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10)
이번에도 몽주는 침묵을 지켰고, 재상이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였다.
“아뇨, 전 그것이 수백 년의 차이만큼 단절되었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 수백 년만큼 원래 쌓이고 만들어져, 보급되고 사용된 수많은 과학적 지식과 문명의 이기들이 사라진 만큼, 딱 그만큼 현대인은 오히려 바보라는 겁니다. 당대인들에겐 아주 기본적인 상식조차도 현대인은 모를 테니까요. 간단히 생각해 보죠. 우리는 머리를 감을 때 샴푸를 씁니다. 세안용 비누를 쓸 수도 있지만, 샴푸를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샴푸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죠. 샴푸를 쓰던 현대인이 과거로 간다면? 샴푸 없죠. 물론, 비누도 없습니다. 그럼 대체 뭘로 머리를 감죠? 사실 샴푸나 비누 용도로 쓰는 게 있다는 건 알고 있죠. 창포라는 말 정도는 들어 봤을 테니. 하지만, 창포가 뭐죠? 어떻게 생긴 거죠? 설령 구한다고 한들 어떻게 써야 머리를 감을 수 있죠?”
몽주는 계속 이어지는 재상의 질문 세례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지만, 일단 자신이 먼저 그의 답을 듣자고 한 것이었기에 꾹 참았다.
“물론, 이런 건 큰 문제가 아닙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물어서 잠깐 이상한 시선 한 번 받는 걸 감수하고 알아내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그 현대인이 나는 비누를 만들어 쓰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칩시다. 심지어 그 현대인은 비누를 만드는 법까지 알고 있다고 칩시다. 자, 세안용 비누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산화 나트륨이 필요하고, 수산화 나트륨을 얻으려면 소금물을 전기 분해……. 벌써 딱 막히네요. 비누를 만들기 위해 전기 분해를 할 수 있는 도구도 만들까요? 그럼 발전기를 만들어야겠군요. 발전기…… 음, 일단 영구 자석이 필요하겠네요. 영구 자석은 또 어떻게 만들죠?”
“잠시만요.”
결국 몽주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재상의 말을 막으려 했지만, 그는 이상하게 열기를 뿜으며 내친 발언의 기세를 멈추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말을 하면서 틈틈이 시간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 자리에 그리 오래 있을 수 없음이 분명했는데도 말을 이었다.
“아뇨. 더 들으세요. 이것도 생각해 보죠. 뭐, 어떻게 해서든 그 시대에 없는, 정말 쓸 만한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 냈다고 합시다. 심지어 적절하게 많은 양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치죠. 이제 그걸 팔면 큰돈을 벌겠군요? 그래서 지금의 재벌 총수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돈을 벌어서 나라를 아예 사버리면 되겠군요? 천만에요. 남는 결과는 셋 중 하나입니다. 다른 하위 호환되는 대체품 때문에 생산가 이하로 팔수밖에 없어 망하거나, 다행히 잘 팔리지만 누군가에게 생긴 부작용으로 고발당해 매질을 당하거나, 그런 것도 없이 순탄히 잘 팔리더라도 그에 눈독을 들인 권력에게 트집 잡히고, 붙잡혀서 기술을 토해 내야겠죠. 아니면 노예가 되어 평생 그것만 만들면서 살거나.”
“…….”
왜 자신이 야단맞는 학생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건지 몽주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재상이 하는 말의 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사이 재상은 흥분한 기색을 지우고, 흐트러진 넥타이를 단정하게 하면서 다시 말문을 열었다.
“너무 흥분했군요. 제가 좀 논쟁형 다혈질이라서. 이 성격 좀 고쳐야 하는데……. 후우, 짧게 마무리를 하자면, 현대인의 지식이나 사고방식이 과거의 것에 비해 대단하고 발전됐다고 평가하는 건, 그 시간의 차이만큼 쌓인 지식과 사회의 체계가 전제된 뒤에야 이루어질 수 있는 명제라는 겁니다. 그리고 설령 그런 지식 네트워크나, 사회 체제가 뒷받침되지 않아도 만들 수 있는 게 있더라도, 전근대 사회에서는 그 시대 속 권력의 논리, 지배의 논리에 따라 그것들을 다루려 할 겁니다. 그건 현대인이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분야죠. 현대인들 중 가장 옛날 사람 같은 인물도 몇 백 년 전에 데려다 놓으면, 당장 역적이나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어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급진적인 인물일 테니까요.”
말을 마친 현재상은 남아 있던 케이크과 커피를 연거푸 입에 털어 넣고 급하게 씹어 삼켰다.
“왜 굳이 절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들으려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덕분에 저녁은 때웠군요. 시간이 더 있으면 몇 마디 더 해 줄 수도 있겠는데, 안타깝게도 회사에서 호출이 왔네요. 이건 뭐, 사원이 아니라 노비라고 부르든지……. 늦은 저녁 먹게 1시간만 나갔다 오겠다는 것도 못 참고 그새 호출이니, 에휴.”
투덜대며 일어난 재상은 곧바로 문을 박차고 나갈 듯 급하게 움직였다.
몽주는 그제야 그를 불러 멈추게 하였다.
“저기, 나중에 또 뵐 수 있을까요?”
“왜요? 설마 지금껏 우리가 한 이야기를 이어서 하자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허허, 이봐요, 몽주 씨. 아니, 몽주 학생. 대체 왜 그런 데 관심을 가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딱 봐도 마냥 시간 허비해도 될 법한 팔자는 아닌 것 같은데, 좀 더 현실적인 데 정신을 쓰지그래? 내가 동생 같아서 하는 말이니, 기분 나빠하진 말고.”
“그래도……!”
몽주가 한 번 더 고집을 부리자, 재상은 좀 진지한 표정으로 빠르게 말했다.
“상담료를 주면 고민해 보지.”
“얼마나요?”
“내가 직장을 관둬도 될 만큼!”
“…….”
재상은 카페 문을 박차고 나가기 직전에 큰 소리로 대꾸하며 사라졌다.
덕분에 그가 지른 큰 소리에 대한 다른 손님들의 사나운 시선은 온전히 몽주가 감당해야 했다.
“쩝.”
몽주는 바닥에 얼마 남지 않았던 식은 아메리카노를 마저 들이켠 뒤 입맛을 다셨다.
딱히 아메리카노가 아쉬워서 다신 입맛은 아니었다. 현재상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이 그의 입을 쓰게 만들고 있었다.
만약 그가 한 말에 동의하면, 몽주가 그동안 상상하고 계획했던 일들은 다 망한 것이었다.
재상이 자평했듯 논쟁형 다혈질? 아무튼 그런 이상한 성격이라, 그에게 상황이나 목표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였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재상의 대답은 마찬가지였으리라.
물론 그가 틀렸을 수도 있겠지만, 이미 꿈속에서 신돈에게 당한 걸 떠올리면, 그가 틀렸다고 애써 생각해 봐야 자신의 손해일 뿐이었다.
“근데 직장을 관둘 만큼 돈을 달라고? 쳇.”
다시는 자길 부르지 말라는 소리였다.
사실 이미 그에게 들을 만한 대략적인 이야기들은 다 들은 셈이었기에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다만, 꿈속 삶 내에서 어떤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되었을 때, 조언을 구할 만한 인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현재상이라면 자신이 못 보는 다른 면을 살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 * *
“지금 들어가고 있습니다!”
재상은 최선의 노력으로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으며 핸드폰 건너편의 상사에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금방 간다니까, 전화까지 하고 지랄이야. 신호등은 또 왜 이렇게 길어?”
횡단보도 앞에 서서, 짜증이 솟구치는 걸 투덜거림으로 푼 재상은 문득 몸을 돌려 조금 전까지 그가 있었던 카페 쪽을 바라보았다.
어둠을 밝히는 수많은 네온사인 간판들 사이에 그 카페의 간판도 얼핏 보였다.
“그 책을 읽은 사람이 있긴 있었군.”
그의 중얼거림에는 미련이 묻어 있었다.
글을 쓰며 살고 싶었던 그는 몇 년의 노력 끝에 자신의 글이 팔리지 않는다는 걸 인정했고, 취직 준비를 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지금 다니는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나, 살면서 가끔, 아니 사실 가끔이라기보다는 좀 자주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미련이 울컥 솟곤 했다.
‘이계생존법’이라는 웃기는 제목의 책에서 그가 쓴 부분은 글쓰기를 포기하기 전 마지막으로 쓴 것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미 포기하기로 했는데, 영어 학원 등록비가 모자라던 참에 원고 요청이 들어와서 옳거니 하며 얼른 받아서 후딱 써 버린 것이었다.
그런 글이라도 누군가 읽어 주었다는 사실에 재상은 은근히 기뻤고, 그 기쁨이 얼마간 잊고 있었던 글쓰기에 대한 미련을 다시금 심중에 떠올리게 만들었다.
“힘들지……. 그 사람이 날 고용하는 것만큼이나.”
카페를 나서기 전에 소리친 그의 대답.
즉, 직장을 관둬도 될 만큼 돈을 주면 계속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한 것은, 다시 부르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진심이기도 했다.
그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제정신이 아니어서 정말 큰돈을 준다면, 대충 대화에 응해 주고 남은 시간에 글을 써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정말 그게 되리라 기대하는 건 아니었다.
마음속 미련을 억누르고 포기하기 위한 일종의 변명거리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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