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Alchemist RAW novel - Chapter (86)
최초의 연금술사-86화(86/175)
< 버려진 던전(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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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미는 클럽의 룸으로 쳐들어가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부라렸다.
이곳은 소위 최상위 클래스의 젊은이들에게 핫하다고 알려진 비밀 클럽이었다.
회원제로 운영되며 간판이 없고 홍보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을 젊고 잘나가는 남녀 헌터들이 자주 이용한다고 소문이 나면서 명실상부 돈이 많아도 입장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인 향락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
강윤미도 가끔 이곳을 이용하지만, 오늘은 다른 목적이 있어서였다.
그녀의 눈에 덩치 큰 흑인 남자 둘을 옆에 앉힌 채 술을 마시고 있는 이소연이 들어왔다.
그녀를 찾아 헤매느라 짜증이 솟구쳤던 표정은 이내 부드럽게 포장되었다.
이소연에게 다가간 그녀가 말했다.
“소연아~ 여기 있었어?”
이미 무언가에 흠뻑 취한 이소연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강윤미를 바라보았다.
“어? 너 윤미야?”
“응~ 어제오늘 내가 연락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왜 답장 한 번 안 하니?”
“그래?”
이소연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네가 연락하면 내가 답장해야 해?”
강윤미는 S급 헌터가 발하는 섬뜩한 기세에 깜짝 놀라 몸이 굳었다.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가만히 강윤미를 노려보고 있던 이소연의 입가에 스르륵 웃음이 번졌다.
“농담이야, 농담~~”
그녀가 자기 옆에 있는 흑인 남자들을 밀쳤다.
그들은 덩치에 맞지 않게 얌전히 일어나 대각선으로 자리를 옮겼다.
“앉아, 윤미야.”
“으응……”
강윤미는 방금까지 심장을 조이던 압박감을 떨쳐내고 이소연의 옆자리에 앉았다.
“한잔 마시고.”
이소연이 잔을 하나 끌어당겨 거기 술 몇 개를 연달아 따랐다.
독한 술 몇 가지를 칵테일처럼 섞더니 강윤미에게 권했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 회장의 손녀를 이렇게 취급할 수 있는 것은 S급 헌터밖에 없었다.
강윤미는 자기가 기댈 곳이 그녀밖에 없다는 사실에 암담했다.
“고마워……”
강윤미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술을 모두 마시는 것을 지켜보다가 이소연이 물었다.
“왜? 뭐 때문에 나를 찾았는데?”
“그게……”
강윤미가 룸 안을 바라보았다.
넓은 룸 안에는 일고여덟 명의 남녀가 있었다.
술을 마시거나 부둥켜안고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다.
“야! 다 나가!”
이소연이 소리쳤다.
룸 안을 가득 채우는 음악 소리에 비해 그리 큰 목소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방을 나갔다.
다만 맞은편 소파에 뒤엉켜 애정행각을 벌이는 두 남녀에게는 그녀의 목소리가 닿지 않은 것 같았다.
이소연이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었다.
기다란 채찍이 그녀의 손에 딸려 나온다.
강윤미는 곧 벌어질 일이 눈에 선명해서 그녀를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도,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하려는 일을 말렸다가는 그 불똥이 자신에게 튈 수 있기 때문에.
지이이잉-
파직, 파직,
S급 헌터가 밀어낸 마나가 채찍 전체를 휘감았다.
이 한 방이면 저기 저 소파에서 나뒹굴고 있는 한 쌍의 남녀는 몸이 반토막이 나고 말리라.
이소연이 채찍을 느리게 쳐들었다.
강윤미는 용기를 내어 손을 쭉 뻗었다.
콰앙!
파직, 파직, 파직,
테이블이 반으로 쪼개지고 전류가 소파가 있던 자리에 떨어져 검은 그을음을 만들었다.
“으아아악!!”
비명은 채찍이 스친 남자로부터 터져 나왔다.
강윤미가 간발의 차로 맞은 편 소파를 밀어내서 그와 그가 부둥켜안고 있던 여자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다만 남자의 등은 채찍이 스친 자국을 그대로 드러내며 살이 터져 피를 뿜어냈다.
그도 수준급의 헌터일 터.
하지만 앞으로 이 상처를 아물게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남자 밑에 깔렸던 여자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남자를 질질 끌 듯이 해서 방을 나갔다.
이소연이 짜증 난다는 듯이 채찍을 몇 번 더 휘둘렀다.
천장의 각 모퉁이에 매달려 있던 스피커가 터지면서 음악이 멈추었다.
“후우……”
길게 호흡을 내뱉은 이소연이 채찍을 인벤토리에 되돌렸다.
다시 소파에 몸을 묻은 채로 말했다.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또 쓸데없이 사람 죽일 뻔했네.”
“아, 아니야. 고맙기는……”
강윤미는 이소연의 눈치를 보았다.
그녀의 기분이 어떤 상태인지, 대화는 할 수 있는 상태인지 의심스러웠다.
잘못 판단했다가는 이 자리에서 죽어나가는 것이 바로 자신이 될 터였다.
“웬만큼 중요한 일 아니면 나를 이렇게 애타게 찾지 않았겠지?”
이소연이 씩 웃었다.
눈은 웃지 않고 입술 끝만 들어 올리는 그녀의 표정이 괴기스러웠다.
예쁜 얼굴이지만 그 이상의 위험성을 내포한 얼굴.
그녀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불리는 별명은 사이코패스였다.
그 이상으로 그녀를 잘 표현하는 말이 없을 거라고 강윤미는 생각했다.
그녀가 맞은 편에 앉아있는 두 사람을 살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만약 살인이 일어나면 자리가 어수선해질 것이고 이소연은 짜증을 내며 떠나버릴 테니까.
만약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또 그녀를 만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지금은 한시가 급한 때니까.
“응, 너한테 꼭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부탁?”
이소연의 입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알고 있어! 물론 공짜로 부탁하지 않을 거야! 네가 원하는 조건이 있으면 전부 들어줄게!”
“전부?”
강윤미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 미친 여자에게 ‘무조건’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이소연 말고는 기댈 곳이 없었다.
그게 아니면 할아버지마저 한 수 접으려는 김태수를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야아~~”
이소연이 즐겁게 웃으며 강윤미의 어깨를 잡았다.
굳은 얼굴의 강윤미에게 애교 있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친구 사이에 조건이 뭐야~~ 너한테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돼?”
“아, 아니. 그냥 부탁만 하는 게 마음에 걸려서. 아무리 친구라도 그건 매너가 아니지.”
“훗, 그래서 내가 윤미 너를 좋아한다니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매너가 뭔지 안단 말이지.”
“고마워……”
“자, 사람도 없고 음악도 멈췄으니 얘기해봐. 대체 우리 윤미 씨가 나 같은 사이코패스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뭔지.”
“사, 사이코패스라니. 누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건 나한테 칭찬이니까.”
“으응……”
강윤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소연에게 털어놓았다.
DW가 장악하고 있던 버려진 던전 사업.
갑자기 그것을 내놓으라고 하는 김태수의 폭거.
당연히 김태수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을 해주었다.
긴 이야기를 전부 들은 이소연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어쩐지 서율이 언니랑 연락이 안 되더라. 죽었구나~ 큰일이 있었네. 근데 나는 왜 몰랐지?”
“국가에서 쓸데없는 소문이 안 나도록 막은 거지.”
“진짜 감쪽같네. 그러니까 그 살인자 새끼가 서율이 언니랑 다른 길드장들 죽이고 새 길드장이 됐다는 거야? 어떤 사람인데? 설마 S급?”
“아니~ S급은커녕 그냥 쓰레기야.”
“쓰레기? 쓰레기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해? 너 지금 나한테 농담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 좀 특이한 능력이 있나 봐. 제주도에 있는 최초의 던전 알지? 거기가 부활했거든. 그게 그놈이 한 거라는 말이 있어. 그래서 돈에 눈이 뒤집혀서 자기들끼리 싸우고 손잡고 했던 거지. 운 좋게 이겨서 길드장이 됐고.”
“하하하! 진짜? 귀엽네, 귀여워~~”
S급 헌터들은 보통 세상일에 무관심하다.
대한민국의 헌터들은 특히 그런 경향이 강했다.
나이가 대체로 어리고, 정치며 경제며 자기들이 관심을 갖지 않아도 불편한 게 없기 때문이었다.
여타 길드와 기업들도 시한폭탄과 같은 그들을 굳이 포섭하려고 하지 않았다.
“사진 있어?”
“사진?”
“김태수 말이야.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아, 잠깐만……”
강윤미는 얼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진을 핸드폰에 띄워 이소연에게 보여주었다.
당연히 김태수에 대해 조사했고, 그를 찍은 사진들도 입수했다.
“오~ 잘생겼네? 내 타입인데?”
“타입? 아저씬데?”
“그래서?”
“아, 아니야.”
“이 잘생긴 아저씨를 죽여달라는 거야?”
“응……”
“흐음……”
이소연은 한참 강윤미가 보여준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아저씨 미혼이야?”
“이혼했어.”
“이혼? 언제?”
“몇 달 전에. 능력을 얻고 얼마 안 있어서 이혼했고, 부인도 의문사를 했어. 뭔가 구린 냄새가 나는 거지.”
강윤미는 최대한 김태수를 나쁘게 말하기 위해 그런 식으로 둘러댔다.
자세한 내막을 세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김태수가 이혼한 전 부인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사촌이었던 최동준, 최동수 형제가 한 일이다.
물론 그들도 그 후에 모두 죽었지만.
“잘생겼는데 머리도 좋네~ 새 능력을 얻었으니 새 인생을 살아야지~~ 진짜 죽이기 아깝다~”
강윤미는 미간을 찡그렸다.
어떻게 해야 이 애를 이해할 수 있을까?
본인이 사이코패스라고 불리는 걸 자랑스러워할 정도이니 이해하는 건 포기하는 게 더 빠를 것이다.
“그런 표정 짓지 마~~”
이소연이 강윤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친구 부탁인데 당연히 들어줘야지~”
“아…… 진짜??”
“응~~ 근데 네가 했던 말 있잖아. 무슨 조건이든 다 들어준다고.”
“으응……”
이소연이 검지로 아랫입술을 누르고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강윤미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바퀴벌레를 잡으려다가 쥐 떼를 들이는 건 아닌지 불안한 그녀였다.
이내 이소연이 입을 열었다.
“제이슨 있잖아.”
“제이슨?”
강윤미는 이소연이 누구를 말하는 건지 생각했다.
곧 그녀는 가수이자 글로벌스타인 한 남자를 떠올릴 수 있었다.
“공연 때문에 한국에 온다고 하던데. 내가 걔 좋아하는 거 알지?”
“응……”
강윤미는 역시나 하는 기분에 숨이 막혔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무리한 부탁은 아니었다.
적어도 막대한 돈이 들거나 할아버지의 눈치를 보아야 할 일은 아니었으니까.
“일주일. 나 걔랑 일주일만 같이 있고 싶은데.”
“일주일?”
강윤미는 당황했다.
제이슨이 어느 정도 스타인지를 생각하면 일주일이나 묶어둔다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일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 스타는 연 단위로 스케줄이 짜여있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단발성 공연과 광고 촬영 스케줄 정도가 고작일 텐데 이소연을 위해 일주일이나 내게 하다니.
만약 상대가 이소연이 아니었다면 미쳤냐는 말부터 먼저 나왔을 것이다.
“왜? 안 되겠어? 그것 말고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는데? 살인을 해달라고 하면서 이 정도도 안 들어줄 거야?”
이소연의 눈빛에 특유의 광기가 깃드는 것을 본 강윤미가 다급하게 말했다.
“아, 아니야! 할 수 있어! 꼭 성사시킬게, 소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