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Mercenary is a Chaebol Heir RAW novel - Chapter (104)
전직용병 재벌서자-104화(104/305)
104화. 부러진 화살
한영훈의 핸드폰에 뜬 번호는 저장되지 않은 것이었다. 지금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올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실례 좀 하지.”
CT가 진행되는 중에 한영훈은 밖으로 나가 비상계단으로 들어갔다.
“…전화 받았습니다.”
[일이 조금 틀어졌다고 들었습니다.]“아, 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겁니까? 최대한 트러블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희도 예상하지 못한 일입니다. 하지만 검사를 진행하고 있는 거면 그 외의 문제는 없는 거 아닙니까.]한영훈도 자신이 거래한 사람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수년 전에 아들의 빚 문제로 연락해온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명중환의 검진 기록을 조작해준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이제는 거래의 마지막이라고 한 명중환의 죽음만 앞둔 상태였다.
“진짜 나보고 마무리하라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처치실에서 기다려주시면 저희 사람이 갈 겁니다. 조용히 계시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무리될 겁니다.]“…정말 괜찮은 겁니까?”
[괜찮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이미 발을 담근 것으로도 모자라 머리까지 차올랐다. 아들의 빚 때문에, 한성종합병원장이라는 명예와 지위 때문에… 다만, 그들과 손잡았던 걸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진짜 이번 일만 끝나면 괜찮은 거지요?”
[오히려 한 원장님에게 호재가 될 것이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게다가 보건복지부 장관 자리도 코앞이지 않습니까.]솔직히 한영훈이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사내의 말처럼 얼마 전 원래 보건복지부 장관이 뇌물과 각종 비리 혐의로 사퇴하고, 한영훈이 차기 장관으로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그쪽 말대로 하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통화를 마친 한영훈은 혹시나 누가 들었을까 비상계단의 위아래를 한번 살핀 후 복도 쪽 문을 당겼다. 곧장 CT실 앞을 지키고 있는 MH그룹 경호원들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검사가 마무리되어 있었다.
“다 됐나?”
“…끝나긴 했습니다.”
조명권이 CT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건 명중환의 것이 아닌 진짜 병증을 가진 사람의 것으로 교체된 상태였다.
그걸 확인한 한영훈은 침음 섞인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좋군. 환자를 수술실로 이동시키지.”
“직접 하실 겁니까?”
한영훈은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씁쓸한 표정으로 어깨를 주무르듯 토닥였다.
“여기서부터는 신경 쓰지 말도록 하지.”
“…일단 옮기겠습니다.”
지시와 함께 복도에서 대기 중이던 간호사가 명중환의 침대를 끌고 나갔다.
그 모습에 한영훈도 문을 나서려 했지만, 앞에 서 있던 MH그룹의 경호원들 수가 아까보다 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경호원들 사이로 방금 상처 봉합을 마치고 온 신우가 서 있었다.
신우는 문 앞에 선 한영훈을 빤히 쳐다봤다.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나 해서요. 수술이 필요한 겁니까?”
“혈전이 발견되었습니다. 사실 지병도 있으셨던 터라…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잠시 뜸을 들이고서 나온 한영훈의 설명에 신우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렇다고 합니다. 회장님.”
“지금 누구한테…….”
부스럭, 부스럭―
복도로 나와 있던 스트레쳐카 위에서 명중환이 천천히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한영훈은 눈이 크게 떠지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방금 통화했던 사람이 일을 진행하는 중에는 절대 깨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원장님께서는 회장님이 생각보다 금방 깨어나셔서 많이 놀라셨나 봅니다.”
“그게 아니라…….”
한영훈의 시선은 스트레쳐카에서 완전히 일어난 명중환에게 향해 있었다.
이에 명중환은 그와 눈을 마주치고 경호원이 미리 가져온 신발을 신고서 앞으로 걸어왔다.
“나한테 나도 모르는 지병이라… 얼마 전 검진에서는 그런 말이 없지 않았나. …한영훈 원장.”
일이 잘못된 것을 감지한 한영훈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며, 명 회장… 이게 그러니까…….”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힌다고 자부했건만. 나이 먹은 것을 간과하며 살았나 보군.”
“오해야! 오해일세!”
“뭐가 오해라는 거지? 멀쩡한 사람으로 병자로 둔갑시켜 놓은 걸로도 모자라나?”
한영훈이 당장 생각할 만한 것은 하나뿐이었다.
“오진이야! 내가 뭘 잘못 본 것 같네!”
“진짜 하다 하다…….”
그러던 중에 CT실에서 검사를 맡았던 조명원이 경호원의 손에 이끌려 나왔다.
신우는 그런 조명권을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아까 검사가 끝났다고 하던데, 조명권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어땠습니까? 원장님 말대로 오진입니까?”
“그, 그게… 전부 원장님이 시켰습니다! 진짜 병증을 가진 환자의 CT와 결과를 바꿔놓으라고 한 겁니다!”
조명권은 한영훈의 청탁을 받아 검사 결과를 조작했다. 당장 컴퓨터만 뒤져봐도 증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조명권 선생!”
그럼 외침에 조명권은 경호원의 뒤로 몸을 숨겼다.
이에 명중환은 탄식과 함께 한영훈을 찢어버릴 듯 노려봤다.
“이번 일은 조용히 넘어갈 수 없을 걸세.”
“명 회장……!”
“무슨 핑계든 듣고 싶지 않으니 경찰에 넘기도록 하지.”
한영훈은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이내 경호원들에게 이끌려 경찰이 도착했다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럼에도 명중환은 고개만 절레절레 저으며 신우의 앞으로 다가왔다.
“설마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서재에서 네가 막아주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했다.”
계획의 시작은 거기서부터였다. 명중환이 영양제를 먹으려던 찰나에 신우가 잡았기 때문이다.
“서재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다음부터는 주기적으로 주변 사람의 상황을 확인해보심이 좋을 듯하네요.”
“정말 그래야겠어.”
그런 대답과 함께 명중환은 신우의 상처 부위를 보았다.
이에 신우는 덤덤한 표정이면서도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은 상태였다.
“그보다 한영훈 원장이 누구 지시로 움직였는지는 용케 묻지 않으셨네요.”
“당연히 저 인간 혼자 세운 계획은 절대 아니겠지. 필시 진짜 배후가 있을 터. 물론 꼬리를 쉽게 드러내놓지는 않았을 테고 말이야.”
명중환도 한영훈의 문제를 발견하고서 자신을 노릴 만한 인물을 유추했다.
하지만 사업적인 부분에서는 적이 너무나 많았기에 특정 인물을 특정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한영훈과 접촉한 사람들부터 확인해봤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게 철저한 탓인지 걸린 인물이 없었다.
“일단 이번 상황은 조용히 덮어서는 안 될 거예요.”
“당연히 그래야지. 대신 이래저래 손을 써놓긴 해야겠지.”
“그건 마음대로 하시죠. 구 비서님은 혹시 모를 상황에 잘 대비해주시고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에 명중환도 긴장이 풀렸는지 복도에 있던 벤치에 엉덩이를 붙였다.
“진짜 나이를 먹긴 했군. 괜찮을 줄 알았더니 이리 힘이 빠지니 말이야.”
“죽을 뻔하셨으니 그럴 만도 하죠.”
“그래서, 배후가 누구인지 넌 아는 것이겠지?”
신우가 서재에서 했던 일은 계획의 일부를 말해준 것뿐이었다.
그걸 명중환이 잘 따라준 이유도 신우가 배후를 말해줄지 모른다는 기대 덕분이었다.
“제가 지금부터 하는 말을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물음과 함께 어디선가 상황을 듣고 온 명인철과 가족들이 복도 끝에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버지―!”
“아버님! 괜찮으세요?!”
.
.
.
같은 시각.
호텔 스위트룸에서는 곽치영이 한상병원에서의 일을 보고받았다.
쨍그랑―
성공의 기념하듯 들고 있던 크리스털 술잔은 곽치영의 손에 던져져 어딘가에 맞더니 사방으로 비산했다.
“또 실패라고?”
술잔은 오한성의 머리에 맞은 것이었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이마와 볼을 타고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통증이 제법 느껴질 법도 한데 오한성은 미동조차 없이 조용히 서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제 계획은 실패한 상황. 곽치영도 지금에 와서 오한성을 붙잡고 따져봤자 달라질 것이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다.
하지만 매번 중요한 계획이 실패하니 골치가 아파왔다.
“왜 하필 그 타이밍에 백신우가 거길 가서는…….”
“상황을 확인해보니 명중환 회장이 호출한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명중환 회장이 저희 계획대로 쓰러졌지만, 구급대원으로 위장했던 저희 부대원들이 어떤 이유로 걸려서 다툼이 벌어졌던 모양입니다.”
오한성도 나름대로 상황들을 조사하여 종합해보았다.
이에 곽치영은 더욱 표정을 구겼다.
“결국 우리가 운이 없었다는 건가?”
“호출한 이유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명중환 회장이 저희가 이용하던 한영훈 원장의 약점을 찾아냈습니다.”
이번 설명에 곽치영의 눈꼬리가 진동하듯 씰룩거렸다.
“우리 계획을 미리 알아차렸다는 의미인가?”
“한영훈 원장과 그 가족들의 계좌 자료를 최근 입수했다고 합니다. 우리 계획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검진 쪽 조작은 드러난 것이 확실한 듯합니다.”
“꼬여도 더럽게 꼬였군.”
“일단 꼬리가 잡힐 염려는 없겠지만, 그쪽에서도 주변 사람들에 대한 물갈이가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가 갈린 곽치영은 긴 한숨을 내뱉었다.
“처음부터 독을 먹였어야 했나?”
“그랬으면 MH그룹 계승 절차에 문제가 생겼을 겁니다. 변수로 인해 실패하긴 했어도, 지사장님의 계획은 지금 상황에 가장 깔끔하고 적합했습니다.”
TSF 한국 지사의 목표는 MH그룹을 통째로 삼키는 것이다. 그 시발점으로 명중환이 죽은 후 명인철이든 백신우든 회사를 물려받은 후 TSF와 손을 잡도록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명중환이 독살당한다면 명인철이 첫 번째 용의자로 몰릴 수 있었다. 동시에 명성철와 명수연은 기회를 잡아 경영권 분쟁이 벌어질 것은 뻔했다.
결국 배성물산처럼 난리가 날 테고, 애꿎게 명 씨 형제들을 제치고서 임희연이 그 꼭대기에 앉게 될지도 몰랐다.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 처음부터 임희연을 노렸던 것이기도 했다.
“MH그룹 쪽에 준비했던 패를 전부 잃어버린 꼴이 되었군.”
“그래도 명인철과 백신우가 남지 않았습니까. 다만, 백신우는 좀 더 고려해보심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백신우가 아니었다면 이번 계획은 성공했을 것이다. 오한성은 조직의 방해물이 된 백신우를 견제해야 한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곽치영의 표정은 그 의견에 동의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백신우 입장에서는 명중환이 지금 죽는 것이 곤란한 상황이지 않겠나.”
“그것까지 생각하고서 저희 계획에 훼방을 놓았다는 겁니까?”
곽치영은 테이블 위의 태블릿을 들어 올렸다. 거기에는 오한성이 한성병원 응급실에서 빼온 백신우의 진료 차트가 띄워져 있었다.
왼쪽 팔뚝과 허리 쪽의 자상(刺傷).
“우리가 배후에 있다는 건 모를 테지. 잘하면 임희연의 일처럼 중국 쪽과 연결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일단 화살을 그쪽으로 최대한 돌려봐야겠군요.”
순간 곽치영은 얼굴을 굳혔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 어차피 주사위는 굴려졌어. 그 안에서 MH그룹이 무슨 생각을 하든 잠시 지켜보면 될 일이야.”
“나머지는 명인철에게 맡겨두실 생각입니까?”
“어차피 우리가 가진 패는 전부 버려지지 않았나.”
우우웅― 우우웅―
그때 오한성의 품속에서 핸드폰 진동음이 울렸다. 안에서 꺼내진 핸드폰에는 명인철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양반은 못 되는 사람인 듯합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겠지.”
곽치영은 실소를 흘리며 오한성에게 핸드폰을 넘겨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