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Alchemist RAW novel - Chapter (87)
최초의 연금술사-87화(87/175)
< 버려진 던전(3) >
#
“그거 좋은 생각이시네요.”
내 말을 들은 정연희가 웃음을 지었다.
마루 길드는 엄밀히 말해 TS에 속한 길드가 아니었지만, 실제 관계는 그 이상으로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주도 최초의 던전도 남의 길드가 소유한 던전이라고 쉽게 말할 게 아니기도 하고.
던전에서 나오는 절반 이상의 수입을 내가 갖는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개인이나 특정 길드가 던전을 소유한 예가 없기 때문에.
버려진 던전은 어디까지나 죽은 던전을 부동산으로 사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던전을 샀다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부활할 경우 문제가 생기는 것이기도 하고.
메건에게 들은바 A급 이상 S급 이하 수준인 길드에서 나오는 수입은 매달 수천만 달러에 달한다고 했다.
세금 등 모든 부대 비용을 뺀 수입이 그 정도라는 것.
대한민국의 헌터들에게는 낯선 일일 수 있다.
수수료를 내고 던전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얻은 결정석과 광물, 부산물로 인한 수입도 일정 부분 떼어줘야 한다는 개념이.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안하고라도 최초의 던전에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이곳 던전은 수십 년간 활동을 멈추고 있었고, 실질적으로 던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결정석, 광물, 부산물이 시장에 풀린 적이 없다.
신물질의 가치는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최초의 던전은 마나 밀도가 높기로 유명한 곳이지 않은가?
명실상부 S급 다음가는 가치가 있는 장소였다.
제주도 최초의 던전이 개방을 앞두었다.
그렇다는 것은 던전이 완전히 부활하여 그 형태를 갖추었다는 뜻.
몬스터가 사냥되고 부산물이 발굴된 뒤에도 시간이 지나 그것들이 리젠된다는 것까지 확인되었다.
이럭저럭 소문이 나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이 없기 때문에 대다수의 국민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제 그것을 언론에 알릴 때가 되었다.
마루 길드는 당분간 다른 길드나 헌터들이 이곳을 공략하는 걸 금지할 계획이었다.
어차피 마루 길드가 소유한 던전이니만큼 그 독점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일반 수입의 절반, 파워스톤의 가공수입과 판매수입 전부를 내가 가져가기로 했다.
마루 길드로서는 파격적인 양보를 한 셈.
그렇다고 해도 정연희가 무작정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이런 계약을 한 건 아니었다.
최초의 던전이 부활한 것이 애초에 내 덕분이기도 하고, 내 능력과 TS 수장이라는 지위는 마루 길드로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지난번 길드 연합의 합동 공격 때처럼 던전이 습격받는다면 TS 없이 마루 길드만으로는 방어하기 힘이 드니까.
내가 제안한 것은 제주도 최초의 던전이 부활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버려진 던전들도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기사화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 당장 버려진 던전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것이다.
이미 그곳을 이용하고 있는 헌터들의 반발이 뒤따를 것이고.
혼란이 가중되면 DW로서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내 제안에 정연희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내일 기자회견을 할 거예요. 그 뒤로는 인터뷰 스케줄이 쭉 잡혀있고요. 그때 버려진 던전에 대해서도 언급할게요.”
제주도 최초의 던전의 실질적 주인이자 마루 길드의 수장인 정연희가 기자회견을 한다.
나는 직접적 당사자가 아니고 최초의 던전을 부활시킨 게 나라는 이야기는 지금 시점에 공표할 필요가 없는 것이기도 해서 빠지기로 했다.
TS의 회장으로서 언론에 나서는 것보다 나 스스로 더 중요하게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세계 도처에 있는 최초의 던전을 부활시켜야 하고, 사사건건 내 앞을 막는 DW를 무너뜨려야 했다.
둘 다 내 존재를 드러내놓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정연희는 다음날 기자회견을 통해 최초의 던전 부활을 공식화했다.
태국 최초의 던전도 부활이 진행 중이지만, 아직 완전히 부활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것은 국제적으로 굉장한 파급력을 가진 뉴스였다.
최초의 던전을 가진 나라들이라면 특히 더 주목할 소식이었다.
그 나라 중 어느 곳도 최초의 던전이 부활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나라가 없을 테니까.
경제적 효과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비록 내가 직접 나서거나 내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다고 해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최초의 던전을 부활시킨 게 다름 아닌 TS의 김태수라는 사실을.
정연희는 후속 인터뷰에서 버려진 던전을 언급했다.
내가 찍은 사진과 촬영한 동영상을 증거로 버려진 던전에서도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시사했다.
최초의 던전이 부활했다는 것을 공식화한 직후에 한 이야기라서 설득력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공중파와 인터넷의 모든 매체가 제주도 최초의 던전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와 더불어 버려진 던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세계 최초.
그것도 세계에 열두 곳밖에 없는 최초의 던전이 부활했다는 사실은 국민의 마음을 부풀렸다.
본인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없다고 하더라도 자부심을 느끼게 할 만한 소식이었다.
더구나 버려진 던전까지 부활한다면……
그 잠재적 경제효과를 기대하며 온 언론이 들뜬 기사들을 내보냈다.
곧장 반발 기사가 나왔다.
최초의 던전과 버려진 던전은 명백히 다르며 최초의 던전이 부활했다고 해서 버려진 던전까지 부활하지는 않을 거라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이 기사들은 DW에서 낸 것들이었다.
자신들이 소유한 부동산의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서.
그들의 몸부림과는 반대로 버려진 던전과 인근의 부동산 가격은 눈에 띄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곳에 살거나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시설을 이용하고 있던 헌터들 사이에서 불만과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가격도 떨어졌다.
펜트하우스라 그 가치의 하락 폭이 더 컸다.
‘상관없지.’
다른 헌터들과 달리 심리적 타격이 전혀 없었다.
내가 할 일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느긋하게 사태를 관망하는 것뿐이었다.
#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강성권이 테이블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핏발 선 눈과 떨리는 몸을 보면 그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다.
손녀인 강윤미는 할아버지 앞에서 잔뜩 움츠렸다.
“죄, 죄송해요. 할아버지……”
사실 자기 잘못이 아니었다.
김태수가 멋대로 버려진 던전에 수작을 부린 것이 어떻게 자기 잘못이라는 말인가?
오히려 일이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그의 심기를 건드리고, 나아가 죽이려고까지 했던 할아버지, 그리고 고모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변명이 통할 리 없었다.
“너는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건인지 모르는 거니?”
“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왜 아직 여기 있는 거야! 내가 당장 김태수한테 가서 엎드려 빌라고 했잖아!”
“그, 그게……”
“태어날 때부터 다 가지고 태어나서 불편한 걸 몰랐지? 헌터로 각성하고, 앉아서 돈이 들어오는 사업까지 떼어주니까 네가 잘난 줄 알았지? 네가 내 후광 없이도 그렇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손녀라고 언제까지 귀엽다 귀엽다 해줄 줄 알았어!”
역정을 내는 강성권을 보자니 혈압이 올라 곧 쓰러질 것 같았다.
강윤미는 겁을 집어먹고 얼른 말했다.
“아, 알고 있어요! 제발 제 말 좀 들어주세요, 할아버지!”
“무슨 말을! 네가 게으른 건 알고 있었지만, 미룰 일이 따로 있지! 언론에 다 나와 버렸으니 이걸 어떻게 바로잡을 거야!”
“할아버지, 제발요! 화 좀 참고 제 말 좀 들어주세요!”
강윤미가 울먹이며 바짓가랑이를 잡자 강성권은 호통을 멈추고 그녀를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어디 변명이 있다면 해보거라.”
강윤미는 강성권의 눈빛이 직계 손녀를 보는 눈빛이 아니라고 느꼈다.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금수저를 물었던 건 사실이지만, 이 집안이 돈 앞에서 얼마나 냉정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도 익히 알고 있었다.
김태수와 관련된 일로 가족이 몇 명이나 죽어나갔던가?
물론 그들의 죽음을 딴 나라 얘기인 듯 관심 갖지 않았던 자신이 탓할 일은 아니었다.
자신도 분명 이 집안의 피를 물려받았다.
“제가 제주도에 가서 빌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김태수 그 인간은 이미 우리를 엿 먹이려고 작정했는걸요. 뭐라도 먹히는 수를 내야 하지 않겠어요?”
“너 설마……”
강성권의 몸이 푸들푸들 떨렸다.
지금까지와 다른 점은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는 사실이었다.
강윤미에게 큰 사업을 떼어주고 뒤를 밀어준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헌터이고 활발한 성격을 가진 그녀가 인맥을 만들길 원했다.
영재 교육을 받은 탓에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외국의 헌터들, 그리고 웬만해서는 움직이기 힘든 국내의 S급 헌터들과 인맥을 쌓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속내가 독이 되어 돌아왔음을 절감했다.
강성권의 마음을 모르는 강윤미는 기회다 싶어 빠르게 말했다.
“소연이 아시죠? 걔가 도와주기로 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S급 헌터가 도와주기로 했다고요! 김태수 그 인간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S급 앞에서 뭘 어쩌겠어요? 물론 그 사람을 해치겠다는 게 아니에요! 좋은 말로 타이를게요. 그러면 그 사람도 더 이상 우리를 적으로 보지 않지 않겠어요?”
“너 정말……”
강성권은 허탈감을 느꼈다.
더 화낼 기운이 없어 털썩 소파에 몸을 묻었다.
한마디도 내뱉지 않고 생각에 잠기는 그였다.
강윤미는 조심히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앉았다.
지옥 같은 침묵을 견디며 기다렸더니 결국 강성권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아……”
넋 나간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지. S급 헌터에게 손을 내민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르는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소연이가 돈 같은 건 바라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제이슨! 그 남자와 일주일만 같이 있게 해달래요! 그러면 김태수 일은 자기가 도와준대요!”
“제이슨?”
미간을 찡그리는 강성권 앞에서 강윤미가 얼른 핸드폰으로 제이슨을 검색해 보여주었다.
“유명한 가수예요. 곧 한국에 들어온대요.”
잘생긴 가수가 띄워진 핸드폰 화면을 지그시 내려다보던 강성권이 혀를 쯧 찼다.
“미친년. 발정이 나도 유분수지.”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강윤미의 말마따나 엎드려 빈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S급 헌터가 개입하는 것 말고 딱히 뾰족한 수가 없기도 했다.
남자 가수와 일주일 데이트하는 조건으로 김태수 일을 해결할 수 있다면 이득이 아닐 수 없었다.
생각을 정리한 그가 강윤미에게 말했다.
“알았다. 대신 일이 잘못되면 네가 다 책임져야 한다. 너는 앞으로 DW라는 후광 없이 혼자 살아야 해. 무슨 말인지 알지?”
거짓 없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강윤미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