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12)
후욱, 후욱!
이것은 뜨거운 입김이지만, 단지 덥거나 지쳤다는 표현만은 아니었다.
‘제길! 빌어먹을……! 엿 같은……!’
마음속에서 연신 터지는 욕설이 입김으로 뿜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벌써 천마산 등반 3회차 도전이었다.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것도 아니고, 겨우 동네 뒷산인데……!’
현대에서 등산로로 올라간 것까지 치면 벌써 네 번째 천마산을 오르는 중이었다.
현대에서는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등산로를 따라 쉽게, 물론 그때도 힘이 들긴 했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객관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해야 마땅했다.
하나, 고려 말에 산을 오른다는 건 무척이나 난감한 일이었다.
‘좋아! 힘든 건 좋은데! 제발 멧돼지나 산짐승만 만나지 마라!’
* * *
꿈속으로 다시 들어왔을 때, 그는 당연히 매질의 후유증으로 누워 있었다.
석삼이를 시켜, 엉덩이를 덮고 있는 포목을 치우게 하고 진한 갈색의 고약을 으깨어 바른 듯한 약도 닦아내 상처를 살피니, 다행히 염증은 없어 보였다.
원래 혹시 곪는 기색이 있으면, 의원이 발라 둔 약을 닦고, 주정(酒精)을 이용한 소독약과 벌집 프로폴리스를 이용한 항생제를 만들어 쓸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이 시대의 약이 의외로 제몫을 해낸 모양이었다.
그렇게 열흘 정도 더 시간이 흐르자, 터진 살이 거의 다 아물었고, 움직여도 별 불편이 없어졌다.
물론 몽린의 부모들은 혹여나 귀한 아들이 상할까 두려워 꼼짝도 못하게 했지만.
어쨌거나 태형으로 인해 버릴 시간을 다 버리자, 몽주는 슬슬 도둑질(?)을 시작했다.
누워 있는 동안, 몽린의 머릿속 기억을 뒤져 집안에서 후에 보물이 될 만한 걸 찾아 두었으니, 그걸 몰래 빼돌리는 것이 그의 도둑질이었다.
사실 도둑질이라고 해서 금고를 터는 일 따위는 필요 없었다.
확실히 몽린의 기억 속에서 사랑방과 안방에 각각 은닉장이 존재한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고, 그 안에 귀중품도 있다는 정보도 있었지만, 굳이 그런 비밀 금고(?)까지 털 필요는 없었다.
집안 곳곳에 널려 있는 게 보물이었고, 그의 방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
“오호, 이게 도기소의 마에스트로가 만든 청자연적이란 말이지?”
몽린이 쓰는 아니, 근래는 거의 쓰질 않아 ‘쓰던’이라고 말해야 맞는 짙은 옥색의 연적.
즉, 먹갈 때 쓰는 물을 담는 통은 딱 봐도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꺼비를 형상화한 그 연적은 몽린이 어릴 적에 해민으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현대에도 여주라고 부르는, 그 여주 내에 위치했던 도기소가 현으로 승격되면서 그곳의 독바치가 조금 덜한 역을 받게 된 덕에 남는 도기들을 팔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연적이 그렇게 팔린 것들 중 하나였다.
고려 후기에 ‘향, 소, 부곡’ 등의 천민 거주지가 해체되거나, 일반 현으로 승격되었다고 국사책에서 봤던 것 같은데, 그런 흐름 중에 있었던 일인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과연 왕실과 고관들에게 가는 도기들을 만들던 장인이 만든 것이라 그런지 색감도 탁월했고, 만듦새도 노력이 가득했다.
정말 시간을 거슬러 현대에서 되찾을 수만 있다면, 대단한 보물로 여겨질 만 했다.
몽주가 확보한 두 번째 보물도 그의 방에 있었다.
높이 약 30센티미터 정도의 황동불상이 그것이었다.
몽린의 머릿속에 여래입상이란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는 그 불상을 처음 봤을 때, 금으로 만들어진 것인 줄 알고 환호할 뻔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놋쇠, 즉 황동이라서 아쉬웠다.
하나, 금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퀄리티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려 수입품이었다.
그것도 북송 시절, 금에 밀려 남쪽으로 내려가기 전 송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벽란도에서 장사하던 몽린의 선조가 남송 상인을 통해 힘들게 구한 것이었다.
대대로 전해진 그 여래입상은 근래 이르러선 손이 귀한 석씨 가문의 아들을 지켜 주는 수호상처럼 여겨졌고, 그래서 몽린의 방 한쪽 벽면에 세워진 단 위에 놓인,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목갑 안에 모셔져 있었다.
몽린이 어릴 적엔 아침에 일어나면 그 상자의 앞을 열어 여래입상이 보이게 하고 그 앞에서 절을 올리곤 했었는데, 최근에는 별로 하지 않은 듯했다.
“이것도 대박이네. 어떻게 그 시대에 이렇게 정밀하게 표현해 낸 거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인체 비율도 정교하며 옷의 구김까지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 교과서에서 봤던 간다라 양식의 조각상 같았다.
게다가 그걸 고작 30센티미터 크기로, 나무나 돌도 아닌 금속으로 구현해 냈으니…….
현대에서도 이 정도로 정밀하게 만든 황동불상을 사려면 꽤 돈이 깨질 게 불명했다.
세 번째 보물 또한 몽린이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대신 연적이나 여래입상과 달리 찾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몽린이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 중 하나, 아니 한 세트였기에 이미 치워서 따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은닉장에 들어갈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는 물건은 아닌 터라, 별채에 있는 어머니의 전용 방, 그러니까 아버지가 쓰는 사랑방에 해당하는 방 안에 놓인 농(籠)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 장난감이란 바로 청동 허수아비들이었다.
허수아비라고 해서 논밭에 세워진 그 허수아비가 아니라, 특정 사람 모양을 한 인형이었는데, 몽린의 장난감은 그중에서도 청동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데다 세트를 이루는 인형들의 모습도 다양했다.
말을 탄 기마무사들이 여섯이었고, 2두 마차도 하나 있었으며, 창을 든 일반 무사들도 여덟이나 되었다. 현대로 치면 군인 모형들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정교함을 보자면, 모든 인형들의 얼굴 생김새와 표정들이 다 달랐고, 말의 이빨까지도 세세하게 표현해 낼 정도였다.
그 청동 허수아비 세트가 어디서 언제 만들어진 건지는 몽린의 기억에도 없었다.
그저 아버지 해민도 어릴 적에 그 청동 허수아비를 가지고 놀았다고 들은 정보가 있어 여래입상처럼 대대로 아들들에게 전해지는 장난감인 듯했다.
다만, 허수아비들의 복장이나 생김새를 보면 아무래도 중국 쪽인 듯한 느낌이 들어 어쩌면 그 장난감들도 물 건너온 게 아닌가 싶었다.
그 외에도 주이의 노리개 몇 점과 해민이 전에 쓰던 작은 훈로(薰爐), 즉 청자 향로도 몰래 빼돌렸고, 고방에 있던 예쁜 가죽신과 허리띠도 챙겼다.
마지막으로 그것들을 넣을 적당한 상자가 없어, 따로 시전에 가서 오동목갑을 하나 사 왔는데, 튼튼한 걸로 고르다 보니 그 상자 자체도 후대에 거의 보물 취급 받을 듯했다.
그렇게 보물 상자를 만든 뒤, 몽주는 다소 급한 마음을 억누르곤 일단 천마산 정찰(?)에 나섰다.
불행히도 천마산은 천마산이 아니었다. 아직 이름 없는 산일뿐이었다.
그렇다고 천마산을 몰라볼 건 아니었기에, 혼자 천마산이라고 정하고 예정대로 천마산에 보물 상자를 묻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산이 너무 험하고 높다는 것이었다.
정상 고도가 해발 800미터 정도에 불과한 산이지만, 이 시대의 관점에서는 오르지 못할 산에 가까웠다.
현대의 천마산 군립 공원이야, 버스타고 정류장에서 내린 후 조금 걸어 매표소의 입구로 들어가면 잘 정비된 등산로가 있었고, 어지간히 오르기 힘들겠다는 구간마다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았기에 산의 험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저 높은 곳을 올라가는 위치 에너지의 변화만큼 힘들 뿐이었다.
하나 고려 시대의, 후대에 천마산이라 불릴 이름 없는 산은 짙은 숲과 삐죽한 암석으로 가득 찬 자연의 철옹성과 같았다.
사실 적어도 고을이 가까운 곳은 사람들이 땔감으로 쓸 나무를 해 가는 터라, 그리고 화전을 일군 땅도 있는 터라 지나갈 만했지만, 딱 그 구역을 벗어나는 순간 정말이지 난생 처음 보는 원시림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거기다 산짐승까지 있으니.
실제로 처음 무턱대고 석삼이를 끌고 천마산 정찰을 나서려다 도저히 갈 길을 몰라 포기한 첫 번째 후, 심마니를 구해 보물 상자도 짊어지고 다시 길을 떠났을 때, 멧돼지와 조우해 버렸다.
호환(虎患)을 당하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멧돼지도 재난이었다.
뜨거운 콧바람을 내뿜으며 달려드는 멧돼지에 기겁한 몽주는 가까운 나무 위에 매달렸고, 석삼이는 지고 있던 보물 상자를 내팽개치고 줄행랑을 놓았다.
그나마 심마니가 멧돼지를 상대한 경험이 있었다고 자랑하더니, 멧돼지의 돌진을 장봉으로 막아 내며 지치게 만들었고, 기어이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나, 그렇다고 다 잘 되었다고 할 순 없었다.
멧돼지를 상대하던 심마니가 다리에 부상을 당해 산을 도로 내려와야 했기 때문이다.
몽주가 보물 상자를 지고, 도망갔다 돌아온 석삼이가 심마니를 부축해서 힘들게 산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두 번의 산행에 실패하고, 다시 세 번째 시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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