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91)
바일레온의 차례가 되자 갑자기 직원 둘이 올라와 무대에 신기한 장치를 설치했다.
길쭉한 수직 옷걸이들 사이를 털실로 연결하고, 털실 끝엔 방울을 달아둔 장치였다.
옷걸이와 털실로 만든 공간의 중앙에는 등받이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사회자가 바일레온에게 긴 레이스 천을 건네며 원하던 게 이게 맞냐고 물었다.
바일레온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 레이스를 받아 들었다.
이를 보고 있던 5번 노예.
의욕 넘치는 행동으로 여섯 명 중에서 최고가에 낙찰되었던 그가 불만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건 불공평하지……!”
자기들은 아무 지원 없이 맨몸으로 했다는 뜻이렷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 순서에 이러이러한 물건을 준비해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바일레온밖에 없는 것을.
거기다 클럽 측도 마지막 순번인 바일레온에게 기대가 크기에 그가 해달라는 대로 들어줬을 터다.
‘불공평하긴 하지. 그래도 5번 당신은 잘했어. 최선을 다했어. 흔들리던 그 모습……. 쉽게 잊지 못할 거야.’
마리엔은 5번 노예에게 마음속으로 쌍 엄지를 치켜들었다.
“어머, 레이스로 눈을 가려?”
“보라색은 또 누가 고른 거지? 어쩜 색깔부터…….”
“눈 가리고 줄 타넘기 그런 건가?”
“쟤 허벅지 좀 봐.”
5번 노예가 씨근덕대건 말건 숙녀들은 무대 위 바일레온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상당히 관능적인 느낌의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바일레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바일레온은 저 털실 사이를 통과할 수 있는 거야? 눈을 뜨고 해도 힘들 것 같은데.’
털실에 몸이 닿아서 방울 소리가 나면 안 되는 놀이일 터다. 마리엔은 아주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일레온을 지켜봤다.
그리고 채 일 분이 되지 않아 걱정은 기우임이 밝혀졌다.
“머리를 왼쪽으로 숙여!”
“그렇지!”
“허리를 낮추고! 세상에, 허리 봐. 허리 봐.”
“어깨를 평평하게 만들어!”
앞을 볼 수 없는 바일레온 대신 손님들이 그의 눈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굉장한 유연성과 하체 힘으로 털실 하나를 통과한 그는 곧바로 다음 단계에 도전하려다가 멈칫했다.
이윽고 바일레온이 고개를 작게 내저으며 조끼 단추를 풀어내렸다. 확실히 몸을 꼭 조이는 조끼 차림으로는 움직임에 제약이 많을 것이다.
물론 마리엔은 그가 조끼를 벗는 두 번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초반부터 비밀 병기를 꺼내는군.’
가차없는 재상님. 5번이 분해서 훌쩍훌쩍 울면 어쩌려고.
“아아아악!”
바일레온이 조끼를 털실 경계 밖으로 툭 떨어뜨린 순간, 누군가 비명 같은 환호를 질렀다.
그게 시작이었다.
“다 벗느니만 못한 저런 셔츠를…… 잘 입었다!”
“어디서 구했니?”
“7번아 이리 온! 거기 말고 이쪽으로 와!”
정확히 마리엔의 예상대로, 동시에 바일레온이 의도한 대로 장내는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환호가 너무 큰 나머지 5번 노예가 고함을 쳐도 금세 묻히고 말 정도였다.
쏟아지는 박수와 응원, 희롱, 절규 속에서 바일레온은 침착하게 털실 사이를 통과해나갔다.
그러다가 가장 어려운 마지막 구간에 걸려 성마른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몸을 휘어도 각도가 안 나오니까 갑갑한 듯 보였다.
바일레온이 포마드로 끝만 고정한 갈색 머리를 손으로 헤집자 손님들 사이에서 휘파람 소리가 터졌다.
‘저것도 연기겠지. 성마르게 보이는 거…….’
마리엔은 그가 기어코 단 하나의 털실도 건드리지 않고 모든 장해물을 통과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의자가 있는 중앙의 공간에 다다른 바일레온이 손을 뻗어 허공을 휘저었다.
눈 가린 미남을 조종하는 재미를 깨닫고 만 손님들은, 그가 의자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일부러 엉뚱한 방향을 알려주기도 했다.
바일레온은 목소리 큰 손님의 말대로 계속 왼쪽으로 갔다가 털실을 건드렸다.
맑은 방울 소리를 들은 그가 당했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허공을 더듬어 의자 등받이를 찾아 헤맸다. 두 번의 실패 끝에 등받이를 잡은 그는 객석을 등지고 앉았다.
“자, 좋습니다. 아쉽지만 여기까지!”
사회자가 요란하게 손뼉을 치며 등장했다. 시작하기도 전에 이번 입찰이 치열할 것임을 모두가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 손님들이 죄다 피켓을 쥐고 있는 것부터가 그렇다.
준비, 땅!
마치 출발신호만을 기다리는 경주마 같았다.
“노예에게 앞으로 돌아앉으라고 할까요? 아니면 이대로도 보기 좋으니까 그냥 있으라고 할까요? 아, 뭐라고요? 더는 지체 말고 시작하라고요?”
사회자가 거기서 한마디만 더 했으면 볼만했을 텐데.
성질 난 숙녀들이 피켓을 표창처럼 던지는 모습이 상상됐다. 깐죽대던 사회자는 날아드는 피켓에 몸을 움츠릴 터다. 일종의 막간극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을 것이다.
아쉽게도 그에겐 눈치란 게 있어서 손님의 심기가 상하기 전에 멈추는 법을 알았다.
사회자가 입찰 시작을 알렸다.
“나! 나! 여기 14번!”
“받고 15번!”
본격적인 경매가 시작되자마자 다들 엄청난 속도로 피켓을 들었다.
사회자의 눈이 도무지 피켓 드는 순서를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냥 보이는 대로 호명하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입찰이 진행됐다.
손님들은 불만스러워하긴커녕 사회자에게 호명되자마자 다시 피켓을 번쩍 들었다.
왜냐면 곧장 다른 손님의 번호가 불리기 때문이다.
다른 노예와 달리 처음부터 일만 골드로 시작한 바일레온의 몸값은 빠른 속도로 뛰었다.
“1번 손님, 십오만. 29번 손님, 십오만오천 하셨습니다. 더 있으시면…… 네, 36번 손님 이십만 골드.”
마리엔은 한가로이 목 스트레칭을 했다.
“1번 손님이 바로 다시 드셨습니다. 이십만오천 골드.”
다들 돈 많아서 좋겠다.
마리엔은 포크를 들어 과일 조각을 찍었다. 속껍질을 벗기고 설탕 뿌린 자몽을 우물거리면서 바일레온을 쳐다봤다.
너무 무서운 사람.
광란의 열기 속에서 경매가 진행 중인데도 여전히 의자에 앉은 채 등만 보이고 있다.
그렇다.
바일레온은 등을 보이고 있다.
검은 시폰 너머로 단단한 조각 같은 근육질의 등이 비치도록, 여전히 아까와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어둠의 숙녀 군단 눈에 핏발이 서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저 무심한 듯한 앙큼함.
일단 사람 속을 태우는 셔츠부터 찢어주고 말겠어.
내 손에만 들어와라!
‘자기가 어떻게 보일지 알고 하는 거야. 완전 여우라니까. 꼬리 검사해야 해.’
그때 바일레온이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젖혔다. 조명을 받아 빛나는 갈색 머리카락이 고갯짓에 따라 스륵, 흘러내렸다.
“사십만.”
허스키한 목소리가 주변의 이목을 끌었다. 저런 식으로 대담하게 가격을 올리면 경쟁자를 빨리 제거할 수 있긴 하다.
“사십, 8번 숙녀분께서 사십만 골드를 부르셨습니다. 오늘 나온 입찰가 중에 최고금액이군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8번 숙녀’ 노부인 양옆에는 이미 동화 속 왕자님 분위기의 두 남자가 앉아 있었다.
오른쪽 남자는 붉은 기가 도는 다갈색 머리, 왼쪽 남자는 짙은 밤색 머리였다.
‘저쪽도 지독한 소나무 취향이로군.’
노부인은 이제 자신의 다채로운 갈발 컬렉션에 바일레온도 추가하려는 모양이다.
같은 갈발 선호자로서 노부인의 뛰어난 심미안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둘을 갖고 있으면서 세 번째를 탐내는 저 욕심, 정력, 그리고 재력까지 전부 존중하는 바였다.
“더 부르실 분 없습니까?”
사회자가 나무망치를 들어올리며 물었다.
“사십만 골드보다 더 부르실 숙녀분?”
곧 낙찰을 확정할 듯한 사회자의 말투에 바일레온이 눈 가렸던 레이스 천을 풀었다. 어깨 너머로 쳐다보는 시선의 끝에는 마리엔이 있었다.
이대로 자신의 정조를 남의 손에 넘길 거냐는 눈빛이 몹시도 가슴을 울렸다.
어차피 자신이 구해주리란 거 피차 아는 상황인데. 저렇게 상처 입은 눈으로 쳐다보면 주인님 마음이 약해지고 만다.
마리엔이 머리 위로 피켓을 들었다.
“백만!”
전용구역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마리엔에게 쏠렸다. 사회자가 말을 더듬었다.
“배, 백만, 백만 골드 맞습니까? 44번 손님, 실례지만 확인차 여쭙니다. 금액이 백만이 확실…….”
“백만 골드!”
마리엔이 재차 외치자 마리엔 근처에 있던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자가 얼른 정신을 수습하고 경매를 진행했다.
“네, 44번 손님께서 백만 골드를 부르셨습니다. 혹시 더 부르실 분 있나요?”
장내가 웅성거렸다. 마리엔이 지금 경매 진행 중인 노예의 원주인이라는 정보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원래도 가질 수 있는 것을 남들 앞에 내놓았다가 거액을 들여 되사기.
이런 짓의 목적은 단 하나다.
과시.
내가 이렇게 훌륭한 남자를 거느리고 있으며 백만 골드쯤이야 자랑질하려고 써버려도 아깝지 않다.
마리엔은 생긋 웃었다. 독한 술 섞어 먹기보다는 이쪽이 더 인상적인 신고식에 가깝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 든다.
“없습니까? 더 부르실 분?”
직전까지 사십만 골드를 부르던 노부인이 부들거렸다.
어지간한 금액이어야 비벼보든가 하지. 두 배도 아니고 백만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 중일 터.
단 하룻밤이나마 가질 수 있을 듯하던 극상의 미청년이 눈앞에서 날아가는 기분일 것이다.
짧지만 행복한 꿈이었다. 그쵸?
“셋 세는 동안 추가 입찰자가 안 나오면 이대로 확정하겠습니다. 셋…… 둘…… 하나! 44번 숙녀분께 백만 골드에 낙찰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사회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전용구역 내 직원들이 일제히 마리엔에게 박수를 보냈다.
북부 놈의 돈 백만 골드를 시원하게 국고에 쾌척한 마리엔은 ‘이 정도쯤이야’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 올렸다.
‘남의 돈으로 생색내기 최고로 재밌네.’
◇ ◆ ◇
바일레온이 자리로 돌아오기도 전에 클럽 직원이 먼저 다가왔다.
은쟁반에는 잉크병, 멋들어진 깃펜, 그리고 어두운 조명 아래서만 그럴싸하게 보이는 티아라가 놓여 있었다.
티아라는 낙찰자에게 주는 기념품이겠고, 나머지는 이걸로 빨리 수표 써서 달라는 뜻이겠다.
‘수금 속도 한번 빠르네.’
마리엔이 기억하기로 전용구역을 드나드는 인간들은 가명계좌를 몇 개씩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직원도 태연히 수표를 써달라고 온 것이다.
하나 마리엔은 수표책을 꺼내는 대신 바일레온에게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바일레온이 보폭을 더 넓게 해서 마리엔의 앞에 도착했다.
“우리 방 금고에 넣어둔 돈이 얼마나 되지?”
“현금과 금괴를 합치면 사십오만 골드쯤 될 겁니다.”
“뭐? 왜 그렇게 적어?”
은쟁반을 든 채 기다리는 직원의 눈썹이 들썩거렸다. 사십오만 골드란 거액을 현물로 들고 다니는 것도 놀라운데, 심지어 마리엔이 그 액수를 적다고 했기 때문일 터다.
아무리 부자만 드나드는 전용구역이라지만 부자에도 급이 있다.
입찰가로 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