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84)
오데트의 설명을 듣는 내내 마리엔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바일레온이 친절하게 입을 닫아줬지만, 그가 손을 떼기 무섭게 다시 벌어지는 일이 반복됐다.
이야기를 마친 오데트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금 하라고 했다. 마리엔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전하, 진지하게 여쭤볼게요. 혹시 양심이 없으세요?”
“없단다.”
“그럴 것 같았어요.”
마리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오데트 대신 칼을 맞을 뻔했고, 바일레온은 그 칼을 네가 맞으란 명령에 단검 앞으로 뛰어들었다.
한데 겨우 회복해서 출근한 사람한테 하는 이야기가 이렇다.
그래, 낫느라 고생 많았다. 이제 사방에 무장경비가 깔린 적진에 나 대신 들어가렴. 큰손으로 위장해서 사장실의 우두머리와 독대하는 거야. 어때, 할 만하겠지?
퀘스트 난도가 훅 올라갔다. 무도회장에는 그래도 총지휘관 오데트가 있고, 한발 늦게나마 달려올 근위대와 황실의들이 있었다.
하지만 2황자의 범죄 소굴은 다르다. 적은 수백 명인데 아군은 바일레온 단 한 명이다. 마리엔 자신은 바일레온의 언변과 지략에 의지한다 치자. 문제는 바일레온이다.
이 남자는 어디 의지할 데가 없다. 임무 수행하랴, 연인을 지키랴. 이건 마리엔뿐만 아니라 바일레온에게도 너무 불공평한 명령이다.
당연히 양심이 없으시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그럼 이번엔 내가 물어보자. 마리엔 디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공부했을 테지. 제국법 24조 1항이 뭔지 아직 기억하니?”
“아뇨.”
24조 1항은커녕 제국법이라는 단어 자체가 머릿속에 안 들어 있다. 오데트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았어.”
옆에서 바일레온이 24조 1항은 황실 모독죄라고 알려주었다. 마리엔은 생전 처음 접하는 정보에 오, 하고 감탄했다. 바일레온은 법관도 아닌데 법 전문을 다 외우고 있나 보다.
오데트가 새로운 의문을 제기했다.
“너, 공무원 특채를 대리시험으로 통과한 건 아니지?”
“무슨 뜻이세요?”
“지금 보니 100점 만점에 61점은 네게 너무 높은 점수야. 순수한 네 실력으로 61점을 받아냈을 리 없어. 누군가가 분홍색 가발을 쓰고 대리시험을 쳐줬다고밖에는.”
참 나, 또 면전에서 사람 욕하시네. 마리엔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테이블 위의 자료집을 내려다봤다. 거기엔 위장잠입 전까지 숙지해야 할 건물 내부 지도 따위가 스크랩되어 있었다.
‘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람.’
결과만 놓고 보면 원작 전개를 따라가고 있긴 하다. 이제껏 한 번도 사건의 순서가 뒤바뀐 적은 없다. 근데 하나하나 세밀히 뜯어보면 뭔가 조금씩 다 달라졌다.
원래는 약혼녀 오데트에게 보내는 선물로 등장해야 할 값비싼 드레스와 보석이 제 몫이 되질 않나.
무도회장에서는 습격자가 자신을 오데트라고 믿고 단검을 휘두르질 않나.
이제는 하다 하다 오데트 대신 2황자의 지하세계에 잠입하게 생겼다. 마리엔은 도저히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하, 제가 트집을 잡으려는 게 아니라요.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랍니다. 이번 계획에서 블랙우드 공작의 역할은 대체 뭔가요?”
마리엔이 이어서 물었다.
“걔가…… 그놈이…… 그……자가 하는 일이 있긴 한가요?”
어쨌든 판은 오데트가 짰다. 오데트가 오랜 시간을 들여 물밑작업을 해두지 않았다면 잠입 자체가 불가능할 터다. 안에 들어가서 어떤 동선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도 다 오데트 머리에서 나왔다.
좋다.
당일 오데트는 외부에서 다른 작전을 펼친다 치자. 자신과 바일레온이 적진에서 고군분투할 동안 북부 놈은 뭘 한단 말인가.
“그날 밖에서 나와 같이 움직일 거야. 몸이 약한 내겐 공작의 힘만큼 유용한 게 없어. 그러다가 적시에 수도경비대를 끌고 진입할 테고. 왜, 네가 데려가고 싶니?”
“아뇨.”
마리엔이 단칼에 거절했다.
“다들 목숨 걸고 일하는데 제일 센 놈이 혼자 노는 듯해서요. 아니라니 다행이네요. 좋아요. 기왕 데려가시는 거 부디 마소처럼 부려먹으세요. 마차에서 내리실 일 있으면 무릎 꿇으라 해서 등 밟고 내리시고요.”
오데트가 시선을 바일레온에게로 옮겼다.
“비어스, 경의 연인은 평소 대체 무슨 책을 읽기에 저래?”
자료집을 넘기며 내용을 숙지하던 바일레온이 고개를 들었다. 그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클로이즈가 읽는 걸 마리엔도 읽던데요.”
“과연 그래서…….”
“이상한 데서 혼자 납득하지 마시고요, 전하.”
마리엔이 끼어들었다.
“무려 위장잠입이에요. 제 연기력이 걱정되지 않으세요? 무도회장 사건 때도 제 볼품없는 연기력 때문에 저한테만 안 알려주셨잖아요.”
“그땐 시간이 너무 촉박했어.”
오데트가 자료집 사이에 끼어 있는 낱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거기엔 누군가의 프로필로 보이는 정보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라. 네가 연기를 안 해도 되는 인물을 만들어낼 시간이 충분했지.”
“연기를 안 해도 된다고요……?”
설마 마리엔 디디의 신분 그대로 입장하라는 뜻인가. 그건 아닐 텐데. 본명을 대고 ‘클럽 블루밍’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다. 얼굴도 노출되지 말라고 입구에서 가면까지 나눠주는 곳이다.
마리엔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데트가 내민 가짜 프로필을 소리 내어 읽었다.
“리디엔. 스물세 살. 몸 좋은 미남을 밝히는 졸부 아가씨.”
자식 없는 먼 친척이 죽으면서 유산을 리디엔 앞으로 남겼는데, 못 쓰는 바위산인 줄만 알았던 땅이 금광으로 밝혀졌다는 설명이 달려 있었다. 상식과 에티켓이 심히 부족하지만 돈 하나는 썩어나게 많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리엔은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굽었던 등이 쫙 펴지는 설명이었다.
“카지노에서 돈을 거는 족족 잃어도 그만둘 줄을 모른다. 오히려 약이 올라서 더 달려드는 스타일로…….”
“마음에 드니?”
“돈이면 다 해결되는 줄 알고 팁을 뿌려대며…….”
“보기 드물게 집중하는 모습이구나.”
“수치도 모르고 미남의 엉덩이를 빤히 구경하는 습성이 있다고요?”
오데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쯤 되자 마리엔은 바일레온이 맡을 역할이 궁금해졌다. 마침 그가 자기 몫의 프로필을 읽고 있었다.
첫 줄부터 인상적이었다.
“발렌틴. 스물다섯 살. 리디엔의 명이라면 무조건 복종하는 하인.”
귀족 영식들의 인간 샌드백 노릇을 하다가 질 나쁜 무리에게 걸려 반죽음이 된 그를 리디엔이 주웠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마리엔은 거기까지 읽고 테이블 건너편의 오데트를 쳐다봤다. 황녀가 감상을 물었다.
“어떠니?”
“준비된 인재란 무엇인지 제가 보여드릴게요.”
오데트가 흐뭇하게 웃었다. 네가 마음에 들어 할 줄 알았단다. 그 말을 들으니까 살며시 현실감각이 돌아오려 했다.
‘너 또 원작 여주님에게 말려들었구나.’
오데트가 결정한 이상 싫다고 뻗댈 수 없다. 무조건 따라야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과 부나방처럼 홀린 듯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건 다르지 않나. 자신은 어느새 후자가 되고 말았다.
이다음엔 오데트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떠맡겠다고 나설 판이다.
“그날 네가 물 쓰듯 쓸 돈은 공작이 댈 거야.”
마리엔의 상태 변화를 눈치채기라도 한 걸까. 오데트가 솔깃한 미끼를 던졌다.
“어차피 수도경비대를 끌고 현장을 덮치면 거기 있는 돈은 자동으로 국고 환수야. 2황자 주머니로 흘러 들어가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애국하는 마음으로 탕진하렴.”
“호오.”
북부 놈의 주머니를 또 한 번 털 기회다. 마리엔은 기분이 좋아졌다. 한편 여태 별말 없이 자료만 읽던 바일레온이 입을 열었다.
“전하께선 제 연인을 지나치게 잘 다루시는군요.”
그가 조용히 손을 뻗어 마리엔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바일레온의 미간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는 눈치다.
“내가 시킨 대로만 하면 안전할 거야. 그러니 표정 좀 풀어, 재상.”
오데트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면 디디처럼 대놓고 말로 욕하든가.”
“제가 어찌 감히 전하께 무례를 범하겠습니까.”
“하여튼 한 명은 말을 가릴 줄 모르고, 다른 하나는 말로 욕하는 것만 빼고 다 하고 있으니.”
둘이 참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들었다. 마리엔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옆에서 바일레온이 마리엔은 말을 가릴 줄 모르는 게 아니라 솔직한 거라고 정정했다.
과보호에 이어 콩깍지냐. 제발 어지간히 하라는 오데트의 타박이 돌아왔다.
◇ ◆ ◇
클럽 블루밍.
겉보기엔 회원제로 운영되는 고급 휴양시설이다. 화려한 돔 형식의 5층 건물 내부엔 무도회장, 온천과 사우나, 카지노, 공연장, 권투 경기장, 식당, 상점 등이 갖춰져 있다.
그러나 클럽 블루밍은 사실 2황자의 재원이자 돈세탁 장소다. 그와 수년째 불륜 관계인 1황비가 자기 사촌을 사장실 의자에 앉혀둔 곳이기도 하다.
뒤로 온갖 불법행위가 일어나는 곳답게 어디든 험악한 인상의 경비들이 깔려 있었다.
“멈추십시오.”
입구에서 경비들이 마차를 멈춰 세웠다. 바일레온은 안에 탄 사람이 보이지 않게 커튼 친 창문 사이로 초대장을 내밀었다. 잠시 후 경비가 창 틈새로 하얀 가면 두 개를 들이밀었다.
“마리엔, 안에 들어가면 우리의 조력자와 마주칠 수도 있어요. 혹시 상대를 알아보더라도 티 내지 말아요.”
“조력자요?”
처음 듣는 얘기다. 오늘은 바일레온과 단둘이서 헤쳐나가야 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내부에 조력자가 있다니.
“알아본다는 말은 저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란 뜻인가요?”
“네.”
“도대체 누가…….”
“그걸 미리 알려주면 당신이 무의식중에 그 사람 얼굴을 찾을 것 같아서요.”
하긴 바일레온 말이 맞다. 마리엔은 그럼 듣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한데 너무 의외의 인물일 경우 놀란 기색을 완전히 감출 순 없을 거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아예 감추려 하지 않는 편이 좋겠군요. 차라리 얼른 시선을 내려서 상대의 엉덩이만 뚫어지게 쳐다봐요.”
엉덩이라는 말을 할 때 바일레온의 표정이 약간 미묘해졌다.
“마침 리디엔 아가씨는 그런…… 습성이 있으니까.”
수치도 모르고 몸 좋은 미남의 엉덩이를 빤히 구경한다고 했지. 마리엔은 자신에게 부여된 새 설정을 떠올렸다. 엉덩이를 보라는 걸 보니 조력자는 남자인 듯하다.
두 사람은 클럽 측에서 준 가면을 썼다. 바일레온이 마차 문을 열어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원작의 세부사항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는 위험구역으로 발을 들이시겠습니까?
지원병력이 올 때까지 목숨은 보장하나 그 밖의 사항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순간 고를 수 있는 답안이 ‘예’밖에 없는 문제지가 바일레온의 머리 위로 나타난 것 같았다.
마리엔은 심호흡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바일레온, 이제부터는 발렌틴이라고 불러야 하는 그가 마차 문을 열었다.
“발밑 조심하세요, 아가씨.”
먼저 내린 바일레온이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마리엔은 그의 손 대신 실한 팔뚝을 잡고 바닥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어떻게 날이 갈수록 몸이 단단해지니, 발렌틴.”
마리엔이 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