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Alchemist RAW novel - Chapter (144)
최초의 연금술사-144화(144/175)
144화. 마인드스톤 (4)
나는 멍한 기분일 수밖에 없었다.
죽은 줄 알았던 아이작이 살아있다니.
스스로 인정했고, 내게 한 말의 내용을 보더라도 착각이 아닌 게 분명했다.
‘무슨 뜻이지?’
아이작이 내게 한 말은 수수께끼 같았다.
세상이 끝나는 장면을 보았다고 했고, 자신은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신경 쓰였던 말은 최초의 던전을 부활시키는 걸 서두르라는 말이었다.
나는 목뒤를 쓰다듬었다.
‘어쩌지?’
단순히 생각하면 브라이언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 것이다.
아이작이 저지른 일은 쉽게 넘길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손에 S급 헌터들이 죽었고, 적지 않은 헌터 부대원들도 죽었으니까.
반란을 일으켰던 헌터들이 죽은 것은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배신하고 이쪽 편까지 죽인 것은 명백한 범죄였다.
나는 선 채로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 미국 정부가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아이작을 사로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내게 한 말이 신경 쓰였다.
‘사라진 던전을 찾고 있다고 했지.’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괜히 한 말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오늘 슈퍼볼 경기를 관람하고 가벼운 기분으로 브라질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뜻밖의 인물을 마주치는 바람에 더 이상 기분이 편안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관람석으로 향했다.
“잠깐만.”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벽에 기대어 서 있는 자라가 보였다.
“응?”
“무슨 일 있어?”
“……그건 왜 묻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혹시 만나면 안 될 사람이라도 만난 거야?”
나는 자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도 뭔가 확신히 있어서 내게 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나는 그녀에게 주었던 마인드스톤을 떠올렸다.
“너야말로 뭔가 본 거야?”
“아니, 그건 아닌데. 너를 보니까 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아무 일 없으면 됐어. 나는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갈게.”
자라가 나를 스쳐서 흡연실 쪽으로 갔다.
그녀는 용병으로 활동했지만, 그녀가 오랫동안 감옥에 있었던 아이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확률은 낮았다.
자신의 말마따나 단순히 기분이 이상해서 물어본 거겠지.
아니면 내 모습이 조금 얼빠져 보였을지도 몰랐다.
자라와 대화를 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났다.
화장실에 다녀온 내가 갑자기 어두운 얼굴을 하고 나타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괜한 걱정을 끼칠 수 있었다.
아이작이 살아있다는 이야기는 밝혀지는 자체로 큰 반향을 일으킬 만한 뉴스였다.
당분간은 혼자만 알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하하하! 역시 이길 만한 팀이 이겼군! 비행기 준비시켜 놨으니 내일 일찍 브라질로 가세나!”
“축하드립니다.”
슈퍼볼 경기는 결국 데이먼이 응원하던 팀이 이겼다.
원래 그가 좋아하던 팀이 이긴 것은 아니었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승리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게임할 때 보이는 메건의 승부욕과 집중력은 단연코 데이먼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데이먼은 우리를 연회장으로 이끌었다.
내일 장거리 이동을 앞두고 있어서 일찍 돌아가서 쉬는 게 맞을 것 같지만, 그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슈퍼볼 관람을 한 즐거운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고 싶은 눈치였다.
“자가용 비행기로 가니까 상관없어요.”
내 물음에 메건이 대답했다.
자가용 비행기.
하긴 그걸 타고 이동하면 오늘 다소 피곤한 일정을 보내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나 스스로 최초의 던전에서 얻은 힐링마나가 있으므로 피곤함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까지도 회복시킬 수 있고.
내 주위 다섯 명의 헌터들에게 각각 100개씩의 마인드스톤을 주었지만, 그중 누구도 내가 아이작을 만났다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이 없었다.
자라도 그때 한 번 물어보았을 뿐 그 뒤로는 전혀 비슷한 언급을 하지 않았고.
어쩌면 내가 마인드스톤 능력에 지나친 기대를 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게 아닐 수도 있지.’
아이작의 능력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했고, 그랬어야만 하는 그가 멀쩡히 살아서 내 앞에 나타났으니까.
물론 그의 얼굴에는 큰 상처가 나 있었다.
자세히 살핀 것은 아니지만, 그 상처는 분명 죽었다고 생각한 그때 생긴 것일 터였다.
내가 본 것은 그의 실체가 아닌 분신이나 환영 같은 것이었지만, 본신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면 자신의 말마따나 감옥에 있든 어디에 있든 상관없을 것 같았다.
분명 그의 능력은 단 한 가지가 아니며, 나처럼 다른 헌터는 흉내 내지 못할 여러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여기 저기 보낼 수 있는 것일 것이고.
그 능력으로 죽을 위기에서 벗어났던 게 분명하다.
실제 그가 어디에 있을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자라, 나즈라 자매가 가지고 있는 워프 능력의 몇 배는 더 뛰어난 능력으로 보였다.
‘더 많은 걸 물었어야 했는데.’
그가 살아서 내 앞에 나타났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고, 하는 말도 불가사의해서 더 자세한 걸 물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 그것이 아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날 거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옆자리에 앉아있던 메건이 물어보았다.
“아무 생각 안 했어. 그냥 멍때린 거야.”
“정말요? 미안해요~ 아빠가 워낙 자기 페이스로 사람을 휘두르는 편이라. 태수 씨가 많이 피곤할 거예요.”
“아니, 나 장인어른 좋아해. 보기보다 순수한 면이 많은 분이야.”
“어? 방금 장인어른이라고 했어요?”
“아, 내가 그랬나?”
“후후후.”
메건이 샴페인 잔을 왼손으로 옮기고 오른팔로 내 팔짱을 끼었다.
“우리 언제 결혼할까요?”
“언제 할까?”
“음, 일단은 최초의 던전을 부활시키는 일을 전부 다 끝내놓고 해요. 아니면 그것 때문에 우리 신혼 생활이 방해받을 것 테니까.”
“좋은 생각이야.”
“빨리 해치워버려요. 이제 얼마 안 남았죠?”
“글쎄, 브라질에 가면 일곱 번째지. 그 뒤로 다섯 곳이 남았어. 브라이언 말대로라면 세 곳은 아예 지도에서 보이질 않는대.”
“그러면 브라질 포함해서 세 곳 남은 거네요.”
“응.”
하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 헌터부도 현재로서는 사라진 최초의 던전을 찾는 걸 어려워하고 있는 것 같지만, 어쩌면 아이작이 먼저 그곳들을 찾아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나도 그 일에 얽혀들 것이다.
“후우우……”
“어머? 정말 피곤한 거예요?”
“응, 미국식 파티가 나랑 안 맞나봐.”
“우리 몰래 빠져나갈까요? 돌아가서 온라인 게임해요.”
“그럴까?”
하지만 우리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데이먼이 우리가 빠져나가려는 타이밍에 불쑥 나타나 내 팔을 잡아끌었으니까.
“브라질에서 좋은 술을 가지고 왔네. 내 혀가 고급인데도 이 술은 내 기준을 충족시키더군. 그쪽에도 양조장을 하나 차릴까 봐. 자네도 한 번 마셔보게.”
술맛을 잘 모른다고 사양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메건과 함께 빠져나가 온라인 게임을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아빠, 적당히 좀 드세요. 그것도 헌터들이 마시는 술이죠?”
“뭐, 어떠니? 사위가 최고의 명읜데. 내가 잘못되면 자네가 치료해줄 거지?”
이미 술을 많이 마셔서 볼이 발그레한 데이먼이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물었다.
“네, 물론이죠.”
마나중독증.
세간에는 엄청난 통증을 유발하는 불치병으로 알려졌지만 내게는 대수롭지 않은 병이었다.
최초의 던전 코어로부터 직접 흡수한 힐링마나가 있기 때문에.
“어머, 아빠 지금 태수 씨더러 사위라고 하셨어요?”
“왜? 뭐가 잘못됐니?”
“아니요~~ 오늘은 좋아하는 술 실컷 드세요. 저도 오늘만은 잔소리 안 할 테니까~”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진 메건이 데이먼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하하하! 우리 메건, 연애하더니 많이 부드러워졌구나! 역시 남자든 여자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해~ 나도 이번에 브라질에서…….”
“아아! 듣기 싫어요! 아빠 연애 얘기는 하지 말아요!”
“치사하게 그러기니? 이번에 브라질에서 30살 연하의…….”
“듣기 싫어! 하지 말라고욧!”
메건은 데이먼의 팔을 뿌리치듯 놓고 딴 데로 갔다.
자라와 나즈라가 코하루와 어울리고 있었는데, 귀를 막고 그쪽으로 달려간 것.
“하하하! 우리끼리 이거 다 마시면 되겠군.”
데이먼이 꺼낸 것은 다소 투박한 유리병에 담긴 술이었다.
따로 라벨이 없는 걸 보면 술 담그는 장인이 손수 만든 것 같았다.
이래저래 바쁜 와중에도 실속은 확실히 챙긴 느낌이다.
데이먼이 한 방울이라도 흘릴까 봐 조심스럽게 따라준 그 술은 과연 맛과 향이 대단했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
다만 술의 도수가 높은 걸 떠나 독성이 상당히 강한 것 같았다.
나야 문제가 없었지만, 데이먼이 자꾸 이런 술에 관심을 가져서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장인어른, 잠깐만요.”
“어? 왜?”
나는 데이먼이 돌려 앉게 한 뒤에 그의 등에 손을 얹었다.
그렇게 눈을 감고 집중했더니, 그의 몸속 지도가 이미지로 그려졌다.
힐링마나가 그의 몸의 나쁜 상태를 즉각 진단하여 보여준 것.
나는 데이먼의 등으로 힐링마나를 불어넣었다.
“오오~ 이건 뭔가? 따뜻한 게 아주 기분이 좋군~”
대꾸하지 않고, 그의 몸안에 남아있는 독소, 질환을 전부 치료했다.
그렇게 하는 데 불과 5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난번에 마나중독증을 치료했지만, 데이먼의 몸 안에 있는 질환은 그뿐이 아니었다.
성질이 급한 데다가 몸을 아낄 줄 모르는 타입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질환과 독소인 듯했다.
나는 그의 등에서 손을 떼고 말했다.
“이제 드시죠.”
“자네 혹시 나를 치료한 건가?”
“네, 이제 마나중독증 같은 건 염려하지 마세요. 대신 주기적으로 저한테 치료받으세요.”
“정말인가? 그거면 돼?”
“네, 그거면 됩니다.”
“하하하하! 고맙네! 앞으로는 마음 놓고 마실 수 있겠구만!”
처음 데이먼을 치료할 때 마나중독증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었다.
거짓말이 아니었지만, 힐링스톤을 이용해 치료한 만큼 재발의 위험은 극히 낮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런 식으로 내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꼼수 같은 걸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메건과 내 사이가 가까워진 만큼 데이먼과 내 관계도 가족처럼 가까워졌으니까.
나는 데이먼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무용담을 들으면서 그와 함께 술을 마셨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맛있는 술이라면 매일 마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