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60)
마리엔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범죄 현장도 아닌데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숨을 죽였다.
‘가만있자. 범죄 현장이 아닌 거 확실해?’
눈만 굴려 거대한 벨벳 리본 상자를 내려다봤다.
도저히 가격을 짐작할 수도 없는 다이아몬드 장신구 세트, 금실로 자수를 놓고 주름 잡히는 부분마다 수천 개의 크리스털을 붙인 스커트 지름 3미터의 공단 드레스.
거기에 드레스와 같은 소재로 제작한 리본 구두는 5센티미터 높이의 굽에 순금을 입힌 듯이 보였다.
말하면서도 웃기네.
누가 구두 굽을 순금으로 도금 처리하냐고?
네, 세상엔 미친 자가 많다네요. 그 인간이 돈을 내밀면 제작자는 어쨌든 물건을 만들어야 하고요.
그리고 이것들이 담긴 상자를 수령한 마리엔 디디의 직업은 무엇이냐.
다름 아닌 공무원이다.
‘뇌물 수수. 뇌물 수수. 아악!’
마리엔은 황급히 상자 뚜껑을 닫았다. 이다음 문제가 뭐냐면 제3보좌관의 작고 귀여운 집무실엔 거대한 상자를 감출 만한 여유 공간이 없단 거다.
‘어떡하지? 책상 밑에도 안 들어가……. 어, 어, 일단 최대한 구석에 밀어놓고.’
마리엔은 상자를 덮을 만한 천을 찾았다. 요리조리 각도를 잘 맞추면 새로 들인 원형 탁자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됐나?’
오데트의 눈에 든 이상 자신은 이제 일개 공무원이 아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오데트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이토록 어마어마한 선물을 오데트의 약혼남으로부터 받은 것을 그분이 알게 되면?
‘아, 억울해. 이 망할 놈. 내 연애에 집중하느라 잠시 대머리 신세를 면케 해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
똑똑.
이대로 없는 척할까?
똑똑.
하지만 문밖의 사람은 집요했다. 마치 마리엔이 안에 있는 걸 알고 두드리는 듯하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감찰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
“저, 누구세요?”
“역시 안에 있잖아.”
바깥의 사람이 말과 동시에 문을 열어젖혔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마리엔은 외부인의 정체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너.”
마리엔이 카인을 향해 삿대질했다.
“온 김에 저 상자 가져가. 네놈이 가져가서 환불해.”
“마리엔 디디. 네가 맞춤 제작 물건을 자주 안 접해봐서 모르나 본데.”
카인은 태연하게 남 속 긁는 소리를 해댔다.
“환불 같은 건 불가능해.”
“저 주둥이.”
“그러니 네가 입든가 아니면 불태우든가. 네가 알아서 하라고.”
놈을 가리키는 마리엔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부들부들 떨렸다.
“왜 네놈이 산 물건을 내가 처리해야 하지?”
마리엔은 문패를 턱짓했다.
“눈 똑바로 뜨고 봐. 난 재상부 소속 공무원이야. 블랙우드 공작가 뒤처리 반이 아니라.”
몇 마디 안 나눴는데도 벌써 열불이 터지려 했다. 마리엔은 발을 쾅 굴렀다.
“네놈의 배려 없는 이런 행동 때문에, 난 뇌물 수수죄로 잡혀갈 수도 있다고! 그 죄목으로 안 잡혀가면 어떻게 되느냐? 4황녀 전하의 수하들에게 끌려가겠지!”
“겨우 이것 가지고 뇌물이라니 우습군.”
카인이 머리카락을 느리게 쓸어올렸다.
“블랙우드에게 이 정도는 약소한 선물에 불과해.”
나름 이 구역의 돌은 자 타이틀을 보유한 마리엔 디디다.
하지만 막무가내 북부 놈과 같이 있으면 마리엔 자신이라도 이성을 챙겨야 할 것 같았다.
“그런 뜻이 아니잖아…….”
“입어는 봤나?”
“시녀 서넛이 달라붙어서 도와줘야 될 텐데 나 혼자 이 좁은 방에서 잘도 입겠다.”
“아, 그런가.”
뭐가 아, 그런가야. 마리엔은 저절로 삐죽거리는 입매를 내버려두었다. 저놈 앞에서는 표정을 관리하는 수고조차 들이고 싶지 않았다.
“시녀를 보내주지.”
“기왕 보낼 거면, 힘 좋고 얼굴 곱상한 시종으로 보내줘. 도토리처럼 예쁜 갈색 머리면 더 좋겠어.”
막말엔 막말로 대응하는 수밖에. 그랬더니 카인이 드디어 인상을 썼다. 마리엔은 내가 뭐 잘못 말했냐는 듯이 머리카락을 찰랑 뒤로 넘겼다.
“드레스는 그렇다 쳐도 목걸이는 안 걸어볼 수가 없었을 텐데.”
저렇게 당연시하는 말투만 아니면 목에 걸어도 백 번은 걸어봤겠다. 마리엔은 이번엔 머리카락을 반대로 찰랑 넘겼다.
“깨끗이 무시했지.”
“……왜지? 잘 어울릴 텐데.”
“그건 네 생각이고.”
마리엔은 문 가까이 걸어갔다. 제가 다가갈수록 카인의 표정이 기고만장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리엔의 관심은 오로지 복도에 지나다니는 사람의 유무였다.
“다행히 없네.”
눈만 빼꼼 내밀어 밖을 살핀 마리엔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빨리 저 상자 들고 네 방에 돌아가라고 하자 카인이 눈썹을 꿈틀했다.
‘족집게로 한 올 한 올 뽑아서 다듬으려 해도 저렇게 반듯한 모양을 만들긴 어렵겠지.’
뜬금없는 감상평이지만 카인 블랙우드는 잘생겼다.
피부는 북부의 하얀 설원 같고, 푸른 눈동자엔 냉기가 서려 있다. 길에서 스치듯이 보면, 남은 평생 목격담을 우려먹을 만큼 선이 날카로운 미남자다.
한마디로 마리엔의 미적 감각은 잘못되지 않았다. 치명적으로 잘생긴 외모를 깡그리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뭐지, 그 표정은.”
마리엔이 가만히 올려다보자 카인이 자세를 바꿨다.
“카인 블랙우드.”
“…….”
“내 생각에 넌…….”
“…….”
“그 입만 다물면 진짜 괜찮을 것 같아.”
안 듣는 척하면서 귀 기울이고 있던 카인이다. 그가 발끈해서 입을 열려 했다. 마리엔은 얼른 손가락을 들어 카인의 입술을 꾹 눌렀다.
“쉿.”
“이거 치워.”
“조용히 하라니까. 조용히 하면 뗄게.”
“이…….”
“입! 입! 입!”
마리엔은 꼿꼿이 세운 손가락으로 카인의 입술을 마구 때렸다.
“네가 아무리 폭력적이고 무례한 사상에 찌들어 있어도, 일단 이 입을 안 열면!”
마리엔은 고개 돌리려는 카인의 얼굴을 딱 고정시켰다. 어떻게 고정했냐면 그의 입술이 오리 부리처럼 튀어나오게 위아래로 잡아버렸다.
태어나서 한 번도 당해본 적 없는 짓에 카인이 눈을 부릅떴다.
“일단 말을 안 하면 내가 모르잖아. 그렇지?”
모르긴 왜 몰라. 사실 다 안다. 근데 당장 말만 그렇게 하는 거다.
“혹시 알아? 넌 그냥 입만 다물고 있을 뿐인데 내가 뾰로롱 호감을 느낄지?”
“…….”
“되게 기분 나빠하는 표정인데 그러지 말고 한번 잘 생각해봐. 이득이라니까? 선물 주고 욕 들을 필요도 없지. 그냥 이, 입만 다물면 일이 네가 바라는 대로 풀릴지 몰라.”
마리엔은 놈의 입술을 꾹 잡고 있는 제 손을 눈짓했다.
“손 뗄게?”
“…….”
“뗀다?”
마리엔은 놈의 입에서 손을 거뒀다. 본능적으로 치마에 손을 닦으려다가 관뒀다.
제 말이 통한 걸까. 카인은 정말 아무 말 없이 인상만 쓴 채 마리엔을 내려다봤다.
“좋아. 이거 봐. 훨씬 낫잖아.”
하는 김에 한 가지만 더 세뇌시켜볼까.
“앞으로 웃을 때도 재수 없게 픽, 비웃지 말고 대회 때처럼 웃어.”
공작님껜 익숙지 않은 명령조다. 카인은 대번에 반박하려는 낌새를 보였다.
“슷!”
마리엔은 곧게 세운 검지를 카인의 앞에다 대고 흔들었다.
“원래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쓴 법이야. 듣기 싫어도 한번 잠자코 생각해보라고. 그렇게 부드럽게 웃을 줄 알면서 여태 왜 그랬어?”
“……부드럽게?”
카인이 벌레 씹은 얼굴로 특정 단어를 내뱉었다.
“그래, 부드럽게. 무대에서 바이올린 연주 다 하고 나서 살짝 웃었잖아. 그 웃음 때문에 네가 추가 점수를 받은 거야.”
마리엔은 참, 하면서 말을 이었다.
“근데 바이올린은 언제 배웠대.”
“……원래 할 줄 알아.”
“태어날 때부터?”
“…….”
“태어날 때부터는 아니지?”
“……22년 전부터.”
“와.”
마리엔이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세 살이란 말을 하기 싫어서 22년 전이라고 한 거야?”
멀리서부터 사신의 어두운 기운을 풍기는 북부 공작으로 사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군.
우리 모두 세 살일 때가 있었다. 한데 북부 공작은 자기 입으로 세 살이란 단어를 말 못 한다.
자꾸 놀리는 것 같았는지 카인이 또 커다란 체격으로 위압감을 주려 했다.
“내가 비싼 선물 받고 좋아서 기절했나 확인하러 왔어?”
마리엔은 전혀 굴하지 않고 물었다.
“아니. 네가 기절까지는 안 하리란 거 알아.”
“그럼 왜?”
“과연 네 집무실은 좁아터졌군. 천을 뒤집어씌워놔 봤자 상자가 보여. 그걸 확인하러 왔다.”
놈이 입을 여니까 다시 급속도로 짜증이 치솟았다.
“그걸 확인해서 어쩔 건데?”
“비어스와 넌 출퇴근을 같이 하니 이따 재상도 저 상자를 보겠지. 오늘이 아니라도 언젠간 볼 수밖에 없을 거야. 넌 일 처리가 치밀하지 못해서, 조용히 상자 속 물건만 처리하는 법을 모를 테니.”
사회성 최악인 놈답게 말하는 꼴 좀 보라지.
이게 대체 좋아하는 여자한테 할 소린가.
마리엔은 입가 근육이 멋대로 실룩거리기 시작했다.
“난 비밀 연애 따윈 안 해봤지만 그게 사람 속깨나 문드러지게 하는 건 알아.”
“아, 그러세요.”
마리엔은 이제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었다.
그런데 망할 놈의 자식이 이다음에 어떻게 했냐면.
“비밀 연애 중인 연인이 다른 남자로부터 이런 선물을 받는다? 비어스처럼 생각 많은 타입에겐 상당히 치명타거든.”
이딴 소리를 지껄이면서 부드럽게 웃었다. 새파란 얼음 조각 같은 눈동자에 화색이 깃드는데.
기다렸다는 양 어디선가 맑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난 너만 꺾으려는 게 아니야, 마리엔 디디. 자고로 무언가를 가지려면 그 옆에 붙어 있는 존재도 힘껏 뒤흔들어야 해.”
망할 북부 놈. 평소엔 귀 닫고 자기 맘대로 하다가 딱 필요할 때만 머리가 좋아지는 것 같다.
마리엔은 속으로 심호흡했다.
아까 상황을 떠올려보자. 놈을 이기려면 결코 흥분해선 안 된다.
“상세한 설명은 고맙다만 넌 역시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훨씬 매력적이야.”
“…….”
“일단 네놈 뜻은 알았어. 나 이제 일해야 하니까 돌아가.”
마리엔은 순순히 멀어지는 카인을 노려보다가 문을 닫았다.
“이거 뭔 미친 맹수 길들이기도 아니고……. 아니, 저놈은 왜 또 조련되는 건데?”
조련이 통할 줄은 몰랐다.
이렇게 된 이상 모두의 안녕, 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마리엔 디디의 무사평안을 위해 오데트가 황제 되는 날까지 조련을 이어가야 할 수도 있겠다.
“으아아, 저놈 낯짝을 그때까지 봐야 해?”
불쑥 치민 울화에 마리엔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여주님, 지금이라도 동맹 상대 바꾸시면 안 되나요? 저놈은 우리 항해에 어마어마한 방해가 될 뿐인 것 같은데요.
가여운 빙의자 신세.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그 와중에 다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돈 많아서 좋겠구나.
마리엔은 언젠가 꼭 자신도 제 돈으로 다이아몬드를 사리라고 다짐했다.
물론 지금 모은 돈으로는 핑크 다이아몬드는커녕 다이아몬드 부스러기도 못 산다.
평민 엑스트라에 빙의한 인간의 처지가 다 그렇지 뭐.
“처량한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