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Mercenary is a Chaebol Heir RAW novel - Chapter (97)
전직용병 재벌서자-97화(97/305)
97화. 비루해진 X새끼 (1)
회장실의 분위기는 탄식과 함께 서늘한 공기가 흘렀다.
그 속에서 애매하게 명성철의 편을 들어주던 명인철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유통 시스템? 그런 것까지 언제 준비해놓은 거지?’
물론 신우가 배성유통 인수에 찬성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명성철의 힘을 불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우는 이유를 떠나서 진짜 필요한 방책을 내놓았다.
그로 인해 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명중환이 신우를 보며 말했다.
“백신우 대표는 언제부터 그런 걸 준비했나?”
“배성물산이 흔들리던 시점입니다. 마침 리비오 소프트에서 그걸 준비해둔 상태였고요.”
“지금처럼 배성물산이 무너질 줄 알았다는 의미인가?”
대기업은 자체적인 경영 능력을 떠나 수많은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에 쉽게 망할 수 없다. 그걸 대비했다는 건 예견한 것이거나 도박에 걸었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로 빨리 무너질 줄은 몰랐습니다. 그걸 알았으면 제가 여기서 이러고 있지 않았겠죠. 누구처럼 배성물산의 지분부터 확보하는 걸로 쉽게 가려 하지 않았겠습니까?”
신우는 명성철에게 시선을 살짝 던졌다.
눈을 마주친 그는 방금 한 말이 자신의 상황을 가리킴을 알았다. 그러나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기에 입꼬리만 경련을 일으키듯 씰룩거렸다.
물론 명중환은 탄식만 하지 않고 문제점도 찾아냈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라고 하더라도 거기에 맞는 시설·장비와 운영 개편이 필요하지 않나. 그 과정에서 문제도 상당히 발생할 테고 말이야.”
“그건 배성유통을 가져와도 비슷할 겁니다. 게다가 인수 과정에서 노조의 움직임도 감수해야 할 것이고요.”
지금도 배성의 유통 계열사들은 각종 문제로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몇몇 센터 직원들의 파업까지 벌어졌다.
물론 예전부터 곪아 있던 일들이 함께 터진 탓도 있었다.
“꽤나 구체적이구나.”
“남의 집 일이지만 대비는 해놔야죠. 거기가 무너지면 주워 먹을 사람들로 인해 시장통이 될 게 뻔하잖아요.”
다른 이들도 대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명성철도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한 먹잇감으로서 준비했었다.
하지만 그 노력이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된 것이 문제였다.
“너는 주워 먹을 생각이 아니라 새로운 떡을 만든 것이겠지.”
“남이 먹던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허어, 그럼 새로운 유통 시스템의 도입은 언제부터 가능한 거냐?”
“빠를수록 좋겠죠. 다만 책임자분께서 쉽게 수긍하고 따라와주실지는 모르겠네요.”
신우는 다시 한번 명성철에게 시선을 던졌다.
다른 계열사들도 MH그룹 유통망을 사용하지만, 그중 MH리테일과 MH식품의 비중이 가장 크기 때문에 명성철이 전담하고 있었다.
당연히 시스템 적용에 관한 문제도 그와 결정해서 진행하는 것이 맞았다.
“KEDEX에서는 시험 중인 시스템을 확실히 적용할지가 관건이겠네요.”
뭐라도 태클을 걸어보려는 분위기.
신우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8면 주사위를 꺼내어 손으로 굴렸다.
잘그락―
“이미 계약을 마치고서 내년 초부터 KEDEX에서 운영하는 모든 센터의 시스템을 교체할 예정입니다.”
“아무리 백 대표가 리비오 소프트와 밀접한 관계라고 해도 그런 사항까지 알 수 있는 건가?”
대외적으로 새로운 유통 시스템을 개발한 것은 리비오 소프트였다. MH그룹이 그곳의 대주주 중 하나라고 해도 사업 내 사항까지 파악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아니까 아는 거죠. 참고로 지금 정보는 올해까지만 엠바고인 상태입니다. KEDEX 측에서도 내년 초에 시스템 개편 기사를 내보낼 것이고, 국내에서 KEDEX와 리비오 소프트로 접촉하는 유통·물류 회사들이 생겨나겠죠.”
눈 뜨고서 경쟁사에 뺏길지, 아니면 입 닥치고서 받아들일지 선택하라는 의미였다.
“크음―!”
지금 상황에서 명성철은 새 유통 시스템을 받아들이면 배성유통의 지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게다가 유통 시스템 사용에 대한 비용도 지불해야 하니 자금은 더 구멍이 날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이 벌어질 판이니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밥상은 다 차려드렸는데, 뭐가 문제인 겁니까?”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지 않나!”
신우는 순간 비릿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설마 MH리테일에서 시스템 사용료를 지불할 돈이 없어서 그러시는 건 아니겠죠?”
“…뭐? 지금 말 다 했냐?”
“아, 농담입니다. MH그룹 계열사 중 현금 유보율이 가장 높은 것이 MH리테일인데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명중환과 임희연이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명중환은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크음! 상황을 보니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결정이군. 명성철 사장은 백신우 대표를 통해서 시스템을 들이도록 하지.”
“회장님! 그 사항은 제가 알아서……!”
“뭘 알아서 하겠다는 거지? 밥상으로 모자라 떠 먹여주기까지 해야 하나?”
명성철은 아무런 말도 못 했다.
그 모습에 명중환은 혀를 차면서 자리를 파했다.
“희연이와 신우는 따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잠시 남아라.”
다른 이들은 잔뜩 착잡해진 표정으로 문을 나섰다.
자리를 당겨 앉은 임희연과 신우는 명중환의 말을 기다렸다.
“경찰 쪽에서 연락이 왔다. 희연이를 죽이려 했던 여자가 병원에서 누군가의 손에 죽었다고 하더구나.”
순간 임희연은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그 죽음의 의도가 입막음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 상황을 경찰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피의자가 죽었으니 당장은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되겠지.”
“그리고 아까 전 인천 쪽에서 그 여자의 동료로 의심되는 사람의 시신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대답과 함께 명중환은 밖에 나가 있던 구상호를 불러들였다.
구상호는 미리 준비해놓았던 서류를 임희연과 신우에게 나눠주었다. 그건 인천 쪽에서 발견된 시신에 대한 자료였다.
“CCTV에 잡혔던 웨이터로 위장한 사람이네요.”
무려 시신 사진이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제대로 못 보는 임희연과 달리 신우는 너무나 덤덤히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맞아. 신원을 파악 중이긴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하더구나.”
“파티장 보안 시스템의 해킹은 정황뿐이긴 하지만, 그걸 떠나서도 암살을 시도한 놈들입니다. 치밀한 만큼 추적이 쉬울 수 없겠죠.”
“일단 구 비서도 정보력을 동원해서 알아보는 중이다.”
국정원 출신인 구상호라면 삼흉의 신원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신우는 의문을 가지고서 되물었다.
“찾아내서 어쩌시게요?”
“어쩌긴. 자신들이 누굴 건드렸는지 톡톡히 알려줘야지.”
너무도 낯선 모습 탓에 신우는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가능할 것 같으십니까?”
“못 할 것 같으냐?”
“회장님 몸조리나 잘하시죠. 괜한 걱정에 뒷목 잡으실 수도 있으니까요. 건강검진은 주기적으로 받으시나요?”
갑자기 건강 이야기로 넘어가니 명중환은 의아한 표정이 지어졌다.
“얼마 전에도 받았지. 그래도 내 나이 때 다른 늙은이들보다는 제법 건강한 편이란다. 주치의도 괜찮다고 했고.”
손자가 할아버지 걱정을 해주는 것처럼 느낀 것 같았다.
하지만 신우의 의도는 그것과 달랐다.
“한상병원 한영훈 원장님이 주치의셨죠?”
“그렇…….”
자연스럽게 대답을 이어가려던 명중환의 말이 멈추었다.
병원이라면 모를까. 정확히 누가 진짜 주치의인지는 명중환의 위치 때문에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가 한 원장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저만 알고 있는 것도 아닐걸요. 물론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는 것도 알지만, 때로는 한 번씩 확인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신우는 그 말을 끝으로 회장실을 빠져나갔다.
어안이 벙벙해진 명중환은 임희연과 심각해진 표정으로 눈을 마주쳤다.
“방금 신우가 한 말… 무슨 의미라고 생각하나?”
임희연은 이미 신우의 저력을 몸소 체험했다. 당연히 신우가 방금 한 말이 허투루 던져진 것이 아니라는 것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한상병원을 한번 확인해보심이 좋지 않을까 싶어요.”
“흐음… 구 비서. 한영훈 원장이 검진한 내 기록에 대해서 조용히 알아볼 수 있겠나?”
“회장님 기록은 한 원장이 직접 관리해서 어려움이 많습니다. 대신 조금 우회하는 방법이라면 가능할 듯도 합니다.”
명중환이 대놓고 요청한다면 원하는 검진 기록을 받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구상호는 정면 돌파가 아닌 검진 기록을 확보할 수 있을 다른 인물의 매수를 논한 것이다.
“최대한 빨리 부탁하지.”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구상호는 대답과 함께 바깥으로 나갔다.
그사이 명중환은 침음을 흘리며 임희연과 눈을 마주쳤다.
“희연이 너는 신우를 꽤나 신뢰하는가 보구나.”
신우가 MH그룹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부터 걱정만이 앞섰다. 그러다 벌어지는 일마다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신우의 말을 믿지 않으면 큰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역시…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나 보구나.”
명중환도 신우가 위험한 특수부대에서 군 복무한 것까지는 알아냈다. 물론 그 외에 심상치 않은 일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방금도 신우는 명중환에게 한상병원에 대한 경고를 던졌으니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도 설명드리기 어렵네요. 생각할 일이 많아 복잡하기도 하고요.”
“널 노리던 여자까지 병원에서 죽었으니 꽤나 뒤숭숭하겠어.”
“…솔직히 좋지는 못하네요.”
“상담은 어떻고?”
“그것도 쉽지는 않아요.”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입원한 후부터 정신과 상담을 받았었다.
진단명은 PTSD. 소위 말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폐공장에서 험한 일을 겪었던 원인이 컸다.
그로 인해 침대에 누워서도 불을 끄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하거나 조그만 소리에 깜짝 놀라 자택 경호 상황을 확인하기 일쑤였다.
“일하기 어렵다면 당분간 쉬어도 된다.”
순간 임희연은 명중환이 낯설게 느껴졌다. 물론 지금만이 아니라 신우를 MH그룹에 들이고서부터 간간이 보았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MH그룹의 충견으로 살아온 습관 탓에 그러려니 넘겼었다.
“…괜찮아요. 회사에서 제가 할 일이 많아 그럴 수 없기도 하고요.”
지금 임희연은 MH그룹 본사 상무이면서 총괄감사본부를 담당했다. 그걸로 명중환에게 지시를 받아 본사와 전 계열사를 감사 중이었다.
규모가 워낙 어마어마한 데다가 본사 상무로서의 업무도 별개로 있다 보니 조금도 쉬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네 몸부터 생각해야 하지 않겠냐.”
“정말로… 괜찮아요. 저도 이만 일어나볼게요.”
임희연은 찜찜해진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면서 회장실을 나섰다.
혼자 남게 된 명중환은 아까보다 깊어진 한숨을 흘리더니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가다가 걸음을 멈췄다. 왼쪽에 걸린 그림을 옆으로 밀자 금고가 하나 나왔다.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누르니 중요한 서류들과 주먹 크기만 한 상자가 여러 개 쌓여 있었다. 그는 그중 한 상자의 뚜껑을 조심스레 열었다.
안에는 낡은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세월로 인해 빛깔이 얼마나 바란 것인지 그 안에 찍힌 두 남녀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후…….”
사진 속의 사람은 젊은 시절의 명중환과 임희연의 친모인 임명주였다.
명중환은 사진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