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92)
“무거운 건 질색이라고 하셨잖습니까. 게다가 돈보다는 아가씨의 드레스를 더 넣어야 한다셨고.”
“아, 거기까지.”
마리엔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진주와 다이아몬드가 빼곡하게 박힌 손가방에서 수표책을 꺼냈다.
“글자 쓰는 거 세상에서 제일 귀찮단 말이야.”
“잠깐만요, 아가씨.”
바일레온이 끼어들었다.
“아가씨는 원주인이자 낙찰자니까 칠십만 골드를 쓰셔야 합니다. 헷갈리지 마세요.”
“오…….”
마리엔이 입을 헤벌리고 직원을 올려다봤다. 바보 미인 연기 완전 자신 있다.
“그런 거야?”
“아닙니다. 일단 수표에는 낙찰가를 쓰신 다음 저희에게 주십시오. 리디엔 님 몫인 삼십만 골드는 모레 전달 드리겠습니다.”
그렇지. 이런 식으로 회원에게 돌려주는 돈의 상당수가 위조화폐라고 들었다.
‘2황자, 범죄란 범죄는 죄다 저지르고 있구나. 너 같은 종자는 필히 까마귀밥으로 뿌려야만.’
마리엔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백만 골드를 쓴 후에 은쟁반 위의 티아라를 냉큼 집어다 머리에 썼다.
“감사합니다, 리디엔 님.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직원이 떠나가자 바일레온이 옆자리에 앉았다. 긴 다리를 앞으로 쭉 뻗고 한쪽 팔을 마리엔의 등받이에다 걸친 자세가 그의 옷차림과 잘 어울렸다.
“조끼 안 걸치고 계속 그 입으나 마나 한 셔츠만 입고 있을 거야?”
“그럴까 싶어요. 아가씨가 이렇게나 좋아하시는데.”
바일레온이 다시금 눈을 흘겼다.
“오페라글라스는 언제 챙기신 거죠?”
“응?”
“짐 쌀 때 못 봤는데.”
“나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그냥 손을 뻗었더니 거기에 있었어.”
마리엔이 귀엽게 눈을 깜빡였다. 바일레온은 연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작게 내저었다.
“뭐라 더 할 말이 없군요.”
“응, 그럼 쉿.”
“어쨌든 아가씨께서 백만 골드에 절 낙찰받으셨으니까…….”
바일레온이 느리게 한쪽 다리를 꼬았다. 그러면서 상체를 천천히 마리엔 쪽으로 비틀었다. 그는 키스라도 할 것처럼 고개를 가까이했다.
“제 오늘 밤은 아가씨의 것…….”
평소에 이런 대사를 머릿속에 넣고 다니나. 신기해하기만 하기에는 바일레온의 윗입술이 그리는 곡선이 너무도 매혹적이었다.
자신은 저 입술이 닿을 때의 감촉을 이미 안다. 마리엔은 순간 여기가 어딘지도 잊은 채 스르르 눈을 감았다.
“리디엔 님.”
갑자기 머리 위에서 들려온 방해꾼의 목소리에 마리엔이 얼굴을 찡그렸다.
“리디엔 님, 기억하십니까? 전 경매 전에 참가 신청을 받았던 직원입니다. 사장실로 모시라는 분부 받고 왔습니다.”
사장실이라는 말에 마리엔이 눈을 반짝 떴다. 바일레온은 눈을 내리깔았을 뿐, 애초에 감지도 않고 있었다. 그는 마리엔이 직원 쪽으로 몸을 돌리자 그제야 자세를 바로 했다.
마리엔은 거절당할 리 없다고 확신하는 투로 물었다.
“발렌틴도 데려가도 되지?”
“아…… 네,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세요.”
“안 돼?”
“아뇨. 아닙니다. 문제없습니다.”
직원이 불 꺼진 격투장 쪽을 가리켰다.
“가시죠.”
◇ ◆ ◇
‘이런 구조였구나.’
처음엔 컴컴한 격투장 안으로 안내하기에 내심 긴장했다.
정체가 들통난 게 아닌가. 그래서 어두운 곳에서 쓱싹 처리하려는 게 아닌가.
그러나 직원이 격투장 내 벽 장식을 잡고 돌리자, 딱 문 하나 크기의 벽이 반 뼘 정도 뒤로 빠졌다. 직원은 빠진 문을 옆으로 밀어 사람이 드나들 공간을 만들었다.
벽 너머엔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은 전혀 가파르지 않았고, 불도 환히 밝힌 상태였다. 이 계단의 끝에 사장실이 있나 보다.
‘전용구역과 바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일 거야. 당연히 4층 복도 쪽으로 난 원래 문도 있겠지.’
마리엔은 두 번 노크하는 직원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내부 구조도 좀 외울걸.’
오데트의 두꺼운 자료집 안에 내부 구조도가 있었을 것이다. 사실 마리엔은 이제 거기에 지도가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머리 복잡하게 외우는 건 몽땅 바일레온에게 맡겨버렸다. 자신은 오로지 연기에만 전념할 목적으로.
“사장님, 말씀하신 분을 모셔왔습니다.”
“들어와.”
“예.”
묵직한 문이 열리자 짙은 마호가니 색으로 꾸민 중후한 느낌의 방이 보였다.
마리엔은 체면 차리지 않는 리디엔 연기에 충실했다. 남 눈치 안 보고 고개를 젖혀가며 사방을 살폈다.
이렇게 넓은 방에 창문이 하나도 없는 게 이상했다.
‘게다가 다른 문도 안 보여.’
격투장 벽에 있던 비밀 문처럼 여기도 그런 식으로 문을 안 보이게 해놓은 것인가 싶었다.
“수고했어. 나가봐.”
“예, 사장님.”
직원이 고개를 숙인 후에 문을 닫고 나갔다.
방을 대강 둘러본 마리엔의 시선이 사장에게 이르렀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사장은 어깨에 금색 장식용 견장을 단 군청색 제복을 입고 있었다.
다른 사람과 달리 사장의 가면은 얼굴 전체를 덮는 식이었다. 가죽 의자에 앉아 색종이를 오리던 사장이 이쪽을 쳐다봤다.
“백만 골드의 숙녀분, 자리에 앉으시죠.”
중성적인 느낌의 미성. 사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은 순간 마리엔의 머릿속에 의혹이 떠올랐다.
‘남장여자……?’
여자라고 생각하고 보니까 확실히 여자다. 약간 여유 있는 제복 상의를 걸쳤어도 몸매를 다 감추기엔 역부족이었다.
실제로는 굉장한 곡선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부럽습니다.’
마리엔은 괜히 등을 꼿꼿이 세우고 앉았다. 사장이 오리고 있는 것은 종이꽃이었다. 어떻게 가위와 종이만으로 저런 정교한 꽃을 자를 수 있는지 신기했다.
“이 꽃은 오늘 밤의 주인공에게 드릴게요.”
사장이 완성한 종이꽃을 책상 너머로 건넸다. 마리엔은 감사하다며 종이꽃을 받아 들고는 진짜 꽃처럼 향기 맡는 시늉을 했다.
“어? 향이 나요.”
“향수를 뿌린 종이로 만들어서요.”
“그렇구나.”
마리엔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이거 주려고 절 부르신 건가요?”
“리디엔은 오늘 우리 클럽에 백만 골드를 안겨줬는데 겨우 종이꽃 하나로 때울 순 없죠.”
사장이 뒤늦게 양해를 구하는 척했다.
“미안. 리디엔이라고 편히 불러도 되나요?”
“물론이에요.”
백만 골드가 참 인상적인 액수긴 하다. 근데 아까 아래층에서 바일레온이 짚은 대로 원주인의 몫을 빼면 클럽은 칠십만 골드만 가져야 한다.
‘은근슬쩍 백만 골드가 다 자기들 몫인 것처럼 말하네.’
그건 그렇고 대화가 진행될수록 바일레온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사장은 오늘 바일레온을 처음 보니까 못 알아챌 수 있지만 마리엔은 아니다.
‘나한테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야.’
그러고 보니 바일레온은 사장실에 들어온 직후부터 전혀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사장이 말을 걸지 않은 건 둘째 치더라도 그가 중간에 나서서 마리엔의 말을 거들 법도 한데 어째서일까.
‘바일레온이 아무 이유 없이 이렇게 행동할 리 없어.’
마리엔은 사장이 등 돌린 틈을 타 책상 아래로 연인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게 있다면 손바닥에 적으란 뜻이었다.
바일레온이 즉시 지분거리는 척하면서 마리엔의 손을 그러쥐었다. 그가 손바닥에 쓴 내용은 그야말로 놀랄 노 자였다.
‘눈앞의 사람이 1황비라고?’
마리엔은 연인이 재빠르게 ‘목소리, 억양, 몸짓’이라고 적는 데까지 보았다.
‘그래서 바일레온도 처음엔 긴가민가하다가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확신했구나.’
왜 바일레온이 입을 다물고 있는지 이해가 갔다. 마리엔은 1황비와 안면이 없다. 둘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바일레온은 다르다.
바일레온은 어릴 적부터 황궁에 출입했고, 내궁 여자들은 제국 아카데미 학생이던 그가 장성해 재상이 되는 모습을 지켜봐왔다.
황제만큼 자주는 아니더라도 공석에서든 사석에서든 바일레온과 이따금 대면했다.
비록 바일레온이 가면으로 얼굴 절반을 가리고 평소와 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다고 해도, 입을 여는 순간 1황비의 의심을 사고 말 터다.
아무리 1황비가 얼굴을 가린 채 남장했어도 바일레온이 그녀를 알아차렸듯이 말이다.
“샴페인은 잘 마시는 것 같던데 브랜디도 괜찮나요?”
똑똑똑, 똑, 똑.
마리엔이 들어온 격투장 쪽 문이 아니다. 벽 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묘하게 끊어서 두드리는 것 같더니, 1황비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벽에서 문이 생겨났다.
문을 열고 들어온 여자는 1황비와 마찬가지로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기골이 왠지 장대한 느낌이었다. 마리엔은 순간적으로 여자의 드레스에 달린 커다란 퍼프 소매 때문인가 하고 생각했다. 체격 커 보이는 이유가 스타일링 때문이라고 지레짐작한 것이다.
여자가 함부로 들어왔는데도 1황비가 짜증 내지 않았다. 그래서 마리엔은 지금 들어온 여자가 1황비의 사촌이리라고 추측했다.
잠깐 자리를 비웠던 서류상 사장의 귀환이라고.
“나의 왕이시여.”
그러나 여자, 아니 남자가 입을 연 순간 마리엔은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눈 감고 들어도 저음의 남자 목소리였다.
“자기 왔구나.”
1황비가 그를 반겨 맞았다. 마리엔은 아주 잠깐이나마 1황비가 클럽에 새 애인을 숨겨뒀나 의심했다.
‘황제의 남동생은 전 애인이고, 황제는 현 남편이고, 남편의 아들, 즉 제 의붓아들과 정을 통하는 와중에 또 한 명을 만날 수도 있는 거잖아.’
체력이 얼마나 좋아야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왠지 1황비라면 할 수 있을 듯했다.
‘제발 새 애인이어라. 차라리 새 애인이어라. 2황자만 아니면 돼. 만일 그놈이면 상황이 너무 복잡하게 되잖아.’
보고 싶었다느니. 어디에 있다 이제 오냐느니.
척 보기에도 보통 사이가 아닌 두 사람이 서로를 마음껏 만지는 와중이었다.
마리엔은 바일레온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가 낭패라는 듯이 입술 안쪽을 지그시 깨물었다.
손바닥에 따로 적지 않아도 눈빛 교환만으로 충분히 알겠다.
‘2황자 맞구나…….’
다음 순간, 2황자와 시선이 마주친 마리엔은 영혼 없이 까르르 웃었다.
1황비가 의붓아들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오늘 밤 경매에서 거액을 낸 손님이라고 마리엔을 소개했다.
‘네놈만은 아니길 빌었는데. 1황비랑 네가 붙어 있으면 머리가 나쁜 쪽으로 더 잘 돌아간단 말이야.’
악인과 악인이 만나 제곱 효과를 낸달까. 마리엔은 한숨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원래 자신들의 목표는 서류상으로 사장인 1황비의 사촌을 잡아두는 거였다.
원작에서 위장잠입한 오데트 커플이 대면했던 이도 1황비의 사촌이었다.
1황비 본인이 아니라.
근데 어디서 또 진행이 살짝 꼬였는지, 사촌은 어디 가고 남장한 1황비가 사장실에 앉아 있었다.
이젠 여기에 여장한 2황자까지 합류했으니 마리엔의 머리가 핑핑 돌 만도 하다.
‘이렇게 된 이상…… 이 언니가 너희 둘을 한꺼번에 사로잡아준다.’
바일레온이 옆에 있긴 하지만 그는 목소리를 못 낸다. 그의 언변에 의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