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Mercenary is a Chaebol Heir RAW novel - Chapter (196)
전직용병 재벌서자-196화(196/305)
196화. 제 무덤을 파는 무지렁이 (2)
사람들과 헤어진 신우는 동료들과 함께 회사로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비서인 장진호가 신우에게 다가왔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모이라이의 엘리자벳 디무치 대표가 그쪽 시간으로 20시 항공편으로 출발한다고 합니다.”
“도착 예정 시각은?”
“인천국제공항에는 14시 30분에 도착……!”
설명을 이어가던 장진호는 신우의 옆에 있던 장만수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기다간 손자국이 그의 볼 위로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장 부장님! 얼굴은 왜 그러십니까?”
“아, 누구한테 좀 맞았어. 그리고 디무치 대표가 도착할 시각에 맞춰서 늦지 않도록 마중 나갈 수 있게 해줘.”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무실에 손님이 와계십니다.”
“손님?”
미리 연락받았던 것도 없었다.
그렇게 사무실 쪽으로 걸어가니 문 앞 벤치에 명운석이 앉아 있었다.
신우는 예정에도 없던 그의 방문에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와봤다.”
대답하면서도 명운석의 표정에는 찜찜함이 맴돌았다.
이에 신우는 지문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서 그와 함께 들어가 앉았다.
“중요한 이야기라는 게 뭡니까?”
“기사 봤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모이라이의 국내 입점 계약을 체결한다면서?”
명운석은 MH전자 소속이었다. MH그룹에서 MH백화점과 연결된 일에 관심 가지는 것이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조금 전에는 명운석의 친구인 조민규까지 만났던 탓에 모호한 분위기마저 들었다.
“맞습니다.”
“거긴 MH백화점에서도 꽤나 오랫동안 노렸지만 안 되던 곳인 걸로 아는데. 어떻게 한 거냐?”
그의 물음에 신우는 여전히 이해가 어려웠다.
“명운석 부장님께서 그게 왜 궁금하신 겁니까?”
“궁금해서 그렇지. 얼마나 획기적인 조건을 내밀었길래 꼼짝도 안 하던 모이라이가 입점을 허락한 것인지 말이다.”
분위기만 봐도 절대 순수한 궁금증이 아니었다. 당연히 모이라이와 계약하기로 일에 있어서 목적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무슨 꿍꿍이인 거지?’
신우는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말을 이어갔다.
“특별한 건 없고, 그쪽이 원하는 걸 쥐여주고 우리가 원하는 걸 가져온 것뿐입니다.”
물론 신우도 쉽게 말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명운석은 그 의도를 알아챈 것인지 웬일로 언제나 날카롭던 분위기를 풀면서 말했다.
“그래서 그 조건이 뭔지는 말해주지 못하는 거냐. 아니면 일부러 말해주지 않는 거냐?”
신우는 그의 질문을 받던 중에 시선이 느껴져서 옆 사무실 쪽 유리 벽을 보았다. 장만수가 눈까지만 반투명한 선 위로 내밀고는 귀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무전용 이어폰을 끼라는 신호였다.
이에 신우는 잠깐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하게 결재할 서류가 생각나서요.”
책상으로 가서 손목시계의 측면 버튼을 누르자 서랍처럼 조그만 공간이 튀어나오더니 이어폰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장만수가 동료들을 위해 만들어준 새로운 장비였다.
신우는 모니터 뒤에서 그 이어폰을 끼고서 장만수의 목소리를 들었다.
[명운석이 30분 전쯤에 조민규랑 통화한 기록을 찾았어. 마침 성진어패럴이 항공사를 통해서 모이라이의 엘리자벳 디무치가 입국한다는 정보를 알아냈고.]몇 가지 정보만으로 명운석이 왜 갑자기 방문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들도 시간적 여유가 더 있었다면 다른 방법을 선택했을지도 모르지만, 당장 내일 엘리자벳 디무치가 도착하는 상황이니 조급해진 것이었다.
신우가 이어폰을 낀 것을 확인한 장만수는 자리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에 신우는 컴퓨터로 조금 미뤄뒀던 결재를 마치고 소파로 돌아갔다.
“굳이 콕 집어서 물어보시면 당연히 말을 안 하는 거죠. 아직 계약이 체결되기 전인데 그 조건이 어디로 새어 나가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명운석은 그런 대답을 듣고서 미간이 씰룩거렸다. 사실 그도 조민규의 부탁을 받고서 온 것이지만, 신우에게 고개 숙이듯 찾아온 것부터 불쾌했다.
하지만 성진어패럴 쪽에서 괜찮은 조건을 몇 가지 제시했기에 MH그룹 내 이권을 위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꽤나 민감하게 받아들이는구나. 그걸로 내가 뭘 하려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솔직히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뭐가 말이지?”
“아까 시사회 뒤풀이에서 명운석 부장님과 절친한 사이인 조민규 본부장을 만났거든요. 잡음이 조금 있긴 했지만, 공교롭게도 바로 부장님이 찾아오셨네요.”
순간 명운석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래? 녀석은 나도 본 지가 좀 됐는데.”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다. 명운석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신우가 뭘 알아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신우는 잔뜩 진지해진 표정으로 명운석을 뚫어지게 보았다.
“솔직히 실망이네요.”
심상치 않아진 분위기에 명운석도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뭐가 말이지?”
“청담동 아르테미스에서 친구들 사이를 주름잡던 명운석 부장님이 산업 스파이로 전락하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 순간 명운석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뭐? 산업 스파이?”
“지금 모이라이와의 계약 조건을 알아내서 성진어패럴에 가져다 바치려는 거잖습니까.”
신우도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반신반의하며 찔러보자 명운석은 표정으로 대답해주었다.
물론 입으로는 아니지만…….
“네가 미친 거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이내 명운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성진어패럴도 어지간히 급했나 봅니다. 명운석 부장님도 마찬가지겠고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명운석은 끝내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뒤로 이어진 신우의 말을 듣고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계약 조건을 알아다 주면 성진어패럴에서 3공장 시공사 선정을 특명 입찰로 MH건설에 던져주기라도 한답니까?”
특명 입찰은 건축주가 한 개의 회사를 선정하여 계약하는 방식이다.
단, 특명 입찰은 하나의 회사로 진행되는 만큼 공사 비용이 무분별하게 증가할 수 있어서 대형 건축주 입장으로 큰 단점이 될 수 있다.
물론 신우도 확신을 가지고서 던진 말이 아니었다.
성진어패럴이 명운석과 주변 사람에게 이득으로 적용할 수 있을 조건이 무엇일지 가늠하다 떠올린 것이다. 그리고 지금 명운석의 반응은 그걸 증명시켜 주었다.
“…뭘 얼마나 알고 있는 거지?”
대충 찔러본 것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웬만큼은요. 그럼 이제 볼일은 끝난 듯하니 가던 길이나 마저 가시죠. 일이 바빠서 배웅은 못 할 듯싶네요.”
명운석은 얼굴이 잔뜩 구겨진 채로 거칠게 밖으로 나갔다.
그런 뒷모습을 보던 신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옆 사무실 문으로 들어온 장만수에게 시선을 옮겼다.
“나이스 타이밍이었어.”
이어폰을 빼면서 손을 내밀자 장만수는 시원하게 하이파이브하면서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명운석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올 인간이 아니니 곧장 확인해봤지. 그래도 성진어패럴 쪽에서 3공장 시공사 조건까지 내세운 건 몰랐네.”
장만수도 예상하지 못한 수였기 때문이다.
“성진어패럴에서 자금으로 명운석을 움직이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 근래에 취합한 정보에서 써먹을 만한 조건은 MH건설의 실적뿐이겠더라고.”
“대장도 정보를 잘 써먹네.”
“듣는 것이 많아지니까. 그리고 네가 잘 취합해주고 있잖아.”
“괜찮다면 다행이지. 그럼 성진어패럴이랑 조민규는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지금 상황에서 명운석이 실패한 것을 안다면 거기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 같은데.”
성진어패럴도 지금처럼 나온 상황이라면 그만큼 조급하다는 걸 의미했다.
게다가 모이라이의 대표 엘리자벳 디무치가 내일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니 분명 다른 움직임을 보일 것이었다.
“거긴 내가 알아서 맡을게. 당장은 그런 하찮은 곳보다 TSF가 중요하니까.”
“알았어. 아, 그리고 BF 인터내셔널 쪽 투자는 나정현 차장한테 넘겼어. 주호연 재무이사님한테도 자금 결재는 확인해놨으니 무리 없이 넘어갈 거야.”
“신경 써줘서 고맙다.”
“그럼 나는 가서 일이나 해야겠다.”
이에 장만수는 일어나서 신우의 어깨를 두드린 후 옆의 사무실로 넘어갔다.
* * *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MH퓨처시큐리티의 재무부장인 백주선은 주호연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왔어?”
주호연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백주선과 눈을 마주쳤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에 백주선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이것부터 봐봐.”
대답과 함께 책상 위로 서류를 하나 올려놓았다.
【BF 인터내셔널 투자 계획】
백주선은 서류의 타이틀에 눈이 크게 뜨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야? BF에 관한 내용이 왜 여기에 있어?”
“이름 그대로 투자 계획. 자금 결재는 이미 떨어졌고, 미팅으로 논의 후에 문제만 없으면 지급될 거야.”
서류를 살펴보기 시작한 백주선은 더 놀란 표정이 지어졌다.
“…300억? 이렇게나 많은 금액을 투자한다고? 재무제표는 왜 이래?”
“최근에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크게 엎어졌어. 손실액이 상당한 상황에서 회사는 운영해야 하니 MH퓨처시큐리티에 투자를 요청한 거고.”
조심스러운 주호연의 설명에 백주선은 당혹스러웠다.
“아니, 이런 걸 나한테는 왜 말하지 않은 거야?”
BF 인터내셔널의 재무이사가 그녀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같이 사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딸이 다니는 회사에 투자 제안을 한 것인데 일언반구도 없었다.
“대표님이나 이사님도 네가 걱정할까봐 말씀하지 않으신 거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웬만하면 네가 일하는 곳에다 투자 제안을 넣지 않으셨을 텐데. 상황을 알아보니 은행 쪽 대출도 막혔던 것 같더라고. 얼마 후면 어음이 돌아오기도 하고.”
백주선은 그런 말을 들으며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그 정도 상황이었으면 더 말했어야지…….”
“그래서 더 말하지 못하셨을 거야. 아무튼 너도 알긴 해야 할 것 같아서 보여준 거다.”
“…….”
침울해진 분위기 속에서 주호연은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까 말했듯이 투자는 문제 없이 진행될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하지만 단기 손실만 150억이야. 투자를 받으면 메울 수야 있겠지만, 리스크는 여전하잖아. 워크아웃이 필요할지도 모르고.”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말함이었다.
이에 주호연도 생각한 바를 꺼냈다.
“당장 자금 유동성 흐름부터 풀리면 파킹으로 주식, 채권부터 홀드해놔야지.”
“정말 괜찮은 거야? 설마, 나 때문에 투자 결재를 승인해준 건 아니지?”
그런 백주선의 물음에 주호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 때문에? 설마―.”
“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잖아. 당장 BF 인터내셔널이 손실 금액만큼 프로젝트를 끌어오기도 어렵고.”
“그거, 어느 부서에서 진행하는 투자 건인지는 봤어?”
주호연은 그녀가 들고 있던 서류를 맨 앞장으로 넘겨주었다.
“…운영0실? 백신우 대표님이 진행시킨 건이라는 거야?”
“대외 업무 담당자는 1실의 나정현 차장님이야. 검토 절차에도 문제는 없었고, 나도 제출된 자료들을 보고서 승인했어. 투자 성공 가능성은 충분해.”
“뭘로?”
“서류를 들고 있으면 제대로 확인해.”
혼내듯이 말하자 백주선은 서류를 계속해서 넘겨봤다.
“중소기업 연계 수출? 오큘러스 펀드?”
“유럽 쪽에서 유명해진 회사인데 최근에 국내 중소기업 다수를 인수했어. 거기서 해당 기업들 제품군을 BF 인터내셔널을 통해 수출하고 싶나봐. 그것만 BF에서 문제없이 계약 마무리되면 괜찮을 거야.”
철강판, 정밀화학원료, 전자기기 센서 등 다양한 품목들이 있었다.
한두 가지만 따지면 큰 이익이 되기 어렵지만, 그 수가 많아지면 박리다매로서 가치가 충분했다.
이에 백주선은 걱정했던 마음이 씻은 듯 사라졌다. 동시에 위기와 기적을 한 번에 겪은 것처럼 신기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