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Alchemist RAW novel - Chapter (175)
최초의 연금술사-175화(175/175)
175화. 마지막 싸움 (完)
막대한 어둠이 나를 감쌌다.
어찌할 수가 없는 어둠.
이 안에서 길을 잃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게 실체일 리가 없어.’
놈에게 의지가 없고, 생명의 흔적 따위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착각이다.
그게 진짜라면 사도라는 존재를 만들어 내어 싸우게 하지 못할 테니까.
그놈들은 꽤 영리하기까지 했다.
보통의 존재는 그의 실체를 볼 수 없다.
실체를 파악할 수 없으면 싸울 수조차 없었다.
그 이유는 약하기 때문이었다.
세상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악마.
악의 덩어리.
그 근원.
놈과 마주 볼 정도의 힘이 있어야 비로소 싸움이 가능해진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않고, 적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집중했다.
내 안에 있는 밝은 빛이 점차 어둠을 몰아내는 이미지가 그려졌다.
그리고……
“그럴 줄 알았다.”
두 개의 뿔이 달린 악마의 형상.
이게 진짜 놈의 모습인지, 아니면 내가 상상해 낸 이미지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놈의 실체가 똑똑히 보였다.
놈이 당황하는 것이 보인다.
상상이나 했을까?
이 세상에, 지구라는 약한 행성에, 자신과 마주할 인간이 나타날 거라고.
수천, 수만, 수억의 생명체들이 내게 자신의 의지를 모아 주었다.
나는 그들을 모르고, 그들의 염원해 대답해 줄 의리가 없었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지키고 싶은 세상을 위해 싸울 뿐이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 찾아냈군.
내가 발견한 악마의 실체를 황금용도 알아챈 듯했다.
그가 기뻐하는 표정이 그려졌다.
우리를 심연 속에 가두어 집어삼키려고 했던 악마는 계획이 실패하자 자신의 파수꾼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사도.
이전에 만났던 사도들과는 달랐다.
일단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마치 악마 자신이 핵분열을 하듯 끝없이 밀려 나왔다.
나는 분신을 만들어 냈다.
악마가 할 수 있는 일을 나도 할 수 있다.
수십, 수백, 수천의 분신들이 사도와 싸우기 위해 뛰어나갔다.
수천 마리의 용들이 사도와 맞붙어 싸웠다.
싸움은 장렬하기 그지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잠깐 집중력을 잃어버리면 그대로 악마에게 먹혀 버릴 것 같았다.
그런 싸움이었다.
설명조차 되지 않고, 후회나 희망을 생각을 여유도 없었다.
분신들과 용들과 어우러져 사도들과 싸워 나갔다.
사도를 하나하나 물리칠 때마다 빛이 반짝였다.
어둠에 갇혀 방황했던 영혼들.
그들이 해방되어 자유로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내게 감사 인사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무시하고 계속 분신을 만들어 냈다.
나 자신은 악마와 마주 보며 그를 감당해 내기 위해 애썼다.
‘끝나기나 할까?’
어쩌면 이 싸움은 영원히 지속되는 형벌이 아닐까?
– 정신 차리게.
황금용이 질책했다.
– 자네밖에 없네. 자네라면 할 수 있어!
지엄하게 선언했다.
죽어 가는 용들이 보인다.
나보다 더 많은 희생을 감내하고 있는 것은 바로 황금용이었다.
그의 책임감.
인내심.
나는 흉내 낼 수조차 없다.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내가 포기하면 거기에서 끝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내가 살아온 세상도 전부 ‘저것’에 삼켜지고 만다.
“으아아아악!!”
분노를 토해 내자 더욱 많은 분신이 쏘아져 나갔다.
‘해 보자! 이 악마 새끼야!!’
* * *
“형님은…… 괜찮을까요?”
박성일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돌아오겠다고 했잖아. 나는 오빠가 약속을 어기는 걸 본 적 없어.”
자라가 기세 좋게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녀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버려진 던전 위에 드리운 먹구름.
그것은 점점 커져 가고 있었다.
벌써 3일째.
던전 안에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단 한 가지 희망이라면 이 세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저 어두운 구름이 더는 확장되지 않고 던전 위에만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일까지 안 나오면 우리가 들어가 보도록 하지.”
아이작이 말했다.
그의 말에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저곳에 들어가면 그 순간 죽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끝내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그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다.
“이제라도 정부에 알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미국도, 중국도 이걸 알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장웨이가 말했다.
아이작은 그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바로 그거야. 그런 약한 마음이 악마의 힘을 키울 거네. 순진하게 생각하지 마. 저 악마가 무얼 먹고 힘을 키운다고 생각해? 희망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다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목숨을 바쳐 싸우는 사람은 있지. 그를, 그리고 우리 자신을 자랑스러워하세.”
그들은 한데 모여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지난 3일 동안 한 시간이라도 잠을 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책망하며 그가 돌아오길 바랄 뿐이었다.
* * *
– 이봐. 이봐.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하지만 한편으로 어색했다.
아는 사람이 분명했지만, 이런 목소리를 낸 적은 처음인 것 같다.
눈을 뜨자 부신 배경을 바탕으로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황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같은 색의 수염을 기른 남자였다.
– 이제 정신이 드나?
그의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는 직접 머릿속에 전해졌다.
“황금용……”
“그래, 내 이름은 펠리샤네.”
그제야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자네 모습이……”
“응, 나는 자네와 같은 모습이 될 수 있어. 다른 용들도 마찬가지네. 우리 용들은 고귀하고 훌륭한 존재들이네. 뭔들 못 하겠나?”
이제 보니 그의 뒤쪽으로 수많은 사람이 서 있었다.
녹색 머리카락, 빨간색 머리카락, 그리고 은색 머리카락.
각양각색의 얼굴과 체형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같이 아름다웠다.
“싸움은…… 혹시 여기는 천국인가?”
“그러면 여기가 지옥 같아 보이나?”
“아…… 그러면 우리가……”
“자네 덕분이네. 우리가 이겼어. 놈은 쓰러졌네.”
“쓰러졌다면…… 놈이 죽었다는 뜻인가?”
“아니.”
펠리샤가 고개를 저었다.
“놈은 죽지 않아. 다만 힘이 빠져 버렸지. 그는 도망갔네.”
“도망? 어디로? 그러면 쫓아가야지!”
“그럴 수 없어. 그놈은 영악하기 그지없더군. 바로 그곳으로 도망갔네.”
펠리샤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나는 급히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그곳에 검은색 점이 있는 것이 보였다.
“젠장!”
다급하게 그것을 손으로 문질러 보았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다만 심장이 욱신거리는 느낌이 날 뿐이었다.
“쓸데없는 행동은 하지 말게. 어차피 그놈은 봉인되었어. 놈은 절대로 자네를 거역할 수 없네.”
“그게 무슨 말이야?”
“자네는 이제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한 세계의 왕 펠리샤가 미소 지었다.
“자네는 신이네.”
“신……?”
“선한 신이 될지 악신이 될지는 모두 자네에게 달렸네. 부디 선한 신이 되어 주기를 바라지만 그것을 강제할 수 없네. 우리는 모두 자네에게 종속되었고, 자네가 원한다면 자네의 수족이 될 거네. 그러니까 자네가 악신, 파괴신이 된다면 자네 명령에 따라 우리가 부수고 파멸시킬 거네.”
“무서운 말 하지 마. 나는 그런 짓 따위 안 해.”
“다행이군.”
나는 몸을 일으켰다.
순간 휘청 몸이 흔들렸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두 발로 굳건히 섰다.
이곳은 익숙한 세상이었다.
아마도 펠리샤가 나를 이곳에 데려온 것 같았다.
악신이 사라지며 ‘그곳’도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깨끗했다.
아름답고 드높다.
하늘 위에 불길하게 떠 있는 검은 공동은 확실히 사라졌다.
나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신이라니……’
최초의 던전에서 하나둘 코어 능력을 얻을 때에도 그에 방불케 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니 내가 너무 자만했다고 느꼈다.
모두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수억, 수십억, 수백 년, 수천 년의 염원이 모이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그 악신과 싸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이 가슴속에 봉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악마가 되는 일은 없을 거다.’
막연히 느끼기를 내게 봉인된 악신이 언제까지나 힘을 잃고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았다.
이놈을 이 상태로 두기 위해서 나는 끊임없이 자신을 수련하고 명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싸움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어떻게 돌아가지?”
“그걸 왜 내게 묻나? 말했지 않나? 자네는 신이라고.”
“음……”
펠리샤의 외형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새 거대한 용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머리를 낮추어 이마를 가까이 댔다.
나는 거기 손을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용이 내 종복이 되겠다고 결정했다.
긍지 높은 존재가 스스로 택한 일이니만큼 내가 그것을 거부할 권리는 없었다.
인간의 형태로 변해 있던 모든 용들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숫자가 많이 줄었다.
악신과의 싸움에서 절반은 목숨을 잃은 듯했다.
문득 꽤 커다란 용 한 마리가 내 쪽으로 날아왔다.
그는 내가 특히 마음에 들어 했던 노란색 점박이 용이었다.
머리를 한껏 낮추고 눈을 끔벅이기에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죽지 않았구나. 잘했어.”
“끼룩, 끼룩,”
이 싸움을 이겨 내고 놈은 더욱 덩치가 커졌다.
장차 상위종이 될 것이 확실한 녀석이다.
어쩌면 황금용과 동등한 지위에 오를지도 몰랐다.
놈을 보자니 새 희망이 움텄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세상을 구해 냈다.
멸망은 비껴갔다.
내 진짜 행복은, 감사한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펠리샤가 말한 대로 나는 신이 되었다.
차원을 오갈 수 있는 문은 나 스스로 열 수 있었다.
손바닥을 펼친 곳에 빛이 모이더니 문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다시 보자.”
수천 마리의 용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표정에서 오만 감정이 다 보였다.
악신과의 전투에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용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악신과의 전투를 후회하지 않았다.
죽은 이들을 마음속 깊이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내 주었다.
이런 고귀한 존재들과 인연을 맺은 것에 감사했다.
나는 문을 열어젖혔다.
의도치 않았지만, 내 눈에 보인 것은 모든 동료들이 한데 모여 있는 장면이었다.
“형님!”
박성일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오빠!”
“회장님!”
며칠 동안 잠을 자지 않았는지 빨개진 눈을 하고 내게 모여들었다.
몇 발자국 뒤에서 팔짱을 끼고 턱을 매만지는 아이작이 보였다.
“돌아왔군요……”
아름다운 목소리.
이 목소리를 기억하며 처절한 전투를 버텨 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악신을 이겨 내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그녀가 세상을 구했다.
사랑이, 세상을 구한 것이다.
메건이 내 품에 뛰어들었다.
“사랑해.”
“저도요! 저도 사랑해요!”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깨끗한 하늘에는 먹구름 따위 한 조각도 보이지 않았다.
—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