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Alchemist RAW novel - Chapter (99)
최초의 연금술사-99화(99/175)
099화. 도장 깨기 (1)
–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지? 메건을 돌봐주어서 고맙네.
“돌봐주다니요~ 옆에 있어 주어서 오히려 제가 더 힘을 많이 받습니다.”
– 흐흐흐, 우리 메건이 예쁘기는 하지. 천사처럼 착하고. 나를 닮은 건 아니고 대체 어디에서 저런 애가 나왔는지 몰라.
“하하하, 백 퍼센트 동감입니다.”
데이먼은 미국에 있으면서 가끔 내게 전화를 걸었다.
오히려 딸보다는 내게 더 자주 연락할 정도였다.
메건을 칭찬할 때 내가 맞장구를 쳐주는 게 좋은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미국의 상황이 어떤지 내게 알려주기도 했다.
– 생각보다 정부를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아. 행정부에 반대파들이 있거든. 시대착오적인 차별주의자들이지. 지긋지긋해.
“반대파요?”
– 자네가 한국인이기 때문이야. 그전에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차별하는 거지. 인종 차별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야. 먹물을 많이 처먹은 놈들일수록 고루한 관념이 뼛속까지 박혀있지. 뭐, 그딴 놈들이야 대부분 주머니에 용돈 좀 넣어주면 해결되지만, 가끔 막 나가는 놈들이 있어서 문제야.
“막 나간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 힘자랑한다는 말이지. 미국은 로비가 합법인 나라야. 길드에서, 헌터들이 얼마나 돈을 처먹이는지 상상도 못 할 거네. 자네가 내 사위가 될 거라는 소문이 이미 파다한데, 최초의 던전까지 자네한테 줘 봐. 그 침팬지 같은 놈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쉽지 않네요.”
– 그래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길드 운영하는 건 어때? 자네한테는 익숙하지 않은 일일 텐데.
“저는 명함뿐인 회장인걸요. 제가 없더라도 길드는 잘 운영됩니다.”
– 방심하지 말게. 자네처럼 벼락 성공을 한 사람들은 시기도 많이 받게 되어 있어. 대형길드 몇을 합쳤지만, 모두가 TS 산하에 들어온 건 아니지 않나. 분명히 딴짓하려는 놈들이 있을 거네.
“그럴까요?”
– 내 장담하지. 지금이라도 대책을 세워놓는 게 좋아. 길드원들 놀려서 뭣 하나. 한국은 좁은 나라이니 정보망을 구축하는 것도 쉬울 거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내가 도와줄 테니.
“말씀 감사합니다. 조언해주신 대로 하겠습니다.”
– 그래야지. 강 회장 그자는 가만히 있는 거야? 버려진 던전 뺏긴 것 때문에 잠도 안 올 텐데?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아요.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모르지만요.”
– 하물며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무는 법이네. 강 회장 그 뱀 같은 놈이 가만히 있을 리 없어. 이렇게 된 이상 눈알이 돌아서 무슨 짓이든 하려고 하겠지.
데이먼과 얘기하다 보니 문득 강철구에게 들었던 내용이 떠올랐다.
“혹시 신체 개조 시술에 대해서 아십니까? DW 집안사람들이 그 시술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심지어 강성권 회장도요.”
– 그게 정말이야?
“네, 듣기로 전 세계적으로 커넥션이 있다고 하던데요. 중미나 아프리카 쪽에서 인체 실험이 자행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 으음…….
데이먼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나도 비슷한 이야기는 들었네. 나한테 넌지시 제안을 한 놈도 있었어. 그때는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혼쭐냈지. 자네도 알다시피 과거에 내 몸이 안 좋았었잖아. 그것 때문에 술도 못 사실 정도였는데, 신체 개조라니 미친 소리처럼 들렸지. 초장부터 잘라내서 나한테 자세한 얘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야. 자네 말이 맞다면 그냥 넘어가기 어렵겠군. 내가 한 번 알아보지.
“감사합니다.”
– 뭘~ 자네 덕분에 하루하루가 지루하지 않아. 또 전화하겠네.
“네, 회장님.”
– 어허!
“아버님.”
– 하하하! 그래그래!
데이먼은 미국에 돌아갈 때 금방이라도 나를 그곳으로 부를 것처럼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그쪽 상황도 녹록지 않은 모양이었다.
차별주의자라니.
하긴 갑자기 한국인이 나타나 다른 곳도 아닌 최초의 던전을 소유하겠다고 하면 미국인의 자존심상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이미 제주도의 최초의 던전이 부활한 게 공식화된 이상 내가 미국으로 가면 그곳 최초의 던전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 것이다.
‘그냥 도와줄 의리는 없고.’
미국 입장에서는 내가 권리 행사 없이 던전만 부활시켜주면 하는 마음이겠지만 당연히 그렇게 해줄 생각이 없었다.
내가 부활시킨 던전에 내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면 차라리 부활시키지 않는 것이 더 낫다.
미국에 그런 특혜를 준다면 남아있는 최초의 던전을 부활시킬 때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까.
‘데이먼이 있어서 다행이지.’
미국과 같은 대국이 나를 함부로 휘두르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데이먼이라는 방패막이 있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던전을 소유한 갑부.
나는 그가 부를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 * *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헌터님?”
김철원은 땀이 나는 손바닥을 바지에 비비며 물었다.
그가 만나고 있는 사람은 박성일이었다.
대한민국에 7명밖에 없는 S급 헌터.
그중 한 명인 이소연이 얼마 전 죽음을 맞이했다.
강성권 회장이 전화해서 부탁한 것은 김태수를 처리하는 데 S급 헌터를 동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알려지기로 한국에 방문했던 와타나베마저 김태수의 손에 죽었다.
그 일은 여전히 미스터리인 측면이 있지만, 와타나베가 한국에 들어와서 행방불명되었다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TS의 회장으로 수천 명의 헌터를 거느리고 있는 김태수.
그를 죽일 방법은 역시 S급 헌터를 동원하는 것밖에 없다는 게 강성권의 생각이었다.
‘웬만해선 만나고 싶지 않지만.’
S급 헌터들은 하나같이 안하무인이었다.
겉으로는 성격 좋아 보이는 인간도 작은 실수 하나로 눈알이 돌아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언제나 목숨을 담보로 해야 했다.
심지어는 헌터부 차관인 자신조차도.
박성일이 어떤 인간인가?
대한민국 S급 헌터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자였다.
S급 헌터들의 능력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적어도 일 대 일 싸움에서 그가 가장 강할 거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그를 라이벌로 여기고 있는 몇 사람의 S급 헌터만 제외하고.
겉으로는 평범한 대학생처럼 앳되고 순진한 얼굴을 가진 박성일이 말했다.
“그러니까 소연이가 죽은 게 그 짓 하다가 그런 게 아니라고요?”
“네, 김태수가 죽이고 은폐한 겁니다. 제주도에 왔던 와타나베도 김태수가 죽였을 가능성이 크고요. 같은 날짜에 김태수도 제주도에 있었거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S급 헌터가 죽은 게 은폐가 가능해요? 대한민국이 그렇게 허술한 나라였나요?”
“그 일은 행정부의 일원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 김태수의 권력이 그 정도로 큽니다. TS를 이끌면서 심지어 SH의 후원까지 받고 있죠. 그 자의 여자친구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 ‘엘리트헌터즈’의 회장 데이먼의 딸입니다.”
“저는 정치에는 관심 없어요.”
“지금 말씀드리는 건 정치가 아닌데…….”
“소연이가 죽은 건 본인 잘못이겠죠. 제이슨이랑 같이 제주도에 있었던 건 사실이잖아요. 제가 아무리 멍청해도 장관님이 뭔가 숨기고 있다는 건 알겠어요. 와타나베 그 역겨운 새끼도 죽어서 잘됐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그 오타쿠가 왜 한국에 온 건데요? 어차피 한국 여자 따먹으려고 온 거잖아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김태수를 이대로 두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중립!”
“네?”
“애매할 때는 중립기어 박는 게 제일이죠. 무슨 말 하려는 건지 알겠는데 장관님 눈을 보니까 착한 사람은 아니네요. 그러니까 양측의 말을 다 들어봐야겠어요.”
“저는 아직 차관입니다, 헌터님. 곧 장관이 될 예정이지만요. 양측의 말을 들어보겠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설마…….”
“김태수 형님을 만나봐야죠. 사람 죽이는 걸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나요? S급 헌터를 죽일 정도로 위험한 사람인 건 알겠어요. 그런데 나한테 해를 끼치지도 않은 사람이랑 굳이 싸울 필요 없잖아요. DW가 저를 후원한다고요? 좆 까라고 하세요. 그 돈 없어도 나는 잘 사니까.”
“헌터님, 제발 이성적으로 생각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가 무릎이라도 꿇을까요?”
“꿇으세요, 그럼.”
“네?”
“역시 말뿐이었네~ 꿇을 생각도 없으면서 입으로만 나불나불~”
“아, 아닙니다!”
김철원은 얼른 의자에서 내려가 무릎을 꿇었다.
자기 나이의 반도 되지 않는 놈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굴욕이었다.
더구나 자신은 곧 대한민국의 장관이 될 몸이지 않은가?
‘S급 헌터를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지.’
그들은 귀신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 하는 거로 언제든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박성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라면 무릎을 꿇는 것쯤은 쉬운 일이었다.
박성일이 무릎 꿇은 김철원을 보고 픽 웃었다.
그것을 긍정의 신호로 오해한 김철원이 바쁘게 말했다.
“제 부탁을 들어주시는 겁니까? DW 강성권 회장님이 매달 백억 원씩의 후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전 세계 어떤 헌터도 이 정도 후원을 받는 경우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박성일은 별 말없이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더니 자기 앞에 무릎 꿇고 있는 김철원에게 핸드폰을 들이대고 찰칵찰칵 사진을 찍었다.
“지, 지금 뭐 하시는…….”
“중립!”
“네?”
“한쪽 말만 들을 수 없으니까 저는 이제부터 김태수 형님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아, 그, 그런…….”
김철원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런 어린놈한테 농락당하다니.
역시 S급 헌터는 만나는 게 아니었다.
가장 강한 헌터를 만나려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자충수가 되었다.
박성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돌아이였다.
아니, 의외로 다른 S급 헌터들에 비해 정상이었다고 할까?
‘왜 김태수만 형님인 건데!’
오히려 자신이 김태수보다 더 나이가 많다.
콧노래를 부르며 자리를 뜨는 박성일을 보며, 김철원은 모든 게 다 억울한 심정이었다.
* * *
“안녕하세요!”
불쑥 나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메건과 식사를 하고 던전 주변을 산책하고 있을 때였다.
나이는 21살쯤.
말쑥한 용모의 남자를 바라보다가 나는 곧 이름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박성일……?”
“네~ 저 박성일 맞아요.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형님!”
밝게 웃으며, 적어도 겉모습만으로는 무해해 보이는 남자를 응시하며 나는 등줄기가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
당장 메건의 앞을 막아서며 그녀에게 말했다.
“먼저 가요! 아파트 말고 부길드장님한테 연락해서 그쪽으로 몸을 피해요!”
내가 말한 부길드장은 정민철이었고, 메건도 그를 알고 있었다.
“태수 씨……?”
S급 헌터가 왜 갑자기 나를 찾아왔을까?
예상할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다.
DW가 고용한 자객.
S급 헌터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미 DW는 이소연을 고용했었지 않은가?
그것 말고는 박성일이 나를 찾아온 다른 이유를 생각할 수 없었다.
“섭섭하네요, 형님~”
박성일이 아랫입술을 쭉 내밀었다.
“제가 형님을 죽이려고 왔으면 이렇게 인사를 했겠어요? 게다가 저에게 나쁜 마음이 있으면 형수님이 쉽게 달아나게 내버려 둘까요?”
맞는 말이었다.
그가 손을 쓴다면 메건은 이곳에서 달아나기 어려웠다.
“그러면 왜 나를 찾아온 건데?”
“중립기어 때문에요.”
“중립기어?”
“저한테 형님을 죽여달라고 한 사람이 있거든요. 그런데 한쪽 말만 들을 수 있나요? 형님도 만나보고 중립적으로 판단하려고 왔어요.”
‘돌아이인가?’
내가 박성일에게 받은 첫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