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86)
눈이 휘둥그레진 마리엔의 귀에 안내 담당의 설명이 들렸다.
“리디엔 님이 때마침 타이밍을 잘 맞추셨습니다. 오늘은 숙녀의 밤 행사가 있는 날이라 즐길 거리가 다양하실 겁니다. 게다가 이 안에서는 샴페인이 무제한이랍니다”
숙녀의 밤. 그렇구나. 그래서 저렇게 헐벗은 조각 미남이 공중곡예 중인 거구나.
납득이 됐다. 마리엔이 고개 젖혀 구경하는 동안에도 신화 속 영웅으로 분장한 미남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반대편 링으로 이동했다.
‘이거 굉장한걸. 까딱하다간 펄럭이는 천 안쪽이 보일…….’
갑자기 바일레온이 마리엔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는 척하면서 속삭였다.
“아가씨, 목이 아프실까 봐 걱정됩니다.”
“응, 안 아파.”
“아뇨, 아프실 거예요. 자각을 못 하실 뿐.”
바일레온이 어금니를 악문 채로 말했다. 그런데도 발음이 정확하다니 참 신기하다. 마리엔은 링에 한쪽 다리만 걸친 자세로 거꾸로 매달렸다가 느리게 동작을 바꾸는 미남에게서 간신히 눈을 뗐다.
‘일부러 뭔가를 덧씌웠나?’
과연 숙녀의 밤. 굉장하다.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오데트는 별로 흥미를 안 보이겠지만 클로이즈라면 다를 터. 마리엔은 클로이즈와 꼭 이 목격담을 나누고 싶었다.
“제 안내는 여기까지입니다. 객실 열쇠를 드릴 테니 챙기시고요. 모쪼록 클럽 블루밍에서 머무는 동안 즐거우시길 바랍니다.”
안내 담당이 씨익 웃으며 열쇠 한 쌍을 건넸다. 바일레온이 이를 챙겨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마리엔은 그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리디엔 아가씨.”
“……응.”
“직원이 갔습니다. 이제 우리 둘뿐이에요.”
“응, 그래.”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계시죠?”
바일레온이 마리엔의 턱을 부드럽게 잡고 제 쪽으로 돌리려 했다. 마리엔은 무의식중에 목에 힘을 줬다.
“남자 구경하는 거 아니야, 발렌틴.”
“그렇습니까?”
“주변 환경 탐색 중이야.”
마리엔은 바일레온의 품에 안기다시피 한 자세로 작게 말했다. 다른 사람 눈엔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처럼 보일 터다.
“비어…… 발렌틴, 저기 인공폭포 주변에 늘어져 있는 사람들 보여요?”
마리엔은 손톱을 세워 연인의 가죽조끼를 긁었다. 잠시도 가만있지를 못하고 손장난 치는 리디엔 연기는 계속된다.
“보여요.”
티 나지 않게 시선 처리를 한 바일레온이 대답했다. 마리엔이 앙탈 부리듯 어깨를 흔들었다.
“술에 취한 게 아니라 약에 취한 것 같아요. 자세히 보면 저 사람들 주변에만 종이 포장지가 널려 있어요. 파란 알갱이 같은 것도 보이고.”
다들 눈의 초점이 나갔다. 환각이라도 보는지 헤실헤실 웃는가 하면 돌연 표정을 일그러뜨리기도 했다.
얼굴에 눈물인지 침인지 모를 액체가 말라붙은 자도 많았다. 하나같이 손가락 까딱할 기운도 없는 사람처럼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었다.
바일레온이 마리엔의 손등에 자잘한 키스를 흩뿌리며 말했다.
“내가 알기로 저건 20여 년 전에 잠깐 유행했다가 불법 규제된 약이에요. 처음엔 긴장 완화제로 쓰였는데 부작용과 중독성 때문에 나쁜 용도로 쓰이는 일이 많아졌댔어요. 특유의 새파란 색 때문에 ‘요정의 바닷물’이란 별명으로 불린다고도 하고요.”
역시 걸어다니는 백과사전다웠다. 의심스러운 광경을 가리키기만 하면 그에 관한 설명이 줄줄 나온다.
이쯤에서 마리엔은 연인에게 잡힌 손을 괜히 빼내는 시늉을 했다. 가슴을 콩콩 때리는 연기를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바일레온은 아가씨의 손을 쉽게 놔주지 않았다.
당연하다.
여긴 천장에 헐벗은 미남들이 매달려 있고, 셔츠 없이 검은 조끼만 입은 남자 직원이 샴페인 쟁반을 나르는 곳이다.
‘2황자 놈……. 제국의 돈 많은 여자 등골을 쪽쪽 빼먹으려고 작정했네.’
물론 숙녀의 밤이 있다는 것은 반대로 신사의 밤도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런 날엔 제한구역 풍경이 지금과 꽤 다를 터다.
헐벗은 미남 대신 헐벗은 미녀가 날아다닐 거고, 만일 그날이 오늘이었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위장잠입한 마리엔 디디의 마음이 다소 쓸쓸했겠다.
‘어쨌든 클럽 블루밍 영업도 오늘이 마지막이야.’
자신이 이곳에 발을 들인 처음이자 마지막 날이 오늘이어서 마리엔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양심의 가책?
그런 게 마리엔 디디한테 있을 리가 있나.
미남 실컷 구경하고 원수 놈의 돈도 펑펑 쓰고 바일레온에게 아가씨 소리 들으면서 2황자 놈의 아지트를 망하게 한다.
‘그래, 자고로 로판이라면 이래야지.’
비록 자신은 의 여주인공이 아니나, 여주인공과 같은 팀이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혜택이 쏟아지나 보다.
그렇다면 사양 않고 누려주겠다는 게 마리엔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가씨, 우리 저쪽으로 가볼까요? 아까부터 문 너머에서 함성이 들리는데요.”
바일레온은 마리엔의 팔을 자연스럽게 본인 허리에 감았다. 그를 따라 이동한 곳은 판돈을 거는 격투장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고막이 얼얼해질 정도의 함성이 두 사람을 맞았다.
“죽여어어어!”
아래층의 권투 경기장이 일반적인 경기 관람 장소라면, 제한구역의 격투장은 한쪽이 죽을 때까지 맞붙는 콜로세움에 가까웠다.
가진 거라곤 쓸 만한 몸뿐인 남자들이 링 위에서 피떡이 되도록 싸우고 있었다.
“반격할 틈을 주지 마!”
“팔을 꺾어! 그렇지. 그렇지!”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당장 일어나!”
남녀 불문하고 링을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시가를 피우는 사람, 이상한 냄새의 연기가 나는 향을 태우는 사람 등 별별 인간이 뒤섞여 있었다.
흡연실을 제외한 클럽 안에선 금연이라고 들었는데, 여기 격투장은 예외인 걸까. 잠깐 있었는데도 숨쉬기가 불편했다.
한계에 이를 때까지 숨을 참던 마리엔은 결국 매캐한 연기를 잘못 들이마시고 콜록거렸다. 바일레온이 아니었으면 정신이 없어서 출구를 찾지조차 못했을 거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다시 밝은 곳으로 나온 마리엔에게 그가 물잔을 건넸다. 마리엔은 기침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차가운 물을 마셨다.
“제 잘못입니다. 어떤 곳인지만 확인하고 바로 나왔어야 했는데.”
“바로 나와서 이 정도인 거야. 발렌틴 네가 아니었으면…… 콜록!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어.”
마리엔은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으, 저기는 내 취향이 아니네. 그리고 지금 링 위에 쓰러져 있는 남자…… 곧 죽을 것 같아.”
바일레온이 말을 아꼈다. 그 또한 같은 생각 중이라는 뜻이다. 바일레온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저 문 너머의 격투장이 범죄 현장이라는 걸 알겠다. 마리엔은 치를 떨었다.
평온한 삶을 바라는 마리엔 디디는 폭력에 반대한다. 고로 잔인한 2황자 놈은 내일 사형, 땅땅땅.
“하, 이제 됐어. 정신이 좀 들어. 그럼 다른 곳을…….”
“아얏!”
몸을 다 돌리기도 전에 누군가와 부딪쳤다. 상대방이 비명을 내질렀다. 아무래도 자신이 들고 있던 물잔의 물이 쏟아진 듯하다. 마리엔은 연기 중인 것도 잊고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려 했다.
“너 눈을 얻다 달고 다녀?”
상대방이 빽, 고함을 질렀다. 마리엔은 여기서 1차로 멈칫했다.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보통 정해져 있다. 당한 일에 비해 과하게 화내는 타입이다. 사과와 별개로 본인 기분이 제일 중요하다. 애초에 엮여선 안 되는 유형이랄까.
‘뭐 밟았네.’
마리엔은 바로 사과하는 대신 드레스에 물맞은 여자를 쳐다봤다.
올림머리를 고정한 머리핀은 웬만한 티아라 저리 가라 할 만큼 화려했다. 어깨와 가슴 위쪽이 훤히 드러난 청록색 드레스는 은실로 꿴 보석 장식 때문에 공작새처럼 보였다.
내가 얼마나 돈 많고 멋진지 봐라. 대놓고 과시하는 외양이었다. 한마디로 졸부 리디엔과 캐릭터가 좀 겹친다.
한편 여자는 마리엔이 사과하기는커녕 자길 빤히 관찰하자 분을 못 이기고 길길이 날뛰었다.
“너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 촌뜨기가 감히, 감히 나한테.”
“피차 가면을 쓰고 있는데 얼굴이 보이나?”
마리엔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촌뜨기라니. 지금 누구한테 하는 소리지? 혹시 그쪽이랑 나 사이에 거울이 있어?”
마리엔은 재빨리 졸부 리디엔의 인격으로 돌아왔다. 리디엔은 실제로 유산을 받기 전까지 벽촌의 식당에서 일했던 터라 시골뜨기니 촌뜨기니 하는 욕에 매우 민감하다.
“뭐라고?”
“물을 쏟은 건 미안하게 됐어. 그 점은 사과하지. 원한다면 돈으로 배상할게. 하지만…….”
마리엔은 지나가는 직원을 불러세워 물잔을 가져가게 했다. 뒤돌아서 멀어지는 직원의 엉덩이를 곁눈질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소릴 지를 필요까지야?”
“너, 너, 너.”
“나, 나, 나 듣고 있거든. 그렇게 몇 번이고 연달아 말할 필요 없거든.”
“제대로 사과해!”
여자가 바닥에 대고 발을 꽝 굴렀다.
“어떻게?”
기세와 달리 마리엔이 되묻자 당황한 눈치였다. 성질은 나는데 되받아칠 말이 생각 안 나는 거다. 여자가 한 번 더 발을 굴렀다.
“몰라! 사과하라고!”
“사과아.”
“너!”
리디엔 연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내면은 마리엔 디디다. 마리엔은 제게 남 약 올리는 재주도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여간 은근히 다방면에 능통하다.
어쨌든 여자는 본인과 비슷한 인간과 부딪친 탓에 사과도 제대로 못 받고 놀림이나 당하던 중이었다.
여자가 씩씩대며 마리엔을 노려봤다. 그러다가 자기 하인에게 귓속말로 지시했다.
‘무슨 수작이지?’
바일레온만큼 키가 크지는 않지만 다부진 체격의 하인이 바(bar)로 가서 쟁반을 들고 왔다. 쟁반 위에는 투명한 위스키 병과 체리 브랜디, 프리미엄 럼이 큼직한 크리스털 잔과 함께 놓여 있었다.
마리엔이 알기로 저만큼 큰 잔에는 주먹만 한 둥근 얼음을 넣어 천천히 온 더 락으로 마시거나 아니면 그냥 물이나 따라 마셔야 했다.
“넌 딱 보기에도 거금 찔러주고 오늘 처음 전용구역에 들어온 시골뜨기 같은데.”
여자가 위스키병 마개를 열더니 큰 잔에다 술을 콸콸 따랐다.
“들어오는 거야 돈으로 해결했다지만 내부의 암묵적 규칙은 따라야지 않겠어?”
위스키만으로 잔의 절반을 채운 여자는 이어서 체리 브랜디와 럼으로 나머지 반을 채웠다.
“마셔.”
“뭐?”
“잔을 비우면 내 드레스 망친 걸 없던 일로 해주지.”
마리엔은 기가 막혔다.
“어이없네. 네 드레스랑 전용구역의 내부 규칙이 무슨 상관인데? 네가 뭐라도 돼?”
“난……!”
여자가 발끈하다가 마리엔의 뒤쪽 어딘가를 쳐다보고는 입을 앙다물었다. 씨근덕거리는 모습이 화를 참는 중인 듯했다.
“내가 누군진 차차 알게 될 거야. 하지만 일단 이걸 마셔야 이 안에서 푸대접 안 당할 수 있어. 신고식 개념이라 생각하라고.”
여자의 말대로 이게 신고식이라면 거부하기가 어렵다.
어쨌든 마리엔은 오늘 밤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마주치는 상대마다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임무완수에 차질을 빚을 터다.
그렇다고 단숨에 마시기엔 벌주의 도수가 걸렸다. 누가 봐도 마시고 죽으라는 의미이지 않나.
약간 주저하는 걸 눈치챘는지 여자가 픽 웃었다.
“너 대신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