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Mercenary is a Chaebol Heir RAW novel - Chapter (8)
전직용병 재벌서자-8화(8/305)
8화. 불가피한 휴전
이태원의 MH호텔 VIP 라운지.
신우는 그곳 프런트 직원의 안내를 받아 안쪽으로 들어갔다.
문 앞과 주변에 경호원들로 보이는 사내들이 여럿 서 있었다.
그중 하나가 신우를 빤히 보고서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문이 열리면서 테이블 가운데 앉은 노인과 그 옆으로 선 사내를 보았다.
MH그룹의 회장인 명중환과 비서이자 경호원인 구상호였다.
동시에 신우는 장만수에게 들었던 미래에 벌어진 일들을 떠올려봤다.
‘심근경색이라고 했지? 일단 어디가 아픈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알려지지 않은 지병이 있을지도 모르지.’
명중환이 신우를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자네가 백신우로군. 일단 거기 앉지.”
신우는 덤덤히 걸어가 맞은편에 착석했다.
“무슨 일로 보자고 하셨습니까?”
“인사도 없이 바로 본론인가? 아, 말은 편하게 해도 괜찮겠지?”
“마음대로 하시죠. 그리고 서로 누군지를 아는데 굳이 친한 것처럼 인사까지 나눌 필요가 있을까요?”
까칠한 신우의 태도에도 명중환은 미간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나에 대해서 자네 어미에게 들었나 보군. 하면, 내가 자네의 외조부인데 인사가 더욱 필요한 관계가 아닌가?”
이에 신우의 미간이 살짝 씰룩였다.
“평생 모르고 살던 관계를 굳이 이제 와서 정립할 필요가 있을까요?”
“보기보다 고집이 상당하군.”
“필요에 따라서 부리는 편이죠.”
잔잔한 대화 속에서 날카로운 분위기가 교차했다.
그러다 명중환은 살짝 웃음이 흘러나왔다.
“후훗. 성격이 제 어미를 쏙 빼닮았어.”
“딱히 기분 좋은 말은 아니네요. 그래서 본론이 뭐죠? 제가 바빠서 하실 말씀이 없다면 돌아가볼까 하는데요.”
신우는 명중환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수많은 역경 속에서 MH그룹을 이뤄낸 만큼 무거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신우도 그 분위기에 밀리지 않았다.
“성미도 급한 편이군.”
“그건 상대에 따라 다르죠. 그런데 계속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빙빙 돌리실 건가요? 용건이 없다면 이만 일어나죠.”
“미안하네. 내 다른 손주들과는 너무 다른 반응이라 잠시 농을 부리고 싶었나 보네.”
“그래서 진짜 할 말은요?”
계속된 재촉에 명중환은 입꼬리를 길게 늘이며 말했다.
“나는 네 어미를 정식으로 입적시키려 한다.”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
“괜찮다면 나는 백신우 군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네. 물론 내 손자로서 말이야.”
“다른 가족이 납득하겠습니까? 하나도 아니고, 둘… 당연히 문제가 많을 텐데요.”
수락도 거절도 아닌 반문이 넘어오자 명중환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내린 결정이다. 물론 지금까지 가려졌던 진실로 인해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 희연이와 네가 감당할 일도 많겠지만 말이야.”
이에 신우는 차가워진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그러다 제가 MH그룹을 삼키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상당히 도발적인 대답이었다.
이에 명중환은 잠시 멈칫했다가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본의 아니게 백신우 군에 대해서 조사를 해봤어. 보육원 출신으로 전남 진도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초·중·고를 마친 후, 군 부사관으로 입대. 최근에 중사로 전역했더군.”
“제 능력이 부족할 거라는 말로 들리네요.”
“솔직히 특출나다고 보기는 어려울 거 같은데… 아닌가?”
대한민국 내에서 굴지의 기업이라 불리는 MH그룹 계승권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런 그룹의 명맥을 잇는 명중환의 자식들과 손주들은 어릴 때부터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게다가 명인철과 명성철은 그룹 내 중요직을 맡아 실세나 다름없었다.
누구라도 그런 위치의 인물들을 쉽게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다.
“회장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회장님 눈은 거기까지인 거겠죠.”
“내가 백신우 군을 잘못 보고 있다는 말인가?”
“회장이란 위치에 있으셔서 결정과 통보만 내리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물음이 많으신 분이셨나요.”
순간 명중환은 뭔가에 머리를 맞은 듯이 띵해졌다.
“내가 자네를 귀찮게 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군.”
“그리고 입적에 관해서는 딱히 관심 없습니다.”
“한국에 계속 있을 생각이라면 우리 MH그룹에 들어오는 건 어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신우는 그 말을 듣고서 멈췄다.
“MH그룹에 말입니까?”
“적당한 자리를 주겠네. 물론 네 어머니도 정식 입적 후 마땅한 자리에 앉게 될 것이고.”
“어머니라고 불릴 관계가 아닙니다.”
어떤 이유로든 23년, 회귀 전 인생까지 포함한다면 수십 년이었다.
그사이 명중환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일단 내 제안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자리를 주실 생각이죠?”
“군인 출신이라고 해서 바닥부터 올라갈 FM일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이러나저러나 결국 낙하산 아닙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높을수록 좋죠.”
“욕심이 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딱히요. 하실 말씀 다 끝나셨으면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신우는 그렇게 말하고서 밖으로 나갔다.
* * *
며칠 후.
평창동 명 씨 일가의 자택에는 명중환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가족이 모였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에 장남인 명인철이 마지막으로 들어와 앉은 명수연을 보고서 명중환에게 말했다.
“아버지. 다 왔습니다.”
“…아직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명인철은 가족들의 수를 다시 확인했지만 틀리지 않았다.
“예? 다… 온 거 같은데요.”
“하나 남았다.”
다들 웅성거렸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더니 임희연이 실내화로 갈아 신으며 들어왔다.
“저 왔습니다.”
그 순간 명중환의 막내딸인 명수연이 발끈하며 일어났다.
지금까지는 정식 가족 모임에 임희연이 참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네가 여길 왜 와!!”
“저는 회장님의 호출을 받고서 온 것뿐입니다.”
“아버지가……?”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던 가족들의 시선이 명중환에게 몰렸다.
“내가 부른 것이 맞으니 거기 앉아라.”
다들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임희연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서 구상호가 가져온 의자에 앉았다.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명중환은 그런 가족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많이 늦었지만… 희연이를 명 씨 일가의 사람으로 받아들일 거다.”
다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았다.
이에 가족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
“아버지!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님! 임희연 본부장을 인정하신다니요!”
“아버지―!”
명중환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칠 즈음에 말을 이어갔다.
“희연이는 내 핏줄이 아니냐? 배다른 형제라고 해서 너희와 피가 다르냐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희연이는 전략기획본부장으로서 그룹을 위해 열심히 힘써줬다. 그 노고를 치하하는 겸 내가 내린 결정이니 너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물론 전략기획본부도 다른 이름으로 정식 승격시킬 거다.”
명인철이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일이 바깥으로 알려지면 그룹 이미지만 나빠질 겁니다. 주가도 폭락하게 될 거고요!”
어떤 기업이든 오너 리스크를 무시할 수 없었다. 특히 혼외자에 대한 것은 대외적 이미지가 실추되기 쉬운 이슈이다 보니 웬만해서는 드러나서는 안 되었다.
물론 임희연의 존재도 그런 우려가 컸기에 지금까지 MH그룹의 그림자로 살도록 만들었다.
“타격이 아예 없을 수는 없겠지만, 완충 역할이 될 스토리는 이미 짜두었으니 걱정하지 마라.”
“…스토리라뇨?”
그때 명중환의 비서인 구상호가 서류를 들고서 나왔다.
“회장님께서 임희연 본부장의 친모인 임영주 씨를 만난 시기는 전 사모님께서 돌아가신 이후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회장님과 임영주 씨는 잠시 만났다가 헤어졌고, 당시 임신 중이었다는 것을 모르다가 뒤늦게 안 후에 거두었다는 걸로 발표할 겁니다.”
“하지만 혼외자라는 건 달라지지 않습니다. 주주들의 반발이 있을 거고요!”
“일단 회장님께서 곧바로 임 본부장을 입적시키려 했지만, 스스로 거부했다는 걸로 포커스가 맞춰질 예정입니다. 대신 그룹에서 거둔 후 지금까지 성공시킨 프로젝트와 함께 발표하면 문제를 최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언론 플레이로 대대적인 동정 여론을 형성시킨다는 계획이었다.
현재 설명한 대로 진행된다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었다. 물론 MH그룹은 그렇게 만들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졌다.
조용히 듣고 있던 명인철이 임희연을 쳐다봤다.
“임희연 본부장은 불쌍했던 인생이 그룹의 입맛대로 포장되는 것인데, 괜찮은 건가?”
멋대로 그녀의 인생을 폄하시키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임희연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말했다.
“저는 상관없어요.”
“하아…….”
이내 명중환은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가족들을 둘러보았다.
“일단 전략운영본부부터 그룹 본사의 지상층으로 옮기지. 본부장 직위는 그대로 희연이가 맡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희연이는 이번 실사에서 나온 MH전자 건에 대해서는 조용히 마무리해라. 인철이도 문제가 커지기 전에 옆에서 충분한 도움을 주고 말이야.”
“아, 아버지……!”
순간 명인철의 날카로운 눈빛이 임희연에게 꽂혔다.
동시에 명중환이 그런 명인철을 보며 따끔하게 말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겠지?”
“그건…….”
“이번 일은 희연이를 중심으로 잘 마무리 지어라. 그리고 네 아들 자리도 그룹 본사 전략운영본부에 하나 마련해두어라. 너무 낮지도 높지도 않게… 차장 직급에 직책은 실장이면 적당하겠구나.”
잠시 무거워지던 분위기는 그 발언으로 인해 폭풍이 되어 몰아쳤다.
임희연의 입적보다 더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들이라니요?!”
“임 본부장한테 아들이 있다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동시에 임희연의 얼굴이 처음으로 새하얗게 질렸다.
“회장님! 그 아이 이야기는……!”
그녀의 외침에도 명중환은 말을 이어갔다.
“얼마 전에 직접 만나봤다. 너를 닮았는지 나이에 비해 굉장히 당돌한 구석이 있더구나. 영락없이 명 씨 집안의 핏줄이라는 건지…….”
이미 만나본 것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임희연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회사 일에 관한 건 제가 다 책임진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나도 안다. 하지만 그 아이도 명 씨 집안의 핏줄을 이었지. 너를 들이는 과정에서 그 아이가 빠질 수도 없지 않으냐.”
“그래도……!”
“그 아이도 수락한 사항이다. 물론 아까 말한 자리가 그에 관한 대가 중 하나이기도 하지.”
“…….”
무거워진 명중환의 분위기에 다들 입을 열지 못했다.
“다들 그리 알고서 이만 파하자꾸나.”
명중환은 구상호와 함께 서재로 들어갔다.
그사이 가족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조용히 일어나던 임희연을 째려보았다.
이내 명인철이 임희연에게 다가섰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그러시죠.”
두 사람은 어둠이 찾아와 캄캄해진 마당으로 나갔다.
“아들이라… 너한테 아들? 하아…….”
“…그렇게 됐어요.”
“게다가 입적? 진짜 미친 거냐?”
“제가 바란 일이 아니라면 믿어주실 건가요?”
“그럼 회장님이 왜 저러시는데! 무슨 말로 회장님의 생각을 바꾼 거지? 설마 MH전자 쪽…….”
명인철은 하려던 말을 급히 멈췄다.
순간 자신의 무덤을 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하시려던 말씀이 회장님의 조건이란 걸 아시죠? 현재까지 찾아낸 비자금은 최소 2,000억. 조용히 마무리 지어야 하니 다음 달까지 원상 복구 해놓으세요. 조용히 MH전자 예비비 계좌에 넣어두셔도 좋고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분명 말씀드렸어요. 이후에는 호미로 막을 거 가래로도 막지 못할 수 있으니 각오하셔야 할 거예요.”
조곤조곤한 임희연의 말에 명인철은 주먹을 꽉 쥐며 떨었다.
“지금 나와 해보자는 건가?”
“페이퍼컴퍼니인 홍콩 블루원 인터내셔널과 수단 트러스트유통이란 회사에 자금을 옮겨두셨죠?”
철저하게 숨겼다고 생각했던 자금의 경로가 정확히 들통난 탓에 명인철은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
“회장님은 기회를 많이 주지 않으세요. 그러니 알아서 잘 생각하세요.”
대답과 함께 임희연은 밖으로 나갔다.
문 앞 차량에서 대기 중이던 송태훈이 얼굴을 내밀었다.
“다 끝나셨습니까?”
“신우네 집으로 가죠.”
두 사람은 곧장 차에 올라타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