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52)
“앗, 그러고 보니 말인데요. 재작년에 주근깨가 대단한 참가자가 있었답니다. 빗질조차 어려운 곱슬머리에 키도 혼자 껑충했죠. 하나 활짝 웃는 얼굴만은 한여름의 해바라기 같은 아가씨였어요. 전 그 주근깨를 매력 포인트로 봤고, 다른 위원들을 설득해서 그 참가자를 1위로 뽑았지요. 사람들 반응도 아주 좋았어요. 젊은 아가씨들 사이에서 얼굴에 일부러 주근깨를 그리는 게 한동안 유행할 만큼요.”
갑자기 흥이 올라 얘길 늘어놓던 그는 헛기침으로 민망함을 감추었다.
“그러니까 제 말은, 남성 참가자들의 디테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저 건장한 청년들로 무대를 채우지는 않으렵니다. 사슴 같은 눈망울의 미소년이 있다면 꼭…….”
“합격!”
다양성은 중요하지. 결점을 압도하는 장점을 알아보는 눈 역시 중요하고. 마리엔은 남자 위원의 손을 덥석 잡고는 아래위로 흔들었다.
옆으로 이동했다.
바로 옆에서 합격자가 나온 상황이다. 과연 자신은 통과할 것인가, 탈락의 고배를 들 것인가.
자기 차례가 된 무테안경 남자는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더니 마리엔이 묻지도 않은 질문에 혼자 대답했다.
“전 참가자에게 물을 뿌리겠습니다.”
다들 이게 무슨 소린가 하여 수군거렸다. 그러나 발화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 심사위원이지만 준비위원이기도 하답니다. 여름 축제니까요. 흰 셔츠를 입은 참가자들이 빗줄기 속을 지나가도록, 그런 무대 연출을 준비하겠습니다.”
“참 나, 정말이지…… 가방끈이 기시군요. 가방끈으로 수도 한 바퀴를 휘감고도 남겠어요.”
“이래 봬도 제가 저희 집안에서 제일 고학력자랍니다.”
그가 무테안경을 밀어 올리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마리엔은 남자와 악수했다.
“합격입니다.”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리엔과 안경 남자는 서로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이로써 심사위원이 결정됐다. 여름 축제 개최까지 남은 시간은 단 사흘. 그러나 매번 축제 첫날에 열었던 선발대회를 마지막 날로 옮기면 참가자를 좀 더 오래 받을 수 있다.
다른 위원들은 서둘러 마리엔의 말을 받아적었다.
“물밑 작전으로 나가면 참가자가 안 모여요. 이럴수록 깜짝 이벤트처럼 뻔뻔하게 나가야 한다고요. 원래부터 이러기로 한 양 뻔뻔하게, 과감하게.”
마리엔은 오늘 중으로 홍보 포스터를 최대한 화려하게 만들어서 번화가에 붙이라고 했다.
신사들이 드나드는 클럽에만 홍보하지 말고, 동네의 신체 단련장과 의상실, 이발소, 도서관에 전단지를 고루 뿌리라는 지시가 이어졌다.
“그리고 중요한 점.”
마리엔이 손가락을 튕겨 주의를 환기했다.
“여자분이 많이 모이는 곳에 붙일 포스터는 따로 만드세요. 서른한 명의 미소년이 당신과 만난 날만을 기다립니다. 이런 문구 넣어서요.”
수첩에 얼굴을 처박다시피 하고 있던 위원들이 연달아 질문했다.
“반드시 서른한 명이어야 하나요?”
“꼭 소년이어야 합니까?”
“……예를 든 거예요, 예를.”
마리엔이 차분히 설명했다.
“중요한 건요. 이 중에 당신의 취향이 하나쯤은 있을 거란 점, 그를 1위로 만들려면 당신이 꼭 왕림해주셔야 함을 여자분들에게 전달하는 거죠.”
마리엔은 손뼉을 짝, 쳤다. 위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여러분, 우리의 목표는 뭐다?”
“……모가지 사수?”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요. 대회만 성황리에 막을 내리면 오히려 상을 받을 수도 있어요.”
격려의 말에도 다들 표정이 썩 밝아지지 않았다. 아직은 확신이 없는 거다. 마리엔이 재차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우리의 목표는?”
“……뭐여야 하죠?”
“훌륭한 참가자 확보. 그리고 벌떼처럼 모여든 여자들이요. 그날만큼은 할머니부터 고모, 이모, 손녀까지 3대가 관중석에 앉아 있어야 해요. 물에 젖은 셔츠 차림의 미남들 얘기를 남은 여름 내내 하게끔 만들어야 한다고요. 아시겠어요?”
마리엔의 눈에서 형형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그 강한 의지에 위원들은 하나둘씩 압도당했다.
여심이 곧 민심이란 주장도 듣다 보니 점점 그럴싸하게 느껴졌다. 누군가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우리 누님은 자리 잡으려고 새벽부터 가 있겠군.”
◇
마리엔은 무지개색 아이스크림을 한 입 크게 떠먹었다. 새콤달콤한 여름 과일 맛이 입안에 사르르 퍼져나갔다.
캬, 이거지. 외근 후 간식시간 최고.
“맛있어요?”
“네!”
“나도 한 입만.”
바일레온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는 벌써 몸을 숙여서 받아먹을 준비까지 마친 후였다. 마리엔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이 뭐라 하면 어떡해요.”
“내가 마침 손에 물건을 들고 있었다고 하죠. 그래서 마리엔이 대신 떠먹여준 거라고.”
“물건 안 들고 계시잖아요.”
“그런가?”
바일레온은 제 몫의 아이스크림을 내려다봤다. 컵에 받은 마리엔과 달리 고깔 모양의 과자에 받은 터라 한쪽 손이 자유롭기까지 했다.
“이거 보기보다 무거워요. 두 가지 맛 더블로 받아서.”
바일레온이 아이스크림콘을 겨우 들어올리는 시늉을 했다. 공중에서 한 5센티미터쯤 움직이더니 한숨을 쉰다. 순간 그의 뒤로 보드라운 갈색의 여우 꼬리가 살랑거리는 착시가 일어났다.
“마리엔, 빨리. 무슨 맛일지 궁금해요.”
일단 한 입 먹이면 이 엄청난 풍기문란을 멈추겠지?
마리엔은 누가 볼세라 얼른 아이스크림을 떠서 바일레온의 입가에 갖다 댔다.
음식을 받아먹을 때 상대의 눈을 빤히 쳐다보는 건 습관일까?
저번에도 그러더니 오늘도 그런다. 먹여주는 사람의 머릿속에 야릇한 생각이 퐁퐁 솟아나게 하는 효과가 있단 걸 본인은 알려나?
무지개색 아이스크림이 바일레온의 입안으로 사라졌다. 그는 느릿하게 맛을 음미한 후에 속삭였다.
“여보.”
마리엔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까 날 그렇게 불렀죠. 그런 짓궂은 장난은 어디서 배웠어요?”
“어, 어디서 배운 거 아닌데요.”
“이번엔 내가 갚아줘야지.”
바일레온이 목소리를 더 낮춰서 속삭였다.
“여보.”
“그만해요. 누가 듣겠어요.”
“다른 사람 핑계 대지 말아요. 다들 자기 일행과 대화하느라 우리한텐 관심 없어요.”
“아닌 척하면서 귀 쫑긋 세우고 있을걸요.”
“그럼 더 작게 말하는 수밖에요, 여보.”
이번에 부른 ‘여보’는 거의 공기로만 이뤄진 소리였다. 귓속의 솜털을 건드리며 들어가 고막까지 간질이는 느낌이다. 마리엔은 몸을 작게 떨었다.
“몸을 떨 만큼 좋아요?”
“너무 간지러워요.”
“간지럽기만 한가요?”
“으…….”
솔직히 말할까?
간지럽기만 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오싹한 느낌이 마리엔의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게 하는 감각이었다. 마리엔은 연인을 향해 눈을 흘겼다.
“의외로 뒤끝이 긴 건 알고 있었지만요. 저한테까지 두고두고 갚는 건 너무하세요.”
“미안해요. 째려볼 정도로 싫었나 보네.”
사실 싫은 것만은 아닌데, 음음.
“아무튼 특별심사위원까지 됐으니 마리엔이 며칠간 고생하겠어요.”
“하, 어쩔 수 없죠. 저의 재능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숨겨지지가 않거든요.”
대신 이번 축제가 성공리에 끝나더라도 마리엔은 칭찬을 듣지 못할 터다.
사람들이 환호할 대상은 이미 정해져 있다. 바로 이번 축제 주관자로 이름을 올린 2황자다.
마리엔은 고생하는 인간 따로, 공로 가져가는 인간 따로인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근데 왜 오늘은 계속 제 의견을 물어보신 거예요?”
덕분에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이에 마리엔은 더더욱 신이 나서 여름 축제 최초 미남 선발대회라는 아이디어를 내놓게 됐다.
어디 그뿐인가. 심사위원직을 수락하고, 같이 심사할 사람도 뽑았으며, 홍보 방향을 지시하기까지 했다.
이제 대회가 끝날 때까지 며칠간 마리엔의 어깨가 무겁게 생겼다.
“방금 본인 입으로 말했잖아요. 마리엔은 뛰어나니까요.”
“음, 제가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요. 오늘따라 제가 돋보일 기회를 주신 것 같아서.”
오데트의 말에 따르면 그는 마리엔이 늘어놓은 술책을 제 것인 양 이야기했댔다. 정쟁에 휘말리지 않고 살고 싶다는 연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는 누구보다 오데트의 방식을 잘 알고 있으니까. 마리엔이 오데트 눈에 들면 어김없이 체스말로 쓰이게 됨을 내다 본 거다.
그리고 바일레온의 판단은 맞았다.
마리엔은 생각지도 못했던 마부의 밀고에 4황녀궁으로 불려갔다. 바일레온과 결별하려면 본인 대업을 이룬 후에 하라는 막말 아닌 막말도 들었다.
이후에 자신은 재상부로 돌아갔다. 바일레온에겐 오데트와의 만남을 일단 비밀로 했다.
그러므로 바일레온의 오늘 행동은 방향이 좀 빗나갔달까. 연인을 숨기기는커녕 마리엔이 자꾸 돋보이는 상황을 만든 것 같단 거다.
대회 당일엔 2황자와 다른 황족들도 올 예정이다. 특별심사위원으로 심사석에 앉아 있을 마리엔은 당연히 눈에 띌 것이다. 이걸 모를 바일레온이 아니다.
“마리엔, 4황녀 전하께 불려갔죠?”
바일레온이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날 집무실로 돌아온 당신 몸에서…… 북부 특산품 향기가 났어요.”
그게 뭐야.
마리엔은 아이스크림 스푼을 입에 문 채로 굳었다.
북부 특산품 향기라니. 말만 들어도 뭔가 불쾌하다. 그런 게 내 몸에 달라붙었다고?
그래도 된다고 허락한 기억이 없어!
“4황녀 전하의 응접실에 스민 향은 블랙우드 공작이 전하께 드린 선물입니다. 시린 겨울바람과 나뭇가지, 설원의 냄새가 난다고 알려져 있죠.”
“다들 그게 맡아지는구나…….”
“상등품일수록 한 번만 피워도 향이 아주 오래간다고 해요. 심지어 공기 중에 엷게 감도는 정도로 희석돼도 지속력은 여전하다고요.”
의식하지 못한 새 방문 장소를 알려주는 단서를 다른 이에게 제공했는데, 그게 북부 놈이 준 북부 특산품 때문이란다.
‘어쩜 이렇게 내 인생에 방해만 될 수가 있어.’
마리엔은 한동안 코빼기도 못 본 북부 놈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하여간 놈이 도움 주는 꼴을 못 봤다.
“무서웠죠?”
“……네?”
“마리엔은 전하를 무서워하잖아요. 그래서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거고. 한데 그분에게 혼자 불려갔으니 얼마나 위축됐겠어요.”
확실히 위축되긴 했다. 바위 같은 힘이 어찌나 눌러대는지 그대로 짜부라지는 줄 알았다. 다음 날 근육통 때문에 걸을 때 불편함도 겪었다.
“무섭긴 했어요. 근데 제가 앞으로 잘하면 톡톡히 보상해주겠다고도 하셨어요. 그리고…….”
마리엔은 바일레온의 눈치를 쓱, 살폈다.
“그리고요?”
“마음대로 헤어지지 말라고도…….”
“이런.”
둘의 아이스크림이 녹아 흐르려고 했다. 두 사람은 남은 아이스크림을 얼른 먹어치우는 데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서로 시간을 조금 벌었는지도 모른다.
“전하께서 그 머리털만큼이나 속이 시커먼 자와 약혼하겠다고 했을 때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바일레온이 슬며시 웃었다.
“나도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