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Mercenary is a Chaebol Heir RAW novel - Chapter (302)
전직용병 재벌서자-302화(302/305)
302화. 다시 꿈틀대는 지렁이 (2)
뭔가 불쾌한 느낌이 드는 표정들이었다.
동료들은 신우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계속 창문으로 쳐다봤다.
신우는 지난번에도 계속 저랬음을 떠올리고서 짙은 한숨을 흘렸다.
“후우―!”
그 모습을 본 엄아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뒤에 뭐가 있나요?”
동시에 신우의 시선을 따라 병실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동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창문 바깥쪽으로 사라졌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디 안 좋으신 건 아니죠?”
엄아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오실 줄은 몰랐네요. 퇴근하시고 쉬실 시간 아닙니까?”
벌써 오후 8시가 넘어갔다.
“회사에 있다가 소식을 듣자마자 왔어요.”
“이 시간까지 일을 하셨나 보네요.”
“아직 영세한 제작사이다 보니, 열심히 일해야 하니까요.”
그녀가 대표로 있는 브레스필름은 얼마 전 영화 ‘극한형사’를 대박으로 마무리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물론 이전에도 실력이 입증된 회사이긴 했지만, 거기에 힘을 실어줄 작품이 만들어진 것이다.
“듣기로는 제작 의뢰나 투자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하던데요. 다음 작품도 준비 중이라고 들었고요.”
신우도 그곳에 투자했던 입장이라서 이런저런 소식을 접했다.
이에 엄아영은 살짝 머쓱한 표정이 지어진다.
“요즘은 드라마 제작을 해보려고 대본 검토에 집중하는 중이에요.”
“아… 그러시군요.”
솔직히 신우는 영화든 드라마든 큰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엄아영이 미디어 계통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대화를 이어갈지가 애매했다.
“투자를 바라고서 찾아온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저 백 대표님이 조금 걱정돼서 와봤어요. 저번에도 계속 연락을 안 받으시기도 했고요.”
반면 엄아영은 뭔가 오해한 것 같았다.
신우는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두바이 사건 이후 엄아영의 부재중 연락에 답신을 보낸다고 하고서 깜박해버렸다.
“이래저래 정신이 없다 보니…….”
“일이 많으니 그러실 만도 하죠.”
뭔가 아쉬움이 담긴 중얼거림.
그럼에도 신우는 덤덤히 말했다.
“그때 연락하셨던 게 중요한 용건이었던 걸까요?”
“아까 걱정돼서 그랬다고 했잖아요.”
신우는 그녀의 대답을 듣다가 어느새 다시 병실 문 앞에 모여든 동료들의 얼굴을 발견했다.
문에 난 조그만 창문을 그들의 얼굴이 가득 채운 상태였다.
그들은 방금 전 대화 내용을 들었는지 잔뜩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얼굴 앞에 내민 엄지손가락만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뭐지? 밑으로 눈을 깔라는 건가? 아니면 밑에 뭐가 있다는 거야?’
트라이드 아이의 수신호 체계에는 없는 것이라 이해가 어려웠다.
“왜 자꾸 뒤를 보세요?”
이번에도 엄아영이 고개를 돌렸지만 창문 앞에 있던 동료들은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그 속도가 얼마나 잽싼지, 갯벌에서 모습을 감추는 짱뚱어 같았다.
“그냥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여서 그렇습니다.”
신우는 찜찜한 기분을 지우지 못한 채로 엄아영과 서먹하게 대화를 나눴다.
물론 엄아영의 시선이 신우에게 돌아가자 조그만 창문 앞의 동료들도 다시 나타났다.
* * *
곽치영은 상부의 지시로 TSF 본사의 감사본부장이 되었다.
이에 본사에서 호출받아 처음으로 출근하여 곧장 열린 임원 회의에 참석했다.
장소는 얼마 전 TSF의 임시 주주총회가 열렸던 대회의실이었다. 그곳에 도착하자 TSF 본사를 책임진 임원들이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분위기는 서늘했다.
그러던 중에 정장 차림인 중년의 금방 사내가 일어나 곽치영을 가장 먼저 맞이해주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곽치영 감사본부장님. 이번에 사내 이사로 들어온 엘머 페츠터라고 합니다.”
곽치영도 TSF 본사에서 그를 처음 보았던 터라 궁금하던 참이었다.
“아… 예. 안녕하십니까.”
“이쪽으로 앉으시면 됩니다.”
회의실에 명패가 놓인 자리로 안내해준 것이다.
그때까지 다른 임원들은 곽치영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들 불만이 많은 표정이었다.
TSF 본사는 현재 경영난인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전임 회장이 주주총회로 해임된 데다가 서른도 안 된 여자가 대표이사 자리에 앉았다.
더불어 각국에서 철수된 지사장 중 하나인 곽치영이 다른 곳도 아니고, 본사 감사본부장이 되었다.
가뜩이나 민감한 자리의 주인을 전임 회장이 해임되기 전에 결정해버렸던 바람에 다시 손을 쓰기도 힘들었다.
‘아주 죽어라 노려보는군.’
곽치영도 그들의 분위기를 충분히 읽을 수 있었기에 최대한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의 회의를 책임진 TSF 본사 전무이자 사내 서열 2위인 엘리엇 뉴먼이 입을 뗐다.
“오늘 이렇게 자리를 만든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 TSF의 최대 주주가 된 오큘러스 펀드의 아이린 모레티 때문입니다.”
자리에 모인 것은 엘리엇 뉴먼을 포함해 총 8명이었다.
다들 그의 말이 이어지길 조용히 기다렸다.
“일단 일주일간 오큘러스 펀드 쪽 업무를 정리하고서 정식으로 취임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전임 회장인 제임스 캐넌과 같이 TSF을 세운 구성원이었다.
처음에야 엄청난 이익에 눈이 멀어 제임스 캐넌의 운영 방식에 태클을 걸지 않고 잘 따랐다. 그리고 그들의 욕심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이내 200억 달러 이상의 손실과 함께 제임스 캐넌이 해임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TSF의 전무인 엘리엇 뉴먼은 자신만이 회사를 회생시킬 수 있다고 여겼기에, 제임스 캐넌이 차기 대표이사 자리를 넘길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지분 전쟁이 벌어졌고, 오큘러스 펀드가 최대 주주가 되는 상황까지 되었다.
물론 다른 임원들도 그런 엘리엇 뉴먼의 생각에 찬성한 상태였다.
이에 상무인 루카스 브룩스가 나섰다.
“생각해두신 방법이 있습니까?”
엘리엇 뉴먼은 그 물음에 미소를 지어 보인다.
“판을 깔아두려고 합니다.”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아이린 모레티는 새 대표로서 작금의 사태를 해결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걸 위한 준비를 진행하여 맡기는 것이죠.”
조용히 상황을 탐색 중이던 곽치영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로사 테일러가 일러준 대로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엘리엇 뉴먼에게 무슨 수를 써놓은 건가?’
그사이에도 대화는 루카스 브룩스의 의견으로 계속 진행되었다.
“새 대표가 직접 맡겠습니까?”
“그러니 아까 말한 대로 준비가 필요한 거죠. 게다가 그녀에게는 충분한 배경이 있지 않습니까.”
오큘러스 펀드를 말함이었다.
이내 이사인 할리 벨이 이해하며 말했다.
“언론 플레이를 하자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이번 TSF의 임시 주총에 시선이 집중되었던 만큼, 지금도 신임 대표인 아이린 모레티에 관한 기대가 큽니다. 하지만 경영난으로 인한 투자자들의 원성은 점점 커져가고 있으니, 그것부터 진압할 방법을 그녀에게 넘기는 것이죠.”
침묵을 지키고 있던 올리비아 브라이튼 상무가 손을 들면서 나섰다.
“솔직히 지금 사태는 전임 회장인 제임스 캐넌의 방만 경영이 원인으로도 꼽히고 있습니다. 게다가 실종된 파푸아뉴기니 지사장 데번 노리스나, 자살로 판명난 에디 모튼의 죽음에 수상한 점이 많습니다.”
“그건 수사국에서 문제가 없음이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엘리엇 뉴먼의 주장에도 올리비아 브라이튼은 그치지 않았다.
“진심으로 그들이 20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전부 날렸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제 와서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당장은 현실을 직시하고 실질적인 타계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자리를 마련하신 거 아닙니까.”
대표적으로 엘리엇 뉴먼 전무와 루카스 브룩스 상무는 반 회장파, 올리비아 브라이튼 상무와 할리 벨 이사는 중립이었다.
그렇게 임원들이라고 전부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엘리엇 뉴먼은 그녀의 반발에 오래 생각하지 않고 말했다.
“이게 현실적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그리고 자살한 에디 모튼 본부장은 애초에 당신의 사람이지 않았습니까. 솔직히 책임을 묻는다면 그쪽도 피할 수 없는 걸 모릅니까?”
그 주장에 올리비아 브라이튼은 다시 입을 떼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지금까지도 그녀는 에디 모튼이 왜 자살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 멀쩡하던 자금의 구멍과 흔적들이 전부 에디 모튼을 가리켰다.
수사국도 그런 이유로 사건을 자살로 종결시킨 것이다.
이내 잠시 침묵이 이어지자, 엘리엇 뉴먼의 시선이 곽치영에게로 향했다.
“이번에 감사본부로 오신 곽치영 본부장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참고로 지금까지 제가 말한 대로 준비된다면 그쪽에서 해주실 일이 많을 겁니다.”
물론 곽치영은 위에서 지시를 받긴 했다.
하지만 그대로 끌려다니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리고 엘리엇 뉴먼이 어디까지 생각하는지도 정확히 가늠할 필요가 있었다.
“아이민 모레티 대표가 자사의 회생을 위해 움직인다고 한들, 그 절차가 전부 합법적일 거라는 보장은 없겠죠. 그런 부분이 있다면 가감 없이 확인하겠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말꼬리를 흐리자 임원들의 시선이 곽치영에게 몰렸다.
이에 곽치영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오큘러스 펀드의 자금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녀가 자금을 문제없이 끌어온다면, 저는 거기서 할 일이 없게 될 겁니다.”
필요에 따라서 발을 빼겠다는 의미였다.
그건 다른 이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엘리엇 뉴먼은 자신의 생각대로 진행이 안 되어서인지 살짝 초조해진 듯 미간을 씰룩거렸다.
“곽치영 본부장께서 지사장으로만 일하시느라 본사의 상황을 잘 모르시는 듯합니다.”
잔뜩 무시하는 말투였다. 그럼에도 곽치영은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본사에 있어본 적이 없으니 알 수 없죠. 하지만 계속 여기 계셨던 전무님께서도 모르시는 것 아닙니까?”
서로 쳐다보는 사이, 팽팽해진 공기가 흘렀다.
그러다 엘리엇 뉴먼은 긴 한숨을 내쉬며 주변의 임원들을 둘러봤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제가 외부에서 자금을 끌어오려고 합니다.”
동시에 루카스 브룩스만 제외하고서 다른 임원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혼자서만 뭔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올리비아 브라이튼은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외부 자금이 가능한가요?”
200억 달러 이상의 손실. 그로 인해서 멈춘 프로젝트만 수십 가지가 넘었다.
게다가 임시 주주총회로 전임 회장이 해임되고 새 대표이사까지 정해진 상황. 지금 TSF의 문제를 다른 기업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물론 다시 자금을 쏟아부으면 일정 부분은 회생이 가능하겠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만 될 수도 있었다.
“접촉 중인 곳이 있습니다. 자금의 규모는 대략 100억 달러.”
약 13조 원이나 되는 자금이지만, TSF가 입은 손실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당장 그것만이라도 절실한 상황이니 반감을 보이기가 어려웠다.
“어디서 가능하다는 거죠?”
올리비아 브라이튼의 물음에 엘리엇 뉴먼은 입맛을 다셨다.
“당장은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그리고 거기서도 몇 가지 조건이 있어서 타진 중에 있습니다.”
“무슨 조건을 말인가요? 설마, 자사에서 보유 중인 주식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그건 대표이사의 최종 결정이 필요한 내용이에요.”
그 사실은 엘리엇 뉴먼도 잘았다.
동시에 급변한 분위기 속에서 곽치영은 묘한 미소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