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7)
벽과 사람 사이에 갇히는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키 차이 때문에 넓고 단단한 가슴이 마리엔의 눈앞에 자리하게 됐다. 고개를 들지 않는 한, 젊은 재상의 큰 가슴은 온전히 마리엔의 소유였다.
‘이게 말로만 듣던 1열 직관이구나.’
일부러 뚫어지게 보려던 의도는 아니다. 그냥 눈에 스르르 들어왔다. 매끈하게 재단된 암녹색 코트의 질감이 느껴질 만큼 가까이 서 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먼지 한 올 묻지 않은 코트 안쪽으로 같은 색의 조끼가 보였다. 일렬로 달려 있는 청동색 단추 주변으로 주름이 생겼다. 특히 가슴 쪽 단추가 애쓰고 있었다. 바일레온은 지난주에도 이 조끼를 한 번 입고 왔다. 그때도 이렇게 단추가 팽팽했었나.
‘아니면 그새 몸이 더 좋아진 거야?’
재상님은 도대체 퇴근하고 밤마다 뭘 하는 걸까. 외사랑의 슬픔을 운동으로 달래나? 세상에, 그렇게 훌륭한 짓을? 조끼가 이럴진대 안에 셔츠 상태는 말도 아니겠는걸. 셔츠 안의 몸은 또 어떻고. 마리엔은 자기가 다 안타까워졌다.
‘오데트야, 오데트야, 이걸 나만 볼 순 없어.’
오데트 로즈만이 세 겹의 포장지를 벗기고 맨가슴을 움켜잡을 수 있다. 분명 감촉이 엄청날 것이다. 가까이서 보니 바일레온은 살결도 고왔다. 따로 향수를 쓰는 것 같진 않던데 청결한 향내가 느껴졌다.
가슴에 얼굴을 묻고 킁킁댈 순 없으니, 마리엔은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그에게서 부드럽게 뭉갠 민트 비누 냄새가 났다.
“여전하시군요.”
머리 위에서 바일레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가까이 왔는데도 눈길 한번 안 주시니.”
가라앉은 음성에서 약간의 체념이 묻어났다. 웬일이람. 바일레온은 마리엔의 기대보다 대사 응용력이 좋았다!
“어디까지 해야 절 봐주시겠습니까?”
“어, 흠. 오늘따라 이상한 소릴 하네.”
맞춰주는 대사는 이 정도면 적당하겠지. 마리엔은 좋은 냄새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몸을 오른쪽으로 움직였더니 과연 바일레온의 팔이 앞을 막았다. 아예 뒤돌아서 왼쪽으로 피하려 하자 이번엔 다른 팔이 와서 통로를 차단했다.
마리엔을 옴짝달싹 못하게 가둔 상태로, 키스할 듯이 점점 가까이 내려오는 얼굴.
‘좋아. 좋습니다. 표정 완벽하고!’
이제 입술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고개를 틀어서는 귓속말을 지껄이면 된다. 아, 북부 놈은 지껄이는 거지만 바일레온은 속삭이는 거다.
“……이제 무슨 말을.”
“흡!”
“미안해요. 너무 가까웠죠?”
바일레온이 당장 몸을 떼고는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 마음 같아선 반대쪽 벽에 닿을 때까지 물러나고 싶지만 간신히 그 정도에서 그친 것 같았다. 젊은 재상은 흡사 투항한 범인처럼 양손을 어깨높이로 들고 있었다.
“아무리 연습이라고 해도 부적절한 행동이었어요.”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사과할게요.”
바일레온의 진지한 사과가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마리엔이 깜짝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귀에 대고 속삭이니까 완전 로렐라이네. 다리에 힘이 풀리게 하네.’
그냥 대화 나눌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숨소리가 섞여서 그런가. 듣는 순간 등이 오싹할 정도였다.
“비어스 경, 이제까지 전하께 귓속말을 한 적이 있나요?”
여전히 심각한 얼굴로 사과 중이던 바일레온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기억을 더듬을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왜냐면 정말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에.
하긴 이 남자 성정에 방금 전과 같은 귓속말이 가능할 리 없었다. 보통 ‘기회’라고들 하는 상황에서도 조용히 선을 지켰을 터다.
“귓속말 한 번이면 내일 결혼식장에 들어갈 수도 있겠는데요…….”
“그게 무슨.”
“최고예요!”
마리엔은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목소리 너무 좋으신 거 아세요? 방금요. 방금 있잖아요. 귀에 대고 속삭이신 순간이요. 귓속의 솜털이 쭈뼛 서면서 고막까지 간지럽고 달콤하고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마리엔이 눈을 질끈 감으며 몸을 떨었다.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이렇게 반응했다.
“막 사랑에 빠질 것 같아요.”
“…….”
“진짜 잘하셨어요. 완벽해요.”
“칭찬은 고맙지만요. 난 아무래도 확신이 안 들어서.”
“무슨 소리. 입 댈 곳 없이 완벽했다니까요? 이대로 박차를 가해야겠어요. 기왕 하는 거, 손목을 낚아채서 확 끌어안는 것까지 해보죠!”
같은 상황에서 카인 블랙우드는 힘 조절 따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데트의 눈꽃처럼 희고 가냘픈 손목에 붉은 자국을 남겼다. 본인이 남긴 손자국을 보고 묘한 소유욕과 흥분에 휩싸이는 점까지 깨알같이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바일레온은 달라야 한다. 북부 놈의 언행을 따라 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는 오데트를 아프게 해선 안 된다. 일단 바일레온이 거부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마리엔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었다.
‘오데트 취향이 나쁜 남자라니까 잠깐 그러는 척할 뿐이지. 진짜로 나쁜 놈이 돼선 안 된다고.’
완력으로 여자를 제압하다니 미개하기 짝이 없다. 마리엔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 바일레온에게 설명을 이어갔다. 가상의 상황을 제시하고는 그때 쳐야 할 대사를 알려주었다. 당연히 원작에서 북부 놈이 말한 것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대사 소화력은 뛰어나신 것 같으니까요. 이건 힘 조절 연습이라고 보시면 돼요. 어느 정도로 잡아당겨야 손목이 안 아플지 알아볼 거예요.”
마리엔은 벌써 자세를 취한 후였다. 학생이 뛰어나니까 의욕이 절로 넘쳐났다.
“그렇다고 너무 약하게 잡으시면 안 돼요. 한 번 놓치고 다시 잡는 건 아무래도 그림이 웃기거든요. 아셨죠?”
“잠깐만요.”
바일레온이 흥분한 부하를 저지했다.
“지금 안 아픈 강도를 찾아낼 때까지 디디 보좌관 손목을 잡아채라는 겁니까?”
“네.”
“안 할래요.”
바일레온이 단칼에 거절했다. 이미 예상한 바였기에 마리엔은 자신의 괜찮음을 필사적으로 주장해야 했다.
“좋아요. 제가 설명을 잘못했네요. 어차피 비어스 경은 엄청 약하게 잡으실 텐데 말이에요. 제 손목이 안 아플 때까지 힘을 줄이는 게 아니라, 제가 못 뿌리칠 때까지 조금씩 강도를 올리세요.”
“결국 그게 그거잖습니까.”
“아뇨. 달라요. 어떻게 그게 그거예요?”
마리엔은 겉옷 소매를 걷어붙이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최대한 강인한 손목처럼 보이게 힘을 넣어서 손목뼈도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전 괜찮아요. 비어스 경이 절대 절 아프게 하실 리 없단 것도 알고요. 그냥 실전에 앞서 연습을 해보자는 거예요.”
바일레온이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마리엔을 바라보는 눈빛이 복잡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아까 귓속말에 대해 호들갑 떨 때에도 비슷한 눈을 했던 것 같다.
‘생각이 많은 남자라서 그런가 봐.’
반면 마리엔은 두 번 생각하지 않았다.
‘연습을 시키려면 좀 정신없이 볶아대야겠어.’
안 그러면 영원히 진도를 못 뺄 판이다. 마리엔은 바일레온의 얼굴 바로 앞에다 대고 손뼉을 치고 두 주먹을 요란하게 흔들었다. 할 수 있다, 괜찮을 거다,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즉각 말하겠다. 열심히 그를 안심시켰다.
“저 그럼 출발할게요.”
마리엔이 명랑하게 외치고는 몸을 틀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이쯤에서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져야 하는데 등 뒤가 잠잠했다. 다섯 걸음까지 이동한 마리엔이 고개를 돌렸다. 바일레온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였다.
“비어스 경.”
한숨을 쉬며 쪼르르 그의 앞으로 돌아갔다.
“저 진짜 괜찮다니까요?”
“……내가 안 괜찮아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마리엔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대꾸했다.
“안 하던 행동을 하려니까 그런 거죠. 음, 그럼 이렇게 생각하세요. 4황녀 전하를 위해서 열심히 해보겠다고.”
순간 바일레온이 입매를 비틀었다. 쓴웃음보다는 자조에 가까운 표정이었는데, 마리엔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원래 잘생긴 사람은 숨만 쉬고 있어도 잘생겨 보인다고들 한다. 하지만 방금처럼 스스로를 비웃는 모습까지 가슴이 쿵 내려앉게 매력적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마리엔은 그의 밝은 면뿐만 아니라 그늘진 면까지 좋아질 것 같았다.
희한하기도 하지. 애초에 자신은 그의 따뜻하고 곧은 점에 반했다. 자조는 바일레온보다도 카인 블랙우드에게 어울리는 행동이다. 아니면 그런 건가. 똑같은 행동도 바일레온이 하면 다르게 느껴지나?
“디디 보좌관, 내가 그렇게까지는 뻔뻔하지 못해서요.”
바일레온이 말했다.
“전하를 위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거죠. 내 사랑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장기적으로 보면 전하께도 좋은 일이에요.”
“만일 그렇다고 해도 아닌 건 아닌 겁니다.”
이럴 수가. 오데트를 들먹였는데도 안 통하네. 마리엔은 덜컥 조바심이 들었다. 갑자기 연습을 그만두면 어떡하지. 연습뿐만 아니라 아예 오데트를 사로잡는 시도 자체를 그만두면?
밀려든 회의감에 그런 결정을 내릴 수도 있는 일이다. 마리엔은 기도하듯이 두 손을 모았다. 애처로운 눈으로 바일레온을 올려다보며 호소했다.
“그, 그럼 저를 위해서. 비어스 경을 응원하는 저를 위해서는 어때요?”
“…….”
“많이 바라지도 않을게요. 딱 세 번만 연습해봐요. 네?”
원작에서 오데트는 손목이 잡혀 끌어안긴 날,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약혼자의 무례함에 화를 내면서도 그의 너른 품에 파묻히던 느낌을 자꾸만 곱씹는다. 결국 새벽쯤 잠든 오데트의 꿈에 카인이 등장한다.
꿈속의 약혼자는 현실보다 훨씬 부드러운 데다 실오라기조차 걸치지 않은 나신이다. 야릇한 꿈을 꾼 후로 오데트는 왠지 카인을 대하기가 껄끄러워진다.
한층 더 농밀한 관계의 시작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손목을 낚아채서 끌어안는 이벤트는 반드시 바일레온이 선점해야 했다. 마리엔은 상관에게 더욱 간곡히 매달렸다.
“제발요. 딱 세 번만.”
“디디 보좌관을 위해서요…….”
“네, 좀 초라하긴 한데 제가 내놓을 수 있는 게 저밖에 없어서.”
지문이 닳도록 손바닥을 비빈 덕분일까. 바일레온이 또다시 뜻 모를 눈으로 마리엔을 쳐다보다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선량한 사람에겐 역시 동정심 유발 작전이 최고인 것 같다. 마리엔은 상대의 마음이 변할세라 얼른 출발 자세를 취했다. 이번엔 자신이 네 걸음쯤 옮겼을 때 바일레온이 뒤에서 따라왔다. 보폭 차이 때문에 둘 사이 거리가 금세 좁혀졌다.
마리엔이 예상한 대로 그는 잡아채는 손에 힘을 거의 주지 않았다. 마리엔은 뒤돌아서는 동시에 바일레온의 손을 떨쳐낼 수 있었다.
“방금 전보다는 힘을 더 쓰셔야 돼요. 자, 그럼 두 번째!”
“안 아팠어요?”
바일레온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이 사람은 세상 모든 인간이 오데트처럼 연약한 몸을 가진 줄 아나 보다. 오데트 옆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낸 까닭이다.
“전혀 안 아팠어요. 비어스 경, 빨리 두 번째!”
그러나 두 번째 연습에서도 바일레온은 여전히 마리엔의 손목을 세게 잡길 주저했다. 혹시라도 손목이 다칠까 봐 거칠게 못 하겠단다.
이러다간 겨우 얻어낸 연습 기회를 날리겠다 싶었다. 마리엔은 알겠으니까 제발 비어스 경의 품에 한 번이라도 안겨볼 수 있게 노력해달라고 부탁했다. 손목을 세게 잡아당기는 것보다도 몸의 균형을 잃게 하는 데에 집중하면 될 거라고 덧붙였다.
바일레온은 결국 세 번째 시도에서 마리엔을 품에 안는 데에 성공했다. 이번에도 마리엔은 손목이 아프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가슴에 거의 갖다 박다시피 한 얼굴도 멀쩡했다.
‘엄청난 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