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Alchemist RAW novel - Chapter (39)
최초의 연금술사-39화(39/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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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은인(1)
“언제 만나기로 하셨나요?”
– 그쪽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만나서 치료받고 싶어합니다. 먼저 선생님 스케줄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전화드렸습니다.
“저는 언제든 괜찮습니다.”
– 오늘도 괜찮으신가요?
“네.”
– 그러면 그쪽에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약속이 잡히면 제가 다시 연락드릴게요.
SH 회장을 치료한다는 것은 큰 이벤트였다.
단순히 대기업 회장을 치료하여 그와 인연을 맺는다는 차원을 넘어 그가 바로 SH 회장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현재 나는 DW와 좋은 관계가 아니니까.
그쪽 집안사람인 최동수를 죽였고, 그에게 듣기를 최동수의 형과 어머니가 나를 잡아다가 포션 제작하는 기계로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
DW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수단은 무엇이겠는가?
내가 S급 헌터가 아닌 이상 비슷한 덩치를 가진 경쟁 기업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게 그 방법일 수 있다.
이것이 이석규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힐링스톤……’
힐링스톤이 채굴되는 최초의 던전은 스페인에 있었다.
조심스럽게 예상하기를 그곳의 던전 코어를 부활시키고 나면 내게 ‘힐’ 능력이 생기지 않을까 했다.
어쩌면 단순한 힐 능력이 아니라 그 이상의 뭔가를 얻을지도 몰랐다.
‘공격 능력도 더 강해질 거고.’
내 안에 공격력을 높이는 파워스톤의 에너지는 여태 완전히 개방되지 못한 채로 눌려 있었다.
이 상태로도 충분히 강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역시 불만족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한편으로는 전체 능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게 되면 대체 얼마만 한 능력을 가지게 될까 기대가 되기도 했다.
“왜요? 어디 가게요?”
김지은이 물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다가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이 애들은 말하자면 보디가드와 같은 역할을 수행 중이니까.
내 동선을 알려주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김지은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저랑 언니도 갈게요.”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대기업 회장을 만나러 가는 자리잖아. 나만 가도 충분해.”
“대기업 회장은커녕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간다고 해도 우리가 따라갈 거예요. 자각을 못하시나 본데 오빠는 이 나라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요. 언니가 그 점을 신신당부했어요. 본인은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까 옆에서 잘 챙겨주라고.”
“음……”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확실히 내게 그런 자각은 없었다.
이렇게 보면 정희연이 김지유, 김지은 자매에게 단순히 내 경호 이상의 미션을 내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석규에게는 오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최수일 회장이 당장 치료받고 싶어하니까 3시간 뒤에 만나자는 것이었다.
좀 급작스러웠지만 나로서는 나쁠 게 없는 일이었다.
시급한 스케줄이 없을뿐더러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빨리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집을 나설 때 김지유와 김지은도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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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를 받아 찾아간 곳은 말 그대로 대저택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장소였다.
선글라스를 쓰고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저택 앞을 지키고 있다.
김지은과 비싼 아파트며 타운하우스를 검색했었지만, 이 집을 보자니 스케일부터가 달랐다.
대기업 회장은 이런 곳에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동네 자체가 이런 대형 저택들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했다.
땅이 좁다는 대한민국 서울에 이런 동네가 다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좋기는 하지만 별로 욕심은 안 나네요.”
김지은이 쿨하게 말했다.
나도 그 말은 동감이었다.
이렇게 담 높은 주택에 살면 부자라도 왠지 갇혀 지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귀여운 쌍둥이 자매라면 모를까, 시커면 경비원들이 24시간 지키고, 집안일을 하는 직원이 몇 명씩 따로 있는 환경은 별로 원하지 않았다.
“김태수입니다.”
“네,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 이름을 들은 직원이 즉시 허리를 숙이며 응답했지만, 내 뒤에 있는 두 여자애를 보고는 다시 물었다.
“이분들은 일행이십니까?”
“네.”
“방문자 기록에 없는데 혹시 헌터신가요?”
“네.”
“죄송한데 헌터시라면 같이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그 말을 들은 김지유와 김지은이 즉시 반발했다.
“누구 마음대로?”
“우리도 경호원이야. 당신처럼 돈 받고 일하는 사람.”
“일반인이라면 모르겠지만 헌터라면 더욱 입장이 불가능합니다. 저희 쪽 규칙이니 따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 들여보내면 억지로라도 들어가겠어.”
김지유가 단호하게 말했다.
자켓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툭 내뱉었지만 직원이 움찔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이곳에 뭔가를 부탁하러 온 것이 아니라 회장을 치료하기 위해서 왔다.
내가 아니면 치료고 뭐고 없는 것이다.
“이 애들을 들여보내지 않으면 저도 돌아가겠습니다. 회장님께 그렇게 전해주세요.”
“아……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직원이 난처한 표정으로 누군가와 무전으로 대화했다.
쌍둥이 자매는 기분이 좋은 듯 나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잠시 후 직원이 사과하며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세 분 다 안으로 모시라고 말씀하십니다.”
문 안으로 들어간 대저택의 풍경은 확실히 별천지였다.
널따란 정원과 연못까지 있었다.
수십 그루의 나무들과 꽃밭이 잘 관리되어 있다.
바깥의 높은 담 아래에서는 다소 차가운 인상을 받았지만 들어와서 실제로 보는 집은 뜻밖에 최신식 건물이었다.
우리는 여자 직원의 안내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이라기보다는 주택 양식으로 지어진 빌딩 안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응접실로 가자 이석규가 미리 와서 앉아있었다.
“선생님, 갑작스럽게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으셨을 텐데 저를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오죽하면 바로 스페인으로 날아갔겠습니까? 저에게도 이 일은 아주 가슴 설레는 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요?”
“네! 김태수 선생님을 전 세계 1인자로 만드는 프로젝트요! 하하하!”
며칠 못 본 사이 약간 캐릭터가 바뀐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나에게 말하기를 삶의 목표를 잃어버렸었다고 했던 그이다.
어쩌면 정말로 나를 1인자로 만들겠다는 프로젝트가 그에게 생기를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1인자를 말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분들은 누구신가요?”
“여자친구예요.”
김지은이 불쑥 말했는데 김지유도 뻔뻔하게 그 말을 바로잡지 않았다.
이석규의 반응이 더 가관이었다.
“오! 그러셨군요! 확실히 선생님에게 결혼 생활은 족쇄였나 봅니다! 이렇게 예쁜 여자친구도 생기고, 그런데 둘 중 누가 여자친구이신지……”
“우리 둘 다예요.”
이번에는 김지유가 말했다.
그녀는 대개 김지은의 장난을 바로잡는 포지션이었는데 오늘따라 왜 나를 곤란하게 하는 농담에 동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쯤 되자 이석규가 입을 벌리고 떠듬거렸다.
“오, 아…… 그렇군요. 선생님은 역시 능력자이십니다.”
“아니에요. 이 애들이 농담한 겁니다. 마루 길드 정희연 길드장님이 제 경호를 위해 붙여준 아이들입니다.”
“정희연 길드장님이요?”
이석규는 대관절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이었다.
며칠 한국을 떠나있어서 새 소식의 업데이트가 전혀 되지 않은 그였다.
시간 여유가 얼마나 더 있는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일어났던 일들을 그에게 알려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널찍하고 조용한 응접실이고, 우리 말고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나는 아주 상세하지는 않더라도 빠지는 내용이 없게끔 이석규에게 지난 며칠간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최동수가 정미희를 죽이고, 내가 그를 죽인 이야기는 마주 보고 있으면서도 굳이 핸드폰 메시지로 전달했다.
만에 하나 누가 들어서 좋을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세상에……”
이석규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큰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충격을 받을 만한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이 그를 가장 큰 충격에 빠뜨렸는지 알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으음……”
이석규가 입술을 매만지며 말을 골랐다.
일단은 친구의 안위를 챙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는지 내게 물었다.
“동기 상태는 어떻다고 합니까? 민철이는요?”
“병원에 있지만 위독하지는 않다고 합니다. 다만 두 사람 모두 누구의 면회도 허락하지 않는답니다.”
“후우우…… 그것 참 다행이네요. 아마 두 사람이 면회를 허락하지 않는 건 자존심 때문일 겁니다.”
“자존심이요?”
“아마 최동준과의 싸움이 생각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지요. 예전부터 그랬습니다. 두 사람은 그런 면에서 쌍둥이처럼 닮아서 싸움에 지면 똑같이 입을 꾹 다무는 버릇이 있거든요. 아마 곧 먼저 연락할 겁니다.”
그랬구나.
정동기는 어떤지 몰라도 왜 그 호방한 성격의 정민철이 내 전화를 받지 않을까 의아했었다.
확실히 그런 심리라면 이해가 되었다.
나라면 안 그렇겠지만 두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는 느낌.
“겨우 며칠 떠나 있었는데 정말 큰일이 많이 일어났네요. 선생님은 괜찮으십니까?”
아마도 사람을 죽인 뒤에 심리적으로 불편한 점이 있지 않은지 묻는 것 같았다.
“네, 괜찮습니다.”
“그렇죠. 그렇게 되어 마땅한 놈이니까요. 선생님이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 두 분도 큰 역할을 하셨네요.”
이석규가 분위기를 일신하며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회장님 치료를 마친 뒤에 하기로 하죠. 먼저 이것부터 작업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은 당연히 힐링스톤이었다.
이석규가 꺼낸 힐링스톤은 정동기를 치료할 때 보았던, 아직 가공하지 않은 상태였던 힐링스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가 그곳에서 구한 것은 스무 개 정도입니다. 상점 주인이 고마워하더라고요. 아무도 그걸 사 가지 않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겠죠. 스무 개가 전부인 이유도 이제 더 이상 캐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참 우스운 일이죠. 현지에서 그렇게 찬밥 신세인 광물이 이곳에서는 대기업 회장의 목숨을 연장할 수 있는 보물이 되다니요.”
“생각보다 많이 구하셨네요.”
“저는 솔직히 현지니까 오십 개 정도는 구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스페인은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제주도에 갔을 때는 그곳 상점에서 파워스톤을 팔고 있지 않았으니까.
한국은 그런 면에서는 반응이 빠른 편이라서 팔리지 않은 상품을 진즉 치워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마루 길드가 최초의 던전을 소유한 뒤로 그런 장사를 하지 않게 된 것인지도.
“지금 전부 드리겠습니다.”
이석규가 힐링스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제가 가지고 있어봤자 의미가 없을뿐더러 선생님이 가지고 계시면 달리 쓸 데가 더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다만 치료가 필요한 VIP 손님이 있으면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걸 사느라 제법 큰 돈을 쓰셨을 텐데 제가 절반은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어휴~ 나중에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제가 오늘 치료에 얼마를 받기로 했는지 아십니까?”
“최수일 회장님에게요?”
“네, 착수금 100억, 그리고 치료에 성공할 경우 천억 더 받기로 했습니다.”
“천억이라고요?”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이런 금액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착수금이 큰 이유는 제가 그동안 회장님의 부탁을 거절하고 그분을 치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와주는 것만도 고맙다고 100억을 제시할 만큼 절박하신 거죠. 천억도 그래서 부른 가격일 겁니다. 기대하지 않으니 만에 하나라도 치료가 되었으면 좋겠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부자에게 돈 같은 게 중요하겠습니까?”
“회장님은 대체 어디가 편찮으신 거죠?”
“돈 많은 회장님들에게 보편적으로 있는 증상입니다. 마나중독증. 그러니까 일반인의 몸으로 너무 많은 마나에 노출되었던 것이죠. 일반적으로 헌터용 아이템, 그리고 ‘힐’과 같은 스킬은 헌터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초창기에는 그런 구분이 거의 없었습니다. 일반인에게 어쨌거나 효과가 있으니 무분별하게 그것에 노출된 사람들이 많았죠. 장기간 하다 보니 몸에서 배출되지 않는 독소가 쌓인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치료법이 단 하나만 존재했습니다. 헌터로 각성하는 것. 헌터가 되면 몸 안에 있는 마나 정도는 컨트롤할 수 있으니까요. 아닌 경우에는 끔찍한 통증에 시달리다가 천천히 죽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최수일 회장님에게 천억은 큰돈이 아닌 셈이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중독증’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얘기를 듣고 보니 일반적으로는 걸리기 힘든 병이겠다 싶었다.
일반인이 헌터용 아이템을 사용할 경우 그 효과가 크지 않은데 반해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니까.
하지만 돈 많은 회장님들이라면 그럴 수 있었다.
돈에 대한 감각 자체가 다르고, 헌터로 각성하지 않고도 그쪽 세상을 체험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방법일 테니까.
“힐링스톤으로 고칠 수 있을까요?”
최초의 던전에서 나온 힐링스톤에도 마나가 있다.
그것도 강력하고 순수한 마나가.
“네, 이것은 특별합니다. 동기를 치료할 때 충분히 느꼈죠.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면 회장님을 만나지도 않았을 겁니다.”
“다행이네요.”
나는 이석규가 준 힐링스톤을 하나만 남기고 전부 인벤토리에 넣었다.
하나 남은 힐링스톤 위에 손을 얹고 그것을 가공했다.
빠르게 불순물이 떨어져나가고 깨끗한 힐링스톤만이 테이블 위에 남았다.
“오!”
김지은이 신기해하면서 힐링스톤에 손을 뻗으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만지면 안 돼. 그러면 또 오염될 거야.”
오염되면 다시 가공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굳이 일부러 오염시켜서 시험해볼 필요가 없었다.
이석규가 테이블 위에 있는 인터폰을 집어 들었다.
“준비됐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가 힐링스톤을 집어 들고 몸을 일으켰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혹시 지루하면 먼저 돌아가셔도 되지만 제 생각에는 회장님을 만나고 가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이석규의 표정을 보자니 정말로 마나중독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정동기를 치료할 때보다 훨씬 표정이 밝아 보인다.
아마 그때 경험으로 최초의 던전에서 나온 힐링스톤의 위력을 알았기 때문이겠지.
고통 속에서 죽을 날만 앞두고 있는 회장을 치료하러 왔으면서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도 큰일이었다.
치료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석규의 말마따나 여기까지 왔는데 회장과 이야기 정도는 하고 돌아가는 것이 나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소파에 등을 기대었더니 인터폰이 울렸다.
나 대신 김지은이 그것을 받았다.
“네, 배고파요. 뭘 먹고 싶냐고요? 음……”
나였다면 체면을 따지느라 사양했을 텐데 김지은은 마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것처럼 이것저것 요구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고급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처럼 디테일하고 거침없었다.
‘배고프니 잘됐네.’
사실 나도 좀 배가 고팠다.
김지은의 행동이 적절했다고 느낀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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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이 좀 넘게 흐른 뒤에 이석규가 돌아왔다.
“아, 식사 중이셨네요.”
“치료는 잘 끝났나요?”
“네, 회장님은 완쾌되셨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뵀는데 얼굴과 몸이 많이 상하셨더라고요. 지금은 일어나서 직접 몸을 씻고 계십니다. 몇 년 동안 거의 침대를 벗어난 적이 없는데, 두 발로 침대에서 내려와 섰다는 것만으로도 놀랄 일이죠. 30분 뒤에 선생님과 함께 찾아뵙겠다고 했습니다.”
이석규도 지쳤는지 소파에 푹 앉으며 우리가 주문해놓은 음식을 함께 먹었다.
정말로 30분가량이 흐른 후 인터폰이 울렸고 이석규가 그것을 받았다.
“회장님이 준비되셨다고 합니다. 지금 갈까요?”
나는 이석규를 따라 응접실을 나갔다.
직원의 안내로 걷고 있자니 정말로 이게 집이 맞나 싶었다.
긴 복도를 지나 서재로 보이는 방에 도착했다.
벽면을 빼곡히 채운 책들이 양이 상당했다.
이것들을 정말로 최수일 회장이 다 읽었다면 그를 존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최수일 회장으로 생각되는 인물이 서 있다가 우리를 맞았다.
“어서 오세요. 오! 이쪽이 그 힐링스톤을 가공했다는 선생님이시군요!”
회장은 70대로 보였는데, 깡마른 몸에 머리카락이 적고 근래 많은 고생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다만 표정이 밝고 목소리가 정정한 것이, 이석규의 말마따나 그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병마를 떨쳐냈음을 알 수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태수입니다.”
“그래요, 김태수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회장이 내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혀 그렁대는 것이 보였다.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마주 잡은 손에서 절절하게 느껴졌다.
확실히 돈 천억보다 더 지독한 경험을 한 것 같았다.
“선생님! 당신은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뭐든 원하는 게 있으면 다 말씀하세요. 내가 다시 마나중독증에 걸리는 것만 빼고 뭐든 다 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