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58)
카인이 픽 웃더니 몸을 돌렸다. 상대방이 연애를 하든 말든 상관도 안 하는 태도에 마리엔의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저, 저, 저 미친 게…….”
너무 황당하다 보니까 말이 제대로 안 나왔다. 마리엔은 카인이 멀어지는 방향에다 대고 손가락질만 해댔다.
“저게 뭘 잘못 먹었나.”
도대체 왜 갑자기 이러는데? 네게 이런 모욕을 준 여자는 내가 처음이라고? 그래서 날 꺾고 싶다고? 그게 네가 할 말이니?
“제정신 아닌 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뭐?”
놈이 숨긴 귀걸이와 놈이 제 성질 못 이기고 던진 목걸이 때문에 마리엔 디디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던가.
그때 들이마신 먼지가 아직 폐에 달라붙어 있는 느낌이다.
앞으로 비가 내리는 날마다 뼈마디가 쑤실지도 모른다.
날 그렇게 엿 먹여놓고 지금에 와서 날 가져야겠다고 하면 안 되지.
“여주 놔두고 빙의자에게 빠지는 원작 남주? 널리고 널렸지. 그렇지만 넌 달라야 해. 왜냐고? 내 목숨이 걸렸으니까.”
오데트가 카인을 정리하는 건 괜찮다. 하지만 순서가 반대로 되면 안 된다.
고분고분하게 동맹을 지켜야 할 카인 놈이 여자가 생겼다는 망발을 오데트에게 한다면?
“네놈이 아무리 멍청해도 거기까지 가지는 않길 바라.”
마리엔은 분을 삭이며 다시 가방을 정리했다. 다정하고 온화하며 쳐다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마음이 치유되는 연인을 보러 가야겠다. 바일레온만이 이 용솟음치는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잠깐……. 아니, 근데 진짜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
내가 자기한테 모욕 준 것을 빤히 알면서 날 좋아하게 됐다는 거 아냐.
아닌가.
모욕을 줬기 때문에 좋아하게 된 건가?
야, 북부. 너 그런 취향이었어?
백 보 양보해서 네 취향 자체는 존중하겠다만, 나한테 뒤집어씌우면 곤란하지.
“참 나……. 완전히 답 없는 놈이잖아. 날 굴복시키고 싶으면 제일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취향부터 파악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놈은 어쨌더라?
바일레온과 교제한다는 말에 피식 웃고 갔다.
‘그깟’ 바일레온 비어스와의 관계쯤은 얼마든지 깨뜨려버릴 수 있다는 양 비웃었다.
못 참겠다.
마리엔은 이제 거의 점이 된 카인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 질렀다.
“너 같은 놈은 짐마차로 실어다 날라줘도 싫어어어!”
움직이던 점이 멈춰 섰다.
감히 너 따위가, 하늘 같은 블랙우드 공작님을 거부해? 내가 이미 선전포고를 했는데도? 이렇게 부들부들 떨다가 혈압 올라서 졸도해버려라.
마리엔은 속으로 열심히 저주를 날린 뒤, 카인의 반대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대회 때 아주 잠깐, 놈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웬일이야’ 감탄했던 자신을 때려주고 싶었다.
“미쳤지, 진짜!”
◇ ◆ ◇
제국의 꽃들이 황제를 알현하는 자리에 바일레온도 참석했다. 그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띤 채 1, 2, 3위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마리엔이 저런 취향이었나?’
심사위원은 네 명이다. 다른 셋의 의견이 같아도 한 명이 끝까지 반대하면 해당 후보를 순위권에 올릴 수 없다.
바꿔 말하면, 이 자리에 참석한 세 미남은 마리엔에게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뜻이 된다.
‘1위는 흑발인데.’
대신 카인 블랙우드처럼 차가운 인상이 아니었다. 눈꼬리가 살짝 처진 1위는 웃음에 인색하지 않았다. 눈웃음이 친근한 그의 얼굴은 역삼각형의 탄탄한 몸매와 좋은 대조를 이뤘다.
바일레온은 1위의 곳곳을 해부할 기세로 살폈다. 끝끝내 자신과 닮은 구석을 찾아내고 만 그는 2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꽃들이 황제와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는 알 바가 아니다.
바일레온의 머릿속에서 그들은 어느새 ‘마리엔의 선택을 받은 미남’으로 탈바꿈했다.
묘한 경계심과 경쟁심이 바일레온을 스멀스멀 잠식했다.
3위의 손끝까지 샅샅이 뜯어본 그는 우승자들에게 대충 듣기 좋은 축하인사를 건넸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이따 준비될 만찬도 모쪼록 부담 없이 즐기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재상님.”
저마다 고개를 숙인다. 세 명분의 감사인사가 돌아왔다. 자신의 부드러운 인상은 이럴 때 유용했다.
영혼 없이 웃고 있어도 다들 진심이라 속아 넘어간다. 거기다 평소의 근면 성실한 이미지까지 더해지면 이보다 강력한 방패막이 없는 것이다.
‘내가 참가했으면 그대들이 수고롭게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을 텐데.’
가시 돋은 본심을 숨기기에 그만이었다.
바일레온은 그렇게 뾰족한 마음을 달래며 집에 왔다.
한데 이미 귀가했을 줄 알았던 마리엔은 보이지 않고, 잔뜩 흥분한 여동생들만 있었다.
“오빠, 디디 보좌관님은 천재야. 우리 제국 여성들에게 한 줄기 빛 같은 존재라고.”
한 손에 수첩을 든 클로이즈가 생생한 관람평을 늘어놓았다. 둘째는 짝짓기 광인답게 벌써 참가자들의 특징을 목록으로 만든 모양이었다.
이제 각종 인맥을 동원하여 그들과 교분을 트는 일이 남았다.
양질의 후보를 무더기로 확보한 클로이즈는 연신 후후후, 하는 웃음을 흘렸다.
“디디 보좌관님 최고야. 역시 내 안목은 틀리는 법이 없지.”
“……그래서 마리엔은 지금 어디 있니?”
바일레온이 물었다.
“끝나길 기다렸다가 같이 오지 않았어?”
“기다렸어. 마차에서 조금 기다렸는데.”
“조금?”
“이십 분쯤 기다렸다고. 그러다가 하인을 보내 알아봤는데, 보좌관님이 어떤 남자랑 이야기하고 있었대. 방해하면 안 되니까 좀 떨어진 곳에서 기다렸대. 근데 대화가 끝나고 이제 다가가도 되나 싶을 때쯤, 보좌관님이 버럭 소리 지르더니 반대쪽으로 가버리셨대.”
“남자라니 어떤 남자?”
바일레온의 말투가 무의식중에 날카로워졌다.
“음, 키 크고 갈색 머리에…… 하여튼 잘생겼다고 했어.”
“클로이즈.”
바일레온은 남은 인내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애썼다. 여동생의 설명이 하나도 도움 안 된 건 사실이지만, 역시 남자가 잘생겼다는 부분이 거슬렸다.
“마리엔을 위험한 상황에 버려두고 온 건 아니지?”
“그게 무슨 소리야?”
“키 크고 잘생겼다면 오늘 대회 참가자일 확률이 높지. 한데 우승자들은 퍼레이드 준비를 하러 갔을 테니, 그 남자는 우승자가 아닐 테고. 우승자 아닌 참가자가 대회도 끝났는데 집엘 안 가고 심사위원을 찾아갔다?”
이야기를 듣던 클로이즈가 거실 쪽을 흘깃 쳐다봤다.
“오빠 이럴 때마다 라비니아 폰테 비어스의 아들인 거, 티 나. 순식간에 상황을 논리적으로 끼워 맞춰서 무섭게 만들어버리네.”
클로이즈는 하인을 두둔했다. 하인이 타이밍을 놓쳐 마리엔을 따라가진 못했어도, 갈색 머리 남자가 반대 방향으로 사라진 것만은 똑똑히 확인했댔다.
“아직 환한 낮이잖아. 여름 축제 기간답게 해도 길다고…….”
말과 달리 클로이즈의 표정이 점점 더 흐려졌다.
“보좌관님은 너무 아기 토끼 같은데……. 설마 그놈이 만만히 보고 해코지하려는 건 아니겠지? 일부러 빙 둘러서 뒤를 밟는 건?”
“내가 하려던 말이 그거야.”
바일레온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돌연 가렛의 앵무새가 목청껏 외쳐댔다.
“위험! 위험!”
거실에 울려 퍼지는 위험 경고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차츰 더 불편해졌다.
설령 그게 앵무새 입에서 나온 경고라고 해도 말이다.
“집안 꼴 잘 돌아간다!”
그 말을 끝으로 앵무새는 날개를 요란하게 퍼덕거렸다. 가느다란 휘파람 소리에 제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가렛 비어스. 도대체 애한테 맨날 뭘 가르치는 건지.”
클로이즈가 혀를 찼다. 바일레온은 동생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초조히 시계를 확인했다.
‘역시 늦어.’
대회장과 비어스 저택은 거리가 좀 된다. 마리엔이 괜히 운동 삼아 그 길을 걸어오진 않을 것이다. 어느 정도 걷다가 전세마차를 잡아탔을 게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아까 시종장이 뭔가 귀띔해줬었는데…….’
원래 2위였던 우승자가 퍼레이드 참가 직전에 기권 의사를 밝혔다고 했던가.
여태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일이기도 했다.
현장 사람들은 무서운 얼굴로 자리를 뜨는 2위를 막지 못하고, 서둘러 4위였던 후보를 데려와 어떻게든 퍼레이드를 끝냈다고 들었다.
바일레온은 마리엔을 찾아간 갈색 머리 남자가 기권한 2위와 동일인이라고 추측했다.
‘혹시 1위 못 한 데에 대한 보복을 마리엔에게 하려는 건가.’
어쩌면 그보다 더 나쁜 상황일지 모른다. 기권한 참가자가 황태자 또는 2황자로부터 지시받은 인간이라면.
바일레온은 그대로 몸을 틀어 저택을 나서려 했다. 마음은 이미 수도경비대까지 가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목격자를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다들 서서 뭐 하세요?”
“마리엔.”
그때 마리엔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여름 드레스의 나풀거리는 프릴 때문에 무슨 사람이 아니라 민들레 홀씨 요정처럼 보이는 자태로.
바일레온은 행여 그녀가 진짜 날아가기라도 할까 봐 양손으로 어깨를 붙들었다.
마리엔의 몸을 살피는 그의 시선에서 미처 지우지 못한 불안이 배어났다.
“괜찮아요? 어디 다친 덴 없어요?”
“네?”
마리엔이 영문 모르는 얼굴로 되물었다.
“제가 왜 다쳤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오빠.”
어느새 바로 뒤까지 접근한 클로이즈가 속삭였다.
“말하지 마. 별일 없는 거 같아. 오빠만 과보호하는 것처럼 보일 거야.”
클로이즈가 뒤에서 필사적으로 “말하지 마, 말하지 마.”를 반복했다. 하지만 바일레온은 그렇게 어물쩍 넘어갈 성격이 못됐다.
“대회 끝나고 키 큰 갈색 머리 남자와 얘기했다면서요.”
“아……. 결국 말하고 말았구나.”
클로이즈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더니 재빨리 거실 저 끝으로 멀어졌다. 물론 바일레온은 동생의 탄식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가 누군지 알아요? 위험한 일은 안 당했고요?”
“키 큰 갈색…… 악.”
마리엔이 기억났다는 듯 얼굴을 구겼다.
“그놈이요.”
“누군지 알아요?”
“참가번호 3번. 재수 없는 카인 블랙우드.”
마리엔은 짜증이 난 나머지 화풀이 쇼핑을 해버렸다고 실토했다. 그래서 시간이 좀 걸린 거라고. 그녀 말대로 마리엔의 손엔 달콤한 디저트 가게의 봉투가 몇 개나 들려 있었다.
바일레온은 순간 이해가 잘 안 됐다. 카인이 여기서 왜 등장하나 싶었다.
“아, 그게……. 믿기지 않겠지만 공작이 변장하고 대회에 참가했었어요. 심사위원들은 그를 2위로 뽑았고요.”
“블랙우드 공작이 왜 그러죠?”
“저도 참 그게 궁금했는데요.”
마리엔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다만 그걸 바일레온에게 털어놓을지 말지를 고민하는 듯했다.
“로판 법칙 제1조…….”
마리엔이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더니 그의 눈치를 힐끗 봤다. 바일레온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연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저, 그러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북부 노…… 아니, 블랙우드 공작이요.”
마리엔이 코를 찡그렸다.
“제가 괘씸해서 저를 굴복시키고 싶대요.”
정말 넌더리 난다는 투였다.
“제 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