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Mercenary is a Chaebol Heir RAW novel - Chapter (197)
전직용병 재벌서자-197화(197/305)
197화. 제 무덤을 파는 무지렁이 (3)
다음 날.
신우는 모이라이의 엘리자벳 디무치를 마중 나가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그사이 보조석에서 장진호는 보고가 필요한 사항들을 읊어주었다.
“…RD일렉트로닉스에서 칩렛 프로젝트 진행 사항으로 대표님의 방문을 요청했습니다.”
“비는 일정은?”
“많습니다.”
여전히 신우는 중요한 업무 외에 불필요한 일정을 절대 잡지 않았다.
덕분에 하루 종일 여러 사람을 만나는 다른 대표들과는 하루 일정의 밀도가 상당히 달랐다.
“그래? 적당한 일자를 정해서 알려줄게. 언제까지 말해주면 돼?”
“RD일렉트로닉스에서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원합니다. 벌써 3차 투자가 진행된 상황에서 한 번도 방문하지 않으신 탓에 직접 뵙고 인사드리고 싶다는 것도 있고요.”
원래 RD일렉트로닉스는 운영이 어려워져 망했을 회사였다.
그러던 와중에 MH퓨처시큐리티의 투자가 진행되어 반도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으니, 어떤 식으로든 신우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했다.
“위치가 버지니아였던가?”
“정확히는 버지니아 휠링입니다.”
“그럼 비행 시간만 해도 만만치 않겠네.”
“중간에 경유 대기하는 시간까지 치면 22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신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미국에서 같이 처리하면 좋을 업무가 있나?”
“KITE 미국 지사 시찰도 있습니다. 리비오소프트, 텔리콤 쪽에서도 대표님의 방문을 요청해왔지만 거절하셨으니 이번 기회로 같이 잡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하지만 리비오소프트는 실리콘밸리, 텔리콤은 뉴욕. 거기서 KITE 지사는 동부의 유타 웨스트조던, 서부의 버지니아 리치몬드였다.
미국을 동서남북으로 골고루 다녀야 할지 몰랐기에 선뜻 승낙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생각은 해볼게.”
“툭하면 각 회사 대표들이 언제쯤 대표님을 뵐 수 있을지 연락해옵니다. 투자를 바라는 회사들도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이미 거래 중인 곳 아니면 거절해.”
신우는 그렇게 말하고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뭐 때문인지 아까부터 도로 위의 차들이 점점 느려지더니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앞에 무슨 문제가 있나?”
“확인해볼까요?”
잠시 생각한 신우는 장진호의 물음에 대답했다.
“아니야. 내가 해볼게.”
핸드폰으로 WAVE CHAT에 접속했다.
【1. MANDU의 최애 컬러는?】
랜덤으로 뜨는 접속용 퀴즈에 신우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고집도 더럽게 세서는…….”
【스트로베리 핑크】
그 뒤로 2개의 문제를 더 맞혀 WAVE CHAT에 접속해서는 장만수에게 도로 상황을 확인해달라고 보냈다.
우우웅―
답변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만수(MANDU) : 공항 도로 쪽에서 컨테이너 트럭이 전복됐어.】
메시지와 함께 위성과 도로 CCTV로 촬영된 사진이 첨부되었다. 그것으로 상황만 보면 인명 피해는 거의 없는 듯했다.
다만, 컨테이너 트럭이 엎어지면서 공항 방향의 도로, 전 차선을 완전히 막고 있었다.
이에 신우는 WAVE CHAT으로 장만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반적인 사고는 아닌 거 같네.”
“그것도 대포차고?”
[맞아. 일단 추적은 해놓을게.]“공항 쪽 상황도 알려줘. 이런 사태면 누구 짓인지는 뻔하니까.”
공항으로 모이라이의 엘리자벳 디무치를 마중 나가는 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절묘한 타이밍에 도로가 막혔으니 생각난 곳은 하나뿐일 수밖에 없었다.
[성진어패럴이겠지.]“하는 짓들이 비슷한 것만 봐도 끼리끼리 노는 게 맞나봐.”
[어떻게든 모이라이 쪽 계약을 가로채려나 보네. 생각해둔 방법은 있는 거야?]“거기서 무슨 제안을 던지는지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지.”
지금 위치는 고속도로 위였다. 쓰러진 트럭으로 인해 완전히 막혔으니 신우라도 뚫고 갈 방법은 없었다.
[대장이 알아서 잘하겠지 뭐.]“놈들만 추적해서 전달해줘.”
[알았어.]“Ok.”
신우는 통화를 끝내고서 다른 곳에 메시지 몇 개를 보낸 후 트럭이 조치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
.
.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그 앞에는 성진어패럴의 회장 조영천과 아들 조민규, 휘하의 비서, 경호원들이 함께 서 있었다.
조용히 누군가를 기다리던 중에 비서인 이광훈이 옆으로 다가왔다.
“방금 일 처리를 완료했답니다. 적어도 몇 시간은 공항으로 절대 올 수 없을 겁니다.”
“흔적은 남기지는 않았겠지?”
“의뢰를 진행한 이들은 곧장 인천공항을 통해서 연변으로 돌아갈 겁니다. 일을 중개한 조직 연락책도 바로 정리해뒀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영천은 납득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깔끔해서 좋군.”
그사이 입국장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광훈의 지시로 경호원들이 플래카드를 들어 올렸다.
【Benvenuto in Corea. (한국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MOIRAI Elisabetta Dimucci】
바리케이드 너머에서 수많은 사람이 지나갔다. 그러다 한 외국인 무리가 그들이 든 플래카드를 보고서 앞으로 다가왔다.
맨 앞으로 나온 여인이 플래카드를 든 사내에게 이탈리아어로 말했다.
“Siamo qui con i MOIRAI. (저희가 모이라이에서 왔습니다.)”
이에 이광훈의 옆으로 서 있던 통역사가 앞으로 나섰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은 성진어패럴의 조영천 회장님이십니다.”
대답과 함께 무리 가운데에 있던 중년의 여인이 얼굴을 살짝 구겼다. 그녀가 바로 모이라이의 대표인 엘리자벳 디무치였기 때문이다.
“MH퓨처시큐리티에서 나오신 것이 아닌가요?”
엘리자벳 디무치가 직접 나서서 묻자 조영천이 통역사를 통해 대답했다.
“그쪽은 아직 도착하지 못한 듯싶습니다.”
“저희는 MH퓨처시큐리티와 일정이 있어서 온 건데요.”
“매장 입점 건으로 오신 걸로 압니다. 그간 계속해서 미팅을 요청드렸는데도 거절하셔서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뵀습니다.”
나름 정중한 조영천의 설명에 엘리자벳 디무치는 차분해진 표정으로 눈을 마주쳤다.
“성진어패럴의 요청을 받았던 건 기억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미 내부에서 결정난 사항을 바꿀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상황에 여유가 생긴 듯한데 조금이나마 들어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고요하면서 무게가 실린 부탁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로 팽팽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러다 엘리자벳은 코로 긴 탄식을 내뱉었다.
“들어보기나 하죠. 다만, 만족할 만한 조건이 아니라면 깔끔하게 포기해주셨으면 해요.”
조영천도 자신이 있었기에 공항까지 직접 나왔다. 그만큼 브랜드 모이라이의 국내 독점 입점을 꼭 성사시킬 계획이었다.
입국장 앞에 서 있던 그들은 자리를 벗어나 공항 VIP 라운지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조영천은 엘리자벳과 마주 앉아서 미리 주문한 차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서로 어떤 생각 중인지 가늠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따뜻한 커피와 차가 앞에 놓이자 한 모금씩 마신 후 조영천이 먼저 입을 뗐다.
“전국 SJ 백화점 명품관 Golden Zone, 특히 수도권 내에서는 직영 매장 개설과 시공비 70%까지 지원. 더불어 3년 이내 일본 도쿄, 중국 상하이, 홍콩, 대만 등 주요 도시를 기점으로의 확장까지 약속드리겠습니다.”
분명히 어떤 곳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조건이었다.
그사이 조영천의 옆에 서 있던 비서 이광훈은 가방에서 그 조항이 표기된 계약서를 꺼내 건네주었다.
엘리자벳은 그 내용들을 살짝 흥미로운 표정으로 읽어 내려갔다.
“나쁘지는 않네요.”
“어떤 곳에서도 이런 조건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해당 조건들은 성진어패럴에서도 상당한 자금을 들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모이라이 입점과 확장만 독점으로 진행한다면 그보다 수백 배의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MH퓨처시큐리티에서 제시한 조건도 모르시면서, 그렇게까지 확신하실 수 있나요?”
“그곳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일개 투자회사이지 않습니까. 고작 돈만 가지고 놀 뿐이죠. 패션 유통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이제 엘리자벳의 표정은 흥미에서 묘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사항들은 성진어패럴의 입장에서 대규모 투자겠네요.”
“기업의 사활을 건 만큼 확실히 해야죠.”
“그러다 우리 모이라이의 브랜드 이미지가 망가진다면 성진어패럴의 손실도 엄청날 텐데요.”
가능성이 아예 없는 말은 아니었다.
이에 조영천은 크게 숨을 한번 내쉬고서 말을 이어갔다.
“물론 리스크를 전부 감수할 수는 없겠죠. 그만큼 모이라이 측에서도 불가피한 상황에 대비해 약속해주셔야 할 것도 있긴 합니다.”
옆에서 이광훈이 다른 서류를 꺼내어 엘리자벳에게 넘겨주었다.
해당 서류에는 계약 이후 발생할 문제에 모이라이가 책임져야 할 사항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와 동시에 엘리자벳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져갔다.
“모이라이의 브랜드 이미지 손실의 사유가 자사에게 있을 경우, 본 계약으로 이행된 모든 자금의 3배를 위약금으로 지급한다라…….”
“저희가 투자하는 만큼 대비도 필요한 사항이니까요. 게다가 그 사항은 모이라이에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상관없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브랜드 이미지라는 건 자사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훼손당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그래서 브랜드를 대표하는 모델 선정에 있어서도 누구보다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하나, 지금 조건만 보면 우리 모이라이가 직접 접촉해서 진행해도 무관한 일이지 않아요? 아시다시피 모이라이를 원하는 곳이 많잖아요.”
그것도 틀리지 않았다. 성진어패럴에서도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어떤 곳보다 먼저 접촉해서 계약하려 했던 것이다.
“자체적으로 이유가 있겠죠. 가령… 직영점 시공에 필요한 자금이 부족하다든지 말입니다.”
성진어패럴의 조영천 회장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선 것이 아니었다. 나름 모이라이의 상황을 최대한 수집한 후에 지금과 같은 결정을 내리고서 움직였다.
“꽤나 상세하게 조사하셨나 보네요.”
“상대를 파악하고서 거래하는 것이 기본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어떠십니까? 이 정도면 모이라이의 입장에서도 꽤나 후하다고 판단되실 수 있을 듯싶은데요.”
조영천은 엘리자벳이 빨리 결정하길 바랐다. 그러나 겉으로 조급함을 티 내면 안 되었기에 여유롭게 말하며 그녀의 반응을 지켜봤다.
두 번째로 받은 서류를 계속 넘기던 엘리자벳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리베이트에 관한 사항이 있네요.”
이름 그대로 명시한 것은 아니다. 시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잔금의 귀속을 모이라이 측으로 돌린다는 조항이었다.
하지만 의미를 따져보면 리베이트와 다를 바가 없었다.
“계약이 체결될 시 저희가 드리는 보답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저희로서도 일반적인 계약보다 과하게 책정하긴 했습니다. 그럼에도 모이라이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그렇게 말한 조영천은 몸을 앞으로 숙이더니 테이블 위의 계약서를 한 장씩 넘겨 서명하는 부분이 보이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엘리자벳은 그런 행동을 차분히 지켜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MH퓨처시큐리티가 내건 조건보다는 좋지 못하네요.”
그 순간 조영천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