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Alchemist RAW novel - Chapter (69)
최초의 연금술사-69화(69/175)
< 길드 대통합(1) >
던전 보스에게 얻어맞고 박광일의 몸이 풀썩 꺾였다.
박광일의 피지컬은 크고 단단했지만, 던전 보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나를 공격하는 걸 보았기 때문인지 던전 보스는 화가 나 있었다.
쓰러진 박광일을 미친 듯이 공격했다.
쾅! 쾅! 쾅!
주먹으로 마구 내리친 뒤에는 그 위에 올라타서 발로 짓밟았다.
쾅! 쾅!-
박광일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고 먼지와 돌가루만 자욱하게 피어오를 뿐이었다.
한참 말을 잊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나는 메이스로 변형되어 있었던 오른팔을 정상으로 되돌렸다.
“이제 그만해.”
내 말에 던전 보스가 날뛰는 걸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끼우웅?”
펄쩍 내게로 오더니 마치 잘 길들여진 애완동물처럼 몸을 낮추었다.
나는 녀석의 복슬복슬한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세상에.”
“진짜 보스를 길들였네.”
김지유와 김지은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박광일 쪽으로 갔다.
그는 바닥에 짓눌려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걸 보니 숨이 붙어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손을 뻗어 내 다리를 콱 움켜쥐었다.
귀신.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남자였다.
하지만 그의 손아귀에서 더는 강한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었다.
‘푸카창’.
태국에서 얻은 무기였다.
최고의 장인이 오랜 시간 담금질하여 만들어낸 것을 27단계까지 강화한 것이었다.
나는 푸카창으로 박광일의 가슴을 찔렀다.
푹-
단단한 헌터용 장비를 뚫고 심장 깊숙이 칼날이 박혔다.
마치 무른 과일을 찌르는 것처럼 쉽게 칼날이 파고들었다.
박광일의 입에서 울컥울컥 검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끝까지 나를 노려보던 두 눈이 잠시 후 빛을 잃었다.
박광일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 나는 그의 가슴에서 칼을 뽑아냈다.
칼날에 묻었던 피가 쉬이익, 증발하듯 사라졌다.
“죽었네요.”
김지유가 안도한 표정으로 박광일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바깥은 어떻게 됐을까요?”
박광일이 던전 안으로 들어와 날뛴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직 바깥에서 싸움이 끝났을 만한 시간이 아니었다.
“나가자.”
나는 던전 밖으로 나갔다.
김지유와 김지은이 따라왔고, 쿵, 쿵, 큰 발소리도 따라붙었다.
자연스럽게 던전 보스도 따라오는 것이었는데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었다.
바깥으로 나왔을 때, 확실히 분위기가 이쪽으로 기울어있었다.
바닥에 쓰러져있는 헌터들의 면면은 건일과 바이올렛 헌터들 쪽이 훨씬 많았다.
정연희와 이서율은 아직도 싸우는 중이었다.
둘의 싸움은 삼자가 개입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싸움이 길어진다고 생각한 순간 그쪽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서율이 소환했던 목각 인형을 닮은 존재들이 실이 끊어진 듯 바닥에 주저앉기 시작했다.
나타났을 때처럼 푸스슥, 땅 밑으로 꺼지듯이 사라졌다.
그 주위에 있던 마루 헌터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정연희가 이겼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나는 이 싸움을 계속할 명분이 더 이상 없다고 생각했다.
옆에 서 있는 던전 보스에게 말했다.
“한번 기운차게 울어봐.”
내 말을 들은 녀석이 가슴을 쫙 펴더니 공간 전체를 가득 메울 만큼 큰 목소리를 내질렀다.
“꾸와아아앙~~~!!”
갑작스럽게 들려온 짐승의 포효에 이곳에 있는 모든 헌터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말했다.
“박광일은 죽었어요. 이서율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싸움을 멈추면 목숨은 보전해드리겠습니다.”
잠시간 침묵이 이어진 뒤에 곳곳에서 무기를 내던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허탈한 듯 주저앉는 헌터들도 있었다.
옆에 위압감 넘치는 던전 보스가 있었기 때문일까?
적이든 아군이든 경이로운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대한민국 헌터 역사에 이 정도로 큰 싸움이 있었을까 싶었다.
대형 길드 셋에 미국 용병들까지 가세한 싸움이니까.
최초의 던전을 지켜냈다.
이제는 이쪽에서 전리품을 취할 차례였다.
#
싸움이 벌어졌던 현장이 수습되어가고 있는 중에 일라이저가 돌아왔다.
그녀가 던전 앞 싸움에서 빠졌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강길순을 잡기 위해서.
강길순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웬만큼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니까.
“죽었습니다. 저항을 심하게 하더니 결국 스스로 목을 찌르더라고요.”
일라이저가 현장의 상황을 전달했다.
본인을 보호할 헌터들을 데리고 있었고, 싸움이 벌어졌던 모양이었다.
불리해지자 끝내 자살을 선택했다.
각본을 짠 강길순이 죽었지만 이제 다 끝났다고 하기에는 남아있는 일이 있었다.
“서울로 가야겠어요.”
제주도에 건일과 바이올렛이 동원되었다.
강길순이 이 일에 끌어들인 대형 길드가 이 둘뿐이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강동이 개입했을 것은 확실해 보였고, 또 다른 적이 더 있을지 몰랐다.
인질을 사로잡는 것은 비겁한 적들이 쓰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이렇게 된 이상 조금이라도 자기네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내 지인들을 건드릴 가능성이 있었다.
“제주도에 더 있을 필요가 없으니 내일 함께 올라가지요.”
데이먼이 말했다.
그가 움직인다는 것은 그의 용병들도 함께 움직인다는 뜻이었다.
이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나를 돕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데 던전 보스를 길들였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데이먼이 내게 사진을 내보이며 물었다.
용병 중 누군가가 내가 던전 보스와 나란히 있는 사진을 찍어 데이먼에게 보낸 모양이었다.
“그게 좀, 그렇게 됐습니다.”
“나중에 더 자세히 듣겠습니다. 하하하.”
정연희가 마루의 가용한 전투 인원들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제주도에 남아 뒤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죽은 일이에요. 이 일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서울까지 따라오지 못하는 걸 아쉬워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어차피 일어날 싸움이었어요. 선생님 덕분에 이 정도 피해에 그칠 수 있었습니다. 최초의 던전도 그렇고, 바이올렛과의 문제도 일단락지었으니 마루도 내륙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앞으로 활동폭이 넓어질 테니 길드도 더 성장할 겁니다.”
나는 정민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아, 선생님!
강동의 길드장에게 뒤통수를 맞고 죽을 뻔했을 때와 비교하면 목소리가 많이 침착해져 있었다.
내가 제주도로 간 일을 알고 있더라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는 그였다.
서울로 다시 올라가기 전에 그에게 며칠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전화기 안에서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정말입니까? 그런 일이 있었는데 왜 저를 부르지 않으셨습니까?
“아직 몸이 성치 않으시니까요. 강동은 제주도 건에 빠져 있었어요. 강길순은 죽었지만 그 전에 또 어떤 함정을 파놓았을지 모를 일입니다. 저희가 갈 때까지 그곳에 안전하게 계세요. 금방 올라가겠습니다.”
– 하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습니다. 강길순 그 여자가 욕심내다가 되레 크게 당한 꼴이군요.
#
“저를 왜 보자고 하셨습니까?”
태양의 김석준이 이길천을 마주하고 물었다.
“강길순 사장님에게 얘기 들으셨을 겁니다.”
“네, 제주도 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대기하라고 하더군요.”
“왠지 안 좋은 느낌이 들어서요.”
“안 좋은 느낌이요?”
“정민철이 살아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네? 사장님 말씀은 다르던데요?”
“그건 강길순 씨가 정민철을 잘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죽을 뻔한 위기를 숱하게 넘겨온 놈입니다. 그쪽 운은 타고난 녀석이죠. 이번에도 아마 살아있을 겁니다.”
“그 정도로 확신하시는 겁니까?”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하는 말이지만, 민철이가 강동에 들어오게 된 계기가 되었던 그 사건 때도 그랬습니다. 실은 제게도 의뢰가 들어왔었어요. 녀석을 죽여달라는 의뢰에 큰돈이 걸렸고, 강동도 한발 걸쳤던 거죠. 현장에 가봤더니 놈이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끝까지 버티고 있는 겁니다. 그곳에서 생각을 바꾸었죠. 차라리 살려주고 녀석을 이용하는 게 더 낫겠다, 저 정도 남자라면 강동에 부족한 퍼즐을 맞추는 데 딱 좋겠다. 결국 그 생각대로 되었죠. 하지만 저는 아직도 그때 일을 잊지 못합니다. 정민철은 제가 품기에 너무 큰 남자예요. 언제 그 일을 알아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있었죠. 이번 일도 그렇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저를 위협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김석준은 미간을 찡그렸다.
원래 이길천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얘기를 듣다 보니 더 가관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저를 만나자고 한 이유입니까?”
“네, 제주도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우리끼리 정민철을 치는 게 어떻습니까?”
“왜 그래야 하죠?”
“제주도 건이 마무리되면 안 그래도 큰 DW의 입김이 더 세질 겁니다. 우리는 숨도 쉬지 못할 만큼 압박해오겠죠. 이게 맞는 얘깁니까? 아무리 대기업 힘이 세다고 해도 대형 길드 목줄을 잡고 흔들 정도라니요.”
“제가 들은 이야기와는 다르군요. 강동은 이미 DW 산하 길드가 되기로 했다고 들었는데요.”
“말이야 바른말이지, 강길순 그 여자를 어떻게 믿습니까? 힘이 빠진 강동 목줄을 잡고 입맛대로 이용할 생각일 게 뻔합니다. 애초에 그 여자 생각대로 움직여줄 마음이 없었어요. 그래서 길드장님을 찾아온 겁니다. 저희 강동과 합병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합병이요?”
김석준은 놀랐다.
이길천이 직접 합병 제안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하지만 이미 강길순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이 일이 마무리된 뒤에 강동과의 합병을 주선하겠다는.
단독으로 하는 것보다 DW가 중재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태양이 건일이나 바이올렛보다 더 위로 올라설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지금 길드계는 춘추전국시대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곧 경쟁이 과열될 거고, 태양 위로 올라서려는 길드도 있을 겁니다. 어차피 저희 강동은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는 길드예요. 태양이 저희를 흡수하는 방법으로 합병하는 겁니다. 자본력이라면 저희도 결코 빠지지 않으니까요. 태양의 가장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DW와 척을 지게 될 텐데 그런 리스크를 감당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어차피 DW도 저희와 거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기업입니다. 이쪽의 덩치를 키우자는 말씀이죠. 그래야 저희 면도 살고 더 좋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태양이 강동을 흡수해도 충분히 힘이 세진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건일이나 바이올렛은 이번 일로 DW와 더 가까워질 테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성공 길드 쪽과도 이야기했습니다. 그쪽도 요즘 많이 힘드니까요. 길드장님이 제 제안을 받아들이면 성공도 태양 밑으로 들어오겠다고 합니다.”
“으음……”
김석준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내심으로는 웃음을 지었다.
이길천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평생 DW에 휘둘리는 것보다 길드 자체의 힘을 키우는 것이 낫다.
이길천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는 어차피 자기 밑으로 들어오려는 것이었다.
반면 강길순과 DW는 태양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서려고 한다.
면도 살리고 실리도 얻는다는 이길천의 말이 틀리지 않는 이유였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네요.”
“그렇죠? 일단 강길순의 명령을 기다릴 필요 없이 정민철을 죽이러 가죠. 합병 건은 그 뒤에 마무리하는 것으로 하고요.”
제주도의 일이 어떻게 끝났는지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