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104)
거래 시발(去來 始發)
쿵쾅쾅쾅!
찰랑찰랑!
노령의 고수(鼓手)들이 북과 징을 치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세 명의 무당들이 쇠로 만든 가위와 방울을 흔들며 춤을 췄다.
춤을 추는 무당들이 눈깔을 뒤집곤 무어라 연신 소리치고 노래하는데, 몽주로서는 알아들을 길이 없었다.
단지 제주 사투리 탓만은 아니었으니, 신이 들린 양 마구 방언(方言)을 내뱉고 있는 중인 것이었다.
몽주는 행재청 마루에 앉아, 앞마당 격인 넓은 마당에 탐라현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에서 무당들이 노는 꼴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두무악(頭無岳)을 바라보았다.
두무악은 오늘날의 한라산이었다. 화산의 생김새 상 꼭대기가 파여 마치 머리가 없는 듯하니, 머리 없는 산이라는 의미로 불리고 있었다.
그 한라산의 꼭대기에서 재밌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라산의 정상을 꼭짓점으로 하여 남쪽 하늘에 구름으로 된 여러 개의 소용돌이 모양이 연달아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현대에서 카르만 볼텍스(Voltex : 소용돌이)라 불리는 기상 현상인데, 제주도는 카르만 볼텍스가 곧잘, 그리고 정기적으로 일어나는 곳으로 유명했다.
물리적으로 얼마든지 설명이 가능한 그 기상 현상은 고려 당대의 시선으로는 그야말로 이적(異蹟)이었으니, 그로 인해 지금 세 무당들이 한창 축원을 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축원을 올리는 이유는 여장군(女將軍)인 두무악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정상이 움푹 파였다는 이유로 한라산은 여성이 되어 버렸는데, 제주 백성들은 카르만 볼텍스를 여장군이 대장군을 원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즉, 한라산이 발정 났다는 뜻이므로, 노처녀가 히스테리를 부리기 전에 달래야 한다며 굿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몽주는 그럴 수도 있지 했다가 사내가 필요하다고 하여 소스라쳤었다.
한라산에 사내를 바친다는 말인 줄 즉, 인신공양(人身供養)이라도 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하나, 알고 보니, 장군감 사내를 한라산에 올려 보내 하룻밤 자고 오게 한다 하여 안도하였다. 한데, 지금 굿을 하는 세 무당들이 몽주에게 현백이 제주 사내들 중 으뜸이니 직접 가야 한다고 주장해서 참 곤란스러웠다.
물론 몽주는 가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 행재청에 앉아 굿을 보고 있을 수 있었다. 이제 경칩에 이른 것에 불과한 때 한라산을 오르는 건 몽주로서는 무리한 도전이기 때문이었다.
대신 탁가 무인들 중 무예는 아니지만, 체구만큼은 가장 건장한 자를 택해서 보냈다.
무당들은 몹시 불만스러워하였고, 감히 그러다 여장군의 화를 당할 거라며 저주에 가까운 말을 내뱉기도 했다.
그런 미신과 저주야 무시하면 그만이긴 했는데, 문제는 그 무당들이 축원의 굿을 한 후에 여장군 두무악이 만족(?)했는지를 판가름한다는 점이었다.
전근대 사회에서 그런 무속적인 선언이 민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짐작하고 있는 몽주로서는 다소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우아아!”
문득 행재청 앞마당에 모인 백성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졌다.
직후에 양가 가주 양치승이 급하게 달려와 보고하니, 무당들이 모두 여장군께서 크게 만족하셨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현백께서 제주에 임하시니, 좋은 일만이 가득할 따름입니다. 여장군께서도 현백의 마음씀씀이에 탄복하셨으니, 올해도 어선은 만선이요, 목장에 말이 가득할 것입니다.”
그가 교언영색(巧言令色)하며 자신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하는 것을 보며 몽주는 속으로 고소를 지었다.
‘운을 말하든, 액을 말하든 너희들 맘대로 하라. 대신 그 대가는 확실히 치를 것이다.’
몽주가 밤에 무당들을 불러 그리 말했으니, 눈치가 없는 자라고 해도 그것이 협박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혹여, 신을 모시는 자들이라 자존심을 세우면 어쩌나 싶었지만, 역시나 상과 벌 중에서 선택할 건 뻔한 것이었다.
“밤을 틈타, 무당들에게 양곡 몇 석씩 보내 주게.”
몽주가 탁기에게 귓속말로 명하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몽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백성들에게로 다가갔고, 백성들의 환호에 화답하며 그들과 좋은 말을 섞어 어울렸다.
동시에 한쪽에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던 앵도가 가복들을 부려, 큰 가마솥 몇 개를 대령했으니, 뽀얀 김과 함께 열린 솥 안에는 삶은 고기가 가득했다.
“천세, 천세, 천천세!”
그걸 본 백성들이 좋다고 난리였고, 앵도가 가복들을 다시 부려 자리를 깔고 상을 펼쳐 백성들에게 편히 앉게 하고, 고기를 나눠 주었다.
이어, 고씨와 문씨 일가에서 내온 술동이들도 대령하여 백성들에게 한두 사발씩 나눠 주니 분위기가 한층 좋아졌다.
“마음껏 드시오!”
몽주가 호령하자, 백성들이 저마다 현백의 너그러움에 감사하는 말을 던지고는 열심히 먹기 시작하였다.
“다른 현에도 고기를 보냈는가?”
“물론입죠.”
부가 가주 부삭섭이 얼른 대답하니, 그에게 시켜 탐라현 외 다른 현에도 고기를 보내게 하였던 것이다.
“한데, 마육을 너무 많이 잡으신 것은 아닌지요?”
그건 고실개의 걱정스러운 물음이었다.
백성들에게 나눠 준 고기들은 마육(馬肉) 즉, 말고기였다.
제주에서 말고기는 생선을 빼면 그나마 백성들이 맛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고기였다.
물론 그것도 쉽게 구할 수는 없는 것이었으니, 주로 죽거나 다친 말을 도축하여 나오는 고기가 전부라, 그 양이 많지 않은 탓이었다.
하나, 이번에는 다치지도 않은 말들을 많이 도축하게 하였고, 고실개는 그것을 우려한 것이었다.
“늙은 데다가 씨가 좋지도 않은 수말들을 살려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도 당장 내년이면 오백 필의 말을 보내야 하지 않습니까.”
“오백 필이야 당장이라도 올려 보낼 수 있지 않은가.”
“하나, 그리하면 그다음 해부터는 크게 곤란하실 것입니다.”
고실개가 현백이 말에 무지한 것을 걱정하며 말하니, 몽주도 그의 걱정이 일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목호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튼튼한 말 이천여 필이 죽거나 폐사되어 버리는 바람에 지금 제주에 말은 채 1천 필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중 태반이 1살 이하의 망아지인 탓에 관리와 조율을 잘하지 못한다면, 고려에 보낼 공물을 제대로 맞추지 못할 수 있었다.
고려가 요구하는 말은 모두 성체였으니, 겉보기라도 컸다 싶으려면, 최소 만 2년 이상을 성장한 말이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또, 씨말과 암말들은 따로 남겨 줘야 하는 점도 감안한다면 더욱 빡빡한 상황이었다.
고려에 바치는 말을 대충 맞추거나 모자라게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고려 도당의 심기를 거슬릴 때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 말들 중 많은 말들이 전마(戰馬)가 되어 왜구들과 싸울 때 쓰일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고려의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괜찮은 말들을 보내고 싶은 것이 몽주의 마음이었다.
“다 생각이 있으니, 너무 걱정 마시오.”
몽주가 고실개의 우려를 일축하기 무섭게 문득 익숙하고, 우렁찬 목소리가 먼 곳부터 들려왔다.
잔치가 열렸으면 내게 알려야지 하는 호통과 함께 백성들과 순식간에 어울리고는 고기 몇 점과 더불어 술도 한 사발 들이켠 그 사람은 화극이었다.
그는 어느새 제주말도 약간 익혔는지 백성들과 말을 나누는 소리 중에는 몽주가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도 섞여 있었다.
몽주가 실소하며 화극이 하는 꼴을 보고 있자, 화극도 몽주의 시선을 느낀 듯 어울리던 백성들과 서둘러 헤어지고는 몽주에게로 달려왔다.
“조카사위!”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 온 화극의 표정은 아주 밝았고, 그 덕에 대충 무슨 일 때문에 온 것인지 몽주는 짐작할 수 있었다.
“드디어 쓸 만한 것이 만들어졌네!”
스스럼없는 말투로 현백에게 말을 건네는 화극을 향해 제주 사성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몽주 앞에 그가 가져온 작은 상자를 열어 보였다.
“오호…….”
상자 안을 본 몽주가 기꺼워하며 상자 안에 손을 넣었다 빼니, 기다리고 있던 물건이 그의 손에 쥐여 있었다.
“드디어 백묵이 완성되었군요.”
* * *
어제까지만 해도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더니,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로 변해 있었다.
춘분에 이른 시기에, 몽주는 홍로현에 새로 넓힌 포구에서 선적 상황을 보고 있었다.
20여 척의 대소선이 포구와 그 주변에 정박해 있었고 가복들이 선적하느라 바쁘게 움직였으나, 실을 짐은 아주 많진 않았다.
비노와 선로, 그리고 백묵(白墨)과 묵판(墨板)이 전부로, 배 네 척에도 충분히 실을 만한 양에 불과했다.
특히 백묵과 묵판, 즉 분필과 칠판은 그야말로 견본 수준의 양에 불과했으니, 분필은 성인 손가락만 한 크기로 20개들이 100곽, 묵판은 가로 50세미(센티미터), 세로 30세미짜리로 100장에 불과했다.
하나, 하려고만 한다면 분필은 지금도 하루에도 수천 개는 족히 만들 수 있었다.
현대에 돌아가서 몽주가 가장 먼저 분필을 만드는 법을 찾아보았다가 무릎을 치며 좋아라 하였는데, 그건 분필을 만들기가 쉬웠고, 재료도 이미 얻은 것이나 진배없었기 때문이다. 현대에서 굳이 시험 생산해 볼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분필의 주성분이 탄산칼슘이니, 이는 생석회나 마찬가지였고, 그건 곧 패사로 쉽게 만들 수 있다.
하여, 제주로 돌아와 곧바로 시험 생산해 보니, 이내 제작법을 완성할 수 있었다.
패사의 가루를 태워 생석회를 만들고, 그걸 종이죽(종이풀)과 섞어 거푸집에 넣고 굳히면 그만인 것이었다.
물론, 원리를 안다고 해서 곧바로 제품으로 완성시킬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현대에서는 탄산칼슘에 접착제를 섞지만, 여기선 대신 종이죽을 섞다 보니, 혼합에 적당한 비율을 알아야 했고, 거푸집에 넣고 굳히는 과정에서 거푸집과 붙어 버리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한 끝에 거푸집 틀에 콩기름을 발라 굳히면 된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도 필요했던 것이다.
콩기름은 일종의 코팅제 역할도 하여, 손으로 백묵을 짚을 때 가루가 쉬이 묻지 않게 하는 역할도 하였다.
다만, 대신 기름기가 조금 손에 묻는 터라, 백묵에 종이를 발라야 하는 단점도 있었지만, 그거야 어차피 ‘고급화 포장’을 위해서 하려 했던 일이라 상관없었다.
몽주는 그렇게 완성된 백문이 든 상자가 배에 실리는 것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비단 백묵에 대한 기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만으로 기뻐하기에는 스스로도 백묵이 그리 큰 가치의 상품은 아닐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보다는 고려왕이 교지를 내려 그를 제주 현백에 임한 뒤로 현대에도 갔다가 다시 제주에서 한 달 이상을 보냈으니, 이제야 그의 치하에서 제주가 다소 미비하긴 하나,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싶었기 때문이다.
행재청이야 이미 완공되었고, 그사이에 홍로현에서 사택을 짓기 시작했으니, 그가 서 있는 포구 뒤쪽 멀리 낮은 언덕 위에 그 공사 현장이 보이고 있었다.
물론, 행재청과는 다른 형태의 현장이었다.
패사 가루와 점토를 섞은 뒤 구워서 만든 시멘트를 이용하여 만든 콘크리트로 짓기 때문이었다.
먼저 창고부터 짓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처음 콘크리트를 이용하는 터라,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어 사람이 사는 집보다는 창고부터 지어 연습을 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몽주가 현대에서 건축 거푸집을 만드는 방법을 대략적으로 배우고, 그걸 고려의 수준에 맞춰서 알린 덕에 처음이라도 그나마 아주 못 쓸 건물이 나오진 않을 듯했다.
창고를 만들고 나면, 목호 일족들이 살 집을 지을 예정이었고, 점점 손이 익으면 본격적으로 사택의 건물들을 올릴 생각이었다.
몽주는 창고를 짓는 현장을 지켜보다가 시선을 조금 내려 또 다른 건물을 살폈다.
사택이 들어설 낮은 언덕 곁에는 서천(西川)이라 불리는 작은 강이 흘러가는데, 그 맞은편 강가에 건물이 하나 놓였으니, 그 건물은 바로 물레방앗간이었다.
작은 수차(水車)를 시험 제작해 본 화극이 제대로 설계하여 도전해 본 것으로, 기대 이상의 효율을 보여 주었다.
애초에 제대로 작동하리라 기대하지 않은 덕이긴 했지만, 그래도 제주의 환경상 짧은 강의 유속이 제법 세서, 수차를 충분히 돌려 주었고, 그 힘으로 축을 돌려 방아를 찧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분필을 만드는 데에 쓰일 패사 가루는 그 방아로 찧어 만드는 중이었다.
아직 목재로 끼워 맞춘 것에 불과한 큰 치차(齒車)와 작은 치차가 제대로 맞아 떨어지지 않아 마모되는 속도가 빠른 편이긴 했지만, 나중에 강철로 만들어 차차 개선하면 나아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실 그 두 장면만 봐도, 제주가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동물과 사람의 힘 외에 자연의 힘을 이용하여, 유치한 수준일지언정 기계를 이용하기 시작하고 있었고, 시멘트를 이용하여,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조만간 보다 빠르고, 보다 튼튼하며, 보다 큰 건물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가 시너지를 일으키면 작업장 수준을 넘어서는, 현대에서 쓰이는 개념의 공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었다.
본격적인 의미의 현대식 공장은 화석 연료 기반의 동력 기관이 등장해야 나오겠지만, 시작점이라는 의미에서는 충분히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수차가 쓰이고 있는 곳은 또 있었다.
시선을 우측으로 돌리면 서천과 거의 나란히 흐르는 동천(東川)이 있는데, 그 강의 상류 쪽에 쌀오름이라 부르는 기생 화산이 있고, 그곳 기슭에 새로 목마장을 지었다.
바로 그 목마장에 필요한 물을 동천에서 퍼 올리는 데 수차를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양수(揚水)용 수차였다.
지금은, 동력이 없는 수차인 터라 사람이 수차 위에 올라가서 발로 밟아 돌려야 하지만, 조만간 풍차를 만들 수 있게 되면 풍차와 연결시켜 자동으로 수로로 물을 길어 올릴 수 있게 할 참이었다.
수차와 분필, 그리고 시멘트를 만드는 데 일등 공신은 물론 몽주 본인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화극이 애를 많이 썼다.
현대에서의 노력을 제외하면, 아마도 화극이 팔 할쯤 이바지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는 전직 무관이었던 흔적을 찾아볼 길이 없는 화극이 또 하나 공을 들인 것이 있었으니, 바로 선박용 폭죽노였다.
몽주가 몸을 돌려 바다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포구에 조금 떨어진 곳에 대선(大船) 8척이 나란히 정박해 있었는데, 고려에서 몽주가 검모포에서 만들고 제주에 남은 50척 중 대선 일체가 그 8척이었다.
그 대선의 외돛 앞뒤로 보면 새로 축대 두 개가 놓여 있었으니, 바로 그곳에 폭죽노를 놓고, 마치 전함의 함포처럼 사방으로 돌려 쏠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물론, 명중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대선이라고 해 봐야 길이 20미(미터)에 불과하고, 평저선이라 물결에 요동이 심하여 조준이라는 행위 자체가 그다지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대선을 끄는 선원들은 제주 어민 출신 장정들 일부에 몽주가 제주에 장착시킨 900여의 사병들로, 아직 숙련되었다고 볼 수 없었으니, 더욱 폭죽노의 성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제주에 데려온 사병들 중 90퍼센트가 제주에 남았는데, 몽주는 그들 모두를 수군으로 전환시키고 있었다.
어차피 이제 싸움이 난다면 기본적으로 바다를 끼고 싸워야 하기 때문이었는데, 풍랑에 익숙하게 만들고, 동시에 당장 해전에서 유용할 만한 무기인 궁술을 익히게 하면서, 선원으로서의 기본적인 기술도 숙지하게 해야 했으므로, 이제 한 달 정도 된 훈련 기간이 너무나도 짧았다.
할 수만 있다면 더 시간을 투자하여 사병들을 좀 더 뱃사람으로 변신시킨 후에 바다로 나가야 마땅하겠지만, 몽주는 고려에 들를 필요가 있었다.
“여기 있었구먼!”
화극이 수레를 끄는 사병들과 더불어 포구로 나오며 몽주를 향해 아는 척을 하였다.
앵도도 강영이를 안은 채 함께 오고 있었는데, 지금은 답호 차림이 아닌 평범한 부인의 차림이었다.
“꼭 절 떼어 놓으셔야 되겠습니까?”
“어차피 고려에 오래 머물 수가 없으니, 금방 돌아올 것이오. 두 사람 모두 떠나 있으면 강영이가 너무 외롭지 않소?”
“보모도 있고, 시부모님도 계시는데, 강영이 걱정이 왜 그리 많으세요?”
“아기지 않소? 어이쿠, 강영아. 네 어미는 널 너무 일찍 홀로 크게 하려는 모양이구나.”
몽주가 강영이를 받아 들어 품에 안으니, 강영이가 배시시 웃으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몽주의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강영이가 좋으시면, 꼭 무사히 돌아오세요.”
“암, 그래야지요. 거기다 어여쁜 아내도 보고 싶으니, 어디 하나 다치지 않고 돌아올 것이오.”
강영이를 안은 채 앵도의 뺨을 어루만지니, 그녀가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기야, 주변에 눈이 좀 많기는 했다. 물건을 싣는 이들부터 출항 준비를 하는 사병들까지.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화극이 끌고 온 수레에 실린 것들을 배에 다 옮겨 싣고는 돌아왔다.
“몇 발이나 됩니까?”
“이백 발일세. 모두 철편이 든 것들이지. 이 정도면 왜구와 조우하더라도 떨쳐 내기에 충분할 것이야.”
“그렇겠죠.”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아나, 앵도가 걱정스레 보는 것을 알기에 몽주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화극이 몽주가 가져온 화약 재료 중 절반가량을 소모하면서 폭죽을 추가로 만들어 온 이유이자, 앵도가 몽주가 출항하는 것을 몹시 걱정하는 이유는 바로 왜구와의 조우였다.
이제 날이 풀려 왜구들이 다시 활개를 칠 때가 되었기에, 고려의 연안에서 왜구를 만나더라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그럼, 다녀오겠소.”
몽주가 작은 배에 올라타 포구에 선 앵도를 향해 손을 흔드니, 그녀가 강영이의 손을 잡고 마주 흔들어 주었다.
그걸 마지막으로 몽주는 대선에 갈아타 바다로 나아갔다.
제주의 서쪽으로 반 바퀴 돌아 고려로 가는 길이었다.
* * *
예성강 하구에 도착한 것은 보름이나 지난 후였다.
특별히 사고도 없었고 들른 곳이 없었는데, 그렇게 늦게 도착한 이유는 가는 중에 일부러 역풍을 거스르는 훈련을 몇 번이나 한 탓이었다.
고려 배에 달린 러그 세일(가로활대) 횡범돛은 서양식 횡범돛에 비해 역풍에 강하다고는 하나, 그래도 역풍을 거스르기 위해서는 45도 정도로 지그재그 항해를 해야 했고, 사병들이 아직 그에 익숙지 않아 숙련된 선원들이 하는 것보다 더 느릴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그래도 폭풍도, 왜구도 만나는 일 없이 무사히 예성강 하구에 도착한 건 실로 다행이었다.
수군진에 배를 대고, 제주 현백임을 밝힌 후, 다음 날 아침 개경으로 가는 길에 올랐고, 마침내 개경에 닿으니,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
배로는 얼마 안 되는 화물이지만, 뭍으로 옮겨 가기에는 많은 탓이었다.
몽주는 우선 처가댁에 돌려, 오랜만에 처조부께 인사를 올렸다. 아주 오랜만은 아님에도 처조부의 얼굴에서 그사이 더 나이 든 느낌을 받았다.
해후(邂逅)를 나눈 뒤, 몽주는 그에게 백묵과 칠판을 보여 주었다.
“현백은 참으로 신기한 걸 많이 만드시오. 비노와 선로도 그러하더니, 이건 또 어떻게 생각하시었소? 간혹 잘 부스러지는 돌이 있어, 그 돌로 다른 돌에 글자를 쓸 수 있는 걸 보긴 했지만, 이건 그런 것도 아닌 듯한데…….”
처조부는 몽주가 봉작된 이후에는 반공대에 가까운 말법을 따르고 있었다.
“어려운 건 아니었습니다. 제주에 가니, 특이한 모래가 있어 그걸로 만든 것입니다.”
굳이 자세히 말할 건 아니라, 대충 얼버무리며 말을 돌렸다.
“이 백묵과 묵판은 오늘 영공을 비롯하여 개경의 세도가에 넣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만약 더 필요하다면 처조부의 시전으로 알리라 할 것입니다. 제가 영공과 논의하여 처조부의 시전에서 이 백묵과 묵판을 팔도록 할 터이니, 처조부께서는 백묵과 묵판을 청하는 자들로부터 주문을 기록해 두십시오. 훗날은 아닐지언정 당장은 고가에 팔 수 있을 것입니다.”
“……하면, 이번에도 영공에게 큰 이문이 남겠구려.”
조금 뜻밖의 말에 몽주는 무슨 의미인지를 잠시 짚어야 했다. 하나, 짐작하기 전에 처조부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현핵의 현명함을 믿지만,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소. 지금 개경에 흘러 다니기 시작한 소문이 있는데, 금상에게 외간 아들이 있다는 것이오. 그리고 그 소문에 함께 붙어 나도는 이야기가 그 아들의 어미가 바로 영공의 몸종 출신이라는 것이오.”
“…….”
드디어 모니노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나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막상 그 소문을 전해 들으니,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비빈으로부터 왕자를 얻지 않고 외간 여인으로부터 아들을 얻었다 하더라도, 지금 금상의 대를 이을 왕자가 없으니, 그것 자체로는 경하할 일이라 할 것이오. 하나, 그 아들이 진정 금상의 아들인지 의심을 받는 상황이라 말이 많을 수밖에 없소. 특히 그가 금상이 아니라, 영공의 아들일 가능성마저 점쳐진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오.”
“……하여, 제가 영공과 친한 것이 걱정이십니까?”
처조부가 고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지금은 제주로 가 있다곤 하나, 여전히 사람들은 현백을 영공의 당여로 미루어 짐작하고 있소. 그리고 그건 어림짐작만은 아닐 것이오. 그러니, 만약 영공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현백에게도 해가 갈 수 있지 않겠소?”
맞는 말이었다. 만약 2년 전에 그 소문이 돌았다면 몽주는 신돈을 가차 없이 저버렸을 것이다.
하나, 지금은 역사에 비추어 따를 수 없었다. 신돈은 이미 역사보다 더 강대한 권력자가 되어 있고, 몽주는 신돈의 그늘에 조금 더 있어야 했다.
“영민하게 처신하겠습니다.”
몽주는 처조부를 위안하고는 그에게 물으려 했던 걸 물었다.
“감채(甘菜)나 첨채(甛菜)라…….”
“평범한 무와 생김새가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다만, 조금 추운 곳에서도 잘 자란다고 들었습니다.”
과거 원과 교역을 하던 처조부였기에, 원에 오가며 사탕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지 물은 것이었다. 감채와 첨채는 이 시기의 동양에서 사탕무에 붙인 이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옛날에 대도의 한 거상이 그의 애마가 앓아누운 걸 달달한 무로 도로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소. 그런데 그걸 왜 찾으시오? 제주의 말들이 아파 누웠소?”
빙긋.
몽주의 입가에 크게 웃음이 서렸다.
“말이 아픈 건 아니지만, 아픈 걸 회복하는 데 쓰이긴 할 겁니다.”
구하기만 한다면, 회복 수준이 아니라, 더 크게 발전할 수도 있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