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Alchemist RAW novel - Chapter (85)
최초의 연금술사-85화(85/175)
< 버려진 던전(1) >
“강윤미라고 하셨죠? 그쪽에 연락할 수 있을까요?”
내 물음에 정연희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 버려진 던전 쪽에서 변화가 있었나요?”
“네, 던전이 완전히 부활하지 않더라도 그런 낌새만으로도 불안하게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더 시간을 끌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알겠어요. 당장 연락할게요.”
정연희가 즉시 핸드폰을 꺼내었다.
그녀의 표정이 밝아 보였는데, 그녀로서도 DW의 폭거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반격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 왜 기쁘지 않겠는가?
정연희의 통화는 길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버려진 던전을 사고 싶다는 말이 나왔으니까.
상대로서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울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자기들이 소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버려진 던전을 누군가에게 팔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을 테니까.
보통 사람이라면 무시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을 꺼낸 것이 바로 마루 길드의 길드장이었다.
“이따가 다시 연락한다고 하네요.”
“강윤미에게 제 번호를 알려주세요.”
“직접 이야기하실 건가요?”
“네, 그편이 빠를 것 같아요.”
#
또 한 곳의 버려진 던전에 들러 마나를 주입한 뒤 촬영을 끝내고 나오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이 번호가 강윤미의 것일 거라고 예상했다.
“여보세요.”
– 김태수 씨?
고양되어 톤이 높아진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시죠?”
– 강윤미예요. 버려진 던전 문제로 연락 달라고 하셨다면서요?
“네. 제가 사고 싶어서요.”
전화기 안이 침묵했다.
할 말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 버려진 던전은 팔지 않습니다. 판다고 하더라도 김태수 씨가 감당할 만한 가격이 아니에요.
“그쪽에서는 싼 가격으로 구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변 부동산까지 산다는 건 아니에요. 감당할 가격이 아니라고 어떻게 자신하시죠?”
– 부동산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버려진 던전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주변 부지까지 구입할 수 있었던 거예요. 분리할 수 있는 땅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강윤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되었다.
버려진 던전을 국가에서 관리했을 때 당연히 던전만 안전하게 관리한 게 아니었다.
던전이 부활했을 때 그 피해가 주변까지 미칠 수 있다.
단순히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마나로 오염된 공기와 땅은 일반인에게 방사능만큼이나 해로우니까.
“그건 제 사정이 아닙니다. 버려진 던전이 부활하면 어차피 주변 부동산도 가치를 잃는 것 아니겠어요? 가치 없는 땅에 제가 왜 돈을 써야 할까요?”
– 뭐라고요?
강윤미의 음성이 다급해졌다.
버려진 던전이 부활한다는 말에 심장이 철렁한 것이리라.
그녀로서는 가장 피하고 싶고, 꿈에라도 가정하고 싶지 않은 일일 것이다.
“저에 대해서 잘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 혹시 저희 집안 사람들이 태수 씨와 싸웠던 일이라면 저는 관계없습니다. 특히 버려진 던전과는 더더욱 관련이 없고요.
“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지금 제주도에 있습니다. 이곳 최초의 던전이 부활했다는 사실은 아시죠?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세요?”
– 네? 설마……
나는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버려진 던전에서 찍은 동영상을 전송했다.
코어가 맥동하며 그 주변의 가지들이 뻗고, 그 사이사이 광석이 맺혀있는 동영상이었다.
한참 뒤에야 강윤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이게 뭐죠……?
“제주도에도 버려진 던전이 두 곳 있죠? 제주도에 온 김에 작업을 좀 했습니다.”
– 작업이요?
“이 동영상을 헌터부에서 보면 어떻게 될까요?”
– 우, 웃기지 마요! 던전이 부활한다는 증거는 동영상 하나로 부족해요. 관련성 검사를 하는 데만도 수개월이 걸릴 거예요. 이미 그 주변에 헌터들의 주거지와 편의 시설이 있습니다. 그곳을 이용하는 헌터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요?
“뭔가 크게 착각하시는 것 같네요. 왜 헌터부가 DW 편을 들 거라고 생각하죠? 던전이 실제로 부활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헌터들이 그쪽 편을 들 거라고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머릿속이 꽃밭이신 것 같네요. 세상을 좀 더 배우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지금 저를 모욕하시는 건가요? 이러고도 당신이 무사할 것 같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약간은 예상했던 일이지만 강윤미는 단순한 여자였다.
대기업 직계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랐기 때문이겠지.
그녀의 나이를 생각하면 더욱 답이 나오는 문제였다.
거기에 헌터로 각성하여 커다란 사업까지 맡게 되었으니 안하무인일 가능성은 더 컸다.
“저는 일찍 잠자리에 드는 편입니다. 오늘 밤 아홉 시까지 연락이 없으면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고 버려진 던전을 부활시킬 겁니다. 아! 제주도 버려진 던전만 작업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알다시피 버려진 던전은 전국 도처에 있으니까요.”
나는 전화를 끊었다.
통화하는 동안 옆에 가만히 서 있던 메건이 물었다.
“얘기는 잘 됐어요?”
나는 그녀에게 웃어 보였다.
“네.”
#
“할아버지! 뭐라고 말씀 좀 해보세요! 그 자식한테 이렇게 끌려갈 거예요? 우리가 그것밖에 안 돼요?!”
강윤미가 할아버지, 즉 DW의 회장 강성권 앞에서 악다구니를 썼다.
강성권은 망연하게 핸드폰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 안에서 재생되고 있는 것은 김태수가 강윤미에게 보낸 영상이었다.
“할아버지!”
“닥치지 못해!”
강성권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강윤미가 깜짝 놀라 소파에 주저앉았다.
곧 그녀의 눈에 눈물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으아앙~~~!!”
성질 나쁜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를 보고 강성권이 혀를 찼다.
“그치지 못해!”
할아버지의 호통이 이어지자 강윤미는 이것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울음을 멈췄다.
“그, 그렇게 심각해요?”
“네 눈으로 보고도 몰라? 김태수 이놈은 보통 헌터가 아니야! 이 자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아? 바로 엘리트헌터즈 회장 데이먼이다!”
“뭐라고요?”
“듣자니 그 딸이랑 가까운 사이라고 하더구나. 어쩌면 데이먼의 사위가 될지도 모르겠다.”
“사, 사위라고요? 설마 메건……? 그 여자가 뭐가 부족해서 한국의 이혼남이랑 결혼해요?”
“에잉, 멍청한 것아. 김태수는 최초의 던전을 부활시켰다. 그런 헌터를 사위로 삼을 수 있다면 나라도 딸을, 아니 손녀를 시집보내겠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세 명도 보낼 수 있어!”
“할아버지……”
“방법이 없어. 네가 직접 가서 사과해라.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너를 호적에서 파낼 테니 그렇게 알아! 그리고 이 건으로 회사가 입은 피해는 네가 전부 지게 될 거야!”
“네? 그치만……”
“혹시라도 이상한 생각하지 마라. 네가 직접 가서 무릎 꿇고 설득하는 수밖에 없어. 안 되면 바닥에 이마라도 찧어라.”
강윤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할아버지가 냉정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자신에게만은 늘 다정했었다.
DW를 떠나 막대한 빚을 지게 되는 것……
상상만 해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
밤 아홉 시가 가까워졌을 때 강윤미에게 전화가 왔다.
– 낮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내일 직접 찾아뵙고 말씀 나누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계약 때문인가요? 굳이 제주도까지 오실 필요 없이 소유하고 계신 버려진 던전을 한꺼번에 계약하고 싶습니다. 서울에서 만나 뵙고 말씀 나누죠.”
– 그, 그게……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십시오. 듣고 있습니다.”
– 부탁입니다……
“네?”
– 제발 다시 생각해주시면 안 될까요? 만약 버려진 던전을 내어주면 제가 집안에서 쫓겨날 거예요. 게다가 그 빚도 제가 져야 하고요……
“그래서요?”
황당했다.
계약 문제에 왜 개인사를 들먹이는 걸까?
말하는 내용으로 보아 그녀가 회장인 강성권을 만났던 게 분명해 보였다.
손녀딸을 쫓아내고 빚까지 지운다니.
냉혹한 대기업 회장이 할 만한 말이었다.
“강윤미 씨 개인 사정에는 관심 없습니다. 계약할지 말지 정해서 연락주세요. 저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 김태수 씨! 아니, 회장님!!
강윤미의 다급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끊었다.
뭔가 어린아이 상대로 장난하는 기분이 들어 영 별로였다.
강성권 회장이 직접 나설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게 한 짓이 있어서인지 그러지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다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놈들이 최후에 내는 수는 항상 단순하고 폭력적이었으니까.
나는 정연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도 업무 때문에 바빴는지 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피곤에 찌들어 있었다.
– 태수 씨.
“강윤미랑 방금 통화했습니다. 어쩌면 제주도에 올지도 모르겠어요. 혹시 오게 되면 누구랑 함께 오는지 알아봐 주실 수 있을까요?”
– 이야기가 잘 안 됐나요?
나는 간단하게 통화내용을 말해주었다.
– 그런 애한테 큰일을 맡기다니 DW도 보기보다 허술하네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강윤미는 절대로 버려진 던전을 내줄 수 없겠죠. 강성권도 웬만해선 이 일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할 거고요. 쉬울 거라고 생각은 안 했는데, 물리적인 충돌도 염두에 두어야겠어요.
“네, 제 생각도 같아요.”
– 말씀해주신 부분은 저희 쪽에서 할 수 있어요. 태수 씨도 다른 루트로 더 알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가 듣기로 강윤미의 인맥이 넓다고 했거든요. 의외의 수가 나올지도 몰라요.
“의외의 수요?”
– 안 그렇길 바라지만 이 정도 사안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않겠어요?
나는 정연희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보았다.
오래지 않아 결론이 나왔다.
S급 헌터.
대한민국에도 여러 명 있었지만 한 번도 그들을 만난 적이 없었다.
만약 그들에게 인맥이 있다면 강윤미와 가까울 가능성이 다분했다.
전세계적으로도 S급 헌터들의 평균 연령은 낮은 편이었다.
헌터들의 수준과 능력의 평균치는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인데, 그 절정에서 등장한 것이 S급 헌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등장과 동시에 구름 위의 존재가 되었다.
나와는 세대가 달라 상식이 다를 수도 있었다.
대화가 잘 통한다면 오히려 강윤미 쪽이겠지.
‘어쩌면 일부러……’
여러모로 부족해 보이는 강윤미에게 버려진 던전 같은 큰 건을 맡겼다는 사실 자체가 그걸 염두에 둔 게 아닐까 싶었다.
S급 헌터들의 마음을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들은 대체로 원하는 게 따로 없었다.
하지만 대기업 직계의 돈 많은 또래라면 그들과 충분히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나는 정연희의 말마따나 강윤미의 인맥을 더 조사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