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Mercenary is a Chaebol Heir RAW novel - Chapter (16)
전직용병 재벌서자-16화(16/305)
16화. 누굴 위한 떡밥
식사 중이던 다이닝 룸에는 서늘한 공기가 맴돌았다.
식탁에 둘러앉은 이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이내 신우가 명중환이 내건 제안에 어떤 대답을 던질지 궁금해졌다.
“KITE를 맡아보라는 건 정확히 어떤 위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돌한 반문 탓인지 명중환은 미소를 지었다.
“넌 어떤 위치가 좋으냐? 전처럼 낮지도 높지도 않은 위치면 되는 거냐?”
“기왕 하는 거 이번에는 좀 더 높았으면 좋겠네요.”
순간 다른 가족들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신우도 그걸 보았지만 일부러 무시하고서 명중환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자리의 위치를 받치는 기둥이 가늘고 높을수록 쉽게 휘청이고 떨어지기 쉬운 법인데, 그래도 괜찮으냐?”
현재 신우의 기반이 다른 가족에 비해서 약하다는 걸 의미했다.
그건 신우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가는 기둥에 살을 어떻게, 얼마나 붙일지는 제 역량이겠죠.”
“자신이 있다는 건가?”
“그만한 권한을 주신다면 말이죠.”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전부 감수하겠다는 의미냐?”
“책임을 져야 한다면 져야죠.”
명중환은 그 대답을 들으며 다른 가족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다들 지금의 삶에서 발전보다는 현상 유지하며 안주하길 바랐다.
최근 전략투자기획실에서 프로젝트를 주도한 장손인 명운석만 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식인 명인철, 명성철, 명수연도 거기서 거기였다.
그렇기에 혼외녀인 임희연보다 더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신우에게 신기함을 느꼈다.
“좋다. MH테크의 자회사인 KITE 대표 자리를 네가 한번 맡아봐라.”
동시에 가족들은 아까보다 더 깜짝 놀랐다.
침묵을 지키던 장남 명인철은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백신우 실장은 이제 고작 스물셋입니다. 아무리 자회사라 해도 그런 자리를 당장 맡기기는 부담이 크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게다가 KITE는 투자와 운영 방법이 크게 다르기도 하고 말입니다.”
KITE는 기업의 경비와 개인의 경호를 주업으로 하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기반은 전부 다져진 회사다. 리스크가 큰 곳도 아니니 문제가 생긴 후 조치해도 늦지 않을 거고 말이다.”
“하지만 KITE는 외부 경비를 떠나서 가족들의 경호를 전담한 팀도 소속된 회사입니다.”
“어차피 그 팀들은 KITE에서 관리되기보다 너나 다른 녀석들의 지시만 따르지 않냐.”
특수경호팀만은 KITE와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너를 설득해야 하는 거냐?”
“…….”
다시 침묵이 맴돌았다.
명중환은 명인철이 아닌 신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떠냐. KITE의 대표 자리. 지금보다 더 낫게 키울 수 있을까? 자금이든 영향력이든 뭐든 좋다.”
신우의 경력을 감안해서 나름 핸디캡을 준다는 의미였다.
물론 그걸 단순하게 받아들일 신우가 아니었다.
“기왕 그 회사를 키운다면 전부여야겠죠.”
“가능하겠나?”
“저도 해봐야 알겠죠. 아무튼 맡아볼게요. 언제부터 하면 될까요?”
신우는 명중환이 어떤 의도로 지금과 같은 제안을 던진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KITE는 명인철의 경호팀도 포함되었다. 단순하게는 내부를 훑어볼 기회이면서 적진의 한가운데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결정이 빨라서 좋구나.”
“대신…….”
조건이 있다는 의미였다. 동시에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감히 누가 명중환에게 조건을 내걸 수 있을까.
그로 인해 아까보다 더한 정적이 흘렀다.
“확실한 기반이 다져진 권한을 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통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테고, 회장님이 바라시는 발전에도 벽이 생길 테니까요. 당연히 충돌도 생길 겁니다.”
“…충돌이라면?”
“부수는 거죠. 물론 그만큼 큰소리도 날 겁니다.”
이에 명중환은 오른손에 쥐고 있던 젓가락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KITE의 지분 5%를 양도해주지. 어차피 KITE는 내가 지분을 전부 가지고 있는 회사다. 백신우 실장이 나 다음의 대주주가 되어 대표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니 말이야.”
“그 정도면 충분하겠네요.”
“다만, 나도 조건을 걸지. 석 달 안으로 전략투자운영실에서 이번과 비등한 이익을 낸다면 말이야. 물론 그게 어렵다면 석 달짜리 KITE의 대표 자리가 되겠지.”
조건부 지분 양도라는 말에도 신우의 눈동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어찌 보면 그만큼의 이익이 KITE의 5% 지분에 해당되는 금액이기도 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결정됐군.”
명중환은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반면 임희연을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똥을 씹은 것처럼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지금까지 명중환은 자식들에게조차 양도해준 지분이 없었다.
물론 KITE가 경영권과 무관한 계열사 휘하 자회사라고 하지만, 명중환이 행동으로 신뢰를 보여준 만큼 다른 사람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
.
.
저녁이 되었다.
명인철은 평창동 저택에서 식사를 마친 후 다른 볼일을 보다가 강남의 고급스러운 바에 앉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명 씨 일가의 둘째이자 동생인 명성철이 들어와 옆자리에 앉았다.
“일찍 왔네.”
“왜 보자고 한 거야? 아, 여긴 늘 마시던 걸로 한 잔.”
능청스럽게 주문을 마친 명성철을 지켜보던 명인철이 말을 이었다.
“넌 아버지 의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아버지? 내가 그 노친네 속을 어떻게 알겠어?”
“그래도 생각해본 것이 있을 거 아니야.”
평소 두 사람은 MH그룹 경영권을 위해 서로 견제하기 바빴다. 그런 관계 때문에 지금처럼 명인철이 부른 것도 명성철은 이해가 어려웠다.
“어차피 형은 MH그룹의 후계자인데 뭘 그렇게나 걱정해?”
살짝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명인철의 미간이 씰룩거렸다.
그사이 명성철이 주문한 양주가 온더락 잔에 따라져 나왔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무슨 의미야?”
“아버지 생각을 모르겠어. 임희연을 받아들인 것도 그렇고, 그 자식까지…….”
“솔직히 그건 나도 의외였어. 그림자로 잘만 부려 먹던 그년을 굳이 왜… 설마 아버지가 딴생각을 하고 계신 건 아니겠지?”
명인철은 앞에 있던 술을 한 모금 마시다가 멈칫거렸다.
“딴생각이라면?”
“…혹시 모르잖아. 아버지가 임희연을…….”
말을 다 이어가지 못했음에도 명인철은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후계자로 인정받았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에이, 그런 말까지는 아니고. 많이 찜찜하다는 거지. 그래서, 그 이야기하려고 날 여기까지 부른 거야? 크으― 여기 한 잔 더.”
명성철이 비운 잔을 바텐더가 바로 채워주었다.
명인철은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다가 말했다.
“내가 알기로는 저번에 MH리테일에서 주성만 전무가 대형 사고를 쳤다고 하던데. 30억 좀 넘는다고 했던가.”
“…형님,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MH리테일 쪽 일은 임희연이 전략기획본부에 있을 때 최근 잡아냈던 사건이었다.
물론 그 일로 주성만 전무는 장기간 받은 리베이트로 횡령 혐의가 인정되어 법정 구속 상태로 재판을 준비했다. 다만, 리베이트로 넘어간 32억은 아직 찾지 못해서 골치가 아파진 상태였다.
“주성만 전무가 언제까지 입을 다물 거라고 생각하냐?”
“…진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명성철은 목이 타기 시작하는지 방금 채운 술잔을 바로 비워냈다.
“하려면 제대로 할 것이지. 고작 30억이 뭐냐?”
“…….”
“주 전무가 언제까지 입 다물 수 있을까? 그리고 거기에 네가 관여된 걸 임희연이 정말 모를까?”
MH리테일 리베이트 횡령 건은 명성철이 배후였다.
주성만은 그런 명성철이 뒤를 봐줄 것만 믿고서 조용히 구속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야기만으로도 곱게(?) 지나가긴 어려운 상황임이 분명했다.
“…형님, 지금 그걸로 나를 협박하는 겁니까?”
“형제끼리 무슨 협박이냐. 내가 그걸로 무슨 득을 보겠다고. 그냥 알려주는 거다. 임희연이 칼을 갈고 있는 대상이 나만은 아니라는 걸.”
명성철은 아까보다 목이 더 텁텁해짐을 느꼈다.
“그년이 나를 노리고 있다는 말이야? 나는 고작 30억이야. 형님이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내가 뭘 어쨌는데?”
“그거야……!”
지난번 명중환이 MH전자와 관련된 일에 대해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몰랐다. 지금도 당시의 대화로 심증만 있을 뿐이지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크음! 아니야… 아무튼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명인철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다가 대답했다.
“네 아들, 진석이. 본사로 들어오게 하는 건 어떠냐?”
그 순간 술잔을 들려던 명성철이 깜짝 놀라더니 명인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진석이를 본사에?”
MH그룹의 파벌 입지는 결국 자리싸움.
세력이 기둥을 세운 핵심 계열사에 얼마만큼 사람을 박아넣느냐가 중요하다.
당연히 후계 서열 안에서도 본사의 자리 유무는 큰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지금까지 장남인 명인철이 사장으로 앉아 있었기에 차남의 자식인 명진석은 본사에 들어가지 못했었다.
“맞아. 지금 MH푸드에서 제품기획실장으로 있었지?”
“…그렇긴 하지. 그래서 정말로 진석이를 본사에 들어가도록 해주겠다고?”
“MH푸드에서 일한 경력도 충분하니까 슬슬 옮겨도 좋겠지.”
명성철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그런 기회를 협박과 같았던 주성만 전무의 리베이트 이야기 다음에 듣게 되니,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형님이 원하는 건 뭔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제안을 꺼낼 리가 없잖아.”
“하나가 아니라 둘이면 더 좋지 않을까 해서 그런가.”
“…둘?”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는지 명성철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운석이가 임희연의 밑으로 들어가 있는 건 알지?”
“그걸 모를 수가 있나.”
“거기서 임희연에게 일을 배우라고 넣어둔 거야. 다만, 그 와중에 백신우가 회장님 눈에 띄기 시작했고.”
“…그렇지.”
“진석이도 그 부서로 가는 건 어때? 전략투자감사실로 들어가면 적당할 거 같은데.”
순간 명성철은 아까보다 더 깜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전략투자감사실은 전략투자본부에서 진행한 모든 프로젝트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MH그룹 내 총괄감사팀과 같은 맥락의 업무를 수행하게 되니 막강한 힘을 가진다.
어찌 보면 전략투자기획실에 있는 명운석의 위치보다 더 나을 수도 있었다.
“…감사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내 아들은 기획실에서 성과를 올리고, 네 아들은 감사실에서 백신우를 막는 브레이크 역할을 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야.”
“하지만 실적이 다르잖아.”
“브레이크만 하라는 게 아니야. 감사실에서 뭘 하겠어. 백신우가 이번에 올린 실적에 대한 평가와 분석이 이뤄지겠지. 그걸 토대로 네 아들도 얻는 것이 있지 않을까?”
그런 설명에 명성철의 고개가 자연스레 끄덕여졌다.
“아∼”
“게다가 브레이크만 적절하게 잘 잡아주면 아버지가 내건 KITE의 대표 자리까지 처음 약속했던 3개월로 끝나겠지.”
처음부터 명인철의 목적은 바로 그것이었다.
자식들에게 지분을 주지 않았던 명중환이 백신우에게 내건 KITE의 대표 자리.
동시에 5%의 지분까지 준다는 걸 조건으로 삼았다.
그런 이야기를 듣던 식사 자리에서도 분통이 터졌지만, 내색하지 않고서 지금과 같은 계획을 세운 것이다.
“어때? 괜찮아?”
명성철은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좋아. 발령은 최대한 빨리해주는 거겠지?”
“그래야지. 걱정하지 마라.”
두 사람은 가득 채워진 술잔을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