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46)
“그러니까 사타구니보다 눈을 찌르는 게 낫다는 말씀이시죠?”
“제게 상대를 공격할 기회가 딱 한 번 있다면요. 네, 눈입니다.”
마리엔은 경호원 휴고의 설명을 경청했다. 하늘이 마리엔 디디에게 지략을 내려주지 않았으니, 몸 쓰는 법이라도 제대로 익혀둘 심산이었다.
“사타구니가 급소인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따로 보호구도 나오고요. 하지만 상대가 철제 투구를 쓰지 않은 이상 눈은 항상 노출되어 있습니다.”
휴고는 손가락 힘만으로도 터뜨릴 수 있는 안구의 연약함에 대해 말했다.
마리엔은 ‘터뜨린다’는 어감에서 전해지는 잔혹함에 움찔했다. 그러다가 터뜨리는 대상이 눈알이 아니라 불알이면 어떨까 하고 발상의 전환을 꾀했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약간의 반감과 혐오감이 샘솟으면서 주저하던 손가락에 힘이 실린 것이다.
휴고는 학생의 변화를 바로 알아봤다.
“성패는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좋습니다. 이 상태로 하시는 겁니다.”
후한 칭찬에 마리엔이 방긋 웃었다.
바일레온은 휴고의 언변을 보고 그를 뽑았다고 했다. 얼핏 들으면 말싸움에만 능할 것 같다.
하지만 언변은 플러스 요소였을 뿐이다.
남들보다 한참이나 긴 다리나 늘씬하게 근육이 잡힌 몸태만 봐도 그가 평소 몸을 쓰는 데에 익숙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휴고의 특기는 격투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마리엔은 격투가 배우고 싶어졌다.
휴고가 긴 다리로 45킬로그램 샌드백을 뻥 차올리는 광경을 본 후에는 그 타격감에 완전히 매료됐다.
“자, 방어할 때의 기본 자세가 어떻다고 했죠?”
“이렇게요.”
“네, 맞습니다. 근데 여기서 팔꿈치를 조금 더…….”
휴고가 팔꿈치 각도를 조절해주었다. 구둣발을 마리엔의 발 옆에 대고 살짝 밀기도 했다. 마리엔은 지금의 올바른 자세를 몸으로 기억해두려 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주먹을 날려보세요.”
마리엔은 허공에 대고 짧고 강한 펀치를 날렸다. 휴고는 또다시 칭찬을 퍼부은 다음, 여기를 조금 더 움직이는 게 좋겠다며 날개뼈 안쪽을 건드렸다.
“내뻗는 건 주먹이지만 등 전체와 허리까지 쓴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알았어요.”
“다시 한 번 더.”
마리엔은 열의에 찬 학생이었고, 휴고는 눈높이 수업에 뛰어난 선생이었다.
그렇게 이십 분쯤 배웠을 무렵이었다. 마리엔은 바일레온의 호출을 받고 재상 집무실로 달려갔다.
“비어스 경, 부르셨어요?”
집무실에는 바일레온 말고도 직원 둘이 더 있었다. 업무 지시를 내리는 중인 듯했다.
“끝나고 다시 올까요?”
“아뇨, 이것 좀 확인하고 의견 주세요.”
바일레온이 얇은 서류철을 내밀었다. 마리엔은 책상으로 쪼르르 달려가 서류철을 건네받았다. 표제를 확인한 마리엔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신이 의견을 낼 만한 건이 아니었다. 이에 관한 배경 지식이 하나도 없다.
마리엔은 일단 커버를 넘겼다. 커버를 넘기자마자 보고서 위에 끼워둔 메모가 보였다. 바일레온의 글씨체였다.
질투 나요.
옆에서는 바일레온과 수하들이 대화를 재개한 상황이다. 마리엔은 사람들의 눈치를 살핀 뒤 다음 장으로 넘겼다.
호신술 배우고 싶어요? 나도 잘 가르쳐줄 수 있어요. 이래 봬도 여섯 살 때부터 근위대장에게 사사 받은 실력자예요.
예고 없이 시작된 웃음 참기 테스트가 이런 건가 보다. 마리엔은 진지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왜 나한테 먼저 말 안 했어요? 바쁠까 봐? 하지만 난 마리엔의 연인인데. 당신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시간 낼 수 있단 말이에요. 나 조금 서운하려고 해요.
수하들의 보고를 들으면서 이런 쪽지를 쓰고 있었던 거야? 자꾸 창밖을 내다보고 싶은 걸 참으면서?
아, 조금 위기가 오려고 한다. 얼굴근육이 통제를 벗어날 조짐이 느껴졌다. 마리엔은 얼른 다음 쪽지로 넘어갔다.
그리고 질투 나.
결국 웃음 참는 데에 실패했다. 마리엔은 동료들이 쳐다보기 전에 몸을 돌렸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술에 힘을 줬다.
방금 너무 밀착했어. 자세 교정할 때 저만큼 붙을 필요는 없거든요.
제가 부탁했거든요. 백 번 설명하느니 한 번 터치해서 알려주는 게 빠르니까요. 물론 배우는 제 쪽에서도 이해가 쉽고.
아무래도 휴고가 당신을 좋아하나 봐요.
진짜 바일레온답지 않은 비약이다. 마리엔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휴고 해고.
결정했다.
웃자.
이 각운은 뭐야.
해고 해고 해고. 그런데 이러면 부당해고.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소리 안 내고 웃느라 용을 써서 그런지 양쪽 뺨이 다 얼얼했다. 마리엔은 고개 돌려 바일레온을 쳐다봤다.
수려하신 재상님은 연인의 시선을 알아차렸을 텐데도 표정 변화가 없었다.
“우선 그렇게 진행하는 게 좋겠어요. 의문점 생기면 언제든 찾아오고요.”
“예, 그럼 저흰 나가보겠습니다.”
동료들은 마리엔을 향해서도 눈인사를 했다. 마리엔 역시 눈인사로 화답한 뒤, 바일레온과 둘만 남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문이 닫혔다.
그의 책상에 서류철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바일레온이 방금 보고받을 때와 같은 사무적인 톤으로 물었다.
“이 사안에 관한 디디 보좌관의 의견은요?”
◇ ◆ ◇
바일레온은 수하들의 보고를 듣다가 우연히 창밖을 내다봤다. 초록빛 풀밭 아름드리나무 아래 마리엔이 보였다. 그녀는 경호원 휴고와 함께였다.
휴고가 설명을 하면 마리엔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중간 휴고가 호신술 시범 동작을 취했다. 그럼 마리엔은 또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에 질문을 쏟아냈다.
미소도 잠시.
바일레온은 점점 창밖의 풍경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포마드를 발라 깔끔하게 고정한 머리에 반듯한 생김새, 넓은 등판에 비해 좁은 엉덩이, 2미터는 되어 보이는 다리.
‘아무것도 안 했는데 갑자기 시력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나?’
집무실에서 나무까지 거리가 꽤 된다. 놀랍게도 평소엔 잘 보이지도 않던 휴고의 보조개까지 보였다. 바꿔 말하면 휴고가 보조개가 패도록 웃고 있다는 뜻이 된다.
‘오늘따라 왜 저리 밝게 웃지?’
경호원이라고 해서 굳은 얼굴로 일관할 필요 없다. 자신은 처음부터 발랄한 마리엔에게 잘 맞춰줄 사람으로 뽑았다.
한데 지금에 와서 그가 너무 잘 웃는다고 싫어하면 뭔가 모순이지 않을까?
질투심이라고 인정하기 싫었다. 휴고는 그저 친절하고, 마리엔은 열심일 뿐이다.
그런 둘을 보며 ‘떨어져, 그만 떨어지라고.’ 따위의 생각을 하는 건 속 좁은 인간처럼 느껴진다.
‘언제까지 저럴 거지?’
바일레온은 결국 수하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제3보좌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제 질투심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싶었다.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없나 보다. 젊은 남자 직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디디 보좌관님이요? 함부로 귀엽다는 말을 하면 실례려나요. 워낙 자주 들어오셨을 것 같아서요.”
그의 옆 사람도 선선히 대답했다.
“멀리서 봐도 밝은 에너지가 느껴지죠. 아주 민첩합니다. 모르는 건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하는 점도 좋고요.”
“오, 그리고 대화할 때 화제가 끊기는 법이 없어요. 저번엔 잠깐 몇 마디 나누려다가 제 차 마시는 시간을 다 썼지 뭐예요.”
이것 봐라. 역시 제 눈에만 예뻐 보이는 게 아니었다.
살짝만 미끼를 던졌을 뿐인데 기다렸다는 듯이 마리엔 칭찬이 이어진다.
바일레온은 끝내 마리엔을 호출하고 말았다. 그녀가 휴고에게 양해를 구하고 미련 없이 자릴 떠나는 모습을 확인하자 갑갑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됐다.
‘진작 이렇게 할걸.’
두 사람이 함께한 것은 겨우 이십 분 남짓이었다.
짧다면 짧은 시간. 하지만 멀쩡하던 누군가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기에 충분한 시간이기도 하다.
풀밭을 달리는 마리엔의 머리 위로 여름 오전의 햇살이 쏟아졌다. 환히 웃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여태 자신에게 올 때마다 저렇게 웃으며 달려왔을까?
바일레온은 그 눈부시도록 씩씩한 사랑스러움에 한숨을 삼켰다.
“이 사안에 관한 디디 보좌관의 의견은요?”
하여튼 그리하여 지금 상황에 이르렀다. 바일레온은 마리엔이 뭐라고 할지 궁금했다.
비어스 경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에요, 라고 하려나?
나도 알아요, 마리엔.
바일레온은 속으로 먼저 대답했다.
“정말 경호원님을 해고하실 생각은 아니죠?”
“……그게 첫마디입니까?”
바일레온은 쪽지를 하나하나 떼기 시작했다.
“다른 남자 걱정이요?”
“아이참. 왜 이러세요. 다른 남자 걱정이 아니라 다른 월급쟁이 동료 생계 걱정이란 거 아시잖아요.”
“하나 휴고가 남자란 사실엔 변함이 없어요.”
바일레온은 괜히 말 트집을 잡아봤다. 하면서도 유치했다. 이러는 스스로가 낯설기도 하고.
무엇보다 한 번도 이런 짓을 한 적이 없어서 어디까지가 적정선인지 감이 안 잡혔다.
당장이라도 마리엔이 넌더리 내며 집무실을 나갈 것 같았다.
그만해야겠다.
근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질투심을 다스리는 거지?
옹졸해지지 않는 법을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옹졸해 ‘보이지’ 않는 법이라도.
“물론 거짓말이에요. 해고할 생각 없어요.”
“역시.”
“한데 호신술은 갑자기 왜 배우려고요?”
마리엔이 본인다운 대답을 내놓았다.
“누군가를 한 대 때려야 되는 상황에 진짜 센 주먹을 날리고 싶어서요.”
어여쁜 하늘색 눈에는 폭력을 향한 갈망이 이글대고 있었다. 바일레온은 쉽게 납득했다.
“여전히 블랙우드 공작의 목을 딸, 아니…… 머리카락을 없앨 생각인가요?”
폭력성은 쉽게 전염되는 법. 바일레온은 말실수를 얼른 정정했다. 이제껏 거침없이 대답하던 마리엔이 처음으로 입 열기를 망설였다.
“계획에 변경이라도?”
“그게…….”
마리엔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민 중이에요.”
“아무래도 혼자서는 어려울까 봐요?”
자신은 블랙우드 공작의 한 재산을 털었다. 곧 있으면 공작의 무한한 체력도 털 예정이다.
차라리 전쟁터면 본인이 원래 하던 일이니까 괜찮을 터다. 바일레온은 그가 ‘괜찮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바일레온은 공작을 친절히 도로정비 공사장으로 보냈다.
한 주 내내 먼지 구덩이에서 굴리는 것으로 복수를 마무리하려 했건만.
“도와줄까요?”
소중한 연인을 수심에 잠기게 할 순 없는 법이다.
“네? 어, 비어스 경께선 이미 꾀를 내주셨잖아요. 제모제 섞기.”
“그건 마리엔 혼자서 움직이는 경우를 염두에 둔 거고요.”
바일레온은 머리가 매끈매끈해진 공작을 떠올려봤다. 썩 나쁘지 않았다.
“와……. 진짜 무한신뢰구나. 비어스 경은 아직 내가 깐 달걀 만들려는 이유도 모르는데.”
마리엔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확실히 자신은 그녀에게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언젠가 스스로 알려준대서 그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리엔의 말을 듣고 보니 갑자기 덜컥 궁금해졌다.
왜 하필 머리카락일까.
“아니에요. 일단 제안은 감사합니다. 저 혼자 좀 고려해볼게요.”
단순히 망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