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Mercenary is a Chaebol Heir RAW novel - Chapter (89)
전직용병 재벌서자-89화(89/305)
89화. 어긋난 방향
곽치영의 오른팔인 오한성은 중국 난밍구 구이양시를 방문했다.
목적지는 공항에서 서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도심. 크고 작은 건물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은 골목으로 들어서서 맨 안쪽의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낡은 건물로 들어섰다.
먼지가 가득한 계단을 밟고 올라가 ‘金凰堂(금황당)’이란 현판이 달린 문을 두드렸다.
“누구슈?”
안에서 나온 것은 수염이 덥수룩한 덩치 큰 사내였다.
“의뢰가 있어서 왔습니다.”
“무슨 의뢰?”
오한성은 조용히 말했다.
“無痕(무흔).”
그런 요청에 사내의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문을 열어주었다.
오한성이 안으로 들어가자 사무실 안쪽에 앉아 있던 빼빼 마른 체구의 긴 장발, 해골처럼 생긴 얼굴 위로 동그란 안경을 쓴 중년의 사내가 일어났다.
사내는 금황당의 사장이자 정보상인 고췐이었다.
“유령한테 의뢰하러 오셨다고?”
“긴급으로 가능합니까? 최대한 확실하고 빠르게 해야 할 듯싶습니다만.”
“대상은?”
오한성은 들고 있던 봉투를 내밀었다.
그 봉투는 중간에서 사내를 통해 고췐에게 넘어갔다. 곧장 내용물을 꺼내어 책상 뒤편에 있던 팩스기로 어딘가에 보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오한성은 그 모습을 보고 의아했다.
“그쪽은 확인하지 않는 겁니까? 의뢰에 대한 설명도 없고 말이죠.”
무려 살인 의뢰였다. 물론 오한성도 금황당에 대해 웬만큼 알고서 온 것이긴 했지만, 사장이 대상을 확인조차 안 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의뢰 승낙 권한은 전적으로 유령에게 있으니까.”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인가요?”
“지금까지 실패한 전적이 없으니 대단하긴 하지. 좀 까다롭긴 하지만. 아, 만약 승인이 떨어지면 중간에 의뢰 취소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지?”
오한성도 그 소문을 알고서 곽치영에게 추천했던 것이다. 게다가 중국 쪽 인물이니 곽치영의 계획에도 딱 들어맞았다.
“압니다. 근데 여기서도 유령의 정체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것이 맞습니까?”
“전혀. 그쪽에서 워낙 정체를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아서.”
“그런데도 신뢰가 생길 수 있는 겁니까?”
해결사가 변심해서 목표 대상에게 붙기라도 한다면 의뢰자나 그걸 중계한 쪽은 큰 타격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 바닥은 돈이 곧 신뢰이지. 게다가 유령은 중계 수수료가 센 편이라서 말이야. 어차피 성공하지 못해도 우리 쪽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으니 걱정할 필요도 없고.”
고췐은 그렇게 말하면서 방금 팩스로 보냈던 종이 서류에 불을 붙여서 철제 쓰레기통 안으로 넣어버렸다.
동시에 매캐한 연기가 지저분한 사무실 안으로 피어오르며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돌아가던 환풍기로 빨려 들어갔다.
“사무실에 비해 꽤나 철저한 시스템이네요. 근데 여기서 계속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아, 혹시 돈도 없이 온 건 아니지? 착수금이 있어야 하는데. 여긴 현금 거래만 가능해서 말이야.”
오한성이 방금 넘긴 봉투 외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던 탓이다.
“의뢰가 확정되면 돈을 들고 올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 액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오호? 일단 의뢰금은 유령 쪽에서 대상을 확인한 후 금액을 책정해서 승낙 여부와 함께 답변해올 거야.”
“의뢰를 승낙하는 기준이 있습니까?”
물론 오한성도 따로 알아보긴 했지만, 딱히 공통적인 교집합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물음에 고췐은 입을 삐죽거리고서 살짝 불만인 표정을 지었다.
“人?(인벌).”
“…유령이란 해결사가 제거 대상을 벌한다는 의미입니까?”
“괴상한 정의 의식을 가진 것인지… 대상에게 뚜렷한 죄가 없다면 움직이질 않아. 그거 때문에 우리도 골치가 아픈 편이고. 뭐 결과는 깔끔해서 좋긴 하지만.”
오한성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의뢰한 대상은 임희연. 그녀에게 무흔사신을 움직일 만한 사항이 없다면 다른 방법도 생각해봐야 했다.
“쓸데없는 정의감이겠군요.”
“이 바닥에서 그런 게 무슨 소용인 건지.”
띠이―
그때 팩스에서 알람이 울리더니 답신이 도착했다. 부하가 그런 팩스로 다가가 커다란 네 글자가 적힌 종이를 가져왔다.
【?對不可(절대불가)!】
동시에 고췐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종이는 테이블 위로 올려지며 오한성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거… 어렵게 됐네.”
“…제가 의뢰한 대상은 죄가 없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많은 사람이고 말입니다.”
고췐은 근엄해진 표정으로 종이를 흔들며 오한성을 쳐다봤다.
“이유 불문. 유령이 결정한 사항은 여기 적힌 것처럼 절대 번복 불가. 이만 돌아가보셔야겠네.”
“하지만…….”
“쓰읍―! 거기까지만 하지.”
인상까지 구긴 고췐의 반응에 오한성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오한성이 밖으로 나갔다.
그사이 고췐은 테이블에 올려났던 팩스 종이를 들어 보였다.
“이건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서 보낸 건지…….”
보통 거절하는 임무였다면 ‘불가’만 쓰여서 왔다. 그런데 지금 내용은 ‘절대불가’로, 확고한 의지가 담긴 내용이었다.
띠이―
그때 다시 팩스 소리가 울리더니 내용이 도착했다.
“뭐야?”
“…유령이 보낸 거 같습니다.”
“응? 이리 가져와봐.”
고췐은 이번에 전달된 내용을 보고 아까보다 표정이 더 심하게 구겨졌다.
“이 미친 새끼……!”
종이에 쓰여 있는 내용은…….
【退職(퇴직)】
지금의 일을 그만둔다는 의미였다.
* * *
며칠 후.
신우는 저녁에 되어가는 시간에 차를 타고서 이동 중이었다. 그리고 보조석에는 여느 때와 달리 매우 기본적인 정장 차림을 한 장만수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내 옷도 있는데 왜 굳이 따로 준비한 거야? 귀찮게. 어울리지도 않고.”
평소보다 수십 배나 되는 지극히 정상적인 차림이었다.
이에 운전 중이던 신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하는 게 너무 늦은 감도 있지만, 네 옷 취향… 악취미야.”
“응? 내 옷이 왜? 뭐가 어때서!”
신우는 진심으로 묻는 것인지 슬쩍 고개가 돌아갔다.
“릴리안이 맨날 왜 그러는 거 같은데?”
“내 패션 센스가 부러워서?”
“…중증이구만. 말기 중의 말기야.”
나름 진지하게 말해서 고쳐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는 듯했다.
‘진짜 릴리안한테 말해서 전부 불태워버리든가 해야지…….’
그러자 장만수는 더 귀찮아진 표정을 지었다.
“나까지 꼭 가야 하는 거야? 이럴 시간에 안테나부터 완성시키는 게 나을 거 같은데.”
“나도 가고 싶지 않거든? 그리고 안테나는 세부 부품 제조하는 데 시간 좀 걸린다며.”
“40주년이 뭐라고…….”
오늘 일정은 MH그룹 40주년 기념 파티였다.
그룹 내 주요 인사와 더불어 외부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초청되었다.
신우와 장만수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처음에는 참석을 거절하려 했지만…….
“어쩔 수 없잖아. MH퓨처시큐리티를 경영하는 데 있어서 기업적인 인맥도 필요하니까.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려놓을 필요도 있고.”
파티에는 국내 인사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참석했다. 그만큼 화제가 될 것이니 지난번 사고 기사 때보다 퍼져 나갈 것이다.
동시에 남은 동료들이 그걸 보고 찾아온다면 더욱 좋았다.
“진짜 이러다 연락망 구축하는 것보다 녀석들을 더 빨리 찾을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되면 좋긴 하지. 네가 고생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장만수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전부 릴리안 때문이야. 복잡하게 만들라고 주문만 하지 않았어도 진작 완성했을 텐데.”
“당시는 그거 덕분에 추적당한 적이 없잖아.”
“에혀.”
우우웅― 우우웅―
그때 신우의 핸드폰으로 야구자 위수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물론 번호는 이전에 넘겨주었던 대포폰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최근까지 회사 설립과 자금 투자까지 문제 없이 진행되던 중이다. 딱히 연락해올 만한 이슈가 없었기에 살짝 의아했다.
[다른 지역에서 접수된 정보 때문에 연락했다.]“정보?”
[내가 관리하는 업장을 통해서 당신 친모를 죽여달라는 의뢰가 접수됐었어.]순간 신우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동시에 장만수도 확인할 수 있도록 핸드폰을 거치대에 올리고서 스피커폰 모드로 바꾸었다.
“암살 의뢰가 접수됐던 게 언제지?”
[바로 어제 낮이야. 다만, 해결사가 의뢰를 거부하는 바람에 의뢰는 성립되지 않았어. 대신 그쪽에서도 다른 방법을 강구하겠지.]당장 의뢰인에 대해서 떠올릴 만한 곳은 TSF 중국 지사였다. 지난번 폐공장 사건으로 실패를 겪었으니 흔적이라도 깔끔하게 지우려는 속셈일지도 몰랐다.
“의뢰인에 대해서는?”
[우리 바닥에서 그런 걸 묻고서 하겠나. 돈만 받으면 처리해주는 걸. 물론 따로 파악도 해봤지만 당장 나온 것은 없었어. 대신 의뢰인의 모습이 CCTV에 찍힌 사진을 보내지.]곧바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렇게 전송된 사진은 보조석에서 장만수가 띄워주었다.
운전 중이던 신우는 그 사진을 보고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오한성. TSF Investment 한국 지사장의 비서이자 경호원이야.”
[TSF? 거기서 당신 친모를 왜 노리는 건데?]위수안은 폐공장 사건의 전말을 알지 못했다. 게다가 당장은 레이셩그룹의 비자금을 빼돌렸던 것만으로 벅찬 상태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근데 의뢰를 수락하지 않은 암살자는 누군데?”
[무흔사신이라는 놈이야. 우리 쪽에서는 유령이라고도 칭하기도 하지. 갑자기 이 바닥에 나타난 놈인데, 아직까지 정체가 파악되지 않고 있어.]“당신이 정체도 확인하지 않고서 사람을 쓴다고?”
야구자 위수안은 신우를 처음 만났을 때도 곧장 신원부터 확인했다.
그런데 사람을 죽이는 의뢰에 실행자의 신원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거긴 내가 직접 관리하는 곳이 아니야. 거기서도 유령이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만 보고 쓰는 것이겠고.]“그래서 의뢰를 받지 않은 이유는?”
[나나 거기서도 몰라. 전적으로 유령에게 선택권이 있는 거라더군. 유령이 설명해준 적도 없다고 하니까. 아무튼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야.]“알았어.”
[다른 사항이 있으면 또 알려주도록 하지.]신우는 통화가 끝난 것을 확인하고서 운전대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TSF 한국 지사장 곽치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의 계획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임희연의 죽음을 TSF 중국 지사 쪽으로 돌리려는 것. 처음에는 폐공장 사건과 연결한 후 신우에게 흔적을 던져주기 시작할 것이 분명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방금까지 신우도 암살이란 말만 듣고 TSF 중국 지사를 떠올렸으니까.
물론 곽치영은 신우가 폐공장 사건의 경위를 모른다는 전제하에 세운 계획일 것이다.
“곽치영이 날 제대로 잡고 싶어서 안달이 났나 보다.”
“어떻게 할 거야? 아주머니도 오늘 기념 파티에 참석하신다고 했잖아.”
임희연은 며칠 전에 중국에서 입었던 부상을 회복하고서 복귀했다. 당연히 본사 임원으로서 MH그룹 40주년 기념 파티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암살자를 보내놨다면 오늘이 기회일 거야.”
“그렇겠지. 번잡한 것만큼 좋은 기회는 없으니까.”
연회장은 사람으로 인해 복잡한 곳인 만큼 아무리 경비를 철저하게 갖춰도 뚫리기가 쉽다. 동시에 연회라는 상황으로 목표 또한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에 틈을 찾기도 수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