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111)
* * *
제주가 술렁거렸다. 아니, 발칵 뒤집혔다.
몽주가 곳곳에 한글로 쓴 방을 붙이게 하여, 종두법을 실시할 것임을 알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까지 세세히 설명하자, 난리가 난 것이었다.
역질 걸린 소의 상처 딱지를 갈아서 탄 물을 솜에 적셔 콧구멍 안에 넣어 둔다고 하니, 제주 백성들이 보기에는 괴상망측한 걸 넘어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유언비어도 마구 퍼졌다.
현백이 백성들을 소로 만들어 소처럼 부리려 하는 것이라는 둥, 현백이 미쳐서 백성들을 다 죽이려고 하는 짓이라는 둥.
그 유언비어 들은 제주의 무당들 특히, 삼무당이라 하여 북제주의 무속신앙을 주도하는 세 무당들이 나서서 퍼뜨리고 있었으니, 안 그래도 그들의 말에 좌지우지되기 십상인 백성들은 한결 더 두렵고 원망스런 마음이 들었다.
“석씨가 역질이도다! 석 현백이 뭍에서 건너온 두신(痘神)이도다!”
무당들은 아예 몽주를 역병 그 자체인 양 과대 포장하며, 곳곳에서 백성들을 모아 놓고 현백에 대한 비방과 저주를 마구 퍼붓고 있었다.
그 정도가 심하여, 같이 현백을 욕하던 백성들조차도 문득 싸늘한 기분이 들어, 혹여 현백이 처벌하겠노라 군사들을 몰아 와 무당은 물론 자신들까지도 잡아갈까 두려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하나, 제주 천지에 현백을 욕하는 소리가 가득하여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추분(약 9월 23일경)쯤에 다시 방문이 곳곳에 붙었는데, 현백이 제주 백성들에게 종두법의 시행에 대해 보여 줄 것이 있다며, 올 수 있는 자들은 다가오는 보름날 저녁에 행재청 앞에 모이라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백성들 사이에서는 현백이 모인 자들을 먼저 종두(種痘)하려 한다 여기고 다들 모이길 저어하였다.
한데, 외려 무당들이 나서 백성들로 하여금 행재청에 모이도록 선동하였다.
이참에 현백에게 백성의 뜻을 알려야 한다고, 또 만약 그럼에도 현백이 고집을 부린다면 싸워서 그 뜻을 꺾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물론, 무당들이 그렇게 선동하여도 쉽게 설득되지는 않았다. 현백 앞에서 언제나 절로 허리를 굽히던 그들로서는, 현백에게 저항하는 건 물론, 뜻을 알리는 것조차도 감히 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현백이 학정을 일삼고, 착취하는 탐관이었다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심정으로 대들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현백은 종두법 이전에는 목민관(牧民官)의 이상과 같은 자였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그래도 무당들이, 무두악이 운 것을 언급하며 여장군이 제주의 액을 경고하고 있으니, 반드시 힘을 빌려줄 것이라며 선동하기를 멈추지 않자, 슬슬 마음이 움직이는 백성들이 늘었다.
하여, 며칠 후 보름날이 되자, 행재청의 넒은 마당에 1천 명도 넘을 많은 이들이 모였다.
대부분 탐라현과 인근 현에서 온 자들이지만, 남제주나 동서 끝자락의 촌에서도 대표로서 온 자들도 제법 있었다.
넓게 닦아 놓은 부지에 담도 없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행재청 앞에는 스무 명 남짓한 몽주의 사병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다만, 백성들을 폭도로 삼아 행재청을 지키려는 의미라기보다는 행재청 앞에 쌓은 단(壇) 주변 공간을 확보하려는 움직임만 보일 뿐이었다.
어쨌거나 많은 백성들이 모이자, 군중심리가 발동하였는지 슬슬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들 앞에 있는 삼무당들이 선창하면 종두법에 항의하는 목소리들이 행재청 주변에 가득할 것이고, 혹 무력시위로 이끌면 행재청 안으로도 쳐들어갈 것 같았지만, 정작 백성들을 선동한 삼무당들은 조용히 있어, 소란함 이상으로 백성들의 움직임이 확대되지는 않았다.
하나, 그럼에도 행재청에 모인 백성들의 기세는 분명 사나운 것이었고, 고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학정을 못 이겨 민란을 일으킨다면 모를까, 그들의 지배자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 위해 집단을 이뤄 모인 것 자체가 신기한 경험이랄 수 있었다.
잠시 후, 몽주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의 뒤로 가복들 몇몇이 상과 함을 들고 따랐고, 몽주가 단 위로 오르자, 그의 앞에 상을 놓고 그 위에 함을 놓았다.
몽주가 단 위에서 백성들을 바라보자, 수군거리며 소란하던 주위가 적막해졌다. 몽주는 마치 백성들과 일일이 시선을 마주하기라도 하듯 천천히 백성들을 훑었는데, 백성들은 몽주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움찔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몽주는 말문을 열었다.
“들으라. 내가 종두법을 시행하겠노라 선언한 뒤, 제주에 온갖 불만이 가득하다 들었다. 하나, 그 모두가 얼토당토않은 소리니, 어찌 내가 너희를 소로 만들고, 심지어 죽이겠는가.”
굳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곱씹는 듯하니, 조용한 행재청의 사위(四圍)를 몽주의 목소리가 장악하였다.
“너희도 알 것이다. 한 번 두신이 온 자는 두 번 다시 두신이 오지 않는다. 내 이를 알고, 두신을 속일 방법을 강구하였으니, 소가 앓는 우두가 마마와 같이 두신이 행한 것임을 알고 미리 우두를 가벼이 앓아 마마를 앓은 양 두신을 속이고자 하는 것이다. 마마와 달리, 우두는 앓을지언정 죽거나 크게 상한 흔적을 남기지 않으니, 마마를 피하고자 하면 마땅히 우두를 얻어 훗날의 위험을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조곤조곤한 설명조의 말에 백성들이 그런가 싶어 자기들끼리 바라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약 현백의 말이 맞다면, 확실히 해 볼 만한 일이라 여기는 분위기였다.
죽을병을 피할 수 있다면, 잠시 역한 걸 참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하나, 그런 분위기가 무르익기 전에 조용하던 삼무당 중 연장자인 이가(李家) 무당이 앞으로 한발 나오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백께서는 어찌 거짓으로 저희를 기만하려 하시나이까. 두신께서 한 번 방문한 곳을 다시 방문하시지 않는 것은 사실이나, 두신께서 우두와 마마를 같이 다루신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입니다. 설령 그렇다한들, 소가 앓기에 우두지, 사람이 앓으면 그것이 곧 마마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우두를 앓게 하신다는 것은 곧 마마를 옮기시겠다는 말씀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이가 무당이 말을 마치니, 다른 두 무당들도 그의 말이 옳다 소리쳤고, 그걸 보고 듣던 백성들이 크게 동요하였다.
확실히 소가 앓으니 우두지, 사람이 앓으면 마마가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소란함이 점점 커질 때, 문득 몽주가 상을 손바닥으로 두어 번 크게 내리쳐 주위를 환기하였다.
“무당들은 그의 말에 자신하는가!”
“자신이 아니라, 신(神)의 이치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하면, 너희는 나와 내기를 해 보겠느냐!”
몽주가 이어 말하니, 자신이 직접 종두하겠다고 하였다.
만약 마마를 앓게 되면 죽거나 곰보가 될 것이니 그것이 곧 내기를 진 대가이고, 만약 멀쩡하거나 가볍게 앓다 낫는다면 무당들이 내기에 진 것이 되어 벌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어찌 현백께서는 스스로의 목숨을 그렇게 하찮게 다루려 하십니까?”
“내 목숨이 어찌 하찮겠는가. 나는 그저 종두법에 자신이 있어 내기를 청한 것이다.”
몽주가 물러설 뜻을 보이지 않자, 백성들의 시선이 삼무당에게로 향하였다.
현백이 스스로 종두법을 시행하겠노라 하니, 정말 그 종두법이 효과가 있는 건 아닌지 다시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다.
“내기에 응하겠습니다. 단, 단지 현백이 멀쩡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두를 가벼이 앓아 마마를 피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니, 만약 현백께서 마마를 앓는 이와 하루를 함께 생활하시고도 멀쩡하다면 종두가 옳다 인정하겠습니다.”
다른 두 무당과 눈빛으로 뜻을 같이한 이가 무당이 이를 갈 듯 말을 뱉으니, 백성들의 시선이 다시 현백에게로 옮겨졌다.
“좋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나 스스로 종두하겠다!”
선언하듯 소리친 몽주가 한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손짓하였다. 무엇인가 싶어 백성들이 보니, 고실개 가주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 뒤로 그의 가복이 소 한 마리를 끌어오고 있었다.
그를 본 백성들이 크게 웅성거리니, 그 암소의 젖통에 우두가 흉하게 나 있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몽주는 직접 걸음을 옮겨 소의 곁으로 향하였고, 젓가락으로 소의 우두에 앉은 딱지를 떼어 내었다.
당연히 그 소는 미리 골라둔 것으로, 우두가 거의 다 나은 소였다.
몽주는 젓가락으로 떼어 낸 상처 딱지를 들어 백성들에게 보였다. 엄지손톱만 한 딱지가 젓가락 사이에 있는 것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 몽주는 그대로 딱지를 들고 다시 단 위로 올라왔고, 근처 가복에게 상 위에 놓인 함을 열게 하여 그 안에 있는 것을 꺼냈다.
그것은 작은 절구로, 절구공이가 안에 놓여 있었다.
“무당들은 들으라. 그대들과 함께 이곳으로 가까이 와 내가 하는 걸 지켜볼 셋을 골라라.”
그에 무당들이 그들의 뒤에 있는 백성들 중에서 함께 단 위로 올라갈 이들을 찾았다.
다만, 백성들이 다들 주춤거리며 나서기를 저어했으니, 현백의 눈에 찍힐까 두렵기도 하고, 또 혹여 우두 딱지 가까이 갔다가 마마를 앓게 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도 호기심이 강한 이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지원하는 자들을 고를 수 있었다.
그렇게 세 무당과 세 백성들이 단 위로 오르자, 그들이 보는 가운데 현백이 곧바로 젓가락으로 집고 있던 우두 딱지를 절구 안에 넣고는 절구공이로 빻기 시작하였다.
통통통.
십여 번 두드린 것만으로도 딱지가 부서져 가루가 되자, 몽주는 함 안에 남은 물병과 솜뭉치를 꺼내보였다.
“이제 절구 안에 물을 넣어 딱지 가루가 물에 섞이게 할 것이고, 그 물을 솜으로 적셔 비강(鼻腔)에 주입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장차 너희에게 시행하려는 종두법과 같은 것이니, 잘 보아 두어라.”
몽주는 곧바로 그가 말한 대로 우두 딱지 가루가 혼합된 물을 솜으로 듬뿍 적셨고, 머뭇거리지도 않고 그대로 콧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걸 근처에서 본 이들은 물론, 조금 떨어져 걱정 반 기대 반의 시선을 던지고 있던 백성들도 인상을 찡그리며 역한 느낌을 참느라 애를 썼다.
그 장면들을 멀찍이서 보던 제주 사성의 가주들의 귀에 문득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 중 문씨 가주 문신보가 혀를 차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고실개가 혀를 차는 이유를 묻자, 문신보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만약 남방백이 내기에 이긴다면, 종두법이라는 것이 제주 전역에 시행될 것이고, 그 종두법이 마마를 막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 증명된다면, 남방백은 제주를 얻을 것입니다.”
“이미 남방백은 제주를 지배하시지 않은가.”
“지배하는 것과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까. 마마는 떠도는 구름과 같은 것이라, 잠시 없을 수는 있어도 언제고 다시 나타나 사람을 죽고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여, 백성들이 영원히 두려워하는 것이니, 만약 남방백이 두신의 방문을 피할 방법을 시행한다면, 그 두려움만큼 백성들은 남방백을 우러르고 따르려 할 것입니다. 단지 고려의 왕으로부터 얻은 작위와 부리는 사병들의 수로써 지배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겠지요.”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부가 가주 부삭섭이 퉁명스레 대꾸하였다.
“그대들은 남방백이 내기에 져서 죽길 바라기라도 하는 모양이오?”
마치 고실개와 문신보의 대화를 현백에게 고해바치기라도 할 듯한 빈정거림이었다.
그에 문신보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였다.
“그렇지도 않소. 만약 남방백이 죽는다면 후계할 사내아이도 없으니, 고려에서 새로운 이가 올 것이오. 이미 고려에서 온 많은 이들을 겪었으니 다들 알 것이오. 그들 중 진정 목민관이랄 수 있는 자가 몇이나 있었소?”
거의 없었다. 목민관이 아니더라도, 탐관오리나 학리가 아닌 자들조차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남방백이 죽는다면, 백성들은 물론이고, 우리 또한 크게 고달파질 것이니, 그것은 인부를 빼앗기는 정도와는 전혀 다른 고달픔일 것이오. 그러니, 어찌 남방백이 죽기를 바라겠소.”
문신보의 말이 틀리지 않으니, 사성들은 걱정 어린 시선으로 현백을 바라보았다.
“혹시 거짓으로 종두하신 건 아니오?”
양가 가주 양치승이 의심하였으나, 다들 고개를 저었다. 행재청에 끌려나온 소는 분명 우두를 앓은 소였고, 남방백이 직접 우두의 딱지를 떼어 내고 그걸 빻아 종두하는 걸 목격하였으니, 거짓이 섞일 리가 없었다.
“하면, 이미 마마를 앓고 나은 적이 있으신 건…….”
그 의심 또한 실소만 낳을 뿐이었다.
“남방백의 얼굴을 보시오. 저 고운 얼굴이 마마를 앓은 얼굴이겠소?”
* * *
자고 일어나니, 몸이 개운했다. 이틀간 그를 힘들게 한 몸살기가 드디어 사라진 것이었다.
이부자리에 누운 채 눈만 껌뻑이다, 몽주는 문득 실소하였다.
“가해 행위는 단번에 해내야 한다.”
그가 문득 중얼거린 소리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한 대목이었다.
짧은 시일 내에 끝내면 그만큼 백성들의 분노도 쉽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은혜는 천천히 조금씩 베풀어야 한다는 내용도 붙어 있었다.
마키아벨리즘이라고도 불리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대한, 현대인의 시선에서의 호불호는 차치하고, 몽주는 고려의 현실을 생각하면, 군주론에서 본을 얻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고 여겼다.
현대의 정치와 시민들이 마냥 현명하고 이성적인 건 결코 아니지만, 그래도 고려의 정치와 백성들에 비하면 비교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높은 지적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현대에서도 이성에 기반한 설득과 대화를 통한 타협은 여전히 너무나 어려운 일인데, 고려에서 그것이 가능할 가능성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대의 사람들도 나름의 이성과 합리를 갖추었지만, 나름은 나름일 뿐, 당대의 시야와 지식을 벗어난 부분에 대해서는 몽매에 가까운 것이었다.
때문에 종두법을 시행함에 있어, 그것을 아무리 말로 설명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백성들에게는 자신들을 가해하려는 행위로 비칠 것임을 처음부터 인정하고 일을 꾸며야 했다.
하나, 단번에 가해 행위를, 아니 종두법을 백성들에게 시행할 수는 없는 세상이었다.
좋은 말로, 내가 먼저 해 볼 테니, 내가 마마에 걸리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면 너희도 종두하라…… 라고 해 봤자,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교통과 통신이 미비하여, 소식이 얻지 못할 이도 많을뿐더러, 전해진다고 해도 제대로 전해질 리도 없었다.
그사이에 수많은 오해와 곡해가 발생할 것이니, 몽주가 스스로 증명에 성공하였다고 하더라도, 막상 종두법을 시행하고자 하면, 다시금 백성들 사이에서 불만이 크게 터져 나올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것은 ‘가해 행위’를 질질 끌며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행태나 다름없으니, 몽주로서는 일종의 여론 몰이 겸 시선 끌기용 이벤트가 필요하다 판단했던 것이다.
하여, 일부러 먼저 소문을 내어 종두법에 대한 오해 와 불안을 백성들이 다 쏟아 내게 하고, 그 후에 몽주가 나서 많은 이들 앞에서 종두하였으며, 일부러 제주의 무당들을 도발하여 내기를 하게 하였다.
굳이 무당을 내기의 대상으로 고른 것은, 천연두를 두신이 내리는 병으로 여기는 당대의 상식에서, 그 상식을 대표하기에 무당만큼 적합한 자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상식을 타파하기 위한 내기는 여론의 가늠쇠를 움직일 ‘이벤트’이기도 했으니,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제주의 백성들 중에서 현백과 무당 간의 내기에 대해 말하지 않는 이는 없을 정도였다.
모두들 내기의 행방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현백이 사느냐, 무당이 사느냐.
이미 현백이 내기에서 이기면, 무당들에게 엄한 벌을 내리겠다고 공표하였으니, 현백이 이긴다면, 다들 무당이 죽을 것이라고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몽주는 내기에서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었고, 실제로 이미 승리한 셈이었다.
몽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목소리를 내어 석삼이를 불렀다. 하나, 대답하며 들어선 이는 석삼이 아니라, 앵도였다.
“일어나셨군요.”
반색하는 앵도의 양손에는 대야가 들려 있었다. 그 안에 맑은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고, 깨끗한 천도 그녀의 팔뚝에 걸려 있었다.
몽주는 문득 자신의 이마와 목덜미를 손으로 문지르며, 땀의 흔적이 없음을 알고, 그녀가 밤새자신을 보살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많이 아픈 것도 아닌데, 밤새 곁을 지키셨소?”
“불안한 마음에 잠이 오지 않아서요.”
약간 충혈된 눈으로 앵도가 자신의 얼굴을 샅샅이 살피는 게 느껴졌다. 혹여 아직 아픈 구석이 있는지, 혹여 진짜 마마가 있어 흔적이 남은 건 아닌지 찾는 모양이었다.
“걱정 마시오. 몸이 개운한 걸 보아, 자내 덕에 말끔히 나은 듯하오.”
몽주는 앵도를 위로하며, 이미 종두법이 효과가 있음을 알면서 왜 그리 걱정하느냐고 살짝 타박하기도 하였다.
사실 이미 종두법은 비밀리에 시행되었다. 가복들 중 초씨 가족, 즉 초고독불화의 가족을 비롯하여 몇몇 가족에게 먼저 우두를 접종했던 것이다.
그것은 강요이면서 동시에 거래이기도 했다. 종두를 받으면 내년에 면천해 주기로 약조하였던 것이다. 물론 그들은 그 거래를 거부할 권한이 없었다.
죽을상을 하는 그들 중 먼저 성인에게 종두하고, 다시 일주일 후에 그들의 자식들에게도 종두하니, 몽주가 그러하듯 가벼이 앓는 자 서넛이 있었을 뿐 모두 우두를 이겨 냈다.
굳이 그들에게 먼저 종두하게 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우두의 딱지와 고름을 취급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자연히 우두를 앓는 소들 외에도 몇몇 소들에는 일부러 상처를 내고 우두를 옮기게 하여 후에 종두법을 시행할 때 쓸 우두 딱지를 확보하고자 하였는데, 그 일을 할 이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어차피 그 일을 하는 중에 우두가 옮는 이들이 자연히 발생하겠으나, 괜히 그 때문에 헛된 소문이 퍼지는 걸 막고자, 일부러 먼저 종두하게 하여 입을 막은 것이었다.
“하면, 이제 정녕 마마를 앓는 자를 가까이 하실 것입니까?”
앵도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우두를 이겨 냈다고 해도,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마마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고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걱정 마시오. 나는 결코 쉽게 죽지 않소.”
“…….”
뭔가 적합하지 않은 대답을 들은 것 같아, 앵도가 의아해하는 걸 보며 몽주는 웃음을 한껏 지었다.
다음 날, 몽주는 종두를 받은 목호 가복들과 더불어, 예래현(猊來縣)-홍로현의 좌측에 있는 남제주의 현-에 있다는 마마 환자의 집을 찾았다.
환자는 열 살배기 사내아이였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 집 주변에 새끼줄을 걸어, 가까이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고, 심지어 환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도 새끼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몽주가 마침내 내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마마가 내린 집에 방문한다고 하자, 구름 같은 인파가 구경하러 모여들었다.
물론, 멀리 그 집 주변에서 바라만 볼 뿐이었다.
몽주는 마마를 앓는 아이의 고름 묻은 의복을 그 집 마당에서 직접 빨고, 그 아이와 한 방에서 식사까지 하며 며칠이나 간호하였으니, 오히려 그 아이의 부모보다 아이와의 접촉이 더 심하였다.
당연히 그 모습을 주변에서 볼 수 있었으니, 그 단호하고 당당한 모습에 현백이 정녕 마마를 피할 수 있게 된 것인지, 불신하는 와중에도 믿음이 생기는 백성들이 많아졌다.
아이는 살아났으나, 얼굴이 흉이 적잖이 남았다.
종두법 시행이 코앞이라는 걸 아는 몽주로서는 안타까웠으나, 그래도 살아남았다는 점에 안도하였다.
그가 만든 해열제인 아세트아닐리드를 아이가 마시는 물에 극히 소량만 타서 복용하게 하여, 고열을 막는 처방을 하긴 했지만, 그 때문에 살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몇 마리 돼지에게 실험하여 미량이라면 해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정도만 확인한 해열제는 아직 그 효용을 확신하기에는 임상 경험이 많이 모자랐다.
어쨌거나, 몽주가 예래현에서 행재청으로 돌아오자, 이제 제주 백성들의 시선은 몽주의 향후 행보에 쏠렸다.
그리고 몽주는 그 시선에 보답이라도 하는 양, 군사를 풀어 삼무당들을 잡아 오게 하였다.
무당들은 백성들이 보기에 의외로, 순순히 잡혔다. 이미 내기의 승부가 판가름 났으니, 무당들이 도망이라도 갔을 법한데 집에 있다가 고스란히 끌려온 것이었다.
몽주는 삼무당을 잡아다 행재청 마당에 묶어 두고, 구경하러 몰려든 백성들에게 말하였다.
“이들은 감히 나 제주현백의 말을 호도하고, 백성들을 부추겨 민심을 어지럽혔으며, 내 명에 맞서 나를 능멸하려 하였으니, 그 죄가 심히 크다.”
그쯤에 문득 잠잠하던 삼무당들이 크게 동요하며 현백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무어라 말하려 하였다.
하나, 꽁꽁 묶인 데다가 입에 재갈까지 물려 있고, 탁가 무인들이 두 명씩 붙어 옴짝달싹 못하게 하여,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몽주는 삼무당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만이 흐르는 가운데, 엄엄한 상황에 기가 눌린 백성들을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비록 이들이 제주의 신을 모시는 자들이라고는 하나, 그 죄의 무게는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울 정도라 할 것이다. 이에, 나 제주현백은 이들의 목을 베어, 그 참람한 죄를 벌할 것이니, 백성들은 이를 경계하여 장차 같은 우를 범하지 말라!”
몽주가 마침내 죽음의 벌을 명하니, 백성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미 내기를 하며 엄한 벌을 장담한 현백이었고, 그래서 내기에서 현백이 이기면 무당들을 죽일 수도 있을 것이라 여기긴 했지만, 정말로 그것을 실행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무당들의 몸부림이 심해졌다. 눈물을 마구 흘리며 무어라 소리치기도 했으나, 입을 틀어막고 있는 재갈로 인해 그저 신음 소리만이 커졌다.
그 모습이 백성들에게는 그저 죽음의 공포로 인한 최후의 발악으로 보일 뿐이었다.
몽주는 고갯짓으로 탁기에게 형을 집행하게 하였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탁가 무인들이 삼무당을 기둥에 묶고 검을 뽑아 그들의 목을 겨누었다.
무당들의 발악이 극에 달했다.
‘현백, 현백! 어찌 약속과 다른 것이오! 그저 태를 치는 척만 할뿐, 오히려 상을 내리겠다고 하지 않았소! 지난번처럼, 지난번처럼!’
하나, 그 절규는 재갈 때문에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고, 오직 몽주만이 신음 속에 담긴 그들의 억울함을 짐작할 뿐이었다.
“참하라!”
서걱!
탁기의 명과 함께 세 자루의 칼이 동시에 무당들을 범하였다.
칼날이 가른 목마다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 * *
그날 밤.
“한잔하겠는가?”
몽주는 그가 있는 행재청의 침소를 문밖에서 지키던 탁기를 불러 술을 권하였다.
탁기는 고개를 끄덕이곤 잔을 들어 술을 받곤 단번에 입에 털어 넘겼다.
“오늘 죽은 무당들이 모시는 신들이 나를 해하려 할까?”
헛웃음을 섞어 몽주가 탁기에게 물으니, 탁기가 크게 호흡하여 어깨와 가슴을 넓게 펴고 대답하였다.
“어찌 귀신 따위를 두려워하겠습니까. 설령 귀신이 있어, 만약 현백을 상하게 하려 한다면, 이 탁기부터 넘어야 할 것입니다.”
“하하하.”
몽주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는 웃으며 머릿속으로 군주론의 한 대목을 떠올렸다.
‘군주는 자기네 백성을 단결시키고, 충성을 지키게 하려면 잔인하다는 악평쯤은 개의치 말아야 한다. ……(중략)…… 소수의 몇몇을 시범적으로 처벌하여 질서를 바로잡는 잔인한 군주가 훨씬 인자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주가 없었다면 그 무당들은 종두법을 두고 어찌 행동했을까? 그건 몽주도 모를 일이었다. 똑같이 백성들을 호도하며 선동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잠잠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 몽주의 사주를 받아, 백성들을 선동하였으니, 이미 내기의 결과를 떠나 몽주로서는 처벌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시늉이냐 진짜냐만 다를 뿐.
다만, 그 무당들은 지난번 ‘여장군 위로제’에서 현백의 회유를 받은 경험이 있어, 약속을 철석같이, 그저 거짓으로 처벌 받고 몰래 상을 받을 것이라 믿고 행동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죽었다. 그것은 비단 이번 일에 대한 벌일 뿐만 아니라, 장차 몽주가 제주에서 할 일들에 대해 일일이 무속적인 장애를 감수해야 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아직 제주에 무당들이 여럿 남아 있으나, 이번 일로 그들에게도 크게 경고가 되었을 것이니, 감히 현백의 행사에 함부로 입을 놀리기 어려워졌을 것이다.
“이보게, 탁기. 내일로 종두법을 크게 시행할 것이네. 탁기 자네도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이고. 그것이 두렵지 않은가.”
“현백께서 이미 증명하셨으니,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탁기는 그저 굳건할 따름이었다.
* * *
다음 날, 몽주는 먼저 가족들과 가복들, 그리고 사병들에게 먼저 접종하게 하였고, 삼 일 후, 전 제주에 종두법을 시행하였다.
대상은 5세 이상 50세 이하의 모든 이들이었고, 다만, 병을 가진 자들만 연기해 주었다.
거의 대부분 순순히 따라 주었고, 일부 거부하려는 자들은 사병들이 강제로 접종시켰다. 비강에 넣지 않으려는 자들은 살을 베어 우두수(牛痘水)를 상처에 문지르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후에 태를 쳐서 벌하였다.
종두법 시행 후, 앓는 이들이 다소 있었으나, 거의 대부분 하루 이틀 만에 나았다. 개중 열이 심하게 오른 이들도 몇몇 있었으나, 몽주가 해열제를 보내 복용하게 하자, 다행히 열이 내려 며칠 후 자리를 떨쳐 일어나게 되었다.
그제야 몽주는 종두법 시행에 대한 걱정을 완전히 지울 수 있었고, 다시 홍로현에서 진행하는 일에 관심을 둘 수 있었다.
종두법 시행으로 혼잡한 시간이 흐르는 와중에도, 화극은 여전히 화포 제작에 몰두하였으니, 배에 실을 만한 크기의 화포를 벌써 열다섯 문이나 완성한 상태였다.
슬슬 함포의 위력을 시험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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