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49)
마리엔은 오데트의 말을 이해하느라 몇 초 동안 황녀를 빤히 쳐다봤다. 예법 따위는 말아먹은 행동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바일레온을 감시하고 계세요?”
“흥미롭네. 난 마부가 어떻게 마차 안 소리를 들었는지를 먼저 물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궁금하긴 한데요.”
“그렇지?”
휩쓸리면 안 된다. 마리엔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언제부터 그 마부가 전하를 위해 일했는데요? 비어스 저택에 마부 말고도 전하의 사람이 있나요?”
“과연 내가 그걸 알려줄까?”
“하긴 기대도 안 했어요.”
마리엔은 아주 빠르게 물러났다. 그러나 황녀가 바일레온과 그 가족을 감시 중이라는 점은 여전히 충격적이었다.
“비어스 경에 관해 보고받을 게 있긴 한가요? 그 남자는 전하밖에 모르는데…….”
“맞아. 이제까지는 별 내용이 없었어. 하지만 기다리다 보면 이렇듯 흥미로운 보고가 올라오지 않겠니.”
오데트가 손가락으로 마리엔을 가리켰다.
“네 경우처럼.”
“허.”
“그리고 이 점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클로이즈에게 들었으니 알겠지만, 오데트 자신은 바일레온이 소중하기 때문에 그를 짝으로 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리엔은 맹한 얼굴로 오데트를 쳐다봤다.
“클로이즈 비어스가 말하지 않은 모양이군.”
오데트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순간 4황녀의 머릿속에서 클로이즈에 대한 평가 점수가 약간 올라간 듯했다.
“짝짓기에 어지간히 미쳐 있어야 말이지. 그거랑 관련되기만 하면 할 말 안 할 말 못 가리는 줄 알았는데. 용케 비밀에 부쳤네.”
“……무슨 비밀이요?”
“내가 예전에 비어스 저택에 하룻밤 묵은 적이 있거든.”
건설 현장에 시찰 갔다가 오후 들어 굵어진 빗줄기 때문에 발이 묶였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비를 맞은 몸으로 황궁까지 돌아가길 기다렸다간 필시 앓아누울 터. 오데트는 결국 가까운 비어스 백작가에 신세를 지게 됐다.
“자려고 누웠는데 그 집 둘째가 방문을 두드리지 뭐니. 그러고는 들어와서 하는 말이, 자기 오빠가 그다지 마음에 차지 않으시냐는 거야.”
오데트가 추억을 더듬는 눈을 했다.
“나랑 제 오빠를 맺어주려고 직접 나선 거지.”
“과연…….”
“피곤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더구나. 하지만 예민해진 내 눈에도 그 애의 선량함이 보였어. 제 혈육의 짝사랑을 이뤄주려고, 음침하기로 소문난 황녀와 대면한 거잖아.”
오데트는 이다음에 “마리엔.” 하고 이름을 불렀다. 갑자기 호명 당한 마리엔은 괜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오데트가 쓰게 웃었다.
“아까 황태자 에피소드만 들어도 알겠지만 내 혈육이란 작자들은…….”
쓴웃음은 이내 서리 같은 냉소로 바뀌었다.
“그자들은 서로를 해치기에 급급하단다.”
자격 없는 인간들이 너무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앉았다.
“한데 비어스 가는 아니더라고. 왜 비어스가 그렇게 마냥 좋은 사람일 수 있는지, 그 하룻밤으로 충분히 납득이 됐어.”
오데트가 시선을 먼 곳에 두었다.
“난 그 순간 바일레온 비어스에게 지독하게 질투 났던 것 같아.”
바일레온은 황녀가 본인을 질투했다는 사실을 알까?
왠지 모를 것 같다.
오데트 역시 죽는 날까지 이 사실을 함구할 것이다. 황녀의 자존심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난 더더욱 확신했지. 세상에 남자가 비어스밖에 안 남아도 그를 내 짝으로 들이지 않겠다고 말이야. 클로이즈한테도 똑같이 얘기했어.”
오데트가 나직이 읊조리듯 말했다.
“난 아주 높은 자리에 오를 텐데, 그 자리는 필요하다면 남편의 가족들 목도 쳐야 하는 자리라고.”
“헉.”
“영특한 아이라 그런지 바로 알아듣더구나. 비록…… 다짜고짜 내 침실에 들어와 담판 지으려 하긴 했지만.”
오데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적어도 지금까지 발설하지 않았네. 손꼽아 기다리던 제 오빠의 새 사랑에게마저 입을 다물었다니. 솔직히 조금 놀랐어.”
“그건 아마도.”
마리엔은 뒤늦게 말을 삼키려 했다. 오데트는 이미 늦었으니 그냥 마저 말하라고 했다.
“함부로 말했다가 목이 잘릴까 봐서가 아니었을지요.”
그러자 오데트가 소리 내어 웃었다.
“넌 희한하구나. 날 무서워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네. 너야말로 목숨이 아깝지 않나 봐.”
“아닙니다. 전 제 목숨을 되게 아껴요.”
다정한 최애가 연인이 된 지금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이 정도면 평소에 비해 언행을 굉장히 조심하는 편인 거예요.”
오데트는 어떻게 한마디도 안 지냐며 면박을 주었다. 마리엔은 거기에도 대꾸를 할까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비어스가 소중히 여기는 자들은 내게도 중요해. 그들이 잘못되면 비어스가 흔들리니까.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오데트는 잠깐 숨을 고른 뒤 말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삶의 이유를 찾지.”
그렇게 말하는 황녀는 본인의 실제 나이보다 훨씬 나이 든 사람 같았다. 약간 초월자적인 느낌마저 들었달까.
원작의 바일레온이 왜 때때로 오데트에게서 언제든 사라질 듯한 위태로움을 느꼈는지 이해가 됐다.
확실히 오데트에겐 그런 면모가 있었다.
남들은 가장 밝은 에너지를 발산할 시기. 그 시기를 병약한 몸으로,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살아온 이 특유의 쓸쓸함과 덧없음을 그림자처럼 드리우고 있다.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고, 그녀에게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오데트를 홀로 남겨두고 떠날 수 없도록 만드는 분위기.
고개를 돌리면 이대로 스르르 사라져버릴지도 몰라.
‘근데 그런 것치고 전하, 아흔다섯까지 장수하시잖아요.’
마리엔은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갑자기 현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애 둘 낳고도 멀쩡히 말 타고 다니시고. 아흔다섯이라니. 역대 황제들 평균 수명을 생각해보면 진짜 굉장한 건데.’
장수의 비결은 아무래도 복수의 성공이 아닐까?
죽이고 싶었던 놈 다 죽이면서 가슴 속 응어리가 쏴, 풀린 거다. 속이 뚫리니 혈액순환이 저절로 원활해지면서 두 발 뻗고 잘 수 있게 된다.
그러고는 황위에 오른 후로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고.
“아무튼 네가 비어스의 연인이 됐다니. 넌 네가 깨닫지 못한 새에 내 배에 승선한 셈이야.”
“그게…… 그렇게 되나요?”
마리엔은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중요한 일은 그냥 두 분이 하시고 저는 재상부에서 서류 결재만 받으면 안 될까요?”
“일이 그렇게 쉽게만 돌아가면 얼마나 좋겠니.”
오데트가 미소를 지었다.
“안 돼.”
“하.”
“마차에서 너희가 나눈 얘길 전해 들었어. 황태자를 제거할 방법에 대해 술술 늘어놓았더구나. 비어스는 자기도 알고 있는 얘기라고 했지? 근데 그건 비어스가 널 안심시키려고 한 말이야.”
역시 그때 뒷맛이 찜찜하더라니. 바일레온에게 스포일러를 하고 만 거구나. 마리엔은 체념하듯 눈을 감았다.
“우리 재상은 그길로 날 찾아왔단다. 네가 말한 방법을 본인이 낸 계책처럼 얘기했어. 방법 자체가 훌륭하기도 하지만, 내게서 널 보호하려는 목적이기도 했을 거야.”
“보호요?”
“네 입으로 넌 평온하게 살고 싶댔잖니. 한데 난 쓸 만한 인간을 놀리는 타입이 아니거든. 자, 넌 보기보다 똘똘한 데다 비어스를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걸 이제 내가 알지.”
똘똘하단다. 나 왠지 귀여움받는 느낌이네. 감격한 나머지 눈물이 날 것 같네.
“그렇다면 너 역시 체스말로 이용해서 하루라도 빨리…….”
오데트는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성공시키는 게 낫지.”
목적어가 생략됐다. 하지만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복수.
“네가 꿈꾸는 평온한 삶은 아마 그때쯤 가능하지 않을까 싶구나.”
“아, 네.”
“그때까진 비어스와 헤어지면 안 돼.”
미물의 꿈까지 신경 써주시다니 이렇게나 황송할 데가.
마리엔은 머릿속으로 과장된 손키스를 마구 날리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이어진 오데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데트가 다시 말했다.
“만약 결별하려거든 일이 끝난 다음에 하렴.”
“아니, 저…….”
“정떨어졌는데 억지로 참고 살라는 명령도 아니잖아. 헤어지고 싶으면 그래도 좋아. 하지만 내 지위가 바뀌고 나서야. 그 전에는 곤란해.”
바일레온이 실연의 영향으로 중심을 잃으면 안 된단다.
자기한테 거절당한 아픔을 딛고 겨우 두 번째 사랑을 시작했는데 그것마저 망하면 어쩌겠냐며.
‘이럴 땐 뭐라고 말해야 하지?’
마리엔은 당황했다. 오늘 들어 몇 번째 당황인지 모르겠다. 4황녀궁의 전령과 마주친 이후로는 세어보지도 않았다.
“감사하지만 저는 비어스 경과 헤어질 생각이…… 없는데요. 사귄 지도 얼마 안 됐고.”
“지금이야 그렇겠지. 한데 1년 후는? 2년 후에도 마음이 여전할 거라 장담할 수 있겠어?”
“그런 걸 누가 장담해요…….”
마리엔은 조그맣게 구시렁거렸다. 오데트는 청력이 대단히 뛰어난 모양이다. 마리엔이 입안에서 꿍얼거리는 소릴 다 알아듣고는 웃었다.
“너희가 오래 간다면 나야 좋지만, 뭐.”
오데트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바일레온과 계속 사귈 생각이면 너도 4황녀궁에 충성하렴.
이런 요구가 부담스러워서 헤어지고 싶니? 지금에 와서 도로 무를 방법은 없으니까 단념해. 대신 내가 제위에 오를 때까지 좀 참아라.
그녀가 정말 뼛속까지 권력자인 게 실감 났다.
최애와 꽁냥꽁냥 연애를 좀 하고 싶었을 뿐이다. 한데 원작 여주와 운명 공동체가 되고 말았다.
원 플러스 원도 아니고 이게 뭐람.
마리엔은 저절로 내려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어차피 배에서 내릴 수 없다면, 객실이라도 좋은 데로 배정받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일이 끝나면 저도 한자리 주시나요?”
자못 맹랑한 소리로 들렸나 보다. 오데트가 눈썹을 살짝 치켜들었다.
“내가 아는 바일레온 비어스는 절대 먼저 이별을 꺼내지 않을 사람이야. 너만 변심하지 않는다면 차기 비어스 백작부인 자리는 자연히 네 손에 들어갈 텐데. 어째 그걸로는 충분치 않나 보구나.”
“사람이라면 응당 자립을 해야죠.”
마리엔은 재킷 끝을 만지작거렸다. 바일레온이 새로 장만해준 출근복은 원래 입던 옷들과는 원단부터가 달랐다.
가볍고, 주름이 잘 가지 않는 데다가, 촉감도 보드랍다.
그리고 무지하게 비쌌다.
제 귀여운 월급으로는 재킷의 소맷단 정도나 감당할 수 있을까.
“비어스 경이 제게 다이아몬드를 선물해줘도 그건 비어스 가 재산이지, 온전한 제 것이 아니잖아요. 물론 그렇다고 거절하진 않을 거지만.”
마리엔은 스스로 다이아몬드를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솔직히 고 정도는 보장받아도 되지 않을까?
내가 뭐 영지를 떼어 달라고 했어, 잘생긴 하인 삼백 명을 내려달라고 했어. 거사 도모에 참여하는 대가로는 꽤 저렴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좋은 자리 하나, 어떻게 안 될까요?”
“감히 나와 거래를 하려 들어?”
말투와 달리 오데트의 표정은 그리 불쾌하지 않아 보였다. 황녀는 오히려 이 상황을 조금 재밌어하는 듯했다.
“그건 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