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Alchemist RAW novel - Chapter (109)
최초의 연금술사-109화(109/175)
109화. 스페인 최초의 던전 (6)
최초의 던전에서 돌아온 나와 박성일, 그리고 마리아를 보고 프랑코와 세바스찬, 메건 등이 밖으로 나왔다.
마리아는 프랑코와 세바스찬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할 말이 있지 않아?”
박성일이 그렇게 채근한 뒤에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 미안합니다…….”
그녀의 얌전해진 모습을 보고 프랑코가 놀랐다.
“뭐가 미안하다는 거니?”
“제 일이 아닌데 최초의 계약 문제에 관여한 것, 메건에게 무례하게 행동한 것, 제가 이제껏 저질러왔던 건방지고 주제넘은 짓 전부…….”
마리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억울해서 흘리는 눈물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녀 안에 올바른 모습이 남아있었던 것.
“미안합니다…….”
프랑코가 활짝 웃음을 지었다.
그가 마리아를 안고 다독여주었다.
“그래! 이 모습을 네 부모님이 보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네가 그토록 큰 힘을 가진 뒤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더 대단한 일이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마리아!”
“흐흑…….”
마리아는 프랑코의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세바스찬이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입을 뻐끔거렸다.
그가 우리 쪽을 바라보았는데, 이 좋은 분위기에 그녀를 주먹으로 갱생시켰다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나는 메건을 데리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최초의 던전에 다녀왔어요.”
“이 시간에요?”
“네, 코어를 부활시켰어요. 새 능력을 얻었죠.”
“혹시 그 능력이 치유와 관련된 것인가요?”
“네.”
메건이 나를 안았다.
“잘 해결돼서 다행이에요. 어떻게 되나 걱정했었거든요.”
“성일이를 데려온 게 잘한 일이었어요. 덕분에 훨씬 간단하게 해결했으니까.”
“당신 옆에 좋은 사람이 모인다는 건 기쁜 일이에요.”
“그래도 당신만큼 좋은 사람은 없어요.”
“후후후.”
메건이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다가 눈을 슬며시 감았다.
나는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 * *
다음날 기자회견이 열렸다.
다소 급한 느낌이 있었지만, 하루하루 여론이 S급 헌터들 쪽으로 기울고 있는 상황에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게 세바스찬의 의견이었다.
기자회견을 앞두고 치장을 하는 중에 아무래도 오래 병상에 있었던 세바스찬의 모습이 생기 있어 보이지 않았다.
프랑코도 그것을 걱정했는데, 나는 그를 상대로 새로 얻은 능력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그의 양팔을 잡고 마나를 불어넣었다.
어제 최초의 던전에서 얻었던 마나.
나에게서 넘어간 마나가 그의 몸이 은은하게 빛나도록 했다.
송장 같았던 피부에 활기가 돋았다.
말라붙었던 살이 다시 보기 좋을 만큼 올라왔다.
어느 정도의 효과를 기대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말랐던 살이 다시 찌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 칼로리를 섭취해야 한다는 기본 상식까지 뛰어넘었다.
아무래도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를 얻었기 때문인 것 같은데, 어차피 머리로 생각해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기적이군요!”
프랑코가 보기 좋아진 아들의 모습에 기뻐했다.
세바스찬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이제 국민들도 제가 건강해졌다는 것을 믿을 겁니다. 회장님께서 다시 주신 이 생명을 좋은 곳에 쓰겠습니다. 한 번 죽었다고 생각하니까 새로 주어진 이 시간을 후회가 남지 않는 곳에 쓰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말이라면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네 결심을 행동으로 보여다오.”
프랑코가 아들에게 말했다.
“네, 아버지! 그간 실망시켜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아무 희망이 없을 때 제 등불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가 제 아버지라는 게 저의 가장 큰 행운이에요.”
“흐음…….”
프랑코는 등을 돌렸다.
그 이유가 부끄럽기 때문이었다는 걸 그의 붉어진 얼굴이 증명했다.
이번 기자회견에 마리아도 나서기로 했다.
사실 핵심은 그녀였다.
세바스찬이 건강을 회복했다는 것만으로 이쪽 진영에 큰 힘을 불어넣게 되겠지만, 그것만으로 판세를 다 뒤집을 수 없다.
마리아가 이쪽에 붙었다는 것이 기자회견을 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것이 가져올 파급력이 가장 기대되는 부분인 것.
“외람된 부탁이지만 저와 제 조국을 위해 한 번 나서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세바스찬이 내게 부탁했다.
“최초의 던전이 부활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스페인 국민 대다수는 던전 브레이크 때의 참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화려하게 부활한 것을 스페인 재도약의 상징으로 삼고 싶습니다.”
“그 최초의 던전의 소유권이 외국인에게 넘어간 게 알려지면, 더구나 그것을 넘긴 게 프랑코 회장님이라는 게 알려지면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저희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그 말도 일리가 있겠죠. 하지만 전 세계에서 최초의 던전을 부활시킬 힘을 가진 것은 오직 김태수 회장님 한 분뿐입니다. 죽어있는 던전을 회생시키고, 저를 죽음의 위기에서 살려주신 것. 오히려 스페인 국민들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김태수 회장님과 전 세계에서 최초로 협상에 성공한 것을 오히려 능력 있다고 평가할 것입니다.”
역시 정치인이라고 할까?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것처럼 여겨졌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을 제외하고 외국의 최초의 던전을 부활시킨 게 스페인이 처음이 아니었다.
태국에 몰래 들어가 그곳 최초의 던전을 부활시켰다.
그 일로 국왕이 권위를 되찾았으니 나는 알게 모르게 타국의 정치에 관여하고 있는 셈이었다.
“나쁜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어차피 드러나게 될 일이에요. 나중에 밝혀지는 것보다 지금 밝히는 게 더 나아요.”
메건이 말했다.
그녀는 나이가 젊지만 데이먼의 전문 치료사로서 그의 비즈니스를 수행한 경력이 있었다.
통 큰 결단을 내리는 데 나보다 더 유능했다.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얼굴 밝혀지는 걸 꺼린다느니 조용히 타국 최초의 던전을 부활시킬 계획이라느니 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JJ 산하의 호텔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던 세바스찬이 오랜만에 매스컴에 나선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마리아가 세바스찬의 손을 잡았다는 소식이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다소 급하게 마련된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꽉 채울 만큼 많은 기자가 왔다.
세바스찬은 농담을 섞어가며 노련하게 기자회견을 이끌었다.
S급 헌터파를 지지하는 매체들에서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들었지만, 정면 대응하지 않고 여유 있게 넘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지만.
기자회견이 시작되고 30분쯤 흘렀을 때 마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는 역시라고 할까?
그녀는 어제 박성일에게 잡혀 그렇게 얻어터졌던 여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부잣집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몸에 밴 당당함이 있다.
그녀가 나타나자마자 찰칵찰칵 사진 찍는 소리가 난무했다.
특히 세바스찬이 일어나 그녀와 포옹하는 장면이 절정이었다.
마리아가 특유의 약간 거만한 듯한 말투로 선언했다.
“저는 지난날의 제 오만함을 후회합니다. S급 헌터는 던전에 들어가서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이 일입니다. 저희는 정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가 국가를 잘 운영할 거라는 건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그걸 세바스찬과 대화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S급 헌터는 물리적 힘만 강한 존재입니다. 그런 저희가 국가를 운영하면 전쟁밖에 더 하겠어요? 스페인은 과거 아픈 역사를 많이 겪었습니다. 이제는 그 아픔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주변국들이 돌이킬 수 없는 오판을 하는 와중에 저희만이라도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올바른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준비했던 멘트가 아닐까 싶었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어찌 됐든 마리아도 사람들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는 여자였다.
단순히 힘만으로 S급 헌터파의 리더가 된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총리까지 하는 건 너무 나간 발상이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해야 할 중대 발표가 더 남아있습니다.”
세바스찬이 그렇게 말하자 거대한 통유리를 덮고 있던 블라인드가 올라갔다.
이 호텔을 기자회견 장소로 잡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최초의 던전과 인접한 장소였기 때문에.
바다를 향해 위치한 최초의 던전이 잘 보였다.
처음 이 호텔을 세운 이유도 최초의 던전을 관광 상품화하는 기획과 맞물려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 그 기획은 실패했었지만 이제 와 역전을 맞이했다.
프랑코는 자신의 감에 의존하여 사업을 해왔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일이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는 게 확인된 경우들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처음 그와 만났던 날 밤에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세대가 다른 인물인 만큼 그의 이야기는 다소 구닥다리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의 인생관과 사업관이 현재에도 통한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었다.
애초에 그가 내게 접촉하지 않았다면 아들을 살릴 수도, 마리아의 갱생도 없었을 테니까.
그로 인해 스페인의 미래가 바뀔 일도 없었다.
최초의 던전을 넘기는 통 큰 결정도 이제 와 생각하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기자들은 처음에 왜 블라인드를 걷어서 최초의 던전을 보여주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감이 좋은 기자 몇 명만 바깥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을 뿐이었다.
“우리의 불행한 역사였던 최초의 던전이 이제 부활을 맞이했습니다. 그것은 스페인의 역사가 아름답게 꽃피우는 새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세바스찬이 몸을 일으켰다.
그의 시선을 따라 기자들의 눈길도 움직였고,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내가 걸어 나갔다.
창밖으로 최초의 던전이 보일 때만큼이나 영문을 모르는 시선이었다.
마리아가 등장했을 때 열띤 분위기였던 것과 비교하면 극적인 차이였다.
그러다가 메건이 내 뒤에 나타나자 기자 몇이 웅성거렸다.
그녀가 ‘엘리트헌터즈’ 회장 데이먼의 딸이라는 것을 알아본 것이었다.
차기 총리 후보인 세바스찬과 스페인에서 가장 크게 이목을 끄는 S급 헌터 마리아, 그리고 ‘엘리트헌터즈’ 회장의 딸까지.
유력한 인물들이 한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소개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온 김태수 회장님이십니다.”
“아!”
기자 중 하나가 나를 알아보았다.
“제주도의 최초의 던전을 부활시켰다는 그 사람이야!”
“그게 진짜였어?”
“그러면 저 던전이 부활했다는 말도……!”
세바스찬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연을 소개하면 깁니다. 그것은 차차 말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김태수 회장님은 제 아버지 초청으로 스페인에 왔고, 가망 없던 제 질환을 치료해주셨습니다. 심지어 저의 가문 자산이었던 저 최초의 던전을 본인 능력으로 부활시켜주셨죠. 마리아가 마음을 열고 다른 선택을 한 것도 김태수 헌터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바스찬이 거창하게 나를 소개했다.
그 덕분에 긴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메건이 내 옆으로 와서 팔짱을 끼었다.
폭발하듯 터지는 플래시를 보자니 스페인에 와서 겪은 일들은 하나도 예상대로 된 일이 없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뭐,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