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90)
오데트.
아아, 오데트. 그 애증의 이름 세 글자.
바일레온의 마음을 10년간 독차지한 것으로도 모자라, 내 목숨줄을 쥐고 있는 그 이름 오데트.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서 사람을 갑자기 우울의 늪에 빠뜨리는 완벽한 원작 여주 오데트.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다르다. 자기비하나 미움, 질투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다.
애증? 아니. 애, 애, 애다. 마리엔의 안에는 오직 오데트를 향한 뜨거운 사랑만이 넘쳐나고 있었다.
절대 충성해.
“꺄아아아!”
마리엔은 전방을 향해 환호성을 내질렀다.
“발렌틴 이겨라!”
테이블을 마구 두드려도 누구 하나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리엔 앞에 조각 과일 접시와 샴페인을 세팅해주고 갔다.
술 많이 마시고 흥에 취해서 돈 펑펑 쓰라는 뜻이렷다.
마리엔은 복숭아 한 조각을 우물우물 삼킨 다음, 마저 고함을 질러댔다.
무대에 올라간 남자 일곱 명 중에 바일레온이 제일 돋보였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숙녀의 밤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이벤트는 바로…… 노예 경매!”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마리엔은 두꺼운 종이를 말아서 손바닥 대신 그걸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계속 손으로 치다가는 오 분도 안 돼서 손가락이 부러질 듯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 일곱 명의 노예들이 있습니다. 다들 매력이 굉장하지요? 한 명씩 앞으로 나오게 해 경매를 할 겁니다. 가장 높은 값을 불러서 낙찰받은 숙녀분께 노예와의 하룻밤이 돌아갑니다.”
사회자가 능청스럽게 윙크를 했다.
“한 명도 놓치기 싫다? 다 마음에 든다? 그렇다면 방법은 간단합니다. 일곱 명 모두를 낙찰받으십시오!”
경매 종료 후 금액은 3대 7의 비율로 원주인과 클럽 블루밍 측이 나눠 가진다는 설명이 보험 약관 설명만큼이나 빠르게 지나갔다.
마리엔이 귀 기울여 들어보니 3이 후보를 출전시킨 원주인 몫이고 7이 클럽 몫이었다.
‘숙녀의 밤이랍시고 경매 이벤트 열어서 2황자 놈 주머니만 채우네.’
마리엔의 입가에 비뚜름한 미소가 걸렸다.
몇 번 낙찰받은 사람에겐 참가 제한을 걸어서 기회가 두루두루 돌아가게 하는 것도 아니다.
돈만 있으면 싹쓸이를 해도 좋단다. 대놓고 경쟁을 부추긴다.
‘소유주 성격 보이네.’
사회자가 먼저 1번 노예부터 입찰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어두운 무대 위로 스포트라이트가 1번에게 쏟아졌다.
“물론 그에 앞서! 노예의 상품 가치를 확인하셔야겠죠? 자, 음악을 깔아주세요. 노예가 스스로를 홍보하도록 하겠습니다!”
둥둥둥둥.
갑자기 북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군악대 행진을 연상케 하는 음악이 깔렸다.
1번의 원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소파에서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벌써 거나하게 취한 모양새였다.
그녀는 어디서 입수했는지 모를 원뿔 모양의 종이 나팔에 대고 쟨 진짜 군인 출신이라고 외쳤다.
“네, 방금 숙녀분 설명을 들으셨죠? 진짜 군인 출신이라고 하네요. 아니나 다를까 몸이 아주 다부집니다.”
1번이 그럴싸하게 경례하더니 행진곡 박자에 맞추어 제자리걸음을 하기 시작했다. 군인 출신이란 게 거짓말은 아닌지 손발을 움직이는 각도가 살아 있었다.
하지만 군인 같은 행동은 딱 거기까지였다.
발은 계속 박자에 맞춰 움직이지만, 손은 어느새 조끼 단추를 풀고 있었다. 화려한 자수가 놓인 조끼를 벗어젖힌 1번은 크라바트를 풀어 소몰이꾼처럼 머리 위로 휘둘렀다.
마리엔은 그가 결국 셔츠까지 벗어 던진 뒤, 무대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 청년 근육이 참…… 실하네.’
1번은 환호에 힘입어 오른팔로만 팔굽혀펴기를 이어갔다.
가면 때문에 얼굴이 반밖에 안 보이긴 하나 머리숱도 빽빽한 데다 틀림없는 미남인 듯하다. 게다가 힘 하나는 확실하다.
투자 가치 입증 완료.
“여기까지! 수고했습니다. 그럼 시작가 천 골드부터 경매 진행하겠습니다. 네, 30번 숙녀분. 감사합니다. 바로 11번 숙녀분이 이어서……. 네, 7번 숙녀분. 이천 골드.”
마리엔은 경매에 참여하는 대신 테이블 위의 오페라글라스를 집어 눈에 갖다 댔다.
“허허허.”
절로 웃음이 나왔다.
“허허허허허.”
꾸준히 입찰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가격도 계속 올라가고 있다. 한데 입찰가가 뛰는 폭이 원주인 성에 안 차나 보다.
“더 보여줘! 자존심이 있지! 이 가격엔 못 해!”
이미 상의 탈의 후 한쪽 팔로 팔굽혀펴기까지 했는데 여기서 뭘 더 보여주라는 걸까. 마리엔은 오페라글라스를 내려놓지 않았다.
“오오오.”
“그렇지!”
“왜 이쪽으로는 안 와!”
1번이 무대 아래로 뛰어내리더니 입찰자 중 한 명의 손을 잡고 손등에다 키스했다. 입찰자의 눈을 쳐다보면서 입술을 점점 위쪽으로 옮기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육만 골드!”
손 잡힌 입찰자가 이 순간을 만끽하느라 웃는 사이, 멀리서 누군가가 우렁차게 외쳤다.
직전의 입찰가보다 두 배 훌쩍 뛴 가격이었다.
“오, 30번 숙녀분께서 육만 골드 외치셨습니다. 더 없습니까? 더? 더? 없습니까?”
사회자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마지막 숫자를 외칠 때까지도 이를 뛰어넘는 금액은 나오지 않았다. 사회자가 나무망치를 땅땅땅 두드리며 낙찰을 선언했다.
원주인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리며 낙찰자를 향해 샴페인 잔을 들어 보였다.
마리엔도 자신의 잔을 높이 들어 경사를 축하했다.
‘육만 골드 국고 귀속!’
다들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시는 중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술을 입에도 대지 않으면 사장실의 의심을 살 것이다.
마리엔은 일단 도수를 확인할 요량으로 기다란 샴페인 잔에 코를 댔다. 달콤하고 향긋한 백포도 냄새가 났다. 향기만으로는 잘 알 수가 없었다.
‘한 모금 정도야 괜찮겠지.’
마리엔은 잔을 기울여 샴페인 한 모금을 삼켰다.
‘어?’
혀에 달콤한 백포도 맛이 느껴졌다. 탄산이 목구멍을 자극하며 내려갔다. 그런데 딱 그뿐이다.
술이라면 느껴져야 할 알코올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도수가 낮아도 이렇게 보통의 음료처럼 뒷맛이 깨끗할 수는 없다.
‘다시 한번 마셔볼까?’
이번엔 두 모금을 연달아 마셨다. 마리엔은 잔에서 입을 떼고 목구멍 위로 퍼져나갈 술맛을 기다렸다.
‘없어.’
이건 술이 아니다. 백포도 주스에 탄산수를 타서 샴페인으로 위장한 음료다. 마차에서 내리기 전에 바일레온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내부에 조력자가 있다고 했지.’
그렇다면 이건 조력자의 도움이겠다. 남들처럼 퍼마셔도 취하지 않게 해주려는 거다.
마리엔은 어딘가에서 자신을 지켜볼 조력자를 향해 감사인사를 보내며 남은 가짜 샴페인을 마저 비웠다.
그사이에 무대 위에선 2번 노예의 가치 입증이 진행됐다. 2번은 처음부터 대단히 노골적인 방법으로 스스로를 홍보하고 있었다.
“잘한다!”
마리엔은 휘파람을 불고 손뼉을 쳤다.
제국의 꽃 선발대회 남자 부문 기획자이자 특별심사위원이었던 입장에서 평하자면, 오늘 경매는 흡사 타락한 제국의 꽃 선발대회 같았다.
2번은 자기소개가 끝나기 전부터 이미 상의를 벗고 시작했다.
마리엔은 살면서 볼 남자 맨가슴을 오늘 여기서 다 보고 가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맨엉덩이도 추가요.’
2번의 돌발행동에 장내가 떠나가라 폭발적인 환호가 터졌다. 마리엔은 과일 한 조각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 시각, 바일레온의 반응이 궁금하다면 너무 짓궂은 인간 같을까?
‘우리 비어스 경을 좀 볼까…….’
마리엔은 오페라글라스를 댄 눈으로 무대 오른쪽을 쳐다봤다.
7번으로 참가한 바일레온은 한쪽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비딱하게 서 있었다.
짝다리를 짚었는데 불량한 느낌이 안 나는 것도 신기했다.
무엇보다 바일레온은 3번처럼 이 상황을 모욕적으로 받아들여 씨근덕거리지 않았다.
4번처럼 자기 차례에 뭘 해야 할지 몰라 긴장한 모습도 아니었다.
다른 참가자들이 뭘 하건, ‘넌 그러려무나. 난 조용히 내 차례나 기다리련다.’ 하는 표정을 유지했다.
자신을 탐내는 시선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몹시 익숙한 듯한 태도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클럽에서 한 5, 6년 일한 줄 알겠네.”
그때 바일레온과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가 술에 취했을 때처럼 눈을 가늘게 흘겨 떴다.
다른 남자 몸 좀 그만 보라는 뜻이겠지. 오페라글라스까지 사용할 거리가 아닌데, 그렇게까지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하냐는 거겠지.
말로 안 해도 눈빛으로 충분히 이해가 됐다.
“헙.”
마리엔은 얼른 오페라글라스를 내려놨다. 때마침 바일레온이 좋은 깨달음을 주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 마리엔은 연인의 뜻에 진심으로 동의하는 바였다. 너무 가까이서 들여다보려 하면 거시적인 즐거움을 놓친다.
가령 무대로 난입한 입찰자 같은 것.
타이밍 좋게 글라스를 내려놓은 덕분이다. 마리엔은 광기에 휩싸인 여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장면을 놓치지 않고 지켜볼 수 있었다.
2번은 노예부터가 돌발행동을 일삼더니 입찰자도 꼭 그 모양이구나 싶었다.
어떤 연극도 이처럼 미쳐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과연.”
이제부턴 맨눈으로 봐야겠다.
“잔 채워드리겠습니다.”
“어어, 응.”
반사적으로 대답한 마리엔은 직원이 자리를 뜬 후에야 샴페인 잔이 채워진 것을 깨달았다.
마리엔은 이번에도 냄새를 맡고 샴페인을 한 모금 맛봤다. 술맛이 전혀 안 난다. 아까처럼 주스를 탄 탄산수였다.
그럼 방금 이 잔을 채운 직원이 내부 조력자?
마리엔은 고개를 홱 돌려 직원이 사라졌으리라 짐작되는 방향을 봤다. 안타깝게도 몇 초 남짓한 사이에 조력자는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확실히 목소리를 어디서 들어본 듯한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괜히 조력자를 찾아보려고 두리번거리다가 남의 의심을 사면 곤란하다.
상대는 위장용 가짜 술도 만들어줬는데, 공을 허사로 만들어선 안 되니까.
“워어어어!”
마리엔은 흥 오른 연기를 하며 가짜 샴페인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렇게 2번과 3번, 4번의 시간이 지나갔다.
5번은 앞선 2번보다 충격적인 짓을 저질러 입가에 애교점을 찍은 중년 부인에게 십팔만 골드라는 고가에 낙찰되었다.
마리엔은 6번이 낙찰될 때까지 단 한 번도 피켓을 들지 않았다.
붙임성 많아 뵈는 직원이 슬쩍 치즈 접시를 내려놓으며 ‘눈에 차는 노예가 없으시냐’고 묻기도 했다.
“있어. 있어. 때를 기다리는 것뿐.”
다시는 귀찮게 하지 말라는 뜻으로 조끼 주머니에 오십 골드를 웃으면서 찔러주자 직원은 입이 귀에 걸린 채 자리를 떴다.
말 한마디 붙였다가 거액의 팁을 받았으니 이보다 기쁠 수 없을 터다.
“자,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숙녀분들의 열의가 무대 위의 제게도 느껴지는데요.”
사회자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기다리고 기다리셨던 바로 그 7번 노예! 7번이 자기소개를 시작하겠습니다!”
드디어 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