그렇구나.
하긴, 이 남자는 황제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재상이니까 그럴 만도 하겠다.
마리엔은 인상을 북 썼다.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네요. 안 그래도 4황녀 전하께서 공공도서관 사업 관련해서 이중으로 덫 놓는 중이시잖아요. 제가 청탁 거절했다가 상대방이 앙심 품기라도 하면…….”
이 말에 바일레온의 표정이 약간 미묘해졌다. 하나 마리엔은 가상의 상황에 몰입하느라 그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전 비어스 경의 연인이고, 경은 4황녀 전하의 측근이니까 이제 제 행동 하나하나가 4황녀궁을 깎아내릴 빌미로 작용하겠죠? 으, 싫어.”
다시 말하지만 치열한 권력다툼은 멀리서 구경할 때나 흥미로운 것이다.
아, 오데트 선수 일어나나요? 불굴의 의지 보여주나요? 네, 오데트 선수 회심의 한 방 날립니다! 황태자 선수 맥을 못 추는군요.
이어지는 연타! 황후 코치가 대신 몸을 던지지만 KO! 오데트 선수 이번 시즌 첫 승리 가져갑니다!
이걸 관중석에서 과자나 와작와작 씹으며 보고 싶은 것이지, 직접 출전하고픈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다 이 말이다.
게다가 자신은 엑스트라다. 특이한 머리 색만 아니었으면 다들 기억도 제대로 못 할 실낱같은 목숨줄의 엑스트라.
어쩌다 운 좋게 바일레온과 연인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연급 가호가 제게 임하지는 않을 터다.
‘성질 더러운 놈의 청탁 거절하는 순간 칼빵 맞을지도 모르는 거야.’
칼빵부터 시작해서 납치, 감금, 고문, 굶기기 등 온갖 다채로운 선택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역시 복수의 화신 오데트와 직접 엮이면 끝장이다.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광풍에 휩쓸려선 안 된다.
‘그리고 난 처음부터 빙의 콘셉트를 연애 위주로 잡았거든?’
최애 사랑 이뤄주려다가 도리어 그 최애와 사귀게 됐지만요.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기왕 이렇게 된 것, 저는 조용히 연애만 하다 가겠습니다. 황실 분들은 각자 일 보셔요.
마리엔은 재차 고개를 저었다.
“비어스 경만 괜찮으시다면요. 저희 사이를 잠시만 비밀로 하는 게 어때요?”
“난 괜찮아요. 제일 중요한 건 마리엔의 안위예요.”
“네네, 감사합니다.”
기한은 오데트가 최종 보스인 황제를 꺾을 때까지로 하면 되겠지. 마리엔은 혼자 안심했다.
“한데 마리엔, 한 가지 물어봐도 돼요?”
“네, 말씀하세요.”
“방금 전하께서 이중으로 덫을 놓는 중이라고 했잖아요. 어떤 의미에서의 이중이죠?”
오데트와 전략을 공유하는 바일레온이 이걸 모를 리가 없는데. 마리엔은 이상하다 싶었지만 일단 설명을 시작했다.
“황태자 측이었던 헤츨라이 자작이 2황자로 노선 변경했잖아요. 근데 도움 될 줄 알았던 자작이 썩 만족스러운 성과를 못 내는 상황이고요. 그래서…….”
나 뭔가 잘못하고 있나? 마리엔이 말끝을 흐리자 바일레온은 이야기를 계속하라는 듯 미소 지었다.
“듣고 있어요.”
“그래서 전하께서 직접 손을 쓰실 예정이잖아요. 황태자 측에 협박당한 공사장 인부들 설득한 끝에 진정서를 얻어내서요. 그러던 중에 더 심각한 범죄의 증거를 발견해서 그것까지 한 뭉텅이로 2황자 측에 찔러넣고요.”
“2황자는 의심 많고 교활해요. 유리한 제보가 들어왔다고 덥석 물 성격이 아닌데.”
“부인 도박 빚 때문에 발등에 불 떨어진 자작의 핏발 선 눈을 대하면요. 2황자도 그 진정성에 넘어갈 거예요.”
마리엔은 말은 마친 후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저 갑자기 후회돼요.”
“왜요?”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서요.”
그나마 도박장 얘기를 떠벌리기 전에 멈춰서 다행이랄까.
자작부인이 발 들인 도박장은 나중에 2황자 세력의 파멸과 이어지는데, 그건 후반부 스토리다.
‘스포일러 금지 규칙도 모르냐고!’
이때 바일레온이 상대를 안심시키는 특유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평소보다 다정함을 세 배쯤 추가해서.
“내가 말하라고 부추겼잖아요. 마리엔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리고, 하면서 바일레온이 말을 이었다.
“나도 알고 있는 내용이에요.”
“……정말요?”
“네, 이제 내가 궁금한 건 마리엔이 어떻게 이걸 아느냐는 점이죠.”
또 얼렁뚱땅 애교가 통할까? 지나치게 자주 써먹는 기분이지만 어쩔 수 없다. 마리엔은 최대한 불쌍한 표정 짓기를 시도했다.
“우선 지금은 안 물어볼게요.”
“휴, 살았다.”
“그렇게 대놓고 안심할 줄은 몰랐는데.”
바일레온이 가슴 앞으로 팔짱을 꼈다.
왜 혼내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회유하려는 것같이 느껴지지.
마리엔은 제가 변태인 것인지, 아니면 바일레온이 일부러 고난도의 수법을 펼치는 중인지 헷갈렸다.
“그저 대화를 엿들으려고 4황녀궁 발코니 난간에 매달렸다는 말만 하지 말아요.”
거기 매달렸다고 할걸.
“위험해요.”
“넵.”
이렇게 또 위기를 넘겼다. 마리엔은 앞으로 바일레온의 자각 없는 미인계에 넘어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거듭했다.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다.
◇ ◆ ◇
국정 보고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바일레온은 갑자기 복도의 거울 앞에 멈춰 섰다.
“비어스 경, 왜 그러십니까?”
수하의 질문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마리엔 취향은 엉덩이보다 가슴이었나…….’
이전에 아나이스 사제의 뒤태를 유심히 보기에 착 올라붙은 엉덩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일부러 단련할 때 하체 위주로 움직였다.
한데 자꾸 제 가슴을 보며 침을 꼴깍 삼키는 마리엔의 모습이 포착됐다. 어쩔 땐 만지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기도 했다.
생각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마리엔.
본인은 그 점을 분하게 여기는 것 같다. 가면을 쓰고 지내는 사람이 대부분인 황궁에서는 확실히 약점으로 작용할 터다.
그러나 바일레온에겐 아니다.
마치 꿀케이크를 대하는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마리엔을 마주할 때의 기분은 뭐랄까.
간지럽고, 달콤하고,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이다.
마리엔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이상할 정도로 예민해진다.
바일레온은 어릴 적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생활에 익숙했다. 어딜 가든 바일레온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몰려들었다.
개중엔 마리엔보다 더 노골적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도 바일레온은 아무렇지 않았다.
마리엔만 그렇다. 그 말갛고 사심 가득한 하늘색 눈만이, 바일레온을 간질간질하게 옭아맨다.
‘아니면 내 뒷모습을 볼 기회가 별로 없어서 그럴지도.’
하긴 자신은 웬만해선 재킷을 벗지 않는다. 이제 낮기온도 올라가니까, 더위를 핑계로 자주 벗고 있을까.
“비어스 경, 거울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예? 아, 아뇨.”
바일레온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양 태연히 응수했다.
“하던 얘기 계속하시죠.”
“네, 블랙우드 공작이 오늘 아침에 4차 후원금을 전달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의사를 비추던데요.”
“좋습니다. 그럼 이제 국토부에서 오랫동안 추진해온 도로정비 사업이 다다음주부터 시작된다는 소식을 전하세요.”
“그 말씀은……?”
“공작이 첫 주 작업을 도맡는다면 4황녀궁의 진정성을 높이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재산은 웬만큼 털었으니 이제 몸고생을 시킬 때다. 바일레온은 이번 일로 카인이 똑똑히 깨닫길 바랐다.
바일레온 비어스에게 원한을 사지 말 것.
성실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