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Alchemist RAW novel - Chapter (96)
최초의 연금술사-96화(96/175)
096화. 징그러운 놈 (3)
거실에서 펼쳐진 풍경은 바깥에서 들리던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지윤과 김지은이 각자의 무기인 메이스와 활을 들고 뒷걸음치고 있었다.
그 정면에 아래쪽 속옷만 입은 덩치 큰 남자가 있었는데, 헤실헤실 웃으면서 여유를 부리는 꼴이 징그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바로 그가 와타나베일 것이다.
들은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보니 더 위험한 인물 같았다.
널따란 거실에는 다른 여자들도 있었는데, 모조리 무언가에 취한 듯 늘어져 있었다.
공기 자체가 묵직하다.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을 느끼는 찰나 옆에서 정연희가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우웩, 우에엑.”
그녀는 이미 와타나베의 정신 공격에 노출된 전력이 있었다.
이 이상 노출된다면 지금의 김지윤, 김지은 자매처럼 위험해질 것 같았다.
“연희 씨, 빨리 밖으로 나가요!”
나는 스킬을 사용해서 미끄러지듯 김지윤과 김지은 쪽으로 갔다.
그녀들의 허리를 낚아채고 다시 문 쪽으로 빠졌다.
“꺄아악!”
“이거 놔! 누구야!”
그녀들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았다.
“나야, 이제 괜찮으니까 안심해.”
“오빠……?”
“왜 이제 왔어?”
갑자기 제주도에 나타난 나를 보고 ‘왜 이제 왔어?’라고 물었다.
기본적으로 강단이 있는 여자애들이었으므로 얼마나 지금 상황이 어려웠는지 알 수 있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큰일 날뻔했다.
두 여자 모두 자신들을 붙잡은 것이 나라는 것을 알고 축 늘어졌다.
이제까지 겨우 버티고 있었다는 뜻.
“웬 놈이냐!”
와타나베의 눈에도 내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단지 김지윤과 김지유가 갑자기 공중에 떠올라 축 늘어지니 누가 있는 거라고 짐작한 것 같았다.
애초에 문을 부수고 들어올 때 그 소리로 침입을 감지할 수 있었지만, 이 방의 분위기가 그러했다.
정신을 멍하게 하는 퇴폐적인 분위기.
이렇게 만들어놓은 제1 원인은 두말할 것 없이 와나타베의 능력이었다.
그가 발동한 능력이 공기를 끈적하고 메스껍게 만들어놓았다.
나조차도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정연희나 김지윤, 김지유 자매처럼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것을 보면 여자에게 특히 더 강한 효력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재빠르게 열린 문밖으로 빠져나왔다.
정연희가 바닥을 두 손으로 짚고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여기는 저한테 맡겨요.”
“아니에요. 저놈은 제 손으로 꼭 죽이고 싶어요.”
정연희의 두 눈에 독기가 보였다.
자신이 당한 사실보다도 김지윤, 김지유를 마수에 빠뜨렸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화나게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A급 헌터이고, 지금의 몸 상태로는 더욱 와타나베를 상대하기 어려웠다.
반면 내게는 S급 헌터도 상대할 수 있는 비장의 수가 있었다.
궁극의 무기.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이미 이소연을 상대할 때 두 가지 무기 모두 사용했다는 사실이었다.
궁극의 무기는 쿨타임이 필요하다.
‘해결책이 있지.’
나는 배터리용으로 만들어놓은 파워스톤을 꺼내었다.
여기 파워코어의 마나를 저장해놓았다.
바로 지금 같은 상황에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이리 내놓지 못해!”
와타나베가 문밖으로 뛰어나왔다.
뒤뚱대는 속옷 차림의 남자가 등장하자 당장 정연희가 반응하려고 했다.
“가지 마요.”
김지윤과 김지유는 다행히 타이밍에 맞게 구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연희가 와타나베에게 붙잡히면 내가 그를 상대하기 더 까다로워질 것이었다.
와타나베의 뒤를 이어 여자들이 걸어나왔다.
그녀들은 모두 좀비처럼 느릿한 몸짓이었다.
다만 이상하게 눈빛이 번쩍이고 있고, 흡사 마기처럼 요사스러운 마나를 뿜어내고 있었는데 나는 이게 와타나베의 능력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단순히 여자를 범하기 위한 능력은 아니구나.’
그래서 자신했던 것 같다.
자기 혼자서도 충분히 마루 길드를 집어삼키고 최초의 던전을 차지할 수 있다고.
마루 길드는 정연희가 길드장인 곳이었다.
그녀는 여자이고, 만약 와타나베의 마수에 빠졌다면 본인의 의식하지 못한 채로 길드며 최초의 던전을 통째로 바칠 수 있었다.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네.’
최악의 상황을 면해서 다행이었다.
만약 계약서라도 작성했다면 바로잡기 어려웠을 테니까.
그래도 조금은 기간을 두고 제주도로 올 줄 알았는데.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와타나베가 한국으로 온 게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는 사실이었다.
와타나베의 뒤로 걸어 나온 여자들은 총 5명이었다.
짐작건대 저 여자들은 와타나베의 버프로 평소보다 능력이 강화된 것 같았다.
본인 스스로 별다른 물리 공격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다른 헌터들을 부릴 수 있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과연 S급은 S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와타나베는 제가 맡을게요. 길드원들과 함께 저 여자들을 상대해줘요.”
정연희가 어금니를 깨물고 와타나베를 노려보더니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아직 와타나베는 멀찍한 곳에 있었다.
굳이 이쪽으로 다가올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물리 공격이 특기가 아니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싸울 의도가 없는 것 같았는데, 그것은 이쪽의 기회가 되었다.
나는 얼른 파워코어의 마나를 흡수했다.
즉시 파워 코어의 마나가 가득 채워졌다.
‘어쩌면…….’
나는 블랙 코어 마나를 의식해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양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긴.’
이소연과 싸울 때 나는 한 번에 두 개의 무기를 꺼냈었다.
그때 딱 한 발의 총알을 쏘았는데, 완전치 않은 무기로 단 한 발의 총알을 쏜 것만으로는 마나가 전부 소모되지 않은 것 같았다.
100%는 아니지만 70~80%의 마나가 남아있었다.
이소연에게 총알을 쏜 뒤로 제법 시간이 지났으니까.
“저것들 모조리 죽여버려!”
와타나베가 여자들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5명의 여자가 각자 무기를 꺼내었다.
무서운 기세로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정연희도 길드원들에게 명령했다.
“저년들을 없애버려!”
나는 다시 ‘은신’ 능력을 사용했다.
전장이 어지러워진 틈에 내 모습을 감추고 와타나베에게 접근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이 남아있었던 블랙 코어 마나를 오른팔로 밀어냈다.
그러자 팔이 익숙한 모양의 총으로 변형되기 시작했다.
‘쿨타임은 완전히 마나가 회복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구나.’
짐작하고 있었다.
불완전한 상태로라도 궁극의 무기를 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이소연과 싸울 때 이미 경험했으니까.
나는 블랙 코어 건이 된 오른팔을 와타나베 쪽으로 겨누었다.
블랙 코어 건으로 적을 공격한다는 것은 총알의 파괴력으로 상대를 죽인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독에 중독시킨다는 것.
블랙 코어에 있는 가공할 독성으로 상대를 무너뜨린다는 게 핵심이었다.
와타나베는 본인의 정신 공격으로 여자들을 농락해왔다.
그녀들은 마치 끔찍한 독에 중독된 상태와 같았을 것이다.
이제는 본인이 그 대가를 치를 차례였다.
펑-!
이소연은 코앞에서 발사된 총알을 눈부신 반사 능력으로 피했었다.
S급 헌터의 반사 능력이 어느 수준인지 절감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와타나베는 달랐다.
그는 몸집만큼이나 둔하게 선 채로, ‘은신’ 능력을 사용한 내 모습을 포착하지조차 못했다.
나는 면적이 큰 그의 배를 향해 총알을 쏘았다.
“커헉!!”
와타나베의 몸뚱이가 앞으로 기울었다.
자신만만했던 그의 표정이 단숨에 일그러졌다.
까맣게 구멍이 뚫린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더니 느리게 시선을 들었다.
그의 눈길이 내게 닿았다.
더는 ‘은신’ 능력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 그것을 해제했다.
블랙 코어 건은 총알 한 발을 토해낸 뒤에 사라졌다.
나는 정상으로 돌아온 오른팔을 이번에는 파워코어 메이스로 바꾸었다.
“오, 오지 마…….”
와타나베가 경악한 눈으로 내게 말했다.
“강윤미를 죽인 게 너 맞지?”
“어? 혹시 네가…….”
그의 동공이 흔들렸다.
“……김태수?”
“맞아.”
“S급이었나? 아니라고 했는데…….”
입으로 검은 피를 흘리면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S급은 아니지. 다만 S급을 죽일 수는 있어.”
“그런…….”
와타나베의 얼굴에 자조적인 웃음이 걸렸다.
“나는 강윤미를 안 죽였어.”
“네가 발뺌하든 안 하든 상관없어. 네가 안 죽였으면 내가 그녀를 죽였을 테니까.”
“나도 들은 게 있어. 그녀는 자기 할아버지에게 죽었다…….”
“뭐?”
머릿속이 꽝- 울렸다.
DW 집안사람들이 막 나가는 줄은 알았지만 설마 할아버지가 손녀를 죽였을 줄이야.
강성권 그 인간은 최소한의 윤리 의식이 없는 인간이었다.
‘강철구는…….’
나는 ‘추적’ 스킬로 들었던 김철원과 강철구의 대화 내용을 떠올려보았다.
마지막에 강철구는 ‘다 아는 얘기는 그만하자.’라고 했었다.
즉 자기 딸을 죽인 게 강성권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물론 와타나베에게 당한 이상 강윤미가 정상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강성권의 입장에서는 자기 할 일을 똑바로 하지 못하고 오히려 일을 키운 손녀가 곱게 보였을 리 없고.
그래도 보통은 손녀를 살리려고 애쓰는 게 할아버지의 마음일 텐데.
나쁜 의미로 상식을 초월하는 인간들이었다.
그런 인간들이 대한민국의 최대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의 미래에 불행한 일이다.
“너도 여자 좋아하지……?”
온 피부가 검게 중독되어 얼굴에까지 검은 핏발이 올라온 와타나베가 말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래?”
“내가…… 너에게 여자를 제공해줄게. 말만 해…… 어떤 여자든 다 노예로 만들 수 있으니까…….”
꽝-!!
나는 메이스로 바뀐 오른팔을 휘둘렀다.
라차 창이 그랬듯, 그리고 이소연이 그랬던 와타나베도 파워코어로 만들어진 메이스에 짓눌려 핏물이 되었다.
“후우우…….”
한숨 돌린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와타나베의 버프를 받아 강해진 여자 헌터들이라면 정연희와 마루 길드원들만으로 상대하기 힘들 수 있다.
김지윤, 김지유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녀들은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생각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좀비 같은 상태로 강한 능력을 발휘하던 다섯 명의 일본 여자들이 갑자기 픽픽 쓰러지기 시작한 것.
와타나베가 죽자 그의 주박이 풀린 듯했다.
이미 힘을 잃은 적을 처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5명의 여자들은 정연희와 마루 길드원들의 손에 차례로 죽음을 맞이했다.
‘이제 시작이겠지.’
와타나베를 죽인 것은 해피엔딩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이것은 국내에서만 이루어지던 싸움이 국제전의 양상으로 확대되었다는 뜻이었다.
적어도 일본은 자국의 S급 헌터가 죽은 사실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이현수에게 듣기로 일본은 국가 헌터 시스템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고 했다.
그 꼭대기에 S급 헌터가 있는 것.
최초의 던전을 노리고 있다면 충분히 다음 수가 나올 만했다.
‘올 테면 오라지.’
이미 3명의 S급 헌터를 죽였다.
시작된 싸움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