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6)
머리 색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에 마리엔은 지체 않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했다.
바일레온과 카인. 둘을 나누는 가장 큰 차이점이 뭘까. 왜 세심하게 배려하는 바일레온은 사랑을 얻지 못하고, 낮게 으르렁대기만 하는 북부 놈은 오데트의 마음을 뒤흔드나.
마리엔이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놈의 행동방식이 오데트의 취향인가 봐!’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 할 취향이다. 하지만 의 주인공은 마리엔 디디가 아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제국 4황녀 오데트 로즈다.
평소엔 냉랭하지만 미래의 블랙우드 공작부인이 타인에게 모욕당하는 상황만은 참지 않는 북부 놈. 남들 보는 앞에서 가볍게 입 맞춰달라는 약혼녀의 요청에 농염한 키스를 해버리는 놈. 그놈이 오데트의 취향이라는데 어쩌겠나.
“비어스 경, 이번 과제는 염색보다 어려울 거예요. 그렇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최대한 그 사람의 취향을 맞추는 편이 좋아요.”
마리엔은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바일레온 앞에 펼쳤다.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 뜨기, 말은 차갑게 몸은 가깝게……. 이게 다 뭐죠?”
“4황녀 전하께 통할 방식이요.”
바일레온의 표정이 묘해졌다.
“전하께서 정말 이런 행동을 좋아하신다고요?”
“틀림없어요.”
마리엔은 목록을 작성하는 데에 장장 두 시간을 쏟아부었다. 종이에 빼곡하게 쓴 글자는 그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아무리 소설을 여러 번 읽었어도 자신의 관심은 줄곧 바일레온을 향해 있었다. 이름만 되뇌어도 아련한 바일레온을 잠시 옆으로 밀어두고, 북부 놈의 언행을 떠올리려니까 어찌나 힘들던지.
그래도 마리엔은 해냈다. 의지의 마리엔. 해냈다. 결국 해내고야 말았다.
“이건 너무 폭력적인 사람 같은데요.”
가만히 목록을 읽어나가던 바일레온이 감상을 말했다.
“손목을 잡아 돌려세우라니. 그냥 상대방을 불러서는 멈춰주지 않는 상황이니까 이러는 거겠죠?”
“네, 휘청거리는 몸을 그대로 끌어당겨 안는 게 포인트.”
“힘으로 제압하는 거군요.”
바일레온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아직도 이러는 남자들이 적잖이 있어요……. 이들의 문제점은 폭력을 쓰고도 자기 행동이 되게 로맨틱하다고 착각하는 거죠. 상대방을 사랑해서 잡는 거니까 괜찮다고.”
그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목록에서 눈을 떼더니 마리엔을 바라보았다.
“있잖아요, 디디 보좌관. 우리 집에서 이러면 큰일 나요.”
바일레온이 갑자기 쓴웃음을 지었다.
“부모님 이야기가 별로 로맨틱한 화제가 아닌 건 나도 알아요. 그렇지만 말을 안 할 수가 없네요. 내가 아니라 태자 전하께서 방문하셔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어스 저택에서 남의 손목을 함부로 잡아당기면 저녁을 굶어야 돼요. 나쁜 짓이니까.”
이건 또 처음 듣는 정보다. 마리엔은 뜬금없이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기처럼 바일레온을 가장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알리고 싶었다.
역시 이 인성! 이 매너! 저절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어요. 가정교육부터 똑발랐던 거야. 비어스 백작가문이 자유분방해 보여도 아들 교육만큼은 철저하게 시켰나 봐.
‘오데트, 이게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데.’
마리엔은 또다시 오데트의 드레스 자락에 매달리고 싶어졌다.
‘흔히들 시부모 잘못 만날 걱정에 이미 부모 여읜 남자를 만나라고 하잖아. 근데 그것도 남자 나름이지. 북부 놈은 부모님 없는 남자 중에서도 최악의 선택지야.’
심보 고약한 시부모에 속 뒤집어놓는 시동생들, 자기 일 아니라고 슬그머니 발 빼는 남편. 보통은 이것들이 한 세트로 따라온다.
한데 피붙이 하나 없는 카인 블랙우드는…….
‘그놈은 혼자서 다섯 명 몫을 해내잖아!’
완전 최악의 인성 파탄자. 눈보라 몰아치는 북부에 영원히 잠들어라. 이쪽으로 오지 마. 퉤퉤. 마리엔은 북쪽으로 짐작되는 방향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또 딴생각에 빠졌군요.”
“……네?”
“알고 있어요? 본인이 딴생각 중일 때 표정도 따라서 바뀌는 거.”
“제가요?”
몰랐다. 마리엔은 스스로를 포커페이스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물론 근거는 없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마리엔은 돌연 불안해졌다.
늘 그렇듯이 북부 흑발 놈 욕을 했다. 그때 너무 험상궂은 얼굴을 하진 않았을까?
또, 또 무슨 생각을 했더라. 그렇지. 바일레온의 집안 분위기를 듣고는 혼자 감격에 몸부림쳤다. 적당히 기뻐하는 표정이면 좋았으련만. 너무 음습하게 웃진 않았을까?
“과거 조사가 끝난 뒤니까 하는 말이지만요. 디디 보좌관만큼 밀정에 안 어울리는 사람도 드물 거예요.”
“확신에 차서 말씀하시니까 왠지 자존심 상하는데요.”
“일단 감정을 못 숨겨요.”
대번에 받아치려다가 바일레온과 눈이 마주쳤다. 틀린 말이 아니지 않느냐며 웃는 얼굴이 그렇게나 부드럽다니. 반칙이에요, 재상님.
“게다가 거짓말도 못하고요.”
“꼭 필요한 경우엔 할 수 있어요.”
“그래요?”
바일레온이 면접관처럼 책상에 팔을 올리더니 손깍지를 꼈다.
“그럼 블랙우드 공작이 나보다 뛰어난 점을 세 가지만 얘기해보세요.”
질문을 들은 순간, 마리엔은 사람들이 왜 바일레온더러 머리가 좋다고 하는지 깨달았다. 이건 악마의 질문이다. 아무리 최애라도 이건 너무해.
“문제없죠.”
마리엔 디디, 입만 살아가지고. 정작 필요할 땐 거짓말을 못하면서 왜 이렇게 쓸데없는 일엔 큰소리를 뻥뻥 치지.
어쨌든 말을 입 밖에 내뱉었으니 시도 정도는 해봐야 했다.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마리엔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도 인성 파탄 난 블랙우드 새끼의 장점을 생각해낼 수 없었다. 그냥 장점도 아니고, 무려 바일레온보다 뛰어난 점을 대라니.
10년 같은 일 분이 지났다. 마리엔은 결국 울상을 지으며 상관에게 호소했다.
“좀 줄여주시면 안 돼요? 세 개는 너무 많아요!”
대답을 기다리던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힘들어하네요.”
“힘드니까요.”
“솔직히 왜 힘들어하는지 모르겠어요. 전혀 어려운 문제가 아닌데. 객관적인 사실만으로도 대답이 가능하잖아요.”
마리엔은 말없이 눈을 깜빡였다. 객관적 사실? 그게 뭐지.
“재력이라든가.”
바일레온이 대신 예를 들어줬다.
“백전백승의 무장이기도 하고요.”
“…….”
“작위도 나보다 높아요.”
어쩜 장점이라고 꼽는 것마다 하나같이 안 와닿을 수가 있을까. 마리엔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에겐 저게 먹힌다는 뜻이겠다. 저런 점 때문에 카인이 바일레온보다 강력한 남주인공 후보가 되는 거다.
“전 딱히…… 그게 뛰어난 점인 줄 모르겠어요.”
마리엔이 대꾸했다.
“제 눈엔 비어스 백작가도 부자인걸요. 백전백승? 나라 입장에선 인재겠지만 연애 상대로서는 최악이잖아요. 결혼 상대로도 그래요. 전쟁 나가서 싸우느라 내 옆엔 없다는 건데. 하, 중요한 순간마다 자리 비우는 남자…… 의미가 있나?”
작위는 입 대기도 귀찮다고 말했다. 공작 작위라도 안 주면 누가 저 추운 북쪽 땅에 살겠냐고 덧붙였다. “지가 그거라도 있어야지.”라는 혼잣말에 바일레온이 묘한 눈을 했다. 현존하는 귀족 중에 가장 너른 영지를 보유한 공작가문이 ‘그거’로 폄하되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제 눈엔 비어스 경이 압도적이에요!”
“압도적이라.”
바일레온이 엷게 웃었다.
“전하께서 디디 보좌관의 반만큼이라도 날 좋게 봐주면 좋을 텐데요.”
희망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가 마리엔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의 미소 너머로 쓸쓸함이 엿보일 때마다 마리엔은 괜히 눈 둘 곳을 찾아 헤매게 됐다.
사랑하는 이의 주변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남자. 평소엔 오데트가 쉬는 그늘이 되었다가 그녀가 빛나는 순간엔 기꺼이 그림자가 되는 사람. 오데트가 위험에 빠지면 대검을 휘두르며 적진에 뛰어드는 게 아니라, 애초에 그녀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할 파트너.
바일레온 비어스는 그런 이다. 헌신적이고 온유하며 의지할 수 있다. 젊은 나이에 재상으로서 활약할 만큼 유능하기도 하다.
마리엔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바일레온의 외사랑이 이뤄지게 도와주고 싶었다. 오데트에게도 바일레온과 사랑에 빠지는 편이 좋을 것이다. 바일레온과 함께라면, 북부 놈과 엮였을 때처럼 분해서 잠을 설치는 밤 따윈 없을 거다.
“우선 벽치기부터 가죠.”
마리엔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저절로 비장한 목소리가 나왔다.
“혼자 하면 어색할 거예요. 제가 연습 상대가 돼드릴게요. 어, 제가 이쯤에 서 있을 테니까요. 비어스 경이 저를 벽으로 몰아가세요. 말을 하면서 몰아가도 되고, 말없이 쳐다보기만 해도 괜찮아요.”
진한 하늘빛 눈이 투지로 반짝거렸다.
“중요한 건 위압감.”
“음.”
“물론 상대는 왜 이러냐면서 벗어나려 하겠죠? 그때 딱! 손으로 벽을 짚은 다음에 말하는 거예요.”
이게 바로 마리엔이 떠올린 비장의 무기였다. 원래는 북부 놈이 할 대사를 바일레온이 선수 치게 하는 거다. 대신 말투만 바일레온 스타일로 좀 자연스럽게 손봐서.
“이제야 절 제대로 봐주시는군요.”
“……진심입니까?”
바일레온이 되물었다.
“진짜 내가 그런…… 식으로 말하길 원해요?”
슬픈 이야기를 할 때에도 미소 짓는 바일레온이다. 그런 그가 미간을 흐렸다. 태어나서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화법을 구사해야 하니 거부감이 앞설 수밖에. 게다가 북부 놈 대사가 어지간해야지. 사실 원래 대사는 더 심했다.
‘으으, 나라면 욕했어.’
마리엔은 속으로 진저리를 쳤다. 하지만 대답은 언제나 밝고 또렷하게.
“네, 하셔야 돼요.”
이어서 바일레온을 움직이게 하는 만능 주문을 외쳤다. 4황녀 전하께서 분명히 좋아하실 거라는 말. 마리엔의 확신 어린 목소리에 바일레온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걸음을 내딛기 전에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수려한 얼굴엔 여전히 망설임이 남아 있었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봤다면 그가 체면 때문에 주저하는 중이라고 말할 거다. 제국의 재상으로서의 체면. 연상의 남자이자 상관으로서의 체면. 그렇지만 그건 바일레온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마리엔이 느끼기로는 오히려 반대였다.
‘이 사람은 정말 오데트를 위해서라면 못 하는 일이 없네.’
바일레온은 겉으로 담담해 보여도 실은 누구보다 절박한 상태인 거다. 당신의 사랑을 응원한다는 말 한마디에 마리엔을 향한 벽이 무너지고 말 만큼.
“좋아요. 네, 그렇게.”
바일레온은 말없이 다가오는 쪽을 선택했나 보다. 그가 마리엔을 응시하며 둘 사이 거리를 좁혔다. 한 번도 이렇게 행동한 적은 없지만, 웃을 상황이 아님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걸까. 입가에 늘 머물던 웃음기가 보이지 않았다.
살기 가득한 북부 놈만큼은 아니어도 상대가 충분히 뒷걸음질 치게 할 분위기를 풍겼다. 항상 웃는 사람이 웃음을 거두면 이런 효과가 있구나. 마리엔은 혼자 납득했다.
“이만큼 가까이 오시면. 네, 그러네요. 안 부딪히려면 물러나야 되네. 이게 어쩔 수가 없네.”
“…….”
“제가 너무 재잘거리나요? 저도 황녀 전하와 비슷한 반응을…….”
말을 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