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Alchemist RAW novel - Chapter (106)
최초의 연금술사-106화(106/175)
106화. 스페인 최초의 던전(3)
신기한 것은 박성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마리아까지 하늘을 날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녀의 등에는 날개가 있었다.
다만 검은색의 날개는 한쪽만 돋아있어서, 제대로 비행하지 못했다.
추락했다가 비상하고, 추락했다가 다시 비상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박성일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박성일은 좀 당황한 것처럼 보였는데, 득달같이 달려드는 마리아가 짜증스러웠는지 이내 마음먹고 주먹을 날렸다.
콰앙!!-
그 주먹을 얻어맞은 마리아가 추락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프랑코가 내 팔을 잡고 말했다.
“빨리 가봅시다!”
자동차로 현장에 도착했을 때 마리아는 사라지고 박성일만 남아있었다.
메건과 이 집의 많은 직원들도 바깥에 나와 있고.
마리아가 추락하면서 만들어졌을 크레이터라고 불러도 좋을 커다랗게 파인 구멍이 바닥에 보였다.
“무슨 일이야?”
박성일에게 물었더니 그가 대답했다.
“여기 와서 형님을 찾고 있었는데, 비명이 들리는 거예요. 가봤더니 도망친 그 여자가 형수님을 해치려고 하고 있더라고요.”
“그게 정말이야?”
나는 즉시 메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저한테 소리를 지르기는 했지만, 성일 군이 제때 와주어서 다행이었죠.”
나는 많이 놀랐을 그녀를 안아주었다.
프랑코에게 말했다.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때까지 스페인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계약만 믿고 돌아가면 안 된다.
나중에 어떤 문제가 불거질지 모르니까.
처음에는 쉽게 해결될 것 같았던 일이 이렇게 복잡하게 흘러가서 유감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더 자연스러웠다.
최초의 던전만큼 큰 이권이 걸린 일이 이토록 쉽게 해결될 리가 없으니까.
“죄송합니다……”
프랑코가 얼굴을 쓸어내리며 괴롭게 말했다.
“아들이 깨어난 뒤에 녀석에게 이야기를 듣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저도 일선에서 물러난 지 좀 되어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저보다는 아들이 더 잘 알고 있죠.”
* * *
저녁 식사를 했지만 어제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프랑코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약속한 게 깔끔하게 이행되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었다.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도 박성일만은 와구와구 잘도 먹었다.
“와, 이 집 음식이 진짜였네요. 괜히 맛집 찾아다닐 필요 없었어요. 짜기만 하고 서비스도 별로였는데. 이건 진짜 맛있네?”
타국의 S급 헌터와 부딪친 것이었는데 그로서는 그리 큰일로 여겨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메건과 단둘이 있자니 노크 소리가 났다.
“들어오세요.”
열린 문으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
한 명은 프랑코였고 다른 한 명은 처음 보는 남자.
중년의 그 남자는 혈색이 어둡고 깡말라 있었다.
그가 바로 프랑코의 아들 세바스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덕분에 제 아들이 1년 만에 침상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최초의 던전을 준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계약과 무관하게 찜찜한 일이 터졌으니까.
세바스찬이 내 옆에 있는 메건을 보고 놀랐다.
“아, 너는……”
“오랜만이에요.”
오래전 일이 있는 만큼 메건의 말투는 그녀답지 않게 차가웠다.
“미안하다. 그때 나는 개망나니였어. 뭐라고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그게 무슨 말이니?”
프랑코의 물음에 세바스찬이 괴로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가 메건에게 부적절한 말을 했었습니다. 하물며 그때 메건이 십대였는대도요.”
“뭐라고?”
프랑코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 보았다.
“이런 미친놈!”
곧 다시 쓰러질 것 같은 아들의 뺨을 후려쳤다.
“대체 내게 너한테 뭘 어떻게 해야 하니? 네가 사람이냐!”
“죄송합니다……”
“사과는 메건에게 해야지! 그리고 김태수 회장님께 사과해라! 이분이 앞으로 메건의 남편 될 분이니까!”
“아아……”
세바스찬이 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그때 저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용서를 빌어도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런 망나니 같은 저를 치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두고두고 갚겠습니다.”
오랜 투병 생활로 혈색이 좋지 않은 남자가 이런 말을 하니 약간이나마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회복할 것이고, 부잣집에서 태어나 차기 총리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동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두고두고 갚을 필요 없이 지금 해결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마리아 말입니다. 그녀가 최초의 던전 계약을 반대하며 난동을 피웠습니다. 메건에게 윽박지르고 해치려고까지 했죠.”
“아, 마리아가…… 그랬군요.”
세바스찬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말했다.
“아버지 서재로 가서 말씀 나누어도 괜찮겠습니까?”
* * *
서재로 장소를 옮긴 뒤 세바스찬이 말했다.
“아시겠지만 마리아는 S급 헌터입니다. 제 사촌이기도 하죠. 친척이라고는 해도 사이가 좋지는 않습니다. 지금 스페인은 두 개의 강력한 권력 집단이 대립하는 중입니다. 소위 변화한 세상에서 새로 권력을 잡은 헌터파와 정통적인 행정 권력을 가진 집단이 그것이죠. 마리아는 전자에 해당하고 저는 후자에 속해 있습니다. 처음에 저희 구파는 헌터들을 무시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게 되어 출세한 사람들이니까요. 그들에게 행정 권력까지 장악할 힘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민들도 그걸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들의 힘이 우세해졌습니다. 국민들도 구세대 정치인들에게 실망과 미움이 누적된 상태였죠. S급 헌터를 앞세운 헌터파는 국민의 인기를 등에 업고 점점 목소리를 높여갔습니다. 하지만 그런 헌터파 사이에서 분열이 생겼죠. S급 헌터들 사이에 생긴 알력 다툼이었습니다. 저희는 재빨리 상대적으로 온건한 입장이었던 S급 헌터 몇 명을 포섭했습니다. 분위기가 넘어왔고, 국민의 지지도 웬만큼 회복해서 차기 권력도 저희가 잡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구파의 리더였던 제가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죠.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 전에 마리아랑 술을 마셨던 일을요. 그때는 그녀가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고 생각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취했습니다.”
“그게 정말이니? 마리아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전혀 몰랐던 사실인지 프랑코가 아들의 말을 듣고 놀랐다.
“네, 확실합니다. 마나중독증이라는 것은 저처럼 단번에 병세가 악화될 수 없는 병이에요. 비록 과거의 제가 망나니처럼 살았다고 해도 건강에 큰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런……”
프랑코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누워 있는 사이 다시 권력이 그쪽으로 넘어갔습니다. 뭔가 하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그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될 겁니다.”
“듣고 보니 이대로 가면 최초의 던전 계약도 무위가 될 수 있겠군요.”
“아닙니다! 그건 이미 사인을 한 만큼……”
프랑코가 항변하려고 하자 세바스찬의 그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 세상이 변했어요. 저는 침상에 누워있는 동안 계속 생각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제 인생은 후회할 일들밖에 없더라고요. 아버지가 보살펴주지 않았더라면 저 같은 건 진즉 길에서 객사했을 겁니다. 성병이 나서 죽었겠죠. 아버지 생각을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앞으로는 아버지 이름을 더럽히는 일 없이 유지를 받들어 이 집안을 지키겠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에요. 제 목숨을 구해주신 김태수 회장님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마리아가 최초의 던전에서 돈 냄새를 맡은 이상 계약을 무효로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이 일에 저의 집안, 그리고 스페인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그런…… 내가 마리아네 걔네 부모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마리아는 그런 은혜 같은 건 모르는 애입니다. 아시잖아요.”
듣고 보니 상황이 복잡했다.
타국의 정치 상황에 끼어들었다고 생각하니 골치가 아팠다.
세바스찬에게 속사정을 들었지만, 적어도 당장은 해결책이 없어 보였다.
판세는 이미 저쪽으로 기울었고, 이걸 뒤집으려면 웬만한 계기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침묵이 감도는 중에 갑자기 내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는 박성일이었고, 그가 메시지를 보냈다.
– 제가 들어가서 한마디 해도 될까요? 우연히 밖에서 들었는데 되게 답답하네요.
S급 헌터의 청력을 가졌으니 이쪽에서 나누는 대화가 충분히 들렸을 법했다.
답답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본래대로라면 그는 제삼자이니 이 대화에 끼어서는 안 되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저와 동행한 한국의 S급 헌터가 있습니다. 아까 마리아를 쫓아냈던 사람이죠. 저희 대화를 우연히 들었나 봅니다. 들어와서 할 말이 있다는데 괜찮을까요?”
세바스찬과 프랑코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세바스찬이 말했다.
“네, 물론이죠. 괜찮습니다.”
박성일이 서재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정말로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엿들으려던 건 아닌데 죄송합니다. 지나가다가 형님 목소리가 들려서요.”
“아닙니다. 고견이 있으시다면 주저 말고 말씀해주시지요.”
“뭐, 고견이랄 것까지는 없고요. 저는 헌터들이 본분을 자각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가방끈이 길지는 않지만 저도 학교에서 역사를 배웠거든요. 주먹 쓰는 놈들이 나대서 나라가 잘되는 걸 못 봤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도 충분히 인정하고 대우를 해줘야겠죠. 그래도 이건 명백히 선을 넘은 겁니다. 제가 형님 편이 아니었으면 남의 나라 일에 간섭을 안 했을 텐데, 일단 들었으니 제 생각을 말씀드릴게요.”
박성일은 세바스찬에게 물었다.
“S급 헌터들이 두 파로 나뉘었다고 들었는데 몇 대 몇 정도 되나요?”
“저쪽에 넷, 저희 쪽이 둘입니다.”
“마리아는 저쪽에서 몇 번째로 강하죠?”
“그녀는 아주 강한 헌터입니다. 첫 번째 혹은 두 번째겠죠.”
“아하.”
박성일이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주먹으로 깐족대는 놈들은 주먹으로 혼내주면 되죠. 자기네 힘이 생각보다 약했다는 걸 안다면 코가 납작해질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어떻게 혼내준다는 말씀인가요?”
“국제문제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이미 얼굴이 팔린 이상 한 번 더 팔릴 각오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는 형님 편이니까 형님 일이 잘되는 쪽으로 돕고 싶습니다.”
나는 박성일의 말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스페인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했던 사다리 타기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