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132)
* * *
“나하추와의 동맹?”
“그렇습니다. 비록 그가 마냥 신뢰하기 어려운 호인이나 서로 이익을 거둠에 있어, 우리가 앞서고 그가 뒤따른다면 손을 잡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간만에 나온 사냥에 뜬금없이 삼봉 정도전이 따라온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어느 계곡에서 쉬고자 할 때, 그가 조용히 제안해 온 것이 있었다.
바로 나하추와의 동맹이었다.
이성계는 잠시 먼 산을 보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와 이익을 나누어 손을 잡을 수 있겠소?”
“왜 아니 되겠습니까? 지금 중원의 북방에서는 명과 원이 여전히 다투고 있으니, 아마도 나하추는 혹여 명이 원의 남은 여력마저 꺾을까 우려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는 그다음에 당할 자가 바로 자신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에, 현후께서 훗날에 명이 북방에서 동진하고자 할 때, 나하추를 돕겠노라 한다면, 그가 훗날의 우환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현후를 도우려하지 않겠습니까. 똑똑한 자라면 결코 쉬이 거부할 수 없을 것이며, 제가 듣기로 나하추는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하였습니다.”
“하나, 나와 그는 서로 맞붙은 지 십여 년에 이르러, 여러 번이나 크게 싸웠소. 아무리 세상사가 오늘의 적이 내일의 친우가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속출한다고는 하나, 그가 나의 제안을 곧이곧대로 믿겠소?”
“전해 듣기로, 현후께서는 나하추와 철천지원수지간에는 이르지 않았다 하였고, 나하추 또한 현후께 존중을 숨기지도 않았다 하였습니다. 비록 적수라고는 하나, 원수가 아닌 호적수라 할 수 있으니, 그 또한 훗날 고립되는 처지를 감수하느니, 차라리 현후와 힘을 더해 보고자 하지 않겠습니까.”
삼봉의 부연으로 그의 주장에 한결 더 일리가 있게 느껴지자, 이성계 또한 깊이 따져 보았다.
삼봉이 그로 하여금 나하추와 손을 잡으라 제안한 것은 당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함이었으니, 고려가 영공과 수시중 사이에 중란(中亂)이 있어, 이성계는 영공과, 요동공은 수시중과 손을 잡게 되었다.
내심 이참에 심왕위를 얻는 것을 원하였던 이성계는 영공으로부터 심양왕위를 약속받는 것으로 그를 지지하기로 약속하고 혼사를 맺어 그 동맹을 굳건하게 하였으니, 비록 원하던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후에 영공과 더불어 고려와 요동을 양분한다면, 심양왕위를 승작하여 심왕위로 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이후, 문제는 수시중과 요동공을 어찌 대적하고, 어찌 승리하느냐는 것이었다.
수시중과 영공은 백중지세이나, 요동공은 자신보다 훨씬 큰 세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는 이성계 본인이 내린 솔직한 평가였다.
특히 요동공 최영은 여전히 고려 모든 군병들의 존경을 받고 있으며, 당장 그가 요동에서 지휘하는 군병의 수만 해도 경흥후에 비해 세 배 이상이었다.
병력의 수야 영공과 더불어 무리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늘릴 수 있겠지만, 진정 전력에 도움이 될 정예한 군병은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니, 요동공과 경흥후 간의 군력차는 결코 쉽게 메워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경흥후 이성계의 군력이 요동공 최영의 삼분지 일에 불과하다는 건 아니었다.
경흥후의 가별초는 실로 뛰어나 고려와 그 주변의 어느 군병들에 비해 나으면 나았지 모자란 군병들이 아니었고, 그중에 많은 기병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수에 비해 위력이 강대하다 할 수 있었다.
요동공의 군병들에도 기병이 없는 것은 아니고, 비슷한 수의 기병들을 가지고 있었으나, 경흥후의 가별초에 비하면 경험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다소 손색이 있다고 해야 했다.
하여, 이성계는 스스로 판단하기에 만약 수시중과 요동이 군을 일으켜 공격한다면, 부처께서 외면하거나, 어리석은 결정을 하지 않는 이상 적어도 지지 않을 수는 있겠다 싶었다.
하나, 중란의 위기를 넘고, 나아가 승리하여 심양왕을 봉작 받기 위해서는 견디는 걸 넘어서 이겨 내야 했으니, 그 방도가 곤궁하였던 것이다.
이런 중에 삼봉 정도전이 내민 방책은 당연 구미에 당기는 것이었다.
“분명 나하추를 끌어들여 그로 하여금 요동을 견제하게 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오. 하나, 만약 지금 나하추의 도움을 얻는다면, 후에 그를 도와야 할 것이니, 자칫하다가 명나라와 크게 적대하게 되는 상황에 처하지 않겠소?”
비록 요동에 대한 고려의 영유권을 인정받았다고는 하나, 그 인정이 영원할 거라고는 당연히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런 차에 만약 고려의 소속으로 요동을 다스리는 자가 명에 적대하여 나하추와 손을 잡는다면, 그 참에 요동을 도로 빼앗기 위한 좋은 명분만 제공하는 꼴이 될 것이고, 명의 국력을 생각하면 큰 위기를 초래하는 결과만을 낳을 것이라는 예상은 너무나 명확했다.
그러자 삼봉 정도전이 문득 허리를 곧게 펴고 눈빛을 부라리며 말문을 열었다.
“신의는 언제고 변개할 수 없지만, 전쟁에는 고정된 법칙이 없는 것입니다.”
“……하면, 나하추를 배신하라는 말이오?”
“나라의 존망이 달린 결정 앞에 약속을 번복하는 것은 단순한 배신이 아니니, 오히려 필부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진정한 용기가 아니겠습니까.”
“하나…….”
이성계가 무어라 말하려 하였으나, 그 전에 정도전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제주현백이 경흥후께 유연함을 가지시라 하였다지요? 저 또한 제주현백과 더불어 왜국에서 지내며, 그가 왜구를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한 일은 필부의 시선에서는 속임수와 거짓 약속이라 할 수 있으나, 나라의 안전을 지키고자 하는 큰 뜻 앞에서는 오직 필사의 노력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주현백이 경흥후께 고한 유연함의 진정하고도 냉정한 진면목이니, 이미 그의 조언에 따라 영공과 손을 잡으신 경흥후시라면 마땅히 그 진면목을 제대로 배우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
이성계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삼봉을 바라보았다.
이미 그가 다른 유자들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음을 짐작하고는 있었으나, 그런 예상조차 뛰어넘는 파격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던 탓이다.
포은 정몽주를 포함하여, 다른 유자들은 설령 다른 생각이 있다하더라도, 스승인 목은 이색 때문에 이견을 보이지 않았는데, 삼봉은 사냥까지 쫓아와 방책을 제시하였고, 그 방책 또한 유자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 유연한 것이었다.
“혹시 나하추를 배신하여도 좋다하는 것이 친명책(親明策)에 위배되는 것을 피하고자 하기 때문이오?”
“그것 또한 이유가 되겠으나, 명나라는 고려와 더불어 함께 영위할 나라일지언정, 경흥후와 저의 근본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친명책은 결코 모든 결정의 근본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아니 될 것입니다.”
마지막 확인마저 거치니, 이성계는 정도전이 다른 유자와 분명 다른 자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이로써 이성계가 삼봉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달라졌으니, 오랜만에 좀 더 깊은 심중을 보일 만한 자를 다시 만났다 여겼다.
* * *
현대에서 선박의 건조를 마치고 운항 허가도 받게 되면, 어지간한 경우 성대한 진수식을 진행한다.
그 진수식은 서양에서 유래된 방식을 따르니, 팡파르와 축포 속에 여성이 뱃전에 샴페인을 부딪쳐 깨뜨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인천에서 건조 중인 통합 범선 또한 완성되어, 진수식도 준비하였지만, 실제로 진행되진 못했다.
초여름 한반도 중부 지방에 때 아닌 호우와 강풍이 며칠이나 이어졌고, 서해에 파랑 주의보가 내려졌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새로운 범선의 진수는 예상외로 현대 한국이 아닌 제주에서 먼저 있었다.
진수식에 비할 만한 이벤트도 있긴 했지만, 제주에서의 진수식의 본질은 크나큰 노동이었다.
“끌어당기시오!”
배 위에 올라탄 늙은 바치가 푸른 깃발을 흔들면서 소리치니, 우측에 있는 인부들이 우마(牛馬)의 힘에 더해 힘껏 밧줄을 잡아당겼다.
그 밧줄은 해안에 박힌 말뚝을 거쳐 다시 배에 연결되어 있었다.
배의 우측 여러 곳에 매인 밧줄이 하나로 엮여 그들이 당기는 밧줄로 이어지는 형태였다.
용을 쓰며 당기자, 배가 우측으로 조금 더 당겨졌고, 배 위에서는 왼손에 들린 붉은 깃발도 흔들렸다.
그에 잠시 쉬던 좌측의 인부들도 똑같이 우마를 채찍질하고 직접 밧줄을 당겼으니, 배가 해안을 가로질러 바다를 향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끌려갔다.
“거의 다 되었구먼. 아주 힘든 일이었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던 화극이 겨우 안도하며 한숨과 함께 말하였다.
그의 말처럼 배를 다 만들고 막판에 망칠까 봐 몽주도 가슴을 졸여야 했다.
두 척의 배를 건조하며 시행착오를 겪으며 수정할 작정이긴 했지만, 가장 크게 수정해야 할 것이 진수를 할 때 발견될 줄은 몽주도 몰랐다.
그 수정점이란, 건조를 할 때부터 진수를 염두에 두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대의 조선소가 다양한 형태의 독(dock : 선거)을 이용하여 건조를 함으로써, 후에 배를 물에 띄우는 행위가 어렵지 않은 것에 비해, 고려의 배바치들은 배를 건조함에 있어 진수 자체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것은 당대의 배바치들이 어리석기 때문은 아니었으니, 해안 가까운 곳에 만들기만 하면, 썰물 때 배를 끌어 해안에 두고 밀물 때 배를 띄워 나아가게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즉, 그만큼 배가 가볍고 작았기 때문에 진수 방법 자체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 이번에 몽주에 의해 새롭게 지은 배는 기존의 배에 비해 더 크고 무거운 데다가, 배밑도 마냥 평평하지 않고 앞쪽은 첨저선마냥 뾰족했으니, 배가 모래에 더욱 깊이 박혀 끌어서 해안으로 가져가기가 몹시 어려웠다.
하여, 무당을 불러 용왕에게 배의 탄생을 고하는 예를 올리면서, 가볍게 시작한 진수식은 이내 고난을 헤쳐야 하는 힘겨운 사역으로 변하고 말았다.
둥근 목재를 레일처럼 밑에 받쳐 보았다가 배 밑에 흠이 크게 나고 목재도 부서져 곤란해하다가, 누군가 진흙으로 배가 나가는 앞에 깔아보자 하여, 바닥을 파서 진흙을 퍼다 담아 그 위로 천천히 끌기 시작하였는데, 그래도 힘이 겨워 우마를 잔뜩 동원해야 했다.
단지 힘만 크게 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배를 바다로 당기기 위해 해안 안쪽에 말뚝을 박아 거기에 밧줄을 걸고, 당기는 힘의 방향을 바꿔야 했는데, 힘이 워낙에 많이 실려 말뚝이 뽑히거나 부러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크고 무거운 배의 밑바닥은 모래와 자갈에 갈려 나갔으니, 배를 만든 바치들이 탄식하며 안타까워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고생 끝에 밀물이 시작되기 직전에, 목표했던 해안 안쪽까지 배를 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다음 배는 진수를 쉬이 할 수 있는 방법부터 강구한 후에 짓기 시작해야 할 것 같구먼.”
“맞습니다.”
“혹시 생각한 바가 있는가?”
진수 방법이야 몽주도 몇 가지 알고 있었다.
현대식 조선의 가장 대표적인 방법인 드라이 독(dry dock)을 이용할 수도 있고, 부양식 독을 이용하여 수상에서 건조하는 방법도 있으며, 육상 건조를 하되 미리 레일을 깔아 나중에 바다 위로 미끄러지게 할 수도 있었다.
이중 당대에서 시도할 만한 건 레일식이었다.
드라이 독 방식은 드라이 독을 만드는 것 자체부터 문제였고, 독의 문이 높은 수압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것도 당대의 기술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부양식 독은 기술적으로는 우회하여 시도해 볼만 하지만, 그 독을 설치할 만한 바다를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방파제로 외부의 파도를 막아 잔잔함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제주에는 방파제를 쌓은 곳이 없었던 것이다.
홍로현 어촌의 포구가 앞바다의 새섬과 문섬을 천연 방파제로 둔 덕을 보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파도를 완전히 막아 주는 건 당연히 아니었으니, 부양식 독을 이용하여 배를 건조하다가 풍랑이라도 한번 일어난다면, 모조리 박살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레일을 까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임에 틀림없었으나, 다른 두 방법에 비하면 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이었다.
하여, 몽주는 화극에게 레일을 까는 것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철로 만든 길을 바다로 내자는 겐가?”
“그렇습니다. 썰물 때 물이 빠지는 곳까지 설치해 두고 밀물 때 그 길로 배를 밀어내면 배를 바다에 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 자네 말대로라면 철길이 모래와 뻘에 박혀 들어가지 않겠는가.”
“그 철길 아래 판판한 철판을 깔아 그 위에 고정하면 쓰러지지도 않고, 뻘에 스며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길게 설명하진 않았으나, 화극도 압력을 접점의 면적을 키워서 분산시킬 수 있다는 이치 정도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음, 그렇긴 하겠군. 하면, 처음 배를 만들 때부터 철로 만든 길을 깔고 그 위에 바퀴가 달린 판을 놓고 시작해야겠군.”
“그렇습니다.”
레일을 이용하는 선거(船渠)를 만드는 일을 포함하여 다시 배를 짓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차피 먼저 지은 두 척을 운영하여 실전력화하면서 부족한 점을 파악해야 할 시간을 둘 생각이었으니, 애초의 계획과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몽주가 화극과 레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니, 그사이에 밀물이 들어와 서서히 새 범선 밑에 찰랑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몽주의 머릿속에서는 대마도 부주 대내의홍(오우치 요시히로)이 보낸 서찰에서 읽었던 료슌의 제안으로 생각의 흐름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몽주가 그를 지원할 의향이 있음을 전하자, 그가 다시 제안한 것은 화약과 물자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이었다.
대마도에 충분한 군선과 병력을 두지 못하는 상황에서 직접 참전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며, 차라리 석상(昔商)의 풍부한 기물과 자금을 쓰라는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라면, 그 말이 옳다 여겼겠으나, 이제 몽주에게도 새로이 제시할 수 있는 ‘카드’가 생겼다.
새로 만든 범선도 그 카드의 일종이긴 했다. 비록 두 척에 불과하지만, 당장 급할 것 없는 제주 연안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용도로 쓰지 않고 있던 배들을 함께 동원한다면 분명 꽤 큰 전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꽤 큰 전력 정도를 넘어 막대한 전력일 것이다.
왜냐하면…….
“천뢰탄(天雷彈)의 수정은 언제쯤 끝이 나겠습니까?”
“아아, 곧 될 걸세. 자네 의견에 따라 목곡(木曲)으로 죽통 안의 도화선 길이를 조절해 보니, 과연 폭발하는 시간이 제법 차이가 크겠더군.”
천뢰탄, 그것은 바로 고려판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였다.
화포를 본격 이용하면서 자연히 폭발형 포탄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는데, 의외로 천뢰탄의 개발은 몽주가 아니라 화극에 의해 먼저 시작되었다.
화극이 공무교리로 임하고, 그에게 군기 또한 맡기자마자 그가 좋은 생각이 있다며 설명하니, 그 대강의 개념이 비격진천뢰와 같았다.
포로 쏜 포탄이 적에게 날아가서 다시 폭발하면 적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철로 만든 둥근 탄환 안에 화약을 넣고 심지로 미리 불을 붙인 후 그걸 쏘자는 의견을 내었으니, 그에 몽주가 약간의 힌트를 주어 그로 하여금 심지의 길이를 조절하여 폭발 시간을 어느 정도 예정할 수 있게 유도한 것이었다.
비격진천뢰, 즉 천뢰탄의 기본적인 개념은 철구 안에 화약과 철편을 넣고, 한쪽 끝에 도화선 심지가 나온 죽통을 박은 후에 죽통 안으로 연결된 도화선을 나사 모양으로 깎인 목곡에 감아 그 도화선을 길이를 조절하는 것이니, 목곡을 많이 회전시킬 수록 감기는 도화선의 길이가 길어져 점화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었다.
처음 몽주가 그에 대한 힌트를 주었을 때, 화극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목곡이 아니라 평범한 나무토막에 도화선을 직접 감는 식으로 하였는데, 당연히 화급한 중에 사용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드러났다.
하여, 조금 더 직접적으로 원기둥 형태의 나무토막 표면에 곡선으로 홈을 파내어 회전시키면 자연히 도화선이 감기게 되는 것을 알려 주었고, 화극이 천뢰탄을 다시 개량하게 된 것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아이디어를 내어, 비격진천뢰의 단점 하나를 보강하였으니, 죽통을 박은 후 그 위를 덮는 두에쇠(뚜껑)를 완전히 박아서 고정시키는 대신에 그 위로 철편을 가로지르게 하여, 마치 대문을 잠그는 가로쇳대처럼 두에쇠를 고정시킨 것이었다.
완전히 박아 고정시키는 대신, 쇳대로 눌러 놓은 이유는 여차하면 다시 쇳대를 빼고 두에쇠를 열어 죽통을 뽑아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천뢰탄에 점화하였다가 쓸 필요가 없어졌을 때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본래 비격진천뢰는 한번 점화하면 일단 폭발시킬 수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그걸 개선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미 목곡을 도입하기 전 단계에서 천뢰탄을 시험해 보았는데, 그 성능이 나쁘지 않았다.
비록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아, 많은 양을 생산하여 가져갈 수는 없지만, 적당량만 있더라도 쓸 곳에만 쓴다면 화포의 위력을 크게 증강시킬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이렇듯 많은 화포를 실을 수 있는 새 함선과 지연 폭발이 가능한 천뢰탄이 있기에, 몽주는 료슌의 오만한 제안을 넘어 그만의 의도를 실현해 볼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하늘높은 줄 모르고 솟은 규슈탄다이 료슌의 기를 한번 꺾어 놓을 때도 된 것이다.
* * *
추수철의 풍성한 기쁨 대신에 중란의 위태로움이 가득한 고려에서 수시중 이인임과 요동공 최영이 세족들에게 사병들을 모집하라는 연통을 돌리기로 합의하고, 경흥후 이성계가 삼봉 정도전을 북방의 장춘(長春)으로 보내어 나하추와 비밀리에 협의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제주의 몽주는 군무교리 탁기, 공무교리 화극, 범무교리 홍길도, 보위장 앵도 등과 더불어 새로운 함선 2척을 중심으로 한 9척의 함대를 직접 이끌고 왜국으로 향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