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72)
그리고 그것은 오데트의 의도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황제는 경계심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야. 자기 자식이 두각을 드러내길 원치 않는다고.’
2황자는 지금 본인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상황이 참 뿌듯할 거다.
아버지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며, 처소로 돌아가 자기 어머니랑 샴페인을 들겠지.
하지만 틀렸다.
보좌에 앉아 있는 황제는 물증과 증인을 이토록 꼼꼼하게 확보해온 2황자를 경계 중이다.
장남은 생각이 짧기라도 했는데, 차남은 크게 한 방 터트리기 전까지 인내할 줄 안다는 점을 머릿속에 깊이 새겨넣고 있다.
자식의 유능은 황제에게 독(毒)이다.
“우리 아들의 나이가 몇이요, 황후?”
황제가 물었다. 다만 정말로 황태자의 나이가 궁금해서 물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서른 훌쩍 넘은 놈을 어떻게 엄히 가르치겠다는 거요. 그렇게 해서 들을 나이는 진즉에 지났잖소.”
“하오나…….”
“그만해두시오. 이에 관해 한마디라도 더 할 시, 황태자가 받을 처벌의 강도만 높아질 테니.”
“폐하……!”
“여봐라, 황태자와 3황녀를 데리고 나가라. 소지품을 챙길 시간은 주지 않겠다. 바로 북쪽에 있는 잿빛의 궁에 유폐한다. 식사를 가져다주는 자 외에는 누구도 이들을 만날 수 없다.”
황제의 입에서 최종 명령이 떨어졌다. 이에 병사들이 황태자의 양팔을 제압했다.
당장 오늘 아침만 해도 황태자 자신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던 놈들이 아닌가.
그런 병사들이 자신의 몸에 함부로 손대는 데 그치지 않고, 감히 황태자를 포박하려 들고 있었다.
물론 병사들은 황제의 명에 따를 뿐이다. 하지만 순순히 받아들일 황태자가 아니었다.
“폐하! 어머니! 아악! 억울합니다. 아악! 이 망할 잡종 새끼! 감히 네놈이 나를!”
건장한 성인이 발악하듯 몸부림치자 병사들의 표정이 굳어져만 갔다. 이러다간 날밤 지새도록 안 끝나겠다 싶었는지 황제가 추가로 명령을 내렸다.
“이 순간부터 1황자의 황태자 지위를 박탈한다. 근위대장은 뭐 하나? 무력을 써도 좋으니 어서 죄인을 데려가게!”
“예, 폐하.”
황제의 허락도 떨어졌겠다. 이제 병사들이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몇 명이 한꺼번에 황태자에게 달라붙어 목뒤를 누르고 팔을 꺾었다.
황후는 애지중지하던 외아들이 받는 취급에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흐느꼈다.
잿빛의 궁이 어딘가. 해도 잘 들지 않는 북쪽 건물. 주로 죄를 범한 황족을 유폐하는 곳이다.
정식으로 재판에 넘겨 수도의 감옥에 가두는 것보다는 나은 처사라 할 수 있을 터다.
그러나 황후는 날 때부터 귀한 대접만 받아온 아들이 유폐 생활을 견딜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과거 잿빛의 궁에 갇혔던 황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도 같은 이유에서라고 했다. 갑작스레 바뀐 환경과 자존심 사이의 괴리.
“이건 모함이야! 산 채로 눈과 혀가 뽑혀 지옥에 떨어질 새끼! 아악! 놔, 이거 놓으라고!”
“아아, 아들아……!”
“내가 누군지 모르느냐? 놔! 아악! 죽어, 다 죽어버려! 의심병 많은 늙은이 당신도 곧 뒤질 날이 머지않았어. 그때가 되면 누가 진짜 승자인지 알게 되겠지!”
급기야 보좌의 황제를 향해 포효하는 황태자였다. 제 아버지 성격을 알면서도 저런 말을 하다니. 이제 아들은 끝장이다. 극도의 절망감에 황후가 결국 실신해버렸다.
“진짜 쓰러지신 거겠죠?”
상황을 지켜보던 구경꾼 중 하나가 물었다.
“설마 연기일까요.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
“상황이 심각하니까 연기를 해서라도 황제 폐하의 동정을 사려는 거겠지요. 일전에 황후께서 같은 방법으로 위기를 넘기신 적이 몇 번 되거든요. 하지만 이번엔 진짜 같군요.”
구경꾼들이 수군대던 와중에 누군가가 앞치마를 두른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근데 이게 뭐예요?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냄새가 참 좋네요.”
“아…… 드실래요?”
“먹어도 되나요?”
“네, 원래는 황태자궁으로 가던 중이었거든요. 한데 이제는 드실 분이 없어졌으니까요.”
여자가 둥그런 은색 뚜껑을 들었다. 처음에 질문했던 사람을 시작으로 너도나도 손을 뻗어 버터 냄새 향긋한 컵케이크를 집었다.
“이쪽 분도 하나 드세요.”
마리엔은 사양하지 않았다. 앙증맞은 컵케이크를 베어 물자 안에서 우유 크림이 흘러나왔다.
‘이게 승리의 맛이라는 거군.’
마리엔은 여전히 웅성대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이상하게 엇갈린 애정 관계 빼고는 모든 것이 원작대로 진행되고 있다.
황태자와 황후, 3황녀의 실각. 조금 있으면 공석이 된 황태자 자리에 2황자를 앉히자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올 거다.
오데트 로즈 몸에 빙의했다면 지금도 처소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어야 하겠지.
자신은 휘몰아치는 정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아무리 여주인공 특혜를 받는다고 해도 한계란 게 있으니까.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아야 한다.
원작대로 사건을 짜 맞춰야 하는 스트레스에 가뜩이나 약한 몸이 더 쇠약해졌을 수도 있겠다.
‘다행이지.’
자신이 빙의한 쪽은 오데트가 아니라 하찮은 엑스트라 보좌관 마리엔 디디다.
머리 좋은 오데트가 적들을 하나씩 해치울 동안, 자신은 바일레온이 사다 주는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며 사랑놀이만 해도 된다.
마리엔은 다시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엑스트라라서 행복해요, 라는 노래가 있으려나? 없으면 내가 만들어야지.”
마리엔이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자 스커트가 둥글게 부풀었다. 내딛는 발걸음에 경쾌한 멜로디가 떠올랐다. 그리고 복도 끝에 다다를 즈음, 마리엔의 콧노래가 잦아들었다.
“역시 그 사건이…… 마음에 걸려.”
제 기억이 맞다면 조만간 성대한 무도회가 황궁에서 열릴 것이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그날 바일레온은 습격대로부터 오데트를 지키다가 그녀 대신 단검에 찔린다.
◇ ◆ ◇
무도회 당일.
“안 죽어.”
아직 비어스 백작저를 나서기 전이다. 마리엔은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으나 똑같은 말을 999번째 반복 중인 기분이었다.
“그게 제일 중요하지. 오늘 바일레온은 안 죽는다는 거. 비록 단검에 배를 푹 찔려도 생명엔 지장 없어.”
다른 로판에도 흔히 등장하지 않나. 서브남주의 희생적인 면모를 강조하기 위한 에피소드일 뿐이다.
이 사건으로 오데트는 다친 바일레온에게 신경을 쏟고, 그녀의 잦은 병문안은 약혼자 카인을 자극한다. 결국엔 또 주인공 커플의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가여운 바일레온인 것이다.
이후로 원작은 카인 놈의 휘몰아치는 독점욕을 보여주기 위해 다량의 페이지를 할애한다.
바일레온은 시종의 보고에나 잠깐 언급될 뿐.
그는 오데트와 독자의 눈이 안 닿는 곳에서 혼자 쓸쓸히 요양한 후에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은 진즉에 나았습니다.’라는 대사로 한참 후에나 다시 등장하게 된다.
“마음이 안 좋지만 말이야. 어쨌든 원작이 그의 목숨을 보장한다니까? 미리 걱정 안 해도 돼.”
마리엔은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카인 놈이 ‘4황녀 말고 너’를 선언한 판에 여전히 원작 전개를 믿어도 되는 걸까?
황태자 측이 무너지자 2황자가 득세하는 요즘 상황을 보면, 정치 파트에 관해서는 믿어도 될 것 같은데.
“바일레온은 나랑 사귀고 있는데도 오데트를 구하려 몸을 날릴까?”
입 밖에 낸 순간 헛된 질문임을 깨달았다. 바일레온은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오데트 자리에 마리엔이 있어도, 혹은 비어스 백작부인이나 여동생이 있어도 그는 일말의 주저 없이 자기 몸으로 단검을 막을 남자였다.
“속이 타들어가는구나…….”
자꾸 연인의 옛사랑과 의견을 같이하고 싶진 않은데.
바일레온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라 싫다던 오데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마리엔은 확실히 깨달았다.
‘마음이든 몸이든 자기 것 좀 아끼면 어디 덧나?’
똑똑.
“디디 보좌관님, 다 씻으셨으면 들어가겠습니다. 단장하실 시간입니다.”
무려 여섯 명에 달하는 하녀들이 마리엔의 방으로 우르르 들어왔다. 그녀들의 등장에, 마리엔은 이제껏 무시하고 있던 문제의 드레스를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까부터 전신거울 앞에 세팅되어 있던 어마어마한 위용의 드레스. 오늘은 저 옷을 입어야 하는 대망의 무도회 당일이다.
시작하기 전에 알려둘 것이 있었다. 마리엔은 두 번 말하지 않겠다는 투로 선언했다.
“고래 뼈 코르셋은 안 차요.”
“네, 이미 전해 들었습니다. 저희 아가씨도 샤샤 살롱에서는 드레스만 주문하지 코르셋은 질색하신답니다.”
나이 지긋한 하녀가 개량형 속옷을 가리켰다. 시원한 소재로 만들어서 땀 흡수도 되고 아주 쾌적할 거란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마리엔은 이들에게 믿고 맡기기로 했다.
한 시간 사십오 분 뒤.
“힘을 준 단장이란 진짜 몇 명이 달려들어도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였구나…….”
마리엔이 거울 속 자신을 쳐다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올림머리 위에 얹은 반짝이는 티아라와 진한 분홍빛 페어컷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그야말로 눈이 부셨다.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던 마음은 잠시 잊었다. 마리엔은 보석 자체의 아름다움에 순수하게 압도됐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실내에서도 이럴진대, 이따 화려한 크리스털 샹들리에 아래에 서면 얼마나 대단한 광채를 발하려나.
놀라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과연 전문가의 손길은 남다르다.
하녀들은 드레스의 깊이 팬 목둘레선 안쪽에다가 안개처럼 반투명한 천을 덧대었는데 이게 또 기막힌 묘수였다.
노출은 줄어들면서도 살빛이 아른거리게 비치니, 안 가릴 때보다 훨씬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보였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희 이거, 힘을 덜 준 거랍니다.”
“네?”
“정말 제대로 하려면 목욕시중부터 저희가 맡아야 합니다. 게다가 오늘은 화장도 간소히 했고.”
마리엔은 귀를 의심했다. 이들은 마리엔의 피부가 맑고 촉촉해서 손댈 구석이 없다는 찬사를 끊임없이 퍼부으며 기초관리에만 삼십 분을 투자했다.
무슨 꽃잎과 무슨 뿌리에서 추출한 즙을 얼굴에 펴 발랐다가 솜으로 닦고, 그 위에 으깬 무엇무엇을 올리길 반복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공들인 맨얼굴에서 진줏빛 윤기가 돌 즈음에야 색조 화장 담당이 붓을 들었단 말이다.
근데 간소히 했다고? 이게?
“오늘은 그저 드레스 착용을 거들어드린 정도지요.”
“저 완전 새로 태어난 기분이거든요. 마리엔 디디에게서 끌어낼 수 있는 아름다움을 최대화한 느낌인데…….”
“보좌관님, 단언컨대 지금 상태는 최대화가 아닙니다.”
서열로는 두 번째인 듯한 하녀가 거울 속 마리엔을 보며 말했다.
“최대화를 원하신다면 날을 잡도록 하지요.”
“아, 아뇨.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일단 뜻은 감사합니다.”
서둘러 사양하자 하녀가 미련 가득한 얼굴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녀의 눈에 서린 집념이 예사롭지 않았다 싶더니 웬걸. 클로이즈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하녀란다.
갑자기 하녀의 은은한 광기가 이해됐다. 마리엔은 모두에게 활짝 웃어 보인 후에 문으로 걸어갔다.
시간을 지체했다간 ‘역시 조금만 더 봐드려야겠어요!’라며 화장대 앞에 끌어 앉혀질까 두려워서 이러는 건 절대 아니다.
“어?”
“다 했어요, 마리…… 엔……?”
문이 열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