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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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찰(米札)의 시중 유통량이 급증하기 시작한 건 양력으로 해가 바뀌어 을묘년(1375년)이 되면서부터였다.
물론, 미찰은 급여의 수단으로 꾸준히 지급되었지만, 양곡으로 교환하는 비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백성들 사이에서 미찰을 화폐처럼 쓰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었다.
이는 굳이 양곡으로 당장 바꾸지 않아도 될 만큼, 백성들의 식량 사정이 좋아졌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설날에 이르자 여러 물품을 구하려 하니 자연 거래의 규모가 커진 탓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몇몇 흥미롭고 반가운 현상이 일어났는데, 시장이 형성되었다는 점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제주현백의 가택이 있는 홍로현 언덕 아래에 제법 넓은 공터가 있었는데, 그곳에 백성들 중 일부가 저마다 상품을 내놓고 물건을 팔고 사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그 공터는 시장을 만들기 위해 내버려 둔 건 아니었다.
몽주가 홍로현에 세망(시멘트)로 집을 지으면서 훗날 길을 닦고, 상하수도를 매관할 생각으로 몇몇 집들을 모아짓되, 그 사이를 널찍이 떨어뜨렸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 현백의 집터라 여기는 그 언덕에서도 제법 떨어져 집을 짓게 되었고, 언덕 아래에 빈 공간이 생긴 것이었다.
그건 그때만 해도 제주현백이 너무나 어렵게 느껴져, 웃전과 멀리 떨어지고 싶은 양민들의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제주현백이 자비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제주현백의 가택 근처라고 해서 양민들이 껄끄러워하지 않게 되고, 또 그만큼 치안이 좋고, 위치도 홍로현의 중앙이었으므로 그곳에서 거래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직은 시장의 크기가 크지 않아 공터의 일부만 차지하고 있었지만, 점점 많은 이들이 시장을 이용하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보여 조만간 공터 전체가 시장될 것 같았다.
사실 교리들 중 일부가 처음 그 공터에 시장이 서기 시작할 때 그것을 폐하려고 했었다.
그곳이 제주현백의 가택이 있는 언덕 아래라, 현백이 오가는 중에 번잡하고, 시끄러울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나, 몽주가 오히려 시장을 장려하고, 군관들 일부를 배치하여 치안을 유지했으며, 음성적인 권력이 시장을 지배하게 되는 걸 막아 주었다.
그냥 두었다가 자릿세나 권리금 같은 쓸데없는 관행이 생기거나, 어깨패들이 설치는 걸 미리 제어하기 위함이었다.
설날을 기점으로 시장이 자리 잡음과 동시에 또 다른 흥미로운 현상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그건 홍로현에 처음으로 식당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건 주막이나 마방과는 분명 구분되는 곳이었다.
이름도 그대로 ‘식당(食堂)’이었는데, 오가는 객을 상대로 식사와 잠자리를 파는 곳이 아니라, 근처에 거주하는 백성들을 상대로 식사를 파는 곳이었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릇을 가져가서 식사거리를 사서 담아 가는 형태였다.
처음에 어느 노파가 근처 이웃의 식사를 돕고 대신 미찰을 받은 게 그 시초였는데, 그 노파의 음식 솜씨가 워낙 좋아 여기저기서 쓰려 하니, 어느 순간 돕는 대신 직접 식사를 만들어서 그것을 파는 식으로 바뀐 것이었다.
식당의 수는 점점 늘어나 설날이 지나고 난 후에는 홍로현 여기저기에 10곳 가까이 생겼으니, 시장 근처에 3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민가들 중에 있었다.
그렇게 식당이 여럿 운영이 가능한 건, 직업을 갖는 여성들이 많이 생긴 탓이었다.
일을 하기에 아침이 바쁘고, 점심때도 아이들을 차려 주기 힘드니, 식사거리를 사다 먹는 일이 제법 많이 생긴 것이다.
참고로 제주의 식생활이 많이 변해서, 이제는 하루 세 끼가 보통이었다. 이는 몽주가 사업장마다 점심을 주면서 점차 변한 것이었다.
후루룩.
“아, 이거 맛있네.”
몽주는 그릇에 담긴 국밥을 먹으며 나름 만족해했다.
요즘 식당이 성황이라는 말을 듣고, 시장 근처의 식당에서 사 와 보라 하였는데,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탓인지 생각보다 먹을 만했다.
현대에서 이와 비슷한 걸 만들어 본다면, 설렁탕에 가다랑어포를 한 움큼 넣어 걸쭉하게 끓이고, 거기에 밥을 말아 먹으면 될 것 같았다.
들어 있는 고기는 어른 손가락 두 개 정도 크기의 얇은 육편 하나가 전부였지만, 그게 어딘가.
“이게 얼마라고?”
“미찰 두 개면 살 수 있습니다.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고, 다만 미찰을 하나 더 내면 고기를 추가해 주기도 합니다.”
점녀의 설명에 몽주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현재 가장 많은 여성 인력을 쓰고 있는 사탕무 재배업의 하루 일당이 미찰 스물다섯 개였고, 이중 세금을 제외한 실지급은 스물둘이라는 걸 생각하면 5인 가족 기준으로 아침과 점심을 식당에서 사서 먹는다고 해도 여성의 수입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현백군의 경우 하병의 일당도 미찰 마흔 개에 이르니, 만약 남편이 군병이고, 아내도 일을 한다면, 그 가정은 꽤 많은 저축이 가능할 것이다.
“아무래도 은행을 설립해야겠는데……. 아니, 그 전에 미찰을 화폐로 전환하는 게 먼저겠지.”
집마다 미찰이 쌓여 있을 것을 상상하며 몽주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화폐 경제가 정착되어 돌아가는 걸 느꼈다.
원체 한국의 역사에서 화폐 경제가 실패한 경우가 많아 상당히 보수적으로 예상했는데, 적어도 제주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백성들이 체감할 수 있는 쌀과 가치를 연동한 덕이기도 하고, 급여를 미찰로 대신한 덕이기도 하였으며, 농사가 아닌 여러 산업이 육성되고, 급여도 충분하다 보니, 잉여 재산이 생겨나면서 미찰을 쓸 여지가 많아진 덕이었다.
화폐라는 건 결국 거래를 통해 회전해야 정착되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미찰의 가치를 ‘정부’가 보증해 준 덕이 가장 클 것이다.
미찰이 화폐로 정착되는 것이 반갑기는 하지만, 몽주는 그만큼 조급한 마음이 생겼는데, 자칫 미찰이 너무 제주 경제에 뿌리내리면 본격적인 화폐 경제로의 전환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제주뿐이라면 쌀의 가치와 연동되는 미찰을 계속 써도 상관없겠지만, 당장 대마도와 규슈의 축후국에서도 똑같이 미찰을 쓰기는 어려웠다.
두 곳 모두 제주와 쌀의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었고, 장차 더 많은 곳에서 쓰일 화폐를 생각하면 더욱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몽주가 내심 구상 중인 금 본위제 화폐 제도도 마찬가지이긴 했다.
금의 가격 또한 지역별로 다를 테니까.
하나, 금은 가치가 크게 높아 금의 유통을 통해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했지만, 미찰은 아니었다.
미찰의 가치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정말 엄청난 규모의 쌀을 움직여야 할 것이니, 이는 배보다 배꼽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게 최선…… 인지는 모르겠고, 현대처럼 신용 화폐 제도로 바로 갈 수도 있겠지만, 은행도 하나 없고, 재정 금융 정책을 구현할 ‘정부’도 없는 데다가 화폐의 가치를 변동할 각종 시장도 없는 상황에서 신용 화폐는 무리도 보통 무리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신용 화폐는 구체적인 화폐에 대한 신뢰를 넘어, 화폐 제도 자체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필요하였으니, 이제 겨우 화폐로 거래하는 정도에 불과한 상황에서는 그것을 추구하는 건 망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일단은 금이나 은으로 본위제 화폐 경제를 정착시켜야 하는 것이 옳았는데, 문제는 금이든 은이든 제주에는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명국의 은이 가치가 높다는 걸 생각하면 금 본위제가 유리한데, 제주의 금은 몽주가 이주하며 가져온 것이 거의 다였고, 그걸 화폐 경제의 기준으로 삼기에는 불안했다.
하여, 몽주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재무교리 점녀와 상무교리 고신걸을 불러, 미찰 체제의 개선을 논의하였고, 그들에게 금 본위제 화폐 경제에 대해 한참이나 설명해 주었다.
“아직 크게 깨닫지는 못하여, 금 본위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아야겠으나, 당장에 제주와 현백의 영토에서 그것을 시행하는 것은 무리라 여겨집니다.”
이맛살을 찌푸린 채 현백이 말한 것을 이해하느라 바쁜 상무교리 고신걸에 비해, 점녀는 대략 감을 잡은 것인지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다만, 지금 미찰이 크게 풀려 집마다 쌓여 있는 것은 자칫 미찰에 대한 신망을 잃을 여지가 있을 것이니, 이를 회수하는 방도는 분명히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새로 미찰을 제조하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 현백께서 말씀하신 미찰을 받아 보관해 주는 곳은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은행의 필요성에 점녀가 동의하니, 몽주 또한 은행을 설립할 마음을 다질 수 있었다. 한데, 몽주가 이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엉뚱한 말이 그녀와 고신걸로부터 나왔다.
“이자는 오 푼만 되어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스물을 받아 열아홉을 주는 것이니, 미찰을 안전히 보관하고, 여러 곳에서 편리한 대로 찾을 수 있는 점을 생각하면 누구든 미찰을 맡기려 할 것입니다.”
“……내가 말한 이자는 더하는 것이네만.”
세 사람 모두 놀란 표정을 동시에 지어야 했다. 몽주는 이자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으로 이해한 점녀와 고신걸 때문에 놀랐고, 다른 두 사람은 왜 이자를 더해 주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해 놀란 것이었다.
때문에 몽주는 이자의 이유와 은행업의 이치에 대해 또 한참 설명해야 했다.
“그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의심을 가지게 하고, 자칫 현백께서 백성들의 재산을 강탈한다는 소문을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신걸이 걱정하며 말하니, 그는 당대의 보(寶)를 연상한 탓이었다. 일종의 고리대금업으로 변질된 보가 백성들을 착취한 것과 은행업을 같이 본 것이었다.
하기야 당대의 금융 조직에 해당하는 것이 죄다 그 정도 수준이었으니, ‘정상적인’ 은행업에 대한 이해가 높을 리가 없었다.
이에, 몽주는 지급 준비율과 대출 이자의 한도 등을 두고 한참 설명하니, 두 사람도 이해를 하긴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여전히 불안한 모양이었다.
지금 제주를 다스리는 몽주야 자비로우니 걱정하지 않을 수 있지만, 후에 몽주가 아닌 다른 이가 제주를 다스릴 때, 그가 악한 마음을 품는다면 얼마든지 은행업이 고리대금업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몽주는 그런 예상이 비단 두 사람뿐만 아니라, 백성들 사이에서도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여 고심하다가 은행업으로 모인 자금은 제주현백이 시행하는 사업에만 쓰는 것으로 한정하기로 하였다.
이는 몽주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를 빌리고자 한 것이고, 또 고리대금업으로 오해를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름을 전포(錢鋪)라고, 일단 이자는 일 년 단위로 3푼을 지급하는 것으로 할 터이니, 재무교리는 이를 주도하고, 상무교리 또한 그에 필요한 지원을 하게.”
그리하여, 몽주가 주인인 전포가 홍로현과 대현(제주현)에서 열린 것을 시작으로 제주의 현마다 하나씩 열리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반응이 신통치 않았으나, 미찰이 그랬던 것처럼 그 편리함은 물론, 약간이나마 이자를 더해 주니, 차츰 전포에 미찰을 맡기는 이들이 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일당을 집에 전부를 가져가는 대신 일부만 남기고 나머지는 전포에 맡기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다만, 그 부작용도 있었으니, 미찰을 맡겼음을 증명하는 찰장(札帳)을 위조하는 자가 생기기도 했고, 전포에서 일하는 자들끼리 작당하여 미찰을 사사로이 쓰다가 걸리는 사건도 있었다.
수와 셈, 그리고 사무에 익숙한 인력이 많이 필요해짐에 따라 고급 인력이 더욱 궁해지기도 했다.
이에, 몽주는 전포와 관련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중형에 처하여 일벌백계하였고, 홍길도 교리에게 따로 명한 것이 있어, 그것으로 고급 인력을 육성하고자 하였다.
물론, 이런 변화와 사고들은 한참 후의 일들이었다.
* * *
함주로 간 몽주의 함대가 돌아온 건 겨우 한 달 만이었다. 굉장히 빨리 다녀온 것인데, 항해일지를 받아 보니, 함주(함흥)까지 가는 데 보름 정도 걸렸고, 돌아오는 건 불과 열흘만 소요한 것이었다.
전에 몽주가 함주에서 장문국(나가토국)으로 항해하는 데에 한 달을 훌쩍 넘었던 것을 생각하면 탁기의 함대는 대단히 순항한 것이었다.
탁기는 바람이 일정하고, 날이 좋은 덕이라 겸양하였지만, 몽주는 탁기가 바다의 장수로 크게 성장했음을 알고 기뻐하였다.
포은 정몽주가 함께 제주로 온 것은 물론이었다.
그는 큰 배 덕에 힘들지 않고 왔다며 고마움을 표하였는데, 그의 안색은 말과 달리 좋지 않았다.
하여, 그를 일단 쉬게 하고, 탁기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니, 그에게서 경흥후의 사정을 듣고자 했던 것이다.
탁기가 말하길, 지금 경흥후는 싸움에 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했다. 다만, 탁기가 함주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다음 날에라도 군을 몰아갈 듯했던 경흥후가, 의외로 탁기가 포은을 싣고 떠날 때에는 오히려 태세가 누그러졌다고 하였다.
그 이유를 알지는 못하나, 경흥후가 급하게 구는 대신 신중함을 택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경흥후가 나하추의 요동 견제만을 믿고 영공과 더불어 진격했다가 만약 명국이 개입하는 일이 벌어지면, 차라리 지키고 있는 것만도 못하게 될 터였으니,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는 것이 맞는 처사였다.
탁기와 이야기를 나눈 후에도, 몽주는 포은과 바로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다.
제주의 일이 많은 탓도 있었지만, 대마도와 축후국에서 전해 온 소식에 담긴 일에 대해 논하여 결정하고, 답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대마도는 제주 부씨 출신 교리가 부도주(副島主)로 가 있었는데, 왜국과 교역이 늘면서 대마도에서 시행될 사업도 크게 늘었다.
대부분 교역을 위한 건설의 허락을 구하거나, 대마도의 백성들을 가르치고 쓰는 데 필요한 인력을 청하는 것이었다.
대마도에 고려말을 하는 자들이 적지는 않지만, 그들 대부분이 고신 가문 출신으로, 왜구를 부리던 가문이었기에 그 등용을 자제하니, 일이 많아질수록 자연 인력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역시나 인력이 가장 문제였고, 가면 갈수록 고급 인력에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몽주는 세망과 철 등 건설 자재는 충분히 보내되, 인력은 그곳에 있는 군병들 중에서 골라 임시로 쓰게 하는 미봉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대마도에서 전해 온 소식 가운데 몽주가 더 신경을 쓴 건 부도주의 청보다 대마도를 거쳐 온 쇼니 후유스케의 서찰이었다.
전반적인 내용은 안부를 묻는 수준의 친교성 내용이었지만, 그중에 규슈탄다이 료슌을 도모하자는 지난번 제안에 대한 재촉도 있었다.
이번에도 몽주는 확답을 미루되, 다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대답을 보냈다.
이는 만약 쇼니씨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고, 료슌을 도모하여 규슈의 남반을 차지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이겠으나, 이후에 필요한 군력과 인력을 생각하면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당장 고려의 중란이 어찌 변할지 모르는 판에 쇼니씨가 급작스레 일을 치러 현백군이 끌려가게 되는 일은 피하고자 한 것이었다.
축후국의 다의홍이 보낸 서찰에도 수두룩한 청이 있었다.
료슌이나 오토모씨가 잠잠한 것에 비해, 남부의 시마즈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모양이었다.
군을 국경 근처에서 기동하는 모습도 보이기도 하고, 배를 보내 축후국의 반응을 살피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다의홍은 축후국 내부를 장악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웠는데, 만약 시마즈씨가 공격해 온다면 크게 위태로울 것이 분명했다.
현백군 일부가 축후국에 가 있기는 하나, 홍로급이 아닌 구형 함선 몇 척에 병력도 다의홍의 무사들을 합쳐 사백이 조금 넘을 뿐이라, 아무리 화포를 쓴다고 해도, 남부 세 개 율령국을 다스리는 시마즈씨가 여러 곳에서 쳐들어오면 중과부적의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다.
몽주는 이를 총무 회의에서 논의하여, 일단 홍로급 경함선 두 척을 보내고, 차후에 상황을 보아 추가로 파견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모든 일에 있어서 인력은 그 양과 질, 그리고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몽주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유민들을 데려오면서 인구의 증가 자체는 제법 빠른 편이었으나, 쓸 만한 인력을 얻는 것은 그렇지 못하였고, 고급 인력은 더욱 구하기 어려웠으니, 답답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중에 이제는 명국에도 가야 할 판이었다.
* * *
千仞崗頭石逕橫
천길 바위머리 돌길로 돌고 돌아
登臨使我不勝情
홀로 다다르니 가슴 메는 근심이여
靑山隱約夫餘國
청산에 깊이 잠겨 맹서하던 부여국
黃葉檳紛百濟城
누른 잎은 어지러이 백제성에 쌓였도다
九月高風愁客子
구월의 소슬바람에 나그네의 시름이 짙은데
百年豪氣誤書生
백 년 기상 호탕함이 서생을 그르쳤네
天涯日沒浮雲合
하늘과 해는 지고 뜬구름 덧없이 뒤섞이는데
矯首無由望玉京
다리 위에서 고개를 들어 하염없이 개경만 바라보네
술기운이 가벼이 돈 얼굴로 시를 읊는 포은의 얼굴은 많이 상해 있었다. 결코 제주까지 오는 여정의 고달픔 때문만은 아닌 듯하니, 근자에 그가 속앓이를 크게 한 듯했다.
“이보시오, 현백. 지난날 국익을 논하며 나와 약속한 것을 기억하시오?”
술 냄새와 더불어 건너온 질문에 몽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이제는 어찌 생각하시오? 지금 영공이 수시중과 적대하여 고려에 중란이 생기게 하였는데, 이럼에도 영공이 있어 국익이 된다 여기오?”
“중란이 어찌 국익이겠습니까?”
“하면, 현백은 약속대로 영공과 손을 끊을 것이오, 아니면 그때의 약속을 식언할 것이오?”
“둘 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허허, 이런…….”
웃음을 흘리면서도, 그것이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님이 확실한 웃음이었다.
“그건 비겁한 처사가 아니오?”
“비겁한 것일 수는 있으나,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영공이 수시중과 대적하는 것은 분명 사사로운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 그렇다고 제가 영공과 손을 끊는 것 또한 국익은 아닐 것입니다. 만약 제가 영공과 손을 끊고, 나아가 그를 적대한다면, 곧 고려가 수시중의 손에 들어갈 것입니다. 포은 선생께서는 이것이 국익이라 여기십니까?”
“끌끌, 그건 아니지요. 영공이나 수시중이나 다 사익을 노리는 건 매한가지이니.”
“그리고 이미 경흥후로부터 듣기로는 목은 선생을 비롯하여 경흥후에 의탁한 유자들 모두 경흥후와 영공이 손을 잡는 것을 지지하였다 하였습니다. 하면, 이제 와 지난날의 약조를 언급하며 저로 하여금 영공과 손을 끊으라 하실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몽주가 유자들의 처사를 언급하니, 포은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우리가 어찌하여 경흥후와 영공의 연대에 동의한 줄 아시오?”
“…….”
몽주는 그 이유 또한 알고 있었다. 다만, 안다고 대답하지 않은 것은 그 이유를 포은이 부끄러워하고 있음을 짐작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지금 포은의 심정이 좋지 않은 이유일 것이리라.
대신 포은이 술에 취한 어투로 그에 대해 주절대며 말하였다.
“우리 유자들 중 많은 이들이 세족 출신이니, 고려에 대토지를 얻은 자들이 많소. 그런데 이제 고려에서 쫓겨나 경흥후에게 의탁하니, 자연 그 땅의 소유가 위태로워졌소. 그러던 중에 경흥후가 영공과 논하여, 만약 영공이 중란에서 이긴다면, 유자들이 고려로 돌아가지는 못하더라도, 그 토지의 소유를 인정하여 이문을 취할 수 있게 하겠노라 약조했소. 그에 스승님이 먼저 사원을 짓겠노라 명분을 내세우며 응하니, 같은 생각이든 아니든 다들 동의한 것이오.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였소. 본디 유자라면 재물에 눈이 멀어서는 아니 되는데, 탐욕을 쉽게 버릴 수 없었던 것이오. 그러던 차에 스승께서 먼저 응하시고, 사원을 지어 유학의 도를 함주에서 다시 키우자 하시니, 응하지 않을 수 없었소. 나를 비롯한 유자들 또한 고려의 중란에서 사익을 챙기는 데 급급했을 뿐인 것이오.”
포은은 자신의 결정이 너무나 부끄러웠던 모양이었다. 그가 익힌 유학에서 추구하는 인성에 재물을 추구하는 바는 없으니, ‘유학 근본주의자’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모순되는 것이니, 그 사실이 심신마저 힘들게 하는 모양이었다.
다만, 몽주는 포은에게 숨기며 실소하였는데, 어차피 역사에서 조선을 세우고, 유학의 기치를 세웠던 사대부들 또한 결국 사리(私利)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본디 유학에는 그런 한계가 있지 않은가. 그들이 탐구한 인간의 본성은 그 자체가 이미 이상적인 것이고, 성세의 치세 속에서나 자그마한 가능성이 있는 학문이었다.
하나, 성세는 드물었고, 평세조차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유학은 평생 그것을 익힌 자들조차 스스로를 배신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공자께서 경계한 것은 덕을 행하지 않고, 명리(名利)를 추구하는 것이지, 그저 가난하라고 말하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몽주는 나름 위로의 말을 건넸으나, 포은의 안색은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이미 동의한 방도에 덕이 없는데, 그 후에 덕을 행한다는 것은 우스운 변명에 불과하지 않은가.”
토지를 얻고 지키는 방도가 유자들이 그토록 혐오했던 영공과의 간접적인 결탁이었으니, 포은은 절로 자기혐오에 빠진 모양이었다.
출항하기 전에 포은과 가벼이 한잔하며 세상 이야기나 할까 했던 그 자리에는 포은의 푸념만 절절히 넘쳐 났다.
다만, 술자리를 파하고 숙소로 돌아갈 때까지도 포은의 마음속에는 제주현백에게 밝힐지 말지 고민하던 것이 하나 있었다.
“이보오, 현백. 혹시 무학이라는 승려를 아시오?”
포은이 가복의 부축을 받으며 발걸음을 옮기다 말고 물으니, 몽주는 그 뜬금없는 물음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자는 들어 알고 있습니다.”
“……혹시 현백은 천리를 거스르려 하시오?”
“……?”
연이은 뜬금없는 물음에 몽주는 어이없고, 의아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천리를 따르면 따르지, 어찌 거스르려 하겠습니까?”
다만 속으로 포은이 아는 천리와 그가 아는 천리가 다를 뿐이라 읊조렸다.
포은은 몽주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곤 별 말 없이 그대로 숙소로 돌아갔다.
다만, 포은의 마음속에는 무학 대사로부터 들은 말이 흘러다니고 있었다.
얼마 전, 무학 대사가 경흥후와 만나 군을 급하게 움직이려는 것을 만류하고는 유자들을 찾아와 공손하게 청한 것이 있었다.
“부디 경흥후를 계속 도와주시오. 그는 새 세상을 열 만한 인물이나, 그대들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한 일일 것이오. 본디 자연히 그리되어 새 세상을 열게 되었을 것이었건만, 문득 하늘이 일그러져 역천자(逆天者)를 따로 내어놓았소. 그자가 세상의 모든 것을 몰아 움켜쥐려 하니, 그대 유자들의 마음 또한 크게 흔들릴 것이오. 만약 그대들이 역천자에게 투신하여 따른다면, 유리(有利)는 있을 것이나, 역천자가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을 죽이는 일을 돕게 될 터이니, 아무리 부귀영화가 있다 하더라도 진정 하늘의 도리를 따르는 자라면 어찌 그에 굴종하겠소?”
불자(佛者)의 말이라 유자들은 대개 신경 쓰지 않았으나, 그 말을 듣고 한동안 궁리하던 포은은 함주를 떠나기 전에 무학을 다시 만나 역천자가 누구인지 캐물었다. 그에 무학이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 힘겹게 대답한 것이 있었다.
“그대가 곧 남쪽에서 만날 것이니, 그대는 역천자의 진면목 또한 조만간 일견할 수 있을 것이오.”
정확한 대답은 아니었으나, 포은의 머릿속에 한 인물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진면목이 과연 무엇인지 몹시 궁금하기도 했다.
* * *
입춘(2월 4일경)이 지나, 몽주는 홍로급 경함선 12척으로 이뤄진 함대와 더불어 명국을 향해 출항하였다.
그 함대에 속한 경함선 중 하나는 창 선장이 지휘하고 있었는데, 본디 그가 이끌던 대선에서 물러나 보름 전부터 새로 지은 경함선을 지휘하게 된 것이었다.
창 선장의 배에는 석삼이와 감태도 승선했는데, 감태는 먼 바다로 가는 것에 흥분하고 있었지만, 석삼이는 아니었다.
“그저 무사히만 다녀왔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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