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70)
“불안할 게 어딨어요. 제 첫 키스까지 쏙 가져가셔놓고.”
“나도 처음이었거든요?”
우리가 첫 키스를 했다고 레슬리 아나이스가 갑자기 회개하기라도 하나?
전혀, 얼토당토않은 소리다. 바일레온은 지난번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마리엔을 보던 사제의 눈빛을 기억했다.
재밌고, 귀여운데, 맛있는 냄새도 난다. 한입에 삼키기엔 아까우니 이리저리 놀려주다가 오독, 깨물어서 맛만 볼까.
카인처럼 전쟁에 출정한 것도 아니다. 신을 섬기는 자라면서 사사로이 ‘처리’한 인간만 세 자릿수를 넘어가는 아나이스 사제.
그런 위험한 인간과 마리엔이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왔다.
‘함께 있는 동안 사제는 몇 번이나 웃었을까. 어떤 얘기로 마리엔의 경계심을 늦췄을까. 축복기도를 핑계로 손을 뻗어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슬쩍 건드리지는 않았겠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내내 이런 생각만 들었다. 바일레온 비어스의 가슴이 새하얗게 타들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진짜 처음이셨어요?”
마리엔이 얼굴을 가리나 마나 하던 손을 내렸다. 마냥 해맑던 연인은 돌연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변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마리엔도 알잖아요. 내가 당신이 아니면 누구랑 첫 키스를 해요?”
“흐음, 저야 모르죠.”
마리엔이 입술을 귀엽게 삐죽거렸다.
“대여섯 살쯤에 같이 놀던 소꿉친구와 호기심에 했을 수도 있고.”
“그런 적 없어요.”
“어쩌면 어린 비어스 경이 졸고 있을 때 그 소꿉친구가 몰래 입 맞추고 도망갔을 수도 있고요.”
“난 안 졸아요.”
“에이.”
“진짠데.”
마리엔이 말도 안 된다며 반박하려 했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무조건 조는 순간이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눈치였다.
“졸리면 그냥 상대방에게 말하고 나서 자러 가면 되죠. 만약 수업 중이면 세수를 하고 온다든지, 그러면 되잖아요. 왜 졸아요?”
“……와.”
마리엔이 할 말을 잃은 듯 바일레온을 빤히 쳐다봤다.
“방금 한 말 진심이세요? 아니다, 무슨 쓸데없는 질문이람. 와…….”
아무리 말문이 막혔다고 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필요까지 있는지.
“진짜 다른 세상 사람이네.”
“어쨌든 난 어릴 때 남들이 있는 곳에서 존 적 없고, 내 소꿉친구라고 할 만한 애들은 남자였어요.”
“그럼 학교 들어가서는요?”
오늘 마리엔은 순순히 물러설 생각이 없나 보다. 그녀가 집무실에 들어온 직후에는 분명 자신이 몰아세우는 포지션이었다. 언제 이렇게 입장이 슬쩍 바뀌었을까?
“여학생에게서 고백받는 게 일상이었겠죠? 개중엔 용감하게 선배 입술을 덮치는, 혹은 잘생긴 후배 입술에 도장을 찍는 이가 있었을지 모르잖아요.”
“없었…….”
문장을 끝맺을 수가 없다. 바일레온의 촘촘한 갈색 속눈썹이 떨렸다. 마리엔은 드디어 꼬리를 잡았다는 듯이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이 아예 없었다곤 할 수 없지만.”
바일레온은 부드럽게 선을 그었다.
“단 한 명도 성공 못 했죠.”
“설마.”
“설마라니. 마리엔 눈엔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여요? 단정한 몸가짐으로 따지자면 제국 아카데미 제일이었어요.”
방금까지 기세등등하던 마리엔이 인상을 썼다. 바일레온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왜 제가 다른 사람과 키스한 적 없다는 사실을 그녀가 언짢아하는지 모르겠다.
보통은 반대 아닌가? 마리엔은 어째서.
“처음이라기엔 너무 잘하셨단 말이에요.”
연인이 골이 난 표정으로 툭 내뱉은 말에 바일레온의 사고가 멈췄다.
“그렇게 타이밍 딱 맞춰서 고개를 트는 건 어디서 배웠대요? 입술 떨어졌을 때 한숨 쉬는 것도 너무 야했어. 전 호흡이 달려서 비어스 경처럼 예쁘고 야하게 숨을 내쉬지도 못했는데.”
“…….”
“나 혼자만 숨이 할딱할딱.”
“…….”
“아, 맞아. 한참 키스하다가 웃는 건 왜 그러는 거예요? 제가 너무 못해서? 이유야 어쨌든 앞으로 키스할 때 웃는 건 금지예요. 이제까지 제가 본 비어스 경의 웃는 얼굴 중에서 제일 위험했거든요.”
“어떤 면에서 위험했는데요?”
“네? 그야…… 다방면에서 위험했죠. 아무튼 안 돼요.”
마리엔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까? 바일레온의 입가가 떨렸다.
‘웃음 참아. 안 그래도 지금 웃지 말라는 말을 하는 중인데.’
바일레온은 제멋대로 움직이려는 입가 근육에 지그시 힘을 주어 눌렀다.
‘좋아하지 마, 바일레온 비어스.’
마리엔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꿍얼거렸다.
“생각할수록 짜증 나요. 뭔가 분해. 어떻게 매일 연습한 사람처럼 그렇게 잘하신 건지.”
“정말 매일 연습했다면요?”
“뭐래. 말이 되는 소릴 하세요.”
“평소에 틈틈이 머릿속으로 연습했어요.”
“흥, 안 믿어요.”
마리엔이 거짓말 말라는 눈으로 바일레온을 흘겨봤다.
“비어스 경이 그럴 리 없잖아요.”
“나 자주 그래요. 몰랐어요? 틈만 나면 당신과 키스하는 생각 하는데.”
“거짓말…….”
“심지어 오늘 오전에 폐하께 국정 보고 하는 도중에도 한걸요.”
마리엔은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긴가민가한 얼굴이었다. 바일레온은 결국 입가에 천천히 번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자신의 연인을 한없이 고결하게만 보고 있군요. 우리 아가씨의 기대를 저버려서 어쩌나. 이래 봬도 나…….”
바일레온은 마리엔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딴생각 많이 해요.”
마리엔이 침을 꼴깍 삼키는 게 느껴졌다.
“그런 생각마저 아주 성실하게, 한다고 할 수 있죠.”
“으음.”
“어쩌면 그게 내가 여태 한 번도 안 존 비결일지도요.”
마리엔이 아하하, 하고 어색하게 웃는 소리를 냈다. 한편 예쁜 하늘색 눈동자는 열심히 방황하고 있었다. 어떤 적당한 말로 대꾸할까 고민 중인 게 빤했다.
“과연 생각지도 못한 비결이네요. 저도 앞으로 졸릴 때면 시도해봐야겠어요.”
“그래요. 확실히 도움이 될 거예요.”
“네네, 그럼요. 물론이죠. 다른 사람도 아닌 비어스 경의 팁인데.”
마리엔은 점점 아무 말을 늘어놓았다. 아마 바일레온과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일 것이다.
연인의 숨소리가 귓가를 간질이고, 두근거리는 체향이 맡아지는 거리에 계속 있으면 사람이 그렇게 된다. 바일레온이 어떻게 아느냐면 지금 제 상태가 딱 그렇기 때문이다.
“마리엔, 그런데 내 비결엔 부작용이 있어요.”
바일레온의 눈에 희디흰 목덜미가 들어왔다. 솜털이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고 있는 따스한 살결. 거기에 코를 묻으면 햇볕 냄새가 날 것 같았다.
“딴생각을 너무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상상에만 그치기 힘들어진다는 거예요. 가령 이렇게.”
바일레온은 머리를 높이 올려 묶어 고스란히 드러난 마리엔의 목덜미를 장난스레 깨물었다.
마리엔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어깨를 움츠렸다. 연인의 흰 피부에선 보드라운 맛이 났다.
“정말로 앙, 하고 물어보고 싶어진다거나.”
“어째서.”
마리엔이 깨물린 자리에 손을 갖다 댔다.
“왜, 사람을 깨무는 상상을 하세요?”
“아무나 깨물지는 않는데요. 내가 깨물고 싶은 사람은 한 명뿐인데.”
“그러니까 왜 저를.”
“깨무는 게 아니라 핥았어야 했…….”
놀란 마리엔이 바일레온의 입을 막았다. 안 그래도 큰 눈을 한껏 크게 뜬 채 주위를 마구 둘러본다.
방금 바일레온이 한 말을 누가 듣진 않았나 곤두선 모습이 꼭 경계 태세의 토끼 같았다.
“므르은…… 으그는…….”
바일레온은 입술이 눌린 상태로 말을 하려다 포기했다. 일단 토끼 아가씨가 스스로 경계를 늦출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좋겠다.
“비어스 경, 누가 들으면 어떡해요!”
과연 조금 기다리자 마리엔이 발을 동동 구르면서 연인의 입을 막았던 손을 거둬주었다. 바일레온이 웃었다.
“문 닫힌 재상 집무실에 우리 둘밖에 없는데 누가 듣는다고요.”
“그래도요. 혹시 모르잖아요.”
“우리 용감한 디디 보좌관이 언제부터 이렇게 조심성이 많아졌을까.”
“사방에 누군가의 소식통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바일레온의 웃음이 잦아들었다. 그는 마리엔의 등을 부드럽게 감싸 제게로 끌어당겼다.
“마리엔 말이 맞아요. 황궁 안팎으로 누군가의 눈과 귀가 깔려 있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그들을 역이용하는 방법도 알게 될 거예요.”
“역이용이라면…….”
“4황녀궁에서 나온 마리엔 디디가 재상 집무실로 직행하기에 무슨 중요한 밀담을 나누나 싶어 뒤를 밟았더니.”
각도 설정 완료.
“둘이 문 닫아놓고 키스밖에 안 하더라고.”
“네? 그게…… 읏.”
퇴근하기도 전인데 오늘따라 마리엔을 너무 괴롭히는 것 아닐까. 바일레온의 양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들려 했다.
‘하긴 심술이지. 마리엔이 원해서 신전에 간 것도 아닌데.’
하지만 아나이스 사제와 한 공간에 있는 그녀를 떠올리기만 해도 속이 따끔거렸다.
그나마 지금처럼 품에 안고 마리엔의 숨결을 들이마시고 있으면, 쓰라린 속이 달래지는 느낌이었다.
바일레온은 눈을 질끈 감으며 더욱 깊은 키스를 연인에게 퍼부었다.
◇ ◆ ◇
“세상에, 우리 집 현관문으로 뤼미에 드 샤샤 살롱의 연노란색 상자가 들어오는 광경을 보다니.”
클로이즈가 숨을 헐떡였다.
“이게 꿈은 아니겠지?”
“처음인가요?”
대외적으로는 4황녀 오데트가 마리엔에게 내린 선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표정 관리에 유념해야 한다. 마리엔은 애써 웃는 얼굴로 물었다.
“아뇨, 처음은 아니고 한 일곱 번째쯤 돼요.”
클로이즈가 부채를 요란하게 부치며 말을 이었다.
“작년에 제가 입으려고 일곱 벌을 주문했었거든요. 하지만 보좌관님, 올해 들어서는 이게 처음이라고요!”
“……작년에만 일곱 벌을. 네, 그러시구나.”
이렇게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놀라기엔 너무 자주가 아닌가 싶다.
하나 마리엔이 그런 생각을 하든 말든, 클로이즈의 부채질은 갈수록 요란해졌다. 부채질과 더불어 말하는 속도 또한 빨라졌다.
“같은 살롱의 드레스라도 소재나 디자인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인 점 아시죠? 제 드레스 일곱 벌 값을 합쳐도 보좌관님이 받으신 한 벌만 못할 거예요.”
클로이즈는 하인들에게 상자를 잠시 거실에 내려놓으라고 지시했다. 비어스 가의 영애는 과도한 흥분으로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부채 안 든 쪽의 손을 마치 금단증상 겪는 중독자처럼 덜덜 떨고 있다.
물론 그녀를 걱정하는 사람은 마리엔뿐이었다.
하인들은 하루 이틀 겪은 일이 아닌 듯 초연한 얼굴로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애, 혹시 어지러우신가요? 종이봉투가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종이봉투요? 제가 종이봉투가 왜 필요하죠?”
“과호흡 때문에요.”
클로이즈는 이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어지러운가? 좀 어지러운 것 같긴 해요. 근데 괜찮아요. 전 샤샤 살롱의 연노란색 상자를 마주하면 매번 이러거든요. 일종의 반사작용이라 할 수 있죠.”
클로이즈가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떡해. 작년의 일곱 벌이 아니야. 내가 가지고 있는 살롱의 모든 드레스를 합쳐도 이 한 벌만 못하게 생겼어. 어쩜 좋아. 짜릿해.”
마리엔은 뚜껑이 여전히 굳게 닫혀 있는 상자를 힐끔 쳐다봤다.
“영애, 아직 드레스를 보기도 전인데 그렇게 단언을…….”
“느낄 수 있어요.”
클로이즈가 영문 모를 소릴 하더니 두 눈을 번쩍 떴다. 하인들이 천천히 뚜껑을 열었다. 클로이즈는 마리엔의 부축을 받으며 상자로 다가갔다.
“하…….”
잠깐.
황홀경에 잠겨 있던 클로이즈가 레이스 부채를 접었다. 그러더니 드레스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한 번 킁킁, 위치를 옮겨서 두 번 킁킁. 냄새를 맡을수록 클로이즈의 눈빛이 이상하게 변했다.
어머니인 비어스 백작부인과 막내 데이지에게서 종종 볼 수 있는 눈빛이었다.
“왜 그러세요, 영애?”
F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