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Alchemist RAW novel - Chapter (134)
최초의 연금술사-134화(134/175)
134화. 사우디 왕자의 제안 (3)
적당한 시간이 되자 누라가 먼저 일어났다.
“나는 이만 빠져줄게. 좋은 시간 보내~”
이만 빠져준다고 말을 해도 이미 새벽 4시였다.
뭐, 이곳에 있다 보니 시간을 완전히 잊게 되었지만.
사람들이 괜히 환락의 상징으로 라스베가스를 언급하는 게 아니었다.
호텔 안에 있었지만, 부족한 것 없이 쾌락과 유희가 허락된 천국에 있는 기분이었다.
“어때요? 오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메건이 침대에 엎드려서 물었다.
이곳이 아무리 화려한 유희로 점철된 곳이라고 해도 이 여자가 없으면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나는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네가 있는 곳이 내겐 천국이야.”
“맙소사.”
메건이 환하게 웃으며 내 목을 끌어안았다.
누라가 말했던 대로 좋은 시간을 보내기에 밤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었다.
* * *
다음날, 그다음 날도 비슷한 패턴이 이어졌다.
도박을 하고 라스베가스 쇼를 구경하고, 누라, 메건과 함께 쇼핑을 했다.
우스운 사실은 박성일이 내가 준 돈으로 잭팟을 터뜨려서 소위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역시 도박은 판돈이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총알이 든든하니까 쫄리는 거 없이 손이 막 나가는 거 있죠?”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S급 헌터가 도박에 맛을 들였다.
나는 아직 어린 그를 이곳에 데려온 게 잘못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다음날이 되자 그는 죽상이 되어버렸다.
“젠장, 풀 배팅을 작작 했었어야 하는데.”
돈을 전부 잃은 것은 아니지만, 벌어들였던 것만큼 잃고 추가로 어느 정도 손해를 보았다.
그는 정신을 차렸다는 듯 말했다.
“이제 도박은 싫어요. 쇼나 구경할래요.”
젊은 남자이니 곳곳에 있는 화려한 여자들에게 눈길이 갈 만했다.
그의 사생활이니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신바와 코하루도 적당한 선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5일째 되는 날, 누라가 말했다.
“내일은 왕자님이 본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태수 씨가 다른 대답을 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본국의 상황 때문에 더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해요.”
“알리 왕자에게 미안하네요.”
“그러실 것 없어요. 애초에 무리한 요구였다는 걸 사우디 왕가에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과 별개로 태수 씨와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해요. 왜 안 그렇겠어요? 태수 씨는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남자인데.”
사우디의 최초의 던전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중동 문제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부담이었다.
명분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단순히 돈을 받고 그 분란에 참전한다는 것은 사후에 어떤 문제를 더 일으키게 될지 몰랐다.
웬만하면 문제가 있는 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내게는 그것이 잘 따라붙는 편이니까.
* * *
평화로웠던 휴가는 6일 차에 끝이 났다.
이 호텔에서 절대 생겨서는 안 될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누라가 참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실 줄은. 경호원으로 죄책감이 듭니다…….”
알리 왕자가 죽었다.
겉으로 보아 타살의 흔적이 없었는데, 정밀하게 조사한 결과 그가 무색무취의 독을 마셨다는 것이 밝혀졌다.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수행원 한 명이 도망쳤다고 한다.
누라는 그가 왕자를 살해한 범인이라고 믿고 있었다.
호텔은 폐쇄되었고, 분위기가 몹시 어수선해졌다.
엘리트헌터즈 산하의 이 호텔은 그동안 평판이 매우 좋았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사우디 왕자가 독살되는 바람에 그 명성에 크게 흠이 가게 되었다.
독을 써서 사람을 죽이는 것까지 일일이 잡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살인사건이라면 다른 호텔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한 마디로 운이 나빴던 것.
‘내가 아니면 여기 오지 않았겠지.’
알리 왕자가 호텔을 옮긴 이유는 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그가 다른 호텔에 있었다면 살해되지 않았을 거라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나로서는 뒷맛이 영 씁쓸하게 되었다.
하루가 더 지난 뒤에 누라가 나를 찾아왔다.
“태수 씨, 이것 좀 보세요.”
그녀가 내게 동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동영상 안의 복면을 쓴 남자가 말하고 있었다.
알리 왕자를 죽인 것은 미국이며 엘리트헌터즈라고.
그가 살해당한 것은 신이 현재의 왕가를 버렸다는 증거이며, 새로운 왕이 추대되어야 할 강력한 증거라고 했다.
“이 영상이 사우디 전역에 퍼지고 있어요. 이상한 일입니다. 미국과 엘리트헌터즈를 욕하는 사람들이 많은 동시에 현 왕조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어요. 현 왕가는 미국과 사이가 좋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업이 엘리트헌터즈고요. 엘리트헌터즈 산하의 호텔에서 알리 왕자님이 살해당한 것이 무슨 특별한 연관이라도 있는 것처럼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이걸 어쩌죠?”
“저는 알리 왕자 개인에게 고용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에 책임을 느껴요. 제 평판에도 문제가 생길 거고요. 팀과 함께 움직여서 왕자님을 살해한 놈들을 찾아낼 생각입니다.”
“찾아낸 뒤에는 죽일 생각인가요?”
“아마도요.”
나는 이 일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다.
누가 보아도 배후는 현재 사우디 왕가를 위협하는 반란 세력이었다.
여기에 이미 주변국들이 가담하고 있다고 했다.
누라가 하려는 일이 단순히 알리 왕자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는 작업이 아닌 이유였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너무 위험해요.”
“하아아…… 사실 이건 비밀이지만 알리 왕자가 저에게 청혼했었습니다. 저도 그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고객과 그런 사이가 된다는 건 업계에서 비웃음을 살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거절했어요. 지금은 몹시…… 후회가 되네요.”
누라가 왜 알리 왕자의 죽음에 이토록 큰 책임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이 일에 뛰어든다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았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어떻게요?”
“알리 왕자는 제게 우리의 우정이 영원하기를 바란다고 했었습니다. 제가 그와의 우정을 생각해서 그의 복수에 가담하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충분한 명분이 될 것 같은데.”
“정말요? 정말 도와주실 건가요?”
“전에 들었던 조건, 10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올려달라고 하세요. 그러면 저와 제 동료들이 움직일 명분이 더 커질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10퍼센트도 충분히 파격적인 제안이었지만, 아마 이런 일이 생긴 이상 그쪽에서도 거절하지 못할 거예요!”
누라는 무척 고무된 표정이었다.
천군만마를 얻은 얼굴.
내가 돕겠다고 한 게 그 정도로 큰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따지고 보면 안 그럴 이유가 없기도 했다.
나는 스페인, 독일, 미국에서까지 S급 헌터들의 반란을 잠재운 사람이니까.
일본 헌터들의 암살 시도를 좌절시킨 사람이기도 했다.
‘최초의 던전에 들어가야 하니까.’
만약 사우디 왕조가 바뀌고 새로운 왕이 들어서면 내가 그곳 최초의 던전에 들어갈 기회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놈들은 대놓고 엘리트헌터즈를 적으로 규정했으니까.
메건과 나는 결혼할 사이이고, 그런 내게 최초의 던전을 부활시킨 뒤 그곳에서 엑스트라스톤을 채취할 기회를 줄 리 없었다.
오히려 지금의 왕조에 은혜를 입힌다면 앞으로 최초의 던전을 이용하는 데 훨씬 수월해질 터였다.
‘왕자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그와 나눈 우정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이 잘 해결된다면 일말의 찜찜한 기분을 없앨 수 있으리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 * *
데이먼은 아직 외국에 있었지만 그도 이번 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이유 없이 엘리트헌터즈를 물고 들어가 마치 알리 왕자가 엘리트헌터즈 산하 호텔에 있어서 살해됐다는 식으로 조장하고 있다.
그게 그의 마음에 들 리 없었다.
– 그놈들을 한 놈도 빠짐없이 다 조져버릴 거야!
뭐라고 말을 했기에 ‘조져버린다’고 번역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데이먼이 화가 많이 난 것만은 분명했다.
그는 경호팀은 물론이고 용병을 고용해 나와 누라의 팀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미국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브라이언이 나를 만나러 와서 계획을 말해주었다.
“적진 본거지는 진즉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사우디에서 요청이 올 경우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그들은 미국보다 회장님을 더 믿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일은 미국으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최근 반란 사건으로 국격이 많이 손상되었습니다. 이번 일까지 좌시한다면 더는 예전의 미국이 아니라는 말을 듣게 되겠죠. 사우디와의 동맹을 더 공고히 할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고요.”
정부 차원에서 특수부대 투입을 결정했다고 알리는 그의 말이었다.
엘리트헌터즈, 그리고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참전 의지는 사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의도가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적들은 말벌집을 건드리는 실수를 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이 일은 어느 한쪽이 끝장나야 하는 싸움이 되었다.
* * *
“동생에게 보여주신 우정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또 한 명의 왕자가 왔다.
그는 알리의 친형이었고, 이름은 오마르였다.
동생과 달리 사우디 전통 복장을 입고, 수염이 덥수룩한 하관을 하고 있어서 전형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중동 왕자의 모습이었다.
몸에 짙게 밴 품격도 동생보다 한 수 위.
“아닙니다. 놈들이 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저도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습니다.”
“말씀하셨던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김태수 회장님과 저희 가문의 우정을 생각하면 오히려 싸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우디 전체 던전에서 나오는 수입 15퍼센트는 우정의 값치고는 절대 싸다고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왠지 품격 있는 사우디 왕자가 정말로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저희 쪽에서도 최대한 정예를 내보낼 생각입니다. 숫자보다는 헌터 간 강함의 차이가 승부를 결정짓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큰 부탁을 드려서 죄송하지만 부디 동생의 원한을 풀어주시고 저희 왕조가 다시 설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아마 처음 만난 게 알리 왕자가 아니라 오마르였다면 마음이 조금은 더 흔들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이 바뀌지는 않았겠지만.
그걸 떠나 오마르였다면 더욱 신중해서 독 같은 것에 당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좀 조용히 쉬나 했더니 바로 사건 발생이네요.”
박성일이 이제는 해탈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병력은 충분하니까 네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돼. 항상 어려운 일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하다.”
“에헤이~ 형님이랑 저는 이미 한배를 탄 몸이에요. 저만 빼고 가시면 섭섭하죠~”
기대하지 않았는데 신바와 코하루도 당연하다는 듯 동행을 선언했다.
“이번에는 사우디군요.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생기네요.”
코하루의 말은 마치 피크닉을 가는 소녀 같았다.
이렇게 꾸려진 적지 않은 정예 병력이 사우디에 있을 적을 처단하기 위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