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74)
“칭찬이잖아요. 너무너무 깜찍하고 달콤하고 아담하며 예쁘다는 뜻이죠.”
“음, 영애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알게요.”
마리엔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실제로 좋아하는 음식이 언급돼 저도 모르게 발끈했나 보다.
자신이 케이크 위의 장식이면 무조건 초콜릿이나 설탕 과자인 줄 알고 깨물었다가, 먹을 수 없는 재료임을 깨닫고 실망한 적이 많은 먹보인 건 사실이다. 그래서 더 예민하게 반응했는지도 모르겠다.
‘좀 더 실용적인 사고를 하자고.’
마리엔은 삼삼오오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보며, 이 중에 누가 습격대 일원일지 가늠해보기로 했다.
‘바일레온을 찌르는 인간은 흰색 예복을 입은 남자랬는데.’
술이나 카나페 등을 나르는 시종이 아니라 예복을 입은 참석자다. 정식 초대장도 소지하고 있댔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면 습격대 뒤를 봐주는 인물이 2황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오늘따라 흰 예복을 입은 남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제가 모르는 새에 남자들 사이에 ‘오늘 황궁 무도회엔 흰옷을 입고 올 것’이라는 지령이 돌기라도 했나?
그때 4황녀궁에서 종종 마주쳐 낯을 익힌 시종이 다가왔다. 시종은 마리엔에게만 들릴 만큼 작게 속삭였다.
“황녀 전하께서 찾으십니다.”
바일레온은 잠시 논의할 사항 때문에 다른 자리에 불려가면서 제 여동생을 마리엔에게 딱 붙여놓고 갔다.
약간 호신용 호루라기 취급이다.
클로이즈는 오빠의 과보호에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마리엔 보호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그 오빠에 그 동생이란 생각이 든다.
어쨌든 클로이즈는 안 듣는 척하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마리엔이 조그맣게 물었다.
“하나만 여쭐게요. 블랙우드 공작님도 같이 계시나요?”
“아뇨.”
다행이다. 마리엔은 시종을 따라나섰다. 클로이즈는 이상히 여기는 시종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행했다.
세 사람은 참석자들을 피해 가장자리로만 움직여, 이윽고 무도회장 밖 테라스에 다다랐다.
“어머, 4황녀 전하. 오랜만에 뵙사옵니다. 클로이즈 비어스, 그럼 이만 물러갑니다.”
클로이즈는 여기까지 따라왔으면서 오데트의 얼굴을 확인하기 무섭게 자리를 피했다. 아마도 그녀의 목적은 처음부터 신원 확인이었는 듯하다.
마리엔을 부른 사람이 진짜 4황녀 오데트가 맞는지 아닌지 보고 간 거다.
이에 오데트가 좀 질렸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제 너한테로 넘어갔구나.”
“뭐가요?”
“바일레온 비어스의 과보호. 근데 네가 무르게 구니까 비어스의 여동생까지 합세한 거지.”
“왜 자꾸 다들 나보고 무르다고 하지…….”
“아주 남매가 둘 다 정신을 놓았구나. 혈육 아니랄까 봐 죽이 잘 맞아.”
아까 백작저에서는 클로이즈가 그러더니 이제는 오데트까지 똑같은 표현을 쓴다.
마리엔 디디만큼 공과 사가 분명한 인물이 어디 있다고?
“비어스는 다 좋은데 말이야. 잃은 적도 없는 걸 지키려는 습성이 있어. 그것도 과하게. 나처럼 눈앞에서 비극을 목격한 것도 아니면서…… 희한하지 않니?”
아무리 세계관이 보호해주는 여주인공님이라지만, 이렇게 얄팍한 유리문 너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친모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건가.
마리엔은 가슴이 졸아드는 것 같아 주변을 살폈다.
“전하, 자리가 자리인 만큼 말씀을 삼가심이 좋겠어요.”
오데트가 픽 웃었다.
“내가 목격한 비극이 너무 많아. 그러니 이 정도는 얘기해도 괜찮단다. 설령 저기 풀숲에 숨은 누군가가 엿듣는 중이래도 감히 특정할 순 없을걸.”
오데트는 이어서 말했다.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머리에 얹고 목에 걸고 있으면서 어쩜 그리 새가슴이냐고.
한편 오데트가 던진 말에 두 눈 부릅뜨고 풀숲을 노려보던 마리엔이다. 작은 디디 보좌관은 어이없다는 투로 되받아쳤다.
“보석 크기랑 새가슴인 게 무슨 상관이에요?”
“이것 보렴. 정작 주군에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이지.”
“아니, 말씀이 어지간히 터무니없어야죠.”
“우린 비어스의 과보호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어. 한데 비어스는 아직 4황녀의 기묘한 취향에 대해 모르니? 동성의 측근에게 하사한 드레스치고는 노출이 상당한 점에 대해서.”
오데트가 완벽하게 정돈된 은빛 눈썹을 슬쩍 들어올렸다.
“아무 의문을 품지 않더란 말이지, 아직까지?”
여차하면 카인의 선물이라고 확 불겠다는 뜻인가? 지금에 와서 협박이라니 너무 치사하다.
마리엔은 감히 ‘치사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고, 표정으로만 속마음을 드러냈다. 그러자 오데트가 차라리 말을 하라고 했다.
“됐어요. 말 안 할래요.”
“건방진 것.”
“왜 부르셨어요?”
오데트가 기가 찬 듯 실소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4황녀’의 하사품으로 꾸미고도 성이 덜 찼냐고 물었다. 지금 마리엔의 태도는 단순한 측근 수준이 아니란다.
“내 본모습을 아는 사람들이 널 봤으면 경악할 텐데.”
하지만 역시 우리의 여주인공이다. 시간 낭비 따위 하지 않는다. 마리엔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묻자마자 오데트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따 자리 배치를 바꿔야겠어.”
황녀의 말을 들은 순간 심장이 족히 10미터 아래로 추락하는 기분이 들었다.
원작엔 없던 여주인공의 돌발행동이다. 다른 날도 아니고 하필 오늘, 바일레온이 단검에 찔리는 날. 그와 동시에 끝내 올 것이 왔구나 싶은 이유는 어째서일까.
‘어쩐지 오늘 아침 하늘이 유난히도 맑더라니.’
마리엔은 입술 안쪽을 지그시 깨물었다.
“누구 자릴 어디로 옮기시게요?”
오데트가 따로 베껴둔 자리 배치도를 꺼내 들었다. 본인부터 뛰어난 체스 고수인 오데트는 설명도 체스 경기처럼 했다.
“6번을 15번으로, 15번을 18번으로, 18번은 40번으로, 40번은 47번으로 바꿀 거야.”
“6번에 있는 사람, 그러니까 윌헬름 후작부인을 15번…….”
마리엔은 손가락으로 자리 배치도를 더듬었다. 안타깝게도 오늘은 수첩과 연필을 깜빡했다. 오데트의 지시를 머릿속에 다 집어넣을 수 있으려나.
늦은 오후부터 장장 여섯 시간에 걸쳐 계속될 황궁 무도회는 1부와 2부로 나뉜다.
지금은 1부가 진행 중이다. 중간에 호화로운 저녁식사가 예정되어 있으며, 식사 및 휴식이 끝나면 2부의 막이 열릴 것이다.
오데트가 말하는 자리 배치는 2부 시작 직후를 의미했다.
다들 본인 자리에 서서 황제의 일장 연설을 듣는 시간 말이다. 오늘 황제는 조만간 2황자를 황태자로 삼겠다는 뜻을 표명할 예정이다.
이어서 휴식시간에야 가까스로 무도회장에 도착한 해군 소령의 공로를 치하할 터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손님들이 서 있을 자리는 신분과 지위 등을 고려해 일찌감치 확정돼 있었다. 오늘 행사 준비에 관여한 사람들이라면 이미 숙지하고 있는 사항이다.
오데트는 지금 그걸 바꾸자고 하는 거다.
‘혹시 오데트도 오늘 일어날 일에 대해 알고 있을까?’
마리엔으로서는 당연히 이런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같은 이유가 아니라면 왜 갑자기 자릴 바꾸자고 하냔 말이지.
“전하, 근데 이렇게 하시는 이유를 여쭤도 될까요?”
“정보를 입수했어.”
“정보라면 어떤…….”
“네게 순순히 말해줄 것 같니?”
마리엔은 입을 삐죽거렸다. 아직 알려줄 수 없다는 말을 참 매정하게도 하신다. 어쨌든 오데트에게도 따로 생각이 있다는 뜻이렷다.
마리엔은 그럼 마지막으로 두 개만 더 묻겠다고 했다.
“제가 이 사람들한테 가서 자리 바꾸라고 얘기해야 되나요?”
“아니.”
“다행이다……. 외울 자신 없었거든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윌헬름 후작부인을 설득할 자신은 있고?”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제 그건 제 알 바가 아니잖아요?”
그 후작부인은 또 누구이기에 피도 눈물도 없대. 여하튼 상류사회 특징인가. 황실도 그렇고 귀족 중에도 냉혈한 캐릭터가 너무 흔하다.
“나머지 질문은 뭐지?”
“제가 47번인데 전 어디로 가야 하죠?”
“…….”
“설마 제 자리는 여기 테라스라거나.”
“……6번이 15번으로 갔어. 그런 다음에 내가 6번 자리를 채웠던가?”
“아하.”
마리엔의 얼굴이 밝아졌다.
“제가 6번 자리로 가는 거군요!”
“차차기 비어스 백작의 머리가 제대로 돌아갈지 좀 걱정되는구나.”
마리엔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딸일지 아들일지는 알 수 없으나 제국 아카데미 입학만은 거뜬할 거다. 그렇게 장담하자 오데트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왜 저런 표정이지? 아무리 돌머리가 나오더라도 바일레온이 똑똑이로 만들어줄 텐데.’
마리엔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무도회장으로 돌아갔다. 테라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바일레온이 기다렸다는 양 마리엔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언제 돌아오셨어요, 비어스 경?”
“얼마 안 됐어요.”
우리 재상님은 이제 비밀 연애고 뭐고 집어치웠나 보다. 허리에 두른 손을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온몸으로 ‘우리 둘은 연인 사이’임을 주장하는 느낌이랄까.
이후 시간이 흘러 어느덧 2부 시작 직전에 이르렀다.
오데트가 어떻게 처리했는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감 선생처럼 생긴 윌헬름 후작부인부터 사람들이 착착, 새로운 자리로 이동했다. 잡음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마리엔은 뒤늦게야 소름 돋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원작 내용을 되짚으며 바뀐 자리 배치와 습격자의 동선을 맞춰보던 중에 번개처럼 내리꽂힌 깨달음.
망했다.
지금 이대로라면 바일레온이 아닌 마리엔 자신이 습격자를 막게 생긴 것이다!
◇ ◆ ◇
얼마 전 자식 둘을 유폐시킨 사람치고 황제는 혈색이 꽤 좋았다. 은회색 머리를 매끈히 빗어넘겨 드러난 이마에선 윤기가 돌았다. 겉만 봐서는 딸 오데트보다 더 오래 살게 생긴 인간이다.
하나 마리엔의 귀엔 그런 황제의 말이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속만 시시각각 타들어갈 뿐.
‘이걸 어쩜 좋아.’
내 남자가 칼에 찔리는 건 싫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대신 찔리겠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마리엔이 당황한 사이 행사는 쾌속 진행되었다. 어느새 황제의 2황자 지지 선언이 끝나고, 공을 세운 해군 소령을 치하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오데트가 찔리게 둘 순 없지. 이 세계의 여주인공이잖아. 여주인공 급사 엔딩으로 세계관 멸망……. 그런 특수한 사례가 되고 싶진 않다고!’
발등에 불 떨어진 상태가 되니까 머리가 평소의 몇 배는 빠르게 돌아갔다.
마리엔은 고개를 돌려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카인을 쳐다봤다.
‘옳지, 네놈이 거기 있었구나. 이쪽을 봐. 여길 보라고.’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 끝에, 기적적으로 카인과 시선이 마주쳤다. 황제가 연설 중이긴 하나 자리 이동이 아예 금지된 것은 아니다.
마리엔은 서둘러 표정을 바꿨다. 카인을 향해 초승달 눈이 되도록 웃으면서 가까이 좀 와보란 손짓을 했다. 맹세코 두 번 다시 카인 놈에게 이처럼 상냥히 웃어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데 이에 대한 카인의 반응은 어땠을까.
‘뭐라고 말하는 거야. 네…… 드레스…… 내가 사준 선물을…… 4황녀가 가로채…… 으이그!’
인상 잔뜩 쓰고 있는 이유가 그거였어? 질투할 사람이 없어서 이젠 약혼녀를 질투하고 있나.
‘저 좀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