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93)
“그때 시체가…… 벌떡! 시체가 벌떡!”
한껏 긴장이 고조되다가 벌떡, 하는 큰 소리가 나자 1황비 무릎 위에 앉아 있던 2황자가 움찔했다.
1황비는 그게 웃긴지 손가락질까지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영감이 얼마나 기겁했겠어요? 완전히 혼이 빠져서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는데 거기가 하필 또 낮은 탁자로 위장한 빨래 바구니야. 푸짐한 엉덩이가 바구니에 끼어서는 이렇게, 이렇게 움직이기 시작하죠?”
마리엔이 팔다리를 휘저으며 우스꽝스레 버둥거리는 시늉을 했다. 몸 사리지 않는 광대 짓에 1황비의 웃음소리가 커졌다.
“이렇게, 이렇게.”
1황비가 어깨를 흔들었다.
“자기도 움직여보렴. 이렇게, 이렇게 흔들었다잖아.”
“뭘 움직여.”
“움직이는 건 자기 전문이지. 방금만 해도 놀라가지고 내 무릎에서 족히 한 뼘은 튀어올랐으면서.”
“한 뼘 아니거든?”
“그럼 두 뼘이게?”
1황비가 웃으면서 2황자의 엉덩이를 세게 내리쳤다.
“어서 방금처럼 튀어올라보란 말이야, 이 엉덩이 가벼운 망둑어야!”
그러자 2황자가 갑자기 입술을 길게 늘이며 웃었다. 분명 엉덩이를 맞고 욕을 들었는데 웃었다. 마리엔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하하하, 재미있네. 그래서 네가 혼쭐내주려던 그 영감이 어쨌다고?”
2황자가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했다. 혹시 불륜 커플이 싸우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채로 구경하던 마리엔은 얼른 이야기를 재개했다.
한편 제 가짜 무용담에 낄낄거리는 두 사람을 보면서, 마리엔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타고난 간신이구나…….’
오데트의 눈치를 살피고 귀에 거슬리지 않는 말만 하는 데에 이골이 나서려나.
마리엔은 수완 좋고 잔혹한 2황자 커플을 벌써 한 시간 넘게 이 방에 잡아두는 중이었다.
오직 재롱과 눈치로 말이다.
감히 말하건대 2황자의 심복이었던 레슬리 아나이스도 마리엔 자신만큼 2황자의 호감을 빠르게 사지 못했을 것이다.
‘저거 봐. 좋다고 웃네. 재밌니? 너희가 재밌으면 됐다…….’
그나저나 오늘 일이 끝나고 나면 바일레온이 자신에게 정이 좀 떨어지지 않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그는 옆에서 연인의 행각을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까다로운 권력자의 비위를 심하게 잘 맞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뭐.’
간신.
역시 간신.
그에 비해 바일레온 비어스는 충신.
너무도 다른 우리가 어쩌다 연인이 되었을까요?
“한데 네 하인은 원래 말을 못 하나? 아까부터 한마디도 안 하기에.”
2황자가 입 다물고 있는 바일레온을 걸고넘어졌다. 마리엔이 얼른 대답했다.
“말만 하다 뿐인가요. 노래도 끝내주게 잘 부른답니다. 다만 아까 누가 섞어준 술을 진탕 마시고 목이 잠겨서요. 입 열면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나기에 조용히 있으라고 했죠.”
“진탕이라기엔 겨우 한 잔뿐이었는데요.”
1황비가 끼어들었다. 몇 시간 전, 마리엔에게 일부러 부딪쳐 벌주를 마시라고 트집 잡던 여자. 바일레온은 그녀가 사장실에서 보낸 사람이라고 했었다.
‘과연 1황비 본인이 시킨 짓이니까 바일레온이 마신 양을 아는군.’
하지만 마리엔은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 대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제가 말씀 안 드렸군요. 제 하인은 다 좋은데 딱 하나, 술이 약해요. 아까 방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침대에 고꾸라져서는……. 에휴, 술친구 못 하는 거 그게 참 아쉽네요.”
“술친구.”
1황비가 마리엔의 말을 받았다.
“이제부터 우리가 해주죠.”
“오오, 정말이신가요?”
마리엔은 신난 얼굴로 무릎을 두드렸다.
“그럼요. 가입정보에 따르면 리디엔의 재산 규모가 육천만 골드에 달하던데 우리로서도 리디엔 같은 술친구를 마다할 이유가 없죠.”
“아하하! 맞아요. 맞아요!”
마리엔은 자기가 뭐에 동조 중인지도 잘 모르는 채로 손뼉을 쳤다. 마리엔은 이어서 수도 사교계 데뷔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사교계가 돈만 있다고 들어갈 수 있는 덴 아닌가 보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인맥을 쌓아야겠다!”
“그래서 우리 클럽에 온 거군요.”
“네네! 여기 인맥으로 귀족이 여는 무도회에 초대를 받고, 그러다 보면 아는 귀족이 많아지고……. 결국엔 황궁에도 가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풉.”
2황자가 마시던 술을 뿜었다. 그는 드레스가 더러워진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황궁에 가고 싶나?”
“네! 황궁에 갈 때 입을 드레스랑 보석까지 미리 맞춰놨답니다.”
“갈 수 있을 것 같나, 본인이?”
마리엔이 왜 안 되냐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제 생각엔 늦어도 다음 시즌엔 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2황자가 마리엔을 가리키며 웃다가 브랜디가 담긴 술잔을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
“리디엔의 황궁 입성을 위하여!”
어딜 봐도 조롱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그러나 마리엔은 희희낙락하며 얼른 자기 몫의 잔을 들었다.
“위하여!”
2황자 커플은 리디엔을 적당히 구슬려 벗겨먹을 목표물로 낙점한 모양이었다.
상식이 부족한데 그 상식을 채울 공부는 질색하고 미남을 밝히는 시골 출신 졸부 주제에 감히 황궁 입성을 넘보는 멍청이.
근데 좀 웃긴 멍청이.
이 정도로 받아들인 듯했다. 마리엔은 혼신을 기울인 자신의 연기에 스스로 만족했다.
피유우우우, 펑!
때마침 어디선가 폭죽 소리가 들렸다. 마리엔이 두리번거리자 1황비가 웃었다.
“이 시간이면 우리 클럽 후원에서 폭죽을 쏘아 올린답니다.”
“아아, 그 소리였구나.”
요란한 폭죽 소리.
그것을 기점으로 카인이 이끄는 수도경비대가 1층 후문부터 직원들을 제압해나갈 것이다.
오데트는 수도경비대장에게 유혈사태를 최대한 피하도록 일렀다. 부득이한 경우에만 무기를 써서 제압하라고 했다.
사실 전장의 사신이자 철혈 공작인 카인의 등장만으로도 대부분의 클럽 경비가 무장해제 당하겠지만 말이다.
‘아래층 손님 여럿이 비명을 지르면 4층에서도 들리겠지.’
4층 경비들이 이에 대응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리엔 일행은 미리 손을 써두었다.
바로 야간근무 경비조가 잠 깨려고 마시는 진한 차에 수면제를 탄 것이다. 차는 맛이 비슷하되 각성 성분이 훨씬 적은 다른 차로 바꿔뒀다.
‘이제 자꾸 머리가 무거워지면서 선 채로 꾸벅꾸벅 졸게 될 거야.’
카인이 선두에서 빠른 속도로 뚫고 올라온다.
그가 4층에 도착할 즈음이면 우락부락한 경비들은 완전히 곯아떨어진 후일 것이다.
카인 그 피에 굶주린 미친놈은 무혈입성에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실 터다.
이윽고 카인이 사장실에 들이닥치면 모든 상황 종료.
마리엔은 사장실 한구석의 괘종시계로 아래층의 진척 상태를 짐작했다.
‘이제 1층은 대충 진압됐겠고 카인 놈이 2층으로 들어섰…….’
갑자기 격투장 계단 쪽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이쪽은 2황자가 한 노크마저 생략한 채 문을 왈칵 열었다.
“비상사태야!”
그 말과 함께 사장실로 뛰어 들어온 여자가 등 뒤로 문을 잠갔다. 방금까지 웃고 떠들던 사장실 사람들은 여자의 등장에 일제히 문 쪽을 돌아봤다.
여자의 낯익은 드레스가 마리엔의 눈에 들어왔다.
마치 한껏 멋 부린 공작새를 떠올리게 하는 청록빛 드레스. 거기다 어깨를 비틀 때마다 보이는 나뭇가지와 나비 그림.
“넌…… 아까 나한테 억지 쓰던 걔잖아.”
상대도 마리엔을 알아봤다.
“이 바보를 왜 여기 들였어?”
“바보라니.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를.”
“어서 내보내. 어이, 너. 당장 나가……. 아니지, 잠깐만.”
여자는 문손잡이를 잡은 채 마리엔을 노려봤다.
“얘를 살려 보내면 우리 행방을 불겠지?”
순간 여자의 두 눈에 살기가 돌았다. 겉모습은 똑같은데 안에 들어 있는 인격이 완전히 달라진 느낌이었다. 마리엔은 이게 무슨 소리냐는 눈빛으로 1황비에게 매달렸다.
‘우리 이제 술친구라며. 저 미친 여자한테서 나 좀 살려줘.’
대충 그런 눈빛을 보냈다.
“콘스탄체.”
1황비가 의붓아들을 옆으로 가볍게 밀며 말했다. 아마 여자의 이름이 콘스탄체인가 보다.
“대체 무슨 일이니?”
“수도경비대가 쳐들어왔어.”
“뭐?”
2황자가 벌떡 일어서며 끼어들었다.
“그 새끼들이 감히? 아니, 왜?”
“이유는 모르겠어요. 근데 경비대 선두에 있는 남자가 무슨…… 인간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경비대장 얼굴은 알잖아요. 경비대장이 아니었어요.”
2황자가 말을 멈춰보라며 손을 들었다.
“잠깐. 인간이 아닌 것 같다는 게 무슨 뜻이지?”
“말한 그대로예요. 우리 경비가 2층에서 쏜 석궁 화살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손으로 잡더라니까요?”
2황자 커플이 눈을 마주쳤다. 마리엔도 바일레온과 눈을 마주치고 싶었지만, 상황상 그럴 수가 없었다.
쟤들은 되는데 우린 안 된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기색을 비쳐선 안 되는데, 지금 마리엔 디디의 입가는 실룩거리기 일보 직전이니까.
“블랙우드야.”
“으음…….”
“전 대륙을 통틀어 그게 가능한 새끼는 블랙우드밖에 없지.”
2황자가 욕을 뱉었다. 1황비는 깊은 생각에 잠겼는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마리엔은 괘종시계를 안 보는 척 보기 위해 제법 신경을 써야 했다.
‘그래, 다들 차라리 북부 놈 욕하면서 여기 있으렴.’
지금쯤이면 카인이 2층 경비들을 초토화시켰으려나. 카인 놈이 사장실 문을 박살 낼 때까지 과연 몇 분이 걸릴까.
긴장과 흥분, 초조함이 마리엔의 심장을 두방망이질 치게 했다.
“블랙우드라면 그 공작 말씀하시는 거예요? 4황녀랑 약혼했다는 남자?”
콘스탄체가 이해 안 된다는 투로 물었다.
“전하…….”
여기까지 내뱉은 콘스탄체가 사나운 눈으로 마리엔을 노려봤다. 마리엔은 얼른 바보의 눈으로 응수했다.
“전.”
마주친 것이 너무 순도 100퍼센트 진실된 바보의 눈이다 보니 콘스탄체는 조금 고민되는 모양이었다.
지금이라도 말실수를 덮을까 말까. 그게 저 바보에게 통할까 안 통할까.
“전…… 하지만…….”
그래, 좀 더 해봐. 괜찮은 것 같아. 마리엔은 속으로 응원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돼요.”
콘스탄체가 문장을 완성했다.
“블랙우드가 권세 높은 공작이라지만 북부나 사교계 한정이죠. 놈에게 수도경비대를 움직일 권한은 없는데요?”
“오데트.”
2황자가 이를 갈며 말했다.
“그 계집애를 살려두는 게 아니었어. 때를 봐서 제 어미처럼 죽여버렸어야 하는 건데.”
“나리.”
전하, 라고 부른 말실수를 어떻게든 덮었던 콘스탄체가 마리엔의 눈치를 살폈다.
“이 자리에 저희만 있는 게 아니에요.”
마리엔은 한 번 더 바보의 눈을 했다. 그러나 이것도 효용을 다한 모양이었다.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