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te of the Perennial Sub Male Lead is in My Hands RAW novel - Chapter (96)
‘일 분 안 지났나? 일 분 넘은 것 같은데. 아, 벌써 호흡 달려.’
마리엔은 눈을 질끈 감은 채 바일레온과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초 단위로 알려주는 시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그럼 냉정하게 시계만 보고 있을 텐데.
‘카인 놈은 대체 언제 우릴 찾아내는 거야? 이 망할 놈. 죽음을 앞둔 순간에 네 생각 하게 하지 말라고. 짜증 난다고.’
만일 카인이 제때 도착 못 하면 이대로 죽는다. 마리엔은 그 사실이 도통 믿기지 않았다.
진짜 죽나? 이 시점에서? 오데트의 복수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는데 자신과 바일레온이 죽으면 이다음 전개는 어떻게 하라고.
‘설마. 지금 나 혼자면 몰라. 바일레온이 함께 있는데 진짜 죽기야 하겠어? 난 엑스트라지만 바일레온은 원작의 서브남주야. 살아서 외전에까지 등장하는 서브남주.’
바일레온에게 숨겨진 아가미라도 있지 않은 이상, 그 혼자 물속에서 이십 분 이상 버티기 같은 건 불가능하다.
바일레온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 말은 몇 분 내로 창고 문이 열린다는 뜻이며, 함께 물에 잠겨 있는 마리엔 자신도 살게 됨을 뜻한다.
‘조금만 참으면 돼.’
마리엔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게 오늘의 제일 힘든 구간인가 봐.’
노예 경매 무대를 지켜보며 가짜 샴페인을 마시던 시간이 꿈만 같았다. 그러는 사이 코와 목구멍 사이가 얼얼해졌다.
살려줄 거면 지금 당장 살려주든가. 아니면 지금 당장 고통 없이 죽여버리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숨 쉬고 싶어. 숨 쉬고 싶어. 숨 쉬고 싶어.’
물속만 아니면 울었을 것이다.
‘집에 가고 싶어.’
차갑고 축축하고 숨도 못 쉬는 여기 말고 다른 곳에 있고 싶다. 숨만 쉴 수 있다면 시궁쥐 나오는 수도 뒷골목에 떨어져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버티고 또 버텨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물은 사라지지 않았다.
‘더는…… 못 하겠어.’
한계에 이르렀다. 마리엔은 공기 대신 물이 들어온다는 걸 알면서도 숨을 들이쉬었다. 코로 물이 들어오는 느낌이 고통스러웠다.
그때 바일레온이 다급한 손길로 마리엔의 눈두덩을 문질렀다. 눈을 떠보라는 뜻인 것 같았다.
이에 마리엔은 간신히 눈을 떴다. 바일레온이 코앞에 있었다. 그가 눈으로 말했다. 조금만 더 버티라고. 이제 몇 초 후면 숨을 쉴 수 있다고.
‘미안해요.’
몸이 통제를 벗어났다. 마리엔의 코로 자꾸만 물이 넘어갔다. 정신이 점점 아득해졌다.
‘근데 정말 일 초도 더는 못 버티겠어…….’
바일레온이 고개를 마구 저었다. 마리엔 자신은 울고 싶어도 안 울었는데, 아직 버틸 만해 보이는 바일레온이 먼저 울고 있었다.
바일레온의 눈물이 섞여서 그런가. 입술 사이로 들어온 물에서 짠맛이 약간 나는 것도 같다.
마리엔은 힘없이 눈을 감았다.
쾅쾅쾅, 하고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의식 너머로 멀어졌다.
◇ ◆ ◇
눈이 안 떠진다. 누군가가 자꾸 마리엔의 뺨을 건드렸다. 가볍게 때리는가 싶더니 코밑에 뭉툭한 뭔가를 갖다 대기도 했다.
“마리엔, 마리엔, 정신 차려봐요.”
이건 누구 목소리지? 바일레온인가?
“의사를 데려와!”
귀 터지겠네. 누가 이렇게 무식하게 소리를 질러.
“마리엔, 제발.”
정신이 없었다. 전 그저 머리 대고 편히 누워서 쉬고 싶을 뿐인데. 오늘은 종일 힘든 하루였단 말이다.
이제야 좀 발 뻗고 한숨 돌리려는데 여기저기서 방해가 들어온다. 마리엔은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갑자기 마리엔의 눈앞에 총천연색 풍경이 펼쳐졌다.
“오늘도 오셨네요. 마침 손님이 좋아하실 만한 물건이 들어왔답니다.”
“매번 감사합니다.”
“저게 제국 아카데미 교복……?”
“이모, 있잖아요. 궁금한 게 있는데.”
“너구나! 헌책방 사장이 그러는데 우리 상가에서 제국 아카데미 합격생이 나왔다는 거야. 처음엔 내 귀를 의심했다니까.”
“얘, 비결이 뭐니? 네가 됐다면 공부 머리라고는 없는 우리 애도 어쩌면…….”
“학생 대표였구나…….”
“와, 비어스 선배 또 고백받았대. 이번 주 들어 몇 번째지? 신기록이지 않아?”
“이쪽 본다, 본다!”
“소문 들었어? 얼마 전에 황궁에 들어간 황녀 말이야. 몸은 엄청 병약한데 소름 끼치게 예쁘대. 사람이 얼마나 예뻐야 소름이 끼칠까?”
누가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여러 명이 동시에 쏟아내듯 하는 목소리가 어지러이 섞였다. 너무나 많은 장면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게 다 뭐야.’
마리엔은 미간을 찡그렸다.
‘어디서 튀어나온 기억이지? 난 이런 거 겪은 적 없는데.’
쪼그린 자세로 진열장을 닦다가 가게 문 열고 들어오는 손님을 넋 놓고 쳐다본 경험 따위 없다.
‘비어스 선배?’
완전히 처음 듣는 호칭이다. 비어스 경이 아니라 비어스 선배라고? 마리엔은 혼란스러움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뇌가 같이 흔들리는 느낌이 났다. 어지럽고 숨이 가빴다.
‘……근데 내가 숨을 쉬고 있긴 하나?’
콜록!
마리엔이 물을 토해냈다. 바일레온은 얼른 입술을 떼고 연인의 상체를 일으켜 안았다.
“마리엔, 정신이 들어요?”
“콜록, 으, 으읏.”
“숨을 안 쉬었어요. 당신이, 숨을 안 쉬어서.”
바일레온의 말이 짧게 끊겼다.
“불러도 대답이, 없고, 숨을, 숨을 안 쉬어서. 그래서 심폐소생을 했어요. 십 분이, 넘도록 했는데 당신이…….”
“흐으, 읏.”
“움직이지 않았어.”
“콜록!”
“그렇지만 이젠 괜찮아요. 잘했어요. 잘 견뎠어요. 다 끝났으니까…….”
“바일, 레온.”
“괜찮아…….”
마리엔은 숨을 몰아쉬며 그를 올려다봤다. 바일레온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상황이 잘 이해가 안 됐다. 숨을 안 쉬었다니 내가 잠깐 죽었던 건가? 하지만 마리엔의 눈엔 바일레온의 상태가 더 나빠 보였다.
그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등을 쓸어내리는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이렇게 두려움에 질린 바일레온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바일레온.”
“그래요. 마리엔. 여기 있어요, 내가.”
“저…… 죽었었나요?”
바일레온이 핏발 선 눈으로 마리엔을 쳐다봤다. 그의 얼굴에서 유일하게 붉은 곳이 바로 두 눈이었다. 바일레온의 눈을 마주하자 의식 잃기 직전이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도 같았다.
“아니.”
바일레온이 잘라 말했다.
“아뇨. 마리엔이 왜 죽어요. 마리엔은 무사해요. 당신은 무사해. 지금 숨 쉬고 있잖아요. 돌아왔어요.”
“어, 그러니까…….”
“괜찮아요. 이제 괜찮다니까.”
그 말을 하는 바일레온은 왠지 모르게 필사적이었다.
방금 자기 입으로 십 분 넘게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말했으면서. 지금은 마리엔의 심장이 잠깐 멎었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려는 듯이 보였다.
마리엔은 이어진 연인의 말을 듣고 왜 바일레온이 그런 식으로 반응하는지 깨달았다.
“두 번째예요, 마리엔……. 내가 당신을 지키지 못한 게.”
마리엔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바일레온의 턱에 손을 가져다 댔다. 핏기 없는 입술을 어루만지고는 차디찬 뺨을 감쌌다.
“비어스 경은 두 번이나 제 목숨을 구한걸요. 저 대신 칼을 맞은 사람도 비어스 경이고, 다시 숨을 쉬게 해준 것도 비어스 경이잖아요. 그리고 잊으셨나 본데요.”
마리엔이 해사하게 웃었다.
“사실 비어스 경이 절 구해준 적은 셀 수 없이 많잖아요. 제 목숨이 간당간당할 때마다 당신이 나타났어요.”
마리엔은 바일레온의 품에 안기며 말했다.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세요. 약속.”
“…….”
“약속.”
“……마리엔.”
“어허.”
“……약속, 할게요.”
마리엔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참, 그런데 증인은요? 콘스탄체는?”
“무사해요.”
바일레온이 마리엔을 부둥켜안으며 말했다.
“당신만 눈을 안 떴어요.”
내가 콘스탄체보다 중요도 서열에서 밀리나? 마리엔은 연인에게 꽉 끌어안긴 채 그런 생각을 했다. 왠지 모르게 억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나 열심히 발로 뛰며 여주인공의 대업을 돕는데도, 위장잠입 에피소드에 잠깐 나오는 클럽 사장보다 덜 중요한 목숨이라니.
안 그러고서야 어떻게 세 명이 동시에 물에 빠졌는데 마리엔만 저승 문턱을 찍고 오냔 말이다.
이거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싶다.
“비어스 경.”
“심폐소생을 하는 내내 자꾸 아까 그 장면이 생각나서……. 눈앞에서 마리엔의 숨이 멎어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응, 으응……. 비어스…… 바일레온, 켁!”
마리엔은 연인의 등을 두드렸다.
“나 짜부라지고 있어요. 숨 좀 쉬게…….”
“미, 미안해요.”
바일레온이 급히 몸을 뗐다. 마리엔은 그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망토로 몸을 가린 콘스탄체는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는 중이었다. 2황자 사건에서 중요증인으로 활약할 예정이기 때문에 그녀 옆에는 네 명의 경비대원이 배치되어 있었다.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만 저쪽도 명줄 한번 질기네.’
스륵.
그때 누군가가 마리엔의 어깨에 검은 코트를 걸쳐주었다. 마리엔은 고개 돌려 코트의 주인을 쳐다봤다. 카인이었다.
“무슨 짓이야?”
“몸 가리라고.”
“그렇게 뭐라 할 거면 내가 드레스 벗기 전에 문을 열어주지 그랬어.”
카인이 잇새로 내뱉듯이 말했다.
“물에 젖어서 다 비친……. 하여튼 가려. 내 옷이라 불쾌해도 참아. 비어스의 셔츠는 네게 벗어주기 마땅치 않으니까.”
그 말에 마리엔은 바일레온의 셔츠를 쳐다봤다. 나, 방금 죽다 살아난 사람치고 너무 밝히나? 물에 젖기까지 한 바일레온의 셔츠는 안 입는 편이 오히려 건전해 보일 것 같았다.
한편 바일레온은 묵묵히 마리엔의 옷 수발을 들었다. 소매에 팔을 꿰게 한 다음 코트 단추를 채워주었다.
카인은 190센티미터에 가깝고 마리엔은 이 방에서 제일 작은 사람이다. 카인의 코트를 걸친 마리엔은 옷에 거의 잡아먹힌 모양새가 됐다.
“마리엔, 팔 내밀어봐요.”
마리엔은 바일레온이 소매 접어주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시선을 흘낏 옮기자 잔뜩 굳은 얼굴의 북부 공작이 눈에 들어왔다.
“고마워, 블랙우드 공작.”
소매를 접고 있는 바일레온과 한 걸음 뒤에서 인상 쓰고 있던 카인이 동시에 움찔했다.
“네가 아니었으면 저 쇠문은 열리지 않았겠지. 나와 비어스 경은 네가 제때 도착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사실 넌 제때 도착했어. 내가 살아났으니까.”
“…….”
“고마워. 인사는 제대로 해야지 싶어서.”
따지고 보면 코트 벗어준 것도 카인 나름의 호의였는데 본능적으로 비아냥대버렸다.
안에 갇힌 사람이야 일 초가 한 시간 같았지만, 밖에서 뛰어다니는 사람은 정반대 입장이었을 터다.
어디에 갇혔는지도 모를 저희를 구하기 위해 카인이 얼마나 미친 듯이 뛰어다녔을지 생각하니까 입을 닫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근데 왜 아무 말도 안 하지?’
사람이 죽다 살아나더니 이제 좀 예의란 게 생겼냐. 뭐 그런 식의 빈정거림이 돌아올 줄 알았다.
한데 카인은 복잡미묘한 눈으로 마리엔을 쳐다볼 따름이었다. 바일레온은 진작에 끝냈어야 할 소맷단 정리를 아직 하고 있고.
‘분위기가…… 이상하네.’
콘스탄체가 불쑥 끼어들어 이 미묘한 분위기를 깨부쉈으면 하는 바람마저 들었다.
하지만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