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Alchemist RAW novel - Chapter (66)
최초의 연금술사-66화(66/175)
< 제주도 결전(3) >
나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일련의 충격으로 천장에 매달려있던 파워스톤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그것을 보자니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다소 아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애초에 지금의 내가 얼마나 파워스톤을 많이 흡수한들 최초의 던전 코어 흡수를 더 늘리지 않는 이상 끌어낼 수 있는 힘의 한계가 있었다.
던전 코어를 통해 이곳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나중에 더 코어와 연결된 파워스톤을 생성해낼 수 있기도 하고.
나는 파워스톤을 왼손에 들고 바로 가공했다.
푸스스슷-
감싸고 있던 불순물이 떨어지면서 즉시 가공이 이루어졌다.
그것을 여전히 벽에 반쯤 몸을 묻은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던전 보스에게 내밀었다.
“끼우우웅?”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날뛰던 놈이 갑자기 순진한 목소리와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우스웠다.
약간 위험한 발상이기는 하지만 귀엽게 보이기까지 했다.
놈이 내 손에 들린 파워스톤을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프지? 이거 먹으면 나을 거야.”
“끄으으응…….”
던전 보스가 내 손바닥 위에 있는 파워스톤을 가져갔다.
내게는 손바닥을 가득 채울 크기의 광석이었지만 녀석에게는 손가락 끝으로 들어 올릴 수준의 작은 크기였다.
마치 내 손에 상처를 입히지 않으려는 듯 조심히 가져가는 느낌.
놀랍게도 그것을 휙 던져서 입으로 받았다.
우물우물,
마치 사탕처럼 파워스톤을 입 안에 넣고 굴리는 녀석이었다.
아그작아그작, 소리가 나더니 단물이 빠져 퇴색한 파워스톤을 퉷 하고 뱉었다.
녀석이 몸에서 은은한 빛이 솟구치는가 싶더니 벽에서 빠져나왔다.
춤을 추듯 몸을 빙그르르 회전시키고, 신이 난 듯 펄쩍펄쩍 공간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세 여자는 사다리 옆에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기하기는 해도 뭐라고 쉽게 말을 걸 수 없는 분위기가 전해졌다.
넓은 공간을 마구 뛰어다니던 던전 보스가 내 쪽으로 펄쩍펄쩍 돌아왔다.
“오빠!”
“빨리 이쪽으로 와요!”
걱정된 김지유, 김지은 자매가 외쳤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다.
이미 싸움은 끝났고, 이제는 그다음 단계였다.
복종 피복종 관계에 대한 정립이 끝났다고 느끼고 있었다.
던전 보스가 내 앞에서 머리를 푹 낮추더니 한쪽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을 위로 해서 쭉 내미는 것을 보아 그것이 복종의 표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녀석의 손바닥 위에 내 손을 올렸다.
녀석은 나를 올려다보고 조심스럽게 눈을 맞추었다.
벌쭉 웃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정말 귀엽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저걸 전부 따 와.”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한국어를 모르는 녀석이 나와 천장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내가 과일을 따는 듯한 모션으로 보디랭귀지를 하자 그제야 알아들었는지 펄쩍 천장으로 뛰어올랐다.
그쪽의 줄기에 매달려서 파워스톤을 하나씩 뚝, 뚝, 따내기 시작했다.
바닥에 가공하지 않은 파워스톤이 떨어져 내렸다.
녀석은 천장을 옮겨 다니며 남아있는 모든 파워스톤을 따냈다.
“끼익! 끼이이!!”
할 일을 끝내고 바닥에 착지해 또다시 춤을 춰대는 녀석이었다.
마치 내 칭찬을 바라는 듯했다.
“고마워.”
“끼이이이!”
확실히 일반 몬스터들보다 지능이 높다.
그 말은 길들이기가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리 와.”
손짓하자 내 쪽으로 다시 뛰어온다.
그러는 동안 ‘파워 코어 메이스’로 변해있던 오른팔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내 집중력이 흐려졌다기보다는 이제는 위협적인 상황이 끝났다는 걸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사라졌다는 감각이었다.
던전 보스가 다음에는 또 뭘 시킬 거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끝이 뾰족한 돌 가지를 집어 들었다.
그것으로 전체 던전의 모양을 바닥에 그렸다.
어설픈 그림이었지만 어쩐지 던전 보스가 그 그림을 이해한 것 같았다.
그림 상 던전의 최하단을 쿡쿡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로 갈 수 있어?”
“끼잉?”
표정만 보면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헷갈렸다.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말했다.
“여기로 가 있어. 내일 내가 이 입구로 들어올 거야.”
“끼우웅?”
던전 보스가 내가 그려놓은 그림을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나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내가 한 말을 이해했다는 정확한 증거는 아닐 터였다.
하지만 이 이상은 나도 어떻게 더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녀석의 북실북실한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내일 보자.”
나가기 전에 바닥의 파워스톤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내가 하는 양을 보고 던전 보스가 파워스톤을 하나씩 주워서 내 쪽으로 가져왔다.
하나를 흡수해서 그 맛을 보았지만, 딱히 내 앞에서 더 욕심내지는 않았다.
다음에는 던전 코어로 가서 손을 올렸다.
오늘 파워 코어 메이스를 꺼내며 소모되었던 힘을 충전하기 위해서였다.
혹시 몰라 집중해서 이미지를 떠올려보았지만 천장에 다시 파워스톤이 열리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것이 생성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할 일을 마치고 세 여자 쪽으로 돌아갔다.
그녀들은 여전히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돌아가죠.”
차례대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천장으로 이동했다.
구멍으로 아래를 보았더니 던전 보스가 눈을 촉촉하게 하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진짜 별일이 다 생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돌아오는 헬리콥터 안에서 정연희가 물었다.
“진짜 성공했네요. 던전 보스랑 교감하는 거.”
“네, 위험한 일에 참여시켜서 죄송해요. 왠지 모르게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로는 함부로 감에 의존해서 행동하지 않을게요.”
“아니, 앞으로 계속 그렇게 하셔도 돼요. 뭘 하시든 제가 서포트하겠습니다. 선생님이 가시는 길이 곧 역사예요. 어디서 이런 경험을 하겠어요?”
“오올~ 언니, 진심 나왔고요~”
“헬리콥터 안에서 고백하는 거야?”
“얘들이!”
김지유, 김지은의 장난에 흐지부지되었지만 정연희의 말은 참 고마웠다.
나도 궁금했다.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지금까지 느낌에 의존해 무언가를 했을 때 배신을 당한 적이 없었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도 혼자서 그 길을 개척하고 싶은 기분.
헬리콥터가 지상에 도착할 즈음 정연희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가 전화를 받더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야? 음, 알았어.”
그녀가 내게 말했다.
“강길순이 오늘 밤에 제주도로 올 것 같습니다. 박광일과 이서율의 이름도 포함되어있어요. 함께 움직이는 인원이 100여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100명이요?”
아마도 마루 길드 쪽에서 그들이 제주도로 온다는 정보를 알아낸 것 같았다.
100명이라니.
듣기만 해도 아찔한 숫자였지만,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마루 길드를 끝장내고 최초의 던전을 빼앗기 위해 오는 것이었으니까.
“이걸 지금 알았더라면 대비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저희도 전쟁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이런 일을 해본 게 정말 오랜만이네요. 박광일까지 오다니, 저쪽이 얼마나 진심인지 알겠어요.”
“박광일이면…… 건일인가요?”
“네, 기본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유형은 아니지만 사냥할 때, 그리고 싸움이 벌어지면 가차 없이 악귀로 변하는 인간으로 유명해요. 평소에 말이 별로 없어서 인간미가 더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이죠. 개인이 가진 능력은 저나 이서율보다 강해요. S급을 신계라고 치고, A급 중 인간계 최강이라고 불리는 헌터 중 한 명이죠. 상대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정연희는 각오를 굳히면서도 약간은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태양과 바이올렛, 그리고 강동까지 참전하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그런데 또 다른 대형 길드, 건일의 이름이 튀어나온 것.
나도 이름만 들어보았을 뿐 자세한 것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정연희는 그 길드장 박광일의 능력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본격적인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적의 전력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었다.
나도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내일 선생님도 나오실 생각이세요?”
정연희가 물었다.
“그래야죠.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요.”
“저는 반대예요. 태국에서는 선생님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만, 이번 일은 성질이 달라요. 적은 노련한 헌터 집단입니다. 선생님이 어떻게든 몸을 보존하셨으면 좋겠어요.”
“어디에 있든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은 같습니다. 그럴 바에야 저도 힘을 보태고 싶어요. 물론 저는 이런 쪽에 경험이 부족한 만큼 무턱대고 위험을 무릅쓸 생각이 없습니다.”
“음…… 이미 마음을 굳히신 것 같네요.”
정연희가 김지유, 김지은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선생님 옆에 꼭 붙어있어. 너희들의 유일한 임무는 선생님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거야.”
“걱정하지 마, 언니.”
“말 안 해도 알고 있어~”
정연희는 현장에 남았다.
나는 김지유, 김지은과 함께 호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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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가 몇 번 가지 않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 어머, 아직 기한이 남아있는데 벌써 연락을 주실 줄은 몰랐어요~ 잘 계셨죠?
강길순이 특유의 뻔뻔하고 톤이 높은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
나는 그녀가 딴마음을 품고 제주도로 온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는 겉으로 아무 일도 없는 듯 꾸며냈다.
“무조건 기한을 채울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연락드렸습니다. 아직도 저와 계약할 용의가 있으신가요?”
– 물론이죠~ 말씀드렸다시피 선생님이 만족하실만한 조건을 준비했습니다. 다만 전속 계약이고, 저희가 목표로 하는 생산량을 맞춰주시는 조건이에요~
“생산량이라면 궁극의 포션 말씀인가요?”
– 네~ 혹시 다른 걸 만드실 수 있으세요? 그러면 또 계약을 조정할 여지가 있죠~
“저는 지금 제주도에 있습니다.”
– 알고 있어요.
“알고 있다고요?”
– 선생님과 저희 관계에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잖아요? 신뢰를 공고히 하기 위해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선생님의 동선을 파악해둘 필요가 있었어요. 혹시 기분 상하게 한 거라면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혹시 제가 제주도에 와 있는 이유도 아시나요?”
– 마루 길드 정연희 길드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만나러 가셨나요? 호호호. 선생님도 저희를 믿지 못하고 나름대로 준비를 하시는 것 같네요. 괜찮습니다. 다 이해해요~ 호호호호!
전화기 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이 소름 끼쳤다.
그녀는 대형 길드 두 곳의 힘을 빌려 그곳 길드장들을 포함해 1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오려고 했다.
그걸 알고서 듣자니 그녀의 말투에서 진한 여유가 느껴졌다.
“그 이유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최초의 던전과 관련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아마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계약 조건도 크게 달라지겠죠. 혹시 흥미가 있으실까 싶어 말씀드리는 겁니다.”
– 아~ 거기까지 말씀해주시네요~ 어렴풋이 예상은 했습니다. 마루 길드와 선생님의 특별한 관계가 비즈니스적인 이유도 있을 거라고요.
“최초의 던전이 부활했습니다. 마루는 그곳을 독점하고 싶은 것 같은데, 저는 이쪽 분야에 경험이 많은 DW가 도와주시면 더 편안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 건까지 포함해서 제주도에서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 그런 이유라면 당장 제주도로 가야겠네요.
“던전에서 직접 뵙고 대화를 나누면 이해하시기 더 편할 것 같습니다.”
– 잠시만요~ 제주도가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오늘 밤에 그쪽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네요. 시간이 좀 늦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좋습니다.”
– 솔직하게 다 말씀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사실 선생님이 딴맘을 품고 저희와 다른 길을 갈까 봐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더 이상 불미스러운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호호호호!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끝으로 강길순과의 통화를 끝냈다.
그녀가 진실을 다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동시에 그녀가 알고 있는 정보와 인식 수준이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제주도에서의 결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강길순의 속내와 달리 이 일이 결코 그녀에게 유리하게 흘러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