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71)
“희한하네…….”
클로이즈가 중얼거렸다.
“사랑에 빠진 남자 냄새가 나요.”
마리엔은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드레스에서요?”
“네.”
“그렇지만 이건…… 4황녀 전하께서 제게 주신 선물인데요? 사랑에 빠진 남자 따위는 끼어들 여지가 없는데.”
마리엔은 자못 불안한 얼굴로 클로이즈를 따라 드레스에 코를 묻었다. 혹시 카인 놈이 쓰는 향수가 여기 묻어 있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아무리 온 신경을 기울여 냄새를 맡아봐도 뤼미에 드 샤샤 살롱 특유의 꽃향기만 희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낚시인가?’
마리엔은 여전히 세상 진지한 얼굴로 갸웃거리고 있는 클로이즈를 쳐다봤다.
“저기, 영애. 근데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사랑에 빠진 남자 냄새란 게 뭐예요?”
“절대 감출 생각이 없는 본인의 취향, 질투, 소유욕, 과시욕, 사랑하는 상대가 이 옷을 입었을 때 어떤 자태일지 머릿속으로 백만 번 그려보는 동안 쌓인 먼지 냄새의 조합이요.”
짝짓기 광인 클로이즈 비어스는 급기야 사물에서 풍기는 냄새로 숨겨진 정황을 파악하기에 이르렀나.
놀라운 건 그녀가 말하는 모든 냄새가 마리엔 코엔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소유욕의 냄새가 뭐지. 실제로 그런 게 존재하긴 해?’
매우 의심스러운 소리다. 그렇다고 완전히 헛소리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게, 마리엔은 매번 카인 놈에게서 북부의 향기를 맡곤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게 뭐냐고 물으면 아득히 펼쳐진 설원의 냄새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싸늘하고 깨끗한데 맑아요. 겨울바람에 실려 오는 냄새 아시죠? 그거랑 비슷해요. 거기에 눈의 향기가 좀 섞인 건데. 모른다고요? 아, 그런 게 있어요.
듣는 사람 귀엔 소유욕의 냄새나 북쪽 설원의 냄새나 피차일반이지 않을까.
어쨌든 지금으로선 클로이즈가 드레스에서 카인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 게 우선이다.
마리엔은 대화의 방향을 조금이라도 틀어보려 노력했다.
“……맨 마지막 게 그나마 그럴싸하게 들리는데요. 먼지 냄새. 제가 보관을 좀 잘못했나 봐요.”
“목둘레선이.”
클로이즈가 눈을 번득였다.
“심상치 않네요.”
그건 마리엔도 인정하는 바다. 북부 놈 취향하고는. 맨살을 가릴 다이아몬드 목걸이만 주면 단가? 푹 파인 목둘레선 위로 가슴이 절반은 드러나게 생겼다.
혹시라도 이 드레스를 입은 날 전력 질주할 일이 생기면 어쩌나.
비싼 옷일수록 내구성이 안 좋다는 말이 있다. 충격을 버티지 못한 가슴 두 짝이 목둘레선 위로 까꿍, 인사할지도 모른다.
마리엔은 끔찍한 상상을 뒤로한 채 또다시 변명을 쥐어짰다.
“4황녀 전하께서 제게 과감한 이미지 변신을 추천하시더라고요.”
“전하의 하사품이 확실한가요? 아무리 이미지 변신이 목적이라 해도 이건…… 지나쳐요. 암만 봐도 과시욕 넘치는 남자가 자기 연인한테 입혀놓고 흐뭇해할 스타일인데.”
드레스만으로 카인 블랙우드 캐릭터 해석을 끝내다니, 백작부인의 핏줄이 맞긴 하다.
그리고 이것은 마리엔에게 점점 더 불리한 전개였다. 짝짓기 방면으로 눈치 백 단인 클로이즈는 이내 카인의 존재를 떠올리고 말 터다.
클로이즈가 별안간 비명을 질렀다.
“모, 목걸이가!”
“아하…… 난 또 뭐라고. 이제 보셨나 봐요.”
“이게 대체 몇 캐럿이죠.”
클로이즈는 핑크 다이아몬드 목걸이의 위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리엔은 이때다 싶어 티아라와 귀걸이도 있노라며 보여주었다.
선심 쓰는 척 클로이즈의 머리에 티아라를 얹어주자, 클로이즈는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이거죠, 보좌관님. 이게 권력의 맛이죠.”
“영애한테 잘 어울려요.”
“무슨 소리. 이거 핑크 다이아몬드잖아요. 보좌관님의 예쁜 머리 색과 일부러 맞춘 선물임이 틀림없어요.”
클로이즈가 본인 머리에서 뺀 티아라를 마리엔의 머리에 얹어주었다.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하다는 둥, 아주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난리였다.
“그러고 보면 오페라 하우스에서 전하의 귀걸이를 찾아낸 사람도 디디 보좌관님이잖아요. 이미 큰 공을 세우셨어요. 4황녀 전하는 상벌이 확실한 분이니까.”
조심하지 않으면 가슴이 까꿍, 인사할 위험이 있는 드레스. 클로이즈는 의문의 목둘레선을 흐린 눈으로 쳐다보다가 시선을 뗐다.
“이 정도의 선물은 이상할 일도 아니라고 할 수 있죠.”
“하하, 그렇죠.”
클로이즈는 이것들이 4황녀의 하사품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나 보다. 마리엔은 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언제 입을 생각이세요?”
“모르겠어요. 아무 때나 입을 물건은 아닌 것 같아서요. 게다가 저한테 무도회 초대장이 오는 것도 아니고요.”
“윗분이 내린 선물은 되도록 빨리 사람들 앞에 내보이는 게 예의인데…….”
“사교계엔 또 그런 규칙이 있나요?”
이렇게 된 이상 정말 저 옷을 한 번은 입어야 하나. 한숨이 푹푹 나오는 상황이다.
그때 마리엔의 머릿속에 오늘 날짜가 스쳐 지나갔다.
황태자 쪽에서 조만간 소식이 들릴 거다. 오데트가 그 말을 한 게 벌써 지난주다. 마리엔은 저도 모르게 짧은 탄성을 터뜨렸다.
“어쩌면……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 수도 있겠어요.”
◇ ◆ ◇
“폐하, 억울합니다! 이건 분명 모함입니다. 해명할 기회를 주십시오! 자, 잠깐…… 감히 네놈들이 황태자의 몸에 손을 대?”
와장창, 쨍그랑.
온갖 요란한 소리가 났다. 지나가던 시종이고 귀부인이고 신분 고하와 상관없이 다들 한 곳만 쳐다보고 있었다. 마리엔은 수군거리는 구경꾼 무리에 자연스레 섞여들었다.
“로즈 황가의 적통 핏줄인 나를 감히! 이거 놔……. 놓으란 말이다!”
끌려가기 전 패악을 부리는 황태자의 옆에서는 서출인 3황녀가 눈물로 호소 중이었다.
3황녀는 그간 난폭한 이복오빠를 살살 구슬려 조종해온, 황태자 측의 실질적인 브레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녀 역시 오늘 황태자와 함께 끌려가 유폐될 것이다.
“폐하, 마지막으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정궁이신 황후 폐하와의 정을 봐서라도……!”
“억울합니다!”
“아니면 지금 이렇게 처리하실 게 아니라 정식으로 조사단을 꾸려주시길 간청합니다.”
“난 억울해!”
마리엔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래도 3황녀는 황후를 들먹였다가 시간 벌 목적으로 조사단을 만들어달라고 해보는 등 나름 애를 쓰는 중이었다. 한데 황태자가 하는 일이라고는 옆에서 소리 지르기뿐이라니.
만일 마리엔이 지금 3황녀 입장이었다면 ‘이 자식아, 상황 파악 좀 해!’ 하면서 황태자 뒤통수를 갈겼을지도 모른다.
“이건 음모야! 모함이라고!”
황태자가 핏발 선 눈으로 2황자를 노려봤다.
“너…… 언제부터 이딴 짓을 계획한 거냐? 공공도서관 사업 건을 놓친 것도 일부러였지? 처음부터 함정을 파놓은 거야……. 괘씸한 새끼.”
“형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야말로 오늘 폐하께 보고드리기를 끝까지 망설였던 사람입니다.”
2황자가 길게 탄식했다.
“전들 형님의 잘못을 드러내고 싶었겠습니까? 어릴 적부터 함께 말을 타며 자라온 형님을…….”
“가증스러운 놈.”
“그렇지만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었습니다. 증거가 너무도 명백한 데다, 목숨 걸고 증언하겠노라 선언한 증인도 다섯이나 됩니다. 저 또한 제국의 황자로서 책임이 있는걸요.”
오데트가 교묘하게 흘린 증거를 냉큼 주워 먹은 2황자는 오늘 무대의 주역이었다.
“죄송합니다. 황후 폐하께도 형님께도 면목이 없습니다.”
“됐다.”
울림이 느껴지는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리엔은 목소리의 주인을 제대로 보기 위해 조금 더 옆으로 움직였다.
일급 스파이마저 사랑에 빠지게 한 면상이 궁금했다. 남다른 심미안을 지닌 레슬리까지 인정한 왕년의 황태자이자 현 황제, 오데트의 친부.
‘그 말인즉, 네놈이 내세울 건 얼굴뿐이란 소리잖아. 건방지게 관리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겠지? 감히 세월의 철퇴를 맞은 모습이기만 해봐라.’
미중년 아닐 시 사형.
마리엔은 그런 생각을 하며 목을 쭉 뺐다. 보좌에 비스듬히 앉은 황제가 보였다.
머리숱이 적어졌거나 뱃살이 튀어나왔으면 즉시 눈을 부라렸을 텐데.
‘국정은 안 돌보고 거울 앞에서 22년을 보낸 모양이야.’
훤칠한 키에 넓은 어깨. 황제는 마리엔이 여태 봐온 중년 남자 중에서 가장 잘생겼다.
좋아.
사형은 면제해준다.
‘근데 그건 내 생각이고 오데트는 어떨지 모르겠네. 당신 목숨은 당신이 홀대해온 딸 손에 달렸거든요.’
황제가 장남을 나무랐다.
“염치도 없느냐? 네 동생이 여기까지 밝혔으면 사죄하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끝까지 너만 억울하다고 할 참이냐?”
“누가 제 동생입니까? 전 동생 따위 없습니다. 저, 저, 저 독사의 혀를 가진 새끼는 내가 절대…….”
머리끝까지 성에 받친 황태자가 “아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급기야 근위병의 무기를 강탈해 2황자를 공격하려 들었다. 물론 즉각 제지당하여 미수에 그쳤다.
이를 지켜본 황제는 진저리 나는 표정으로 3황녀에게 화살을 돌렸다.
“마지막 기회? 내가 저 녀석에게 기회를 얼마나 더 줘야 하느냐? 저놈은 마지막의 마지막의 마지막 기회까지 닦아 쓴 지 오래다.”
“폐하, 제발.”
더는 두고만 볼 수 없어진 황후가 남편 앞에 몸을 던졌다.
“부탁드립니다. 한 번만, 딱 이번 한 번만 봐주세요. 제가 황태자를 엄히 가르치겠습니다. 증인과 피해자들에게 두 배, 아니, 다섯 배의 보상을 하도록 하고…….”
황제가 평소 국정 보고를 듣곤 하는 넓은 방에는 지금 황태자, 2황자, 3황녀 말고도 여러 사람이 있었다.
외아들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온 황후와 그녀의 수석시녀, 마침 황궁에 머물고 있던 3황녀의 사촌, 재상 바일레온, 문화예술부를 포함한 각 부서의 대신들, 바닥에 무릎 꿇은 채 앉아 있는 증인들.
‘우리 오데트 님이 쏙 빠진 점이 기막히다 이거지.’
한 번에 한 놈씩 제거하는 오데트는 첫 번째 목표물로 황태자를 택했다.
그녀는 황태자의 치명적인 약점을 캐낸 후에, 자신이 모은 증거를 2황자에게 고스란히 넘겼다. 그 과정이 얼마나 치밀했는지는 오데트와 그녀의 직속 수하들만이 알고 있다.
몇 겹에 걸친 장막.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은밀한 이야기.
이 때문에 2황자는 증거의 출처가 오데트라는 생각 자체를 못 하고 있다. 그저 자기 수하들이 일을 잘한 줄로만 안다.
황태자는 어떤가. 그는 뭐, 보다시피 2황자에게만 버럭버럭 화를 내고 있다.
다들 오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