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63)
‘윙크…… 저 미친놈이 약혼녀를 등지고 나한테 윙크를 했어!’
자기 약혼녀가 누군지 까맣게 잊어버린 건가? 이거 뭐, 오데트 손에 같이 죽자는 뜻인가 싶었다.
‘죽으려면 너 혼자 죽어. 물귀신처럼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머릿속이 상스러운 욕으로 가득 찼다. 마리엔은 입술에 힘을 주어 오므렸다. 그렇게 해서라도 욕이 튀어나가는 것을 막을 심산이었다.
‘아차, 바일레온도 봤잖아.’
마리엔은 얼른 옆에 앉은 바일레온의 표정을 살폈다.
바일레온은 의외로 평온했다. 카인이 머물렀던 자리를 노려보지도 않았고, 이를 악물지도 않았다.
다만 찻잔을 들더니 말없이 꿀꺽꿀꺽 절반 이상을 들이켰다. 아직 저렇게 물처럼 마실 만큼 식지는 않았을 텐데.
마리엔은 바일레온에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제 몫의 차를 한 모금 홀짝였다.
‘역시 뜨거워.’
처음 내왔을 때보다는 식었어도 바일레온처럼 마시기엔 무리다.
“비어스, 목이 말랐나 보지?”
오데트가 담담한 투로 물었다.
“차를 좀 더 내오라고 할까? 아니면 시원한 물이 좋으려나?”
“괜찮습니다.”
바일레온이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방해꾼도 갔으니 편히 얘기하시죠.”
“공작은 블랙우드 가문의 수장이자 내 약혼자야. 방해꾼이라니, 너무 적대적인 표현이네.”
“하지만 사실인걸요.”
바일레온이 양손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냐는 제스처였다.
“도대체가 실질적인 도움을 준 적이 있어야지요.”
“어디 한번 혼쭐나보라는 듯이 공작의 재산을 털어서 밀린 국가사업을 해결한 인물이 누구더라.”
“애초에 원인을 제공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리엔은 바일레온이 거절한 시원한 물을 대신 마시고 싶어졌다.
문제의 북부 놈이 사라졌다. 비록 퇴장 의식이 경악스러웠지만, 어쨌든 놈이 자리를 뜨면 분위기가 좀 나아질 줄 알았단 말이다.
한데 문젯거리가 방을 나가자마자 시작된 오데트와 바일레온의 기 싸움이라니.
‘여러분, 언변이 받쳐줘서 좋으시겠어요.’
마리엔 자신은 이렇게 귀여워 보여도 물리 공격에 강한 편이다. 말로써 오데트와 바일레온을 압도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마리엔은 갑자기 허공에 대고 손뼉을 쳤다.
짝!
오데트와 바일레온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여름은 여름인가 봐요.”
마리엔이 중얼거렸다.
“모기가 돌아다니네……. 죄송해요. 놀라셨죠? 모기를 잡으려다가 그만.”
“네가 살려고 그런 건 아니고?”
오데트가 물었다.
“압박감이 상당했나 보구나, 마리엔 디디. 없는 모기를 다 만들어내네.”
“아, 제가 잘못 본 거였을까요? 그렇지만 전 정말 모기를 봤어요.”
“우리가 지금 싸우는 것처럼 느껴지니?”
오데트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마리엔을 쳐다봤다. 몇 보 양보해서 싸우는 게 아니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분위기가 좋았다고 할 순 없잖아? 마리엔은 많은 반박의 말을 삼킨 채 말갛게 웃었다.
“넵.”
“나와 비어스가 ‘진짜로’ 싸우는 걸 네가 못 봐서 그래. 이건 아무것도 아니란다. 그냥 부모님 안부를 물어보는 일상 같은 거지.”
황녀 전하, 인류는 오래전부터 그것을 패륜적 욕이라 일컬어왔답니다.
“익숙해져야 할 거야.”
“넵.”
까라면 까야지. 나는 공무원이다. 오데트와 바일레온의 기 싸움은 그렇게 일단락되나 하던 차였다.
“내가 왜 비어스를 거절했겠어. 본인 판단에 아니다 싶으면 주군이고 뭐고 저리 달려들어 한껏 물어뜯으니까.”
아직 우리 황녀 전하께서 끝나지 않으셨구나.
왠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다. 마리엔은 4황녀궁에서는 응접실 밖 시녀를 어떻게 부르는지 궁금해졌다.
기왕 고래들 싸움에 등이 터질 거라면, 쿠키라도 먹으면서 치이는 게 낫겠다.
‘당이 좀 들어가면 마음의 안정이 찾아올지도 몰라.’
그러나 목소리를 높여 시녀를 부를 용기는 없었다. 마리엔은 흐린 눈으로 설탕 그릇 뚜껑을 열었다. 단맛이 조금 나던 밀크티는 이제 완전히 달콤한 맛으로 바뀌었다.
“비약이 지나치십니다.”
“듣는 입장에서는 짜증이 나거든.”
“좋은 약이 입에 쓰다는 말이 있죠. 충언 또한 그러합니다.”
“꿀이라도 개어 넣는 성의를 보이면 모를까. 평소 태도와 너무 차이가 나잖아.”
둘 다 그만둘 생각이 없나 보다. 마리엔은 두 사람이 이토록 대립하는 상황이 꽤 낯설었다.
원작에서 오데트와 격렬하게 부딪치는 상대는 동맹 파트너인 북부 놈이었기 때문이다. 바일레온은 서브남답게 주로 오데트를 위로하고 북돋는 쪽이었다.
이것도 전개가 바뀐 것에 속할까? 하나 오데트의 말을 들어보면 이들은 오래전부터 종종 언쟁해온 듯하다.
그렇다면 원작에서는 주인공 커플의 혐관을 강조하느라 바일레온의 단면만 보여줬다는 뜻이 되겠다.
확실히 오늘 눈앞에서 직접 보지 않았다면, 자신은 믿을 수 없었을 터다.
바일레온이 오데트와 살벌하게 싸운다고? 순애와 헌신의 표상인 바일레온이? 정녕 10여 년 외사랑의 상대인 오데트와?
“비어스 경이 너무 좋은 사람이어서…….”
마리엔이 작게 웅얼거리자 오데트가 쳐다봤다.
“그래서 거절하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내 눈에 비어스는 때때로 너무 무르고, 비어스 눈에 난 지나치게 가혹하거든. 하지만 꼭 그 이유뿐만은 아니었어.”
오데트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사람인데 사사건건 대립하는 남자가 좋아 보일 리 있겠니? 물론 잘해줄 때야 잘해주지. 사람이 참 세심하고 생각 깊긴 해. 문제는 싸울 때도 꼼꼼하게 걸고넘어지니까.”
“그게 제 일 아닙니까.”
“그래, 그래서 그대는 무조건 그대 편을 들어주는 짝을 찾았군. 나와 정반대라서 끌리던?”
화살의 방향이 자기 자신이 아닌 마리엔을 향하자 바일레온이 대번에 안색을 달리했다. 위기 상황이다. 마리엔은 선수를 쳤다.
“당사자가 듣는 앞에서 말씀을 좀 가리셨으면 합니다만, 이라고 하려 했죠?”
“……비슷해요.”
화를 애써 눌러 참는 얼굴이었다. 원래는 더 공격적으로 말하려 했나 보다. 오데트는 이것 보라는 듯이 손으로 마리엔을 가리켰다.
“좋겠구나, 바일레온 비어스. 연인이 네 속마음까지 대신 말해주고.”
“굳이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그리고 마리엔 디디, 제법 꾀를 쓸 줄 아네.”
오데트가 마리엔을 응시했다.
“네?”
“나한테 직접 말할 엄두는 안 나니까 비어스 핑계를 대서 말했잖니.”
마리엔은 ‘아무것도 몰라요’ 표정으로 눈만 깜빡였다.
“괜찮아. 그 정도는 앞으로 대놓고 말해도. 네 옆에 앉아 있는 남자는 너보다 백배는 직설적으로 말하는걸.”
마리엔이 선수 치지 않았다면 또 얼마나 발끈해서 말했을지 불 보듯 뻔하다고 덧붙였다.
마리엔은 기왕 직언을 허락하셨으니 하나만 물어보겠다고 했다.
“향후의 일을 논의하고 싶으시다고 하셨는데 그냥 해본 말씀이죠?”
“그게 무슨 뜻이지?”
“도저히 오늘 안에 논의가 시작될 것 같지 않아서요. 하긴 전하께서 어련히 알아서 잘하셨겠지만요.”
오데트가 표정 변화 없이 마리엔을 쳐다봤다. 설마 헛다리 짚었나 싶은 순간에야 오데트가 입을 열었다.
“눈치도 빠르고.”
“감사합니다.”
“응용력도 나쁘지 않군.”
마리엔은 열심히 방싯거리며 오데트의 비위를 맞췄다. 남자들이 오데트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니, 자기 혼자라도 애써봐야 할 것 같았다.
“한담이 목적이셨다면 저흰 그만 물러가도 좋을 듯합니다. 차도 대접받았고, 이야기도 이만하면 충분히 나누었으니까요.”
바일레온이 일어날 기색을 비쳤다. 오데트는 마음에 안 든다는 눈으로 그를 흘겨보다가 성의 없이 손을 휘저었다.
물러가라는 표시다.
‘드디어 가시방석에서 탈출이구나!’
마리엔은 너무 기쁜 티를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일부러 인사도 느릿느릿하게 했다.
그렇게 바일레온과 함께 나가려는데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 선물은 잘 받았니?”
마리엔은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오데트만 쳐다보았다.
“뤼미에 드 샤샤 살롱에서 보낸 드레스 말이야. 적당히 때를 보아 감사인사를 하겠지 싶어 놔뒀더니, 물러날 때까지 말이 없구나.”
“……아.”
“네가 내 측근이 된 이상, 앞으로 여러 자리에 동행하게 될 테지. 그런 곳에 입고 갈 드레스 한 벌 없으면 안 되잖니.”
오데트가 부연했다.
“여기서 입고 갈 옷이란 주군이 내린 선물을 뜻한단다.”
마리엔의 머리가 갑자기 빠르게 돌아갔다.
카인 놈이 보낸 처치 곤란한 보석과 드레스. 그걸 전능하신 오데트 님께서 막아주려나 보다. 바일레온이 듣고 있는 가운데 말을 꺼낸 걸 보면 틀림없었다.
새로이 영입한 인물의 기를 세워주기 위한 선물이라니.
이렇게 감지덕지할 데가.
오데트가 카인 놈의 선물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차치하련다. 마리엔은 일단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구실을 마련해준 오데트를 향해 눈을 반짝였다.
“그럼요. 잘 받고말고요. 감사인사는 제가 나중에 따로 찾아뵙고 드리려 했지요.”
“이래 봬도 난 너와 달리 제법 바쁘단다.”
오데트가 말을 이었다.
“인사 받자고 따로 낼 시간 같은 건 없으니까. 웬만하면 한번 만났을 때 다 처리하렴.”
“넵!”
“비어스, 아직 안 나갔어?”
두 여자가 대화하는 동안 가만히 마리엔을 쳐다보기만 하던 바일레온이다.
그는 자기만 콕 집어 묻는 오데트의 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이윽고 바일레온이 응접실을 나갔다. 문 닫는 소리가 나자마자 마리엔은 오데트 발치로 달려가 기꺼이 무릎을 꿇었다.
4황녀 전하 충성충성.
“일단 감사드립니다.”
마리엔은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 채 오데트를 올려다봤다.
“드레스 건은 혹시 공작님이 본인 입으로 털어놓으시던가요?”
“아니.”
“그럼 어떻게…….”
“재상부를 드나드는 사람 중에 내 소식통 하나 없을까.”
“과연 치밀하십니다.”
오데트는 이미 비어스 백작저에 제 소식통 한 명을 심어놨다. 황궁 밖 저택까지 그렇게 손을 써놨거늘, 황궁의 재상부에 그녀의 소식통이 있는 건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만약 오데트가 알려고 하기만 하면, 하루에 내가 화장실 몇 번 가는지까지 다 알 수 있겠네.’
마리엔은 원작 여주에게 너무나 유리한 세계관에 남몰래 한숨을 삼켰다. 황제든 황후든 수완 좋다고 소문난 인간들 모두 오데트 로즈 앞에서는 무력한 것이다.
‘이 세계에서 살려면 여주님의 감시를 그냥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마리엔은 갑작스레 몰아닥친 회한은 밀어두었다.
지금 중요한 건 이쪽이 아니다. 오데트에게 질문하는 목소리가 절로 조심스러워졌다.
“전하께선 공작의 행동이 불쾌하지는 않으세요? 일을 이렇게 만든 제가 괘씸하다거나, 역시 본때를 한번 보여줘야겠다거나…… 하진 않으시고요?”
오데트가 갸웃했다.
“블랙우드는 동맹을 파기하겠다고 하지 않았어. 내겐 그 점이 가장 중요해.”
“그러니까 전하께선 현재 상황이 괜찮다는 말씀이시죠?”
마리엔 디디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오데트의 의사다. 제대로 확답을 받아두어야겠다.
“내 남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